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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곰은 2000년 MS의 모바일 운영체제인 Pocket PC 커뮤니티인 투포팁과 2001년 투데이스PPC의 운영진으로 출발해서 지금까지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2005년 이후로 푸른곰의 모노로그를 운영하고 있으며 지금은 주로 애플과 맥, iOS와 업계 위주로 글을 쓰고 있습니다.

닛케이 브리핑 : 한국 Watch (미네기시 히로시) — 과격한 반일 단체의 정체(2019/8/13)

서울에서 최근 열리는 일본에 대한 항의 집회에서 반드시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귀에 들려오는 구호는 무엇일까요? 정답은 한국과 일본이 방위 비밀을 공유하는 “군사정보포괄보호협정(GSOMIA)”의 파기입니다. GSOMIA는 일반의 시민에게 덜 알려져 있고, 일본 정부가 시작한 한국에 대한 수출관리의 엄격화와도 직접 관계가 없습니다. 그 이유는 서울에서 일어난 과격한 반일 행동에서 엿볼 수 있습니다.

7월 25일, 서울 상암동에 있는 후지테레비 서울 지국에 한국인 대학생 단체의 멤버가 침입하여 지국의 폐쇄를 외치거나 욱일기가 걸려진 종이를 찢거나 태우는 등 소동이 있었습니다. 그 1주일 전에는 역시 산케이 신문 서울 지국에 복수의 남성이 무단으로 쳐들어와 항의문을 읽는 등의 일이 있었다고 합니다.

김정은을 예찬

한국 미디어에 따르면 대학생들은 친북계 단체 “한국 대학생 진보 연합(대진련)”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북한의 김정은 위원장의 의한 정치를 “사랑과 신념의 정치”로 찬동하며 작년 11월에 서울 방문을 환영하는 행사를 연 단체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 이야기를 접하고 서울 재임중이었던 2016년~2017년에 눈앞에 접했던 당시의 박근혜 대통령 탄핵 요구 시위, 통칭 “촛불집회”의 광경이 떠올랐습니다.

촛불집회를 선동했던 좌파/혁신계의 노동조합이나 시민단체는 사실은 서울의 일본 대사관 앞이나 부산의 일본총영사관 앞에서 차례차례로 위안부를 상징하는 소녀상을 놓은 시민단체와 관련이 있습니다. 시민단체에 의해 촛불과 소녀상이 하나가 되어 ‘소녀상은 국민의 촛불이만들어낸 새로운 국가의 심볼’이라는 슬로건 까지 걸렸던게 기억 납니다.

촛불 집회는 ‘100만명(경찰집계 26만명) 집회’(2016년 11월 12일)라는 별명으로 불릴 정도로 거대한 파도를 일으켜 9년만에 진보정권 탄생의 그야말로 원동력이 되었던 것입니다.

한국의 좌파/진보계 단체는 북한 체제에 공조자가 많은 것이 특징입니다. 대학에까지 침투해 이번에는 공격대상을 보수정당에서 일본에 바꿔 항의 운동의 선두에 서있는 것입니다. 북한을 최대의 타겟으로 하고 있는 한일 GSOMIA 파기를 외치는 것도 한일간의 군사협력에 대한 알레르기 이상으로 북한의 주장 그 자체라는 측면이 강하다고 한국의 전문가는 지적합니다.

데모의 확산, 문재인 정권을 좌우

실제로 서울에서 일본정부의 항의집회의 주최자들에도 징용공 소송을 지원하는 시민단체나 노동조합 이외에 친북한을 주장하는 조직이 이름을 올리고 있습니다. 정권이나 자치단체와 함께 이러한 일부의 과격한 단체가 일반의 국민감정을 선동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다행인 것은 지금까지는 한때 촛불집회같은 일반시민이 대궐기해서 집회에 몰려드는 상황이 이러나지는 않았습니다.

