요즘 정신이 없습니다. 정말 느지막히 애플 워치를 산데 이어서 정말 느지막하게 아이폰 6s 플러스(iPhone 6s Plus)를 구입했습니다. 6 플러스는 연말에 구입했는데 6s 플러스는 3월에 구입을 했군요. 이런식이 되면 다음 기종은 내년 6월에 구입하겠습니다(웃음). 이 점에 대해서는 뭐 개인적인 사정이 이래저래 실타래같이 엉켜있지만, 어찌됐든 매년 나오는 아이폰을 빼놓지 않고 살 수 있다는게 어디냐 하면서 위안을 하려고 합니다. 게다가 앞으로 아이패드다 맥이다 돈 들어갈 구석이 산 같이 있으니까요. 사실 지금은 맥을 사용할 수 없는게 매우 짜증나는 상황입니다, 윈도우 컴퓨터가 데스크톱과 노트북 한 대씩 있지만 구입한지 5~6년 되서 속도가 아주 가관이거든요. 게다가 맥과 윈도우는 스크롤 방향마저 반대입니다. 마치 왼쪽 핸들 차를 몰다가 오른쪽 핸들 차를 모는 나라로 이사한 느낌 같습니다. 사실 제가 아이폰을 늘 늦게 사는 까닭은 다름이 아니라 통신사 할부가 아니라 애플스토어를 통해서 사기 때문입니다. 1 꽤 여러가지 장점이 있습니다. 그래서 애플 제품은 어지간한 경우 그냥 애플스토어에서 삽니다. 컴퓨터가 안되서 짜증을 내면서도 아이폰을 먼저 산 것은 팀 쿡이 FBI의 요청을 거절하며 쓴 공개 편지에서 언급한 대로 삶에서 가장 필수적인 물건 중 하나이기 때문("Smartphones, led by iPhone, have become an essential part of our lives.") 입니다. 뭐 한 마디로 말해서 스마트폰은 디지털 시대에 있어서 칫솔과 같다는 얘기죠. 세면도구를 가지고 다닐 때 칫솔이 빠지지 않고, (스마트폰을 그럴 수는 없지만) 칫솔이 떨어지면 안되도록 여벌을 챙겨두거나 헤지면 바로바로 사는 것과 같은 겁니다.
사실은 그 이전에 곡절이 있었는데 6 플러스가 엄청 버벅이고 배터리를 게걸스럽게 먹는 겁니다. 애플의 엔지니어도 일이 있어서 들렀던 서비스 센터의 엔지니어도 '그냥 복원(OS 재설치)을 하시고 새로 시작하시는게 좋겠다'라는 소리를 했습니다만, 사실 90GB의 데이터와 더불어서 현재 맥에 접근하지 못하는 상태라 아이튠스에 있는 음악을 듣기가 매우 어려워 질것을 핑계로 질질 끌고 있었….는데 공교롭게도 기계가 고장나서 리퍼를 받게 되어서 강제로 초기화 당했습니다. (웃음)
뭐 여기까지 긴 헛소리는 배경 상황이고 실제로 제가 하려는 말은 따로 있습니다. 전화기를 새로 갈아 엎은게 몇 년만인데, 의외로 모두가 생각하듯이 '최종 수단'입니다만 그렇게 심각하지 않다는걸 알게 됐습니다. 사진은 아이클라우드(iCloud)와 구글 포토(Google Photo), 그리고 드롭박스(Dropbox)에 각각 보관되어 있었거니와 음악도 애플뮤직과 아이튠즈 매치 덕택에 아주 못듣는건 아니었습니다2. 메모나 할 일 목록 기타 등등 컨텐츠는 로그인만 하면 바로 꺼내올 수 있었고 북마크 등도 클라우드에 다 보관되어 있었죠. Marco Arment의 팟캐스트 어플 Overcast는 새 기계에서 탭 한번으로 모든 목록을 불러왔고, 심지어는 전의 기기에서 듣다 만 지점까지도 기억하고 있었죠. 어쨌든 새 기계로의 전환은 생각보다 통증이 없었습니다. 지금 쓰는 아이폰은 아직 아이폰 6 플러스입니다만 이것도 아이폰 6s에서 아이클라우드에 해둔 백업에서 이어온 겁니다. 3
그야 말로 클라우드의 시대입니다. 예전에는 단말기에 저장하는 것이 당연했고 단말기가 (어떤 이유로든) 초기화 되거나 접근할 수 없으면, 백업에서 출발하지 않는 이상 데이터는 끝!이라고 생각했는데요. 이건 이제 전시대적인 얘기가 된 것 같습니다. 의외로 정말 많은 것을 단말기가 아니라 클라우드에 저장할 수 있습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16GB 아이폰을 쓰는 용기있는 행동은 저는 못할 겁니다. '새로 시작한' 단말기에서도 벌써 40GB쯤을 사용하고 있으니까 말이죠. 128GB 모델의 리퍼비시 제품을 센터에서 개봉 할 때, 이 녀석을 뜯는 것은 정말 오랜간만이라고 엔지니어가 말할 정도로 사용자가 드문 모양입니다만(사실 128GB 모델의 무식한 값이 아이폰 구입을 늦추는 요인 중 하나일 것 같습니다).4
전에 쓰던 (고장난) 맥북프로에는 예전까지 다운로드 받아두었던 앱들의 사본들이 몇십 기가 쯤 있었습니다만, 이제는 앱 슬라이싱이다 해서 자기 단말기에 맞는 녀석만 다운로드 받으니까 복원을 받을때도 로컬에서 복사하는게 아니라 클라우드에서 자기 단말기에 맞는 버전을 받는 방식으로 바뀌었지요. 전화기를 앱으로만 수 십 기가 채울 수 있습니다만 그 앱도 결국 클라우드를 거치는 셈입니다.