반일단체는 일제 통치부터 해방된 기념일인 8월 15일을 고비로 설정해, 계속해서 항의 집회를 열 게획을 세우고 있습니다. 그 확산은 일본 붐이 길게 계속 되어온 한국에서 시민의 대일관(對日觀)의 변화를 가늠하는 재료가 될 것으로 보입니다. 일본에 대항자세를 선명하게 해 국민 결집의 깃발을 흔드는 문재인 대통령의 구심력도 좌우할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키시미네 히로시(편집위원 겸 논설 위원)

前 서울 지국장, 한국재주 6년반. 방북 경험 7회. 전문은 한반도 정세,국내정치, 외교. 저서에 “한국의 우울” “일한의 단층”

주의: 이 글은 저의 의견이 아니며 따라서 본문의 내용에 대해 일체의 책임을 지지 않습니다. 또한 이 기사의 한국어 번역은 보시는 분의 편의를 위해 번역한 것으로 번역의 오류 등으로 인한 손해는 책임지지 않습니다.

번역: 문재인 정권, 멈추지 않는 급진주의 대한(對韓) 외교, 전략은 있는가?

시대의 바람(時代の風)

문재인 정권, 멈추지 않는 급진주의 대한(對韓) 외교, 전략은 있는가?

— 나카니시 히로시 교토대 교수

일본정부가 7월 초에 시작한 한국에 대한 수출 관리 강화 조치는 한일 양국에 멈추지 않고 세계적인 주목을 모았다. 일본정부는 이번달에 들어 한국의 수출관리 상의 취급을 그룹A(이번 주목을 모으기 전까지는 ‘화이트국’이라고 불리었었다)에서 그룹B로 변경하는 것도 결정했다. 한편 정부는 이번 조치가 수출관리절차의 변경에 지나지 않으며 금수나 수출제한이 아님을 강조하고 있다.

정부나 수출관리의 관계자가 강조하듯이 이러한 관리변경 자체의 영향은 한정적으로 세게무역기구(WTO)가 정한 무역규칙에 반하는 것은 아닐것이다. 하지만 외교기술로써는 일본정부의 일련의 결정은 졸렬하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이번 변경을 순수히 사무적인 사안으로써 다룰 생각이었다면 6월말의 오사카 주요 20개국/지역 정상회의에서 한일정상회담이 열리지 않았던 것에 여론의 주목이 모였던 직후에 타이밍은 피했어야 했을 것이다.

한일 여론도 국제사회도 이 타이밍에 결정에 대해, 정상회담 비개최에 이은 한국정부에 대한 제재적 의미를 추측하는 것은 자연스러웠다. 정부 요인으로써 최초로 이번 조치에 대해 언급한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관방장관은 7월 2일 기자회견에서 질문에 대답하는 형태로 역사문제의 대항조치가 아니라고 명언하면서도 수출관리가 국가간의 신뢰관계에 의거하고 있으며 한국정부가 종래의 신뢰관계를 계속해서 부정해, G20까지 징용공문제에 대해 일본측이 기대하는 해결책을 제시하지 않았다는 점을 배경으로 들었다. 이러한 문맥으로 인해 이 문제는 단순한 수출 관리상 수속의 변경이라는 일본정부의 주장은 솔직히 받아들이기 어려워졌다.

실제, 이번 조치에 국내 여론의 강한 지지도 한국에 쌓이고 쌓인 불만이 반영되어 있는 것이 틀림없다. 확실히 징용공 자위대기機 레이더 조사, 위안부재단 해체 등 문재인 정권의 대응은 외교적 성실성이 결여되어 있으며 일본측의 불만에는 근거가 있다. 따라서, 일본정부의 주장과 달리, 이번 조치를 한국정부에 대한 일종의 압력수단으로 사용하는 것은 오히려 외교적으로 있을 수 있는 선택이었다. 그것은 WTO 위반이 아닐지언정 확실히 자유무역의 정신에 반하는 것이 있을지 모르나 한국정부의 무반응애 대한 일본측의 어쩔수 없는 조치라고 설명하면 국제적으로는 일정의 설득력을 얻을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이런 압력외교를 행할 경우, 그 대상이나 목표를 명확하게 정의해 표명하는 필요가 있다. 이번 사안의 경우 대상은 문재인 정권의 대일정책에 있고, 한국 전체가 아니라는 것을 명확하게 하여 어떤 행동(수출관리 강화에 있어, 징용공문제의 대응에 있어) 을 취하면 일본정부가 이번 조치를 해제할 것인가를 명시했어야 했다. 실제로는 한국여론은 이번 조치를 한국 경제에 공격으로 받아들여 “반일 무드”를 손에 댄 문재인 정권의 지지율에 바람만 더해준 결과가 되었다.

한국 정치 전문가가 강조하듯이 현재의 한국에서는 대중적인 반일감정은 후퇴하고 있고 문제는 정권의 대통령이나 그 측근이 독재 체제에 대한 민주화 투쟁의 과정에 몸에 익힌 반 친일파 이데올로기다. 여기서 친일파라는 것은 일본통치하에서 자라 민주화 이전의 한국을 지배했던 한국인을 가리킨다. 전후 한국을 구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했던 박정희 전 대통령이 대표하는 일제통치기의 엘리트가 맡아온 것은 사실이지만 이 체제를 지지했던 중심은 미국에 있고 식민지 체제와 전후독재를 직결하는 친일파 사관은 왜곡되어 있다고 말할 수 밖에 없다. 하지만 민주화 투쟁 세대의 문대통령이나 측근은 박정희의 딸인 박근혜 전 대통령을 향한 촛불시위 를 유사혁명으로 받아들여, 일종의 혁명외교를 행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문재인 정권의 대북 융화 정책도 이런 성격이 강하다.

프랑스혁명, 러시아혁명 등 역사를 보아도 혁명 직후의 정권이 그 전과의 외교관계를 전면 부정하는 급진외교를 하는 것은 드물지 않다. 하지만 급진주의는 예외없이 막다른길에 막히고 말며 살아남기 위해 온건화에 내몰리게 된다 문재인 정권의 정책은 보수파로부터는 물론 무당파층이나 젊은 층에서도 비판이 심해지고 있다. 일본 정부가 할 것은 일한 여론의 정서적 반감을 불러일으키는 것이 아니라 한국의 민주체제를 전제로하고 한국 내에서 정권에 대외정책의 궤도수정압박을 불러내도록 하는 것에 있다. = 매주 일요일 게재. (마이니치 신문 2019/8/11일자. 원본 )

주의: 이 글은 저의 의견이 아니며 따라서 본문의 내용에 대해 일체의 책임을 지지 않습니다. 또한 이 기사의 한국어 번역은 보시는 분의 편의를 위해 번역한 것으로 번역의 오류 등으로 인한 손해는 책임지지 않습니다.

아이폰 X을 서비스 보내면서

아이폰 X의 배터리가 문제가 있었던건 올 봄부터입니다. 좀 이상하다 이상하다 하더니 “서비스”를 받으라는 오류가 났었고, 처음에는 센터에 가져가서 초기화하니 괜찮아 졌기에 그러려니하고 썼었는데, 또 서비스 오류가 나서 배터리를 교체했습니다. 그런데 그 배터리가 한달도 안되서 성능 수치가 팍팍 떨어지기 시작하더니 센터를 다시 가기 직전에는 93%로 떨어지고, 전화기가 꺼져서 성능 관리가 발동되는 진풍경이 벌어졌습니다.

부랴부랴 조금이라도 덜 붐비는 아침 일찍 서비스 센터에 갔고 자세히 살펴보더니 배터리 부풀음이 있다고 하더군요. 그리고 두번째 증상이고 배터리 부풀음의 경우 진단센터를 가봐야 한다고 하더군요. 진단센터… 여기로 가면 닷새에서 일주일은 소요가 된다는 것입니다. 그동안 쓸 임대폰을 권했지만 일단 제가 예전에 쓰던 전화기를 쓰겠다고 하고 사양했습니다. (파손이나 침수 등에 민감하다고 귀띔을 해줘서)

아무튼 지금 아이폰 7 플러스를 2년 가까이 만에 꺼내서 다시 사용중에 있습니다. 아이폰 7 플러스가 스펙이 떨어지는 폰은 아니지만 역시 X에 비해서는 불편하고 홈버튼 없이 2년 가까이 살아왔다보니 홈버튼이 있는게, 매우 어색합니다. 홈버튼을 눌러야 홈에가고, 컨트롤 센터를 열고, 무엇보다 잠금을 해제하고 앱에서 인증을 할때 바라보는 것만으로 안된다는것이 무진장 스트레스입니다. 사람은 이렇게 간사해지는군요. 그리고 LCD 화면이 물빠진 것 같이 느껴집니다.

아무튼 이렇게 임시로 아이폰 7 플러스 생활중인데 기존 X의 백업을 옮겨야 하느냐, 아니면 기존의 7 플러스 상태에서 계속 사용하다 돌리느냐 그것도 좀 고민입니다. 며칠밖에 안쓸테니까요. 일단 후자를 택했는데 방치된지 오래되어서 사용하지 않는 서비스와 앱이 혼재되어 있어서 좀 애를 먹고 있습니다.

요즘은 애플 서비스가 어떻게 진행되는지 웹으로도 확인이 가능하더만 말이죠, 얼른 수리 완료되서 다시 시작했으면 좋겠다하는 바람이 있습니다.

쿄애니 사건 이후 3주를 겪으며

이른바 “교토애니메이션 방화 살인사건”, 저는 줄여서 쿄애니 사건이라고 부르고 있는 사건이 일어난 것은 대략 3주전인 7월 18일이었습니다. 이미 간략한 감정을 블로그에 적은 바가 있습니다만, 다시 한번 생각해보면 쿄애니가 저에게 준 것이 참 많았지 싶습니다. 쌓여있는 쿄애니 관련 굿즈나 블루레이가 증명해주듯. 저는 쿄애니 빠라고 소극적으로 인정해왔지만, 지금에 와서는 부인할 생각은 없고 오히려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덕분에 좋은 시간을 보냈고, 좋은 친구를 많이 만났다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더 가슴이 아픈 것입니다.

지금 글을 쓰는 오늘은 코믹마켓이 열리는 날입니다. 이번 사건이 없었다면, 쿄애니도 기업 부스로 참여했을 것이고 저는 코미케에서 판매되는 상품을 매의 눈으로 보다가 나중에 온라인으로 추가 판매를 하는 것을 노렸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그것이 불가능합니다. “울려라! 유포니엄 극장판~약속의 피날레”~는 한국에서는 언제 걸릴지도 모르고 기다리고 있는 블루레이 또한 거의 기약을 할 수 없는 상태가 되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더 많이 보고, 더 많이 얘기하고, 더 많이 지르고 싶었습니다.

몇년전에 산 유포니엄 원화를 꺼내 봅니다. 막대기 인간이 고작인 제 그림실력으로는 정말 애니메이터는 아무나 할 수 없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만들었죠. 그러나 지금 보면 이 그림의 원본은 남아 있을까? 그리고 이 그림을 그린분, 작감 수정을 하신분 중 얼마나 무사하고 얼마나 생존해 계실지 알 수 없어 슬픕니다. 저는 글을 쓰는 시점에서 드디어 의식을 찾기 시작했다는 범인을 용서할 수 없습니다. 엄정한 법의 심판을 받을 수 있기를 바랄 뿐입니다.

18일 이래로 거의 2주 넘게 관련 소식을 사방 팔방으로 레이더를 펼쳐 관련 뉴스를 수집했고, 이를 트위터에서 #쿄애니사건 과 #쿄애니 해시태그를 통해서 소개했었습니다. 막바지가 되니 정신적으로 피폐해진다는걸 느끼게 되더군요. 특히 희생자의 실명을 공개해야하느냐 마느냐 말이 있는 가운데서 일부가 공개되었을때. 기대가 절망으로 바뀌었을때. 누군가는 보고 싶지 않아 뮤트를 하거나 외면했던 소식을 매일같이 몇 시간 간격으로 검색을 해야했던지라. 