래리 앨리슨이 오늘날로 치면 씬 클라이언트라고 할 수 있는 네트워크 컴퓨터(NC)를 주창했을 때만 하더라도 특히 MS가 많이 조소했습니다만5, 한편 빌 게이츠는 미래로 가는 길이라는 책에서 모든 사람들이 손 안에 들어가는 정보 단말을 가질 것이라고 예측했었습니다. 실제로 모두가 손 안에 들어가는 정보 단말을 가지게 됐어요. 그게 그 예측을 할 때 주류로 사용되던 PC보다도 훨씬 고성능의 기기이며, 무엇보다 그 대부분이 MS의 운영체제(와 서비스)로 돌아가지 않는다는 사실까진 예측하지 못했지만 말입니다.
초고속 인터넷이 깔리고, 무선랜이 깔리고, 이동통신망의 속도가 나날이 빨라지면서 우리는 항상 연결되고 있습니다. 스마트폰을 덜 보게 만들어준다는 스마트 워치 조차도 결국 우리를 인터넷의 각종 어플리케이션과 서비스에 묶어두는 툴로 스마트폰의 연장이지요. 극장에서 스마트폰 대신 시계를 보는 것과 비유가 될까요? 이거나 저거나죠.6 우리의 데이터가 어디에 있는가를 생각하는 것은 점점 부질없어지고 있습니다. 이제 그건 어디에나 있으니까요. 마음만 먹는다면.7
- 이건 정말 잘했다고 생각하는 것이 6s 플러스가 LTE를 제대로 잡지 못하는 문제가 있었습니다. 집 뿐 아니라 다른 곳에서도 미친듯이 LTE와 3G를 왔다갔다 했죠. 아마 '그러시군요, 교환품을 준비해 드리겠습니다'라는 애플 스토어의 정책이 아니었다면 센터를 들려서 점검을 돌리고 이러쿵저러쿵 한뒤에 대리점에서 또 이러쿵저러쿵 한 끝에야 새 제품을 뜯을 수 있었을 겁니다. ↩︎
- 이건 언젠가 한번 따로 얘기 좀 해야겠습니다. 이게 의외로 iOS 사용자들의 가장 짜증나는 점인 '음악을 넣기 위해서는 아이튠즈를 통해 동기화 해야 한다'는 고통을 경감시켜 주거든요. ↩︎
- 암호나 인증 정보등을 저장하는 키체인을 남기기 위해서는 암호화된 백업을 해야 합니다. 아이클라우드 백업도, 아이튠스를 통한 암호화 된 백업도 암호화 되는 백업인 것은 같지만, 기기를 옮기게 되면 아이클라우드는 키체인을 옮기지는 않습니다. ↩︎
- 사실 주변에서 가장 많이 보는게 64GB라는 사실 말고도 일본의 휴대폰 판매 차트를 보면 (단말기 보조금 규제가 시행되기 전까지는) 늘 최상위에 있는 모델은 아이폰 현행 모델의 64GB 모델이고, 128GB 모델은 심지어 16GB 모델보다도 인기가 없습니다. ↩︎
- 한대라도 더 많은 컴퓨터에 윈도우와 오피스를 깔기 위해 핏발이 서던 MS가 iOS와 안드로이드에 오피스를 넣고, 윈도우에 리눅스를 집어넣는걸 보고 참 세월이 무상하다 싶었습니다. ↩︎
- 그래서 저는 필요할 경우 워치도 에어플레인 모드에 놓습니다. ↩︎
- 샌버너디노 총격사건 때 범인은 아이클라우드 백업을 삭제했고, 애플은 아이폰의 잠금을 풀어줄 수는 없다고 버텼지만, 가지고 있는 아이클라우드 데이터를 FBI에 넘겼습니다. 굳이 이 사례를 떠나서 클라우드를 믿지 않는 사람은 의외로 많다고 생각합니다. 클라우드의 신뢰성에 여전히 의문을 가진 분도 많구요. 그러니 마음 먹기 달린겁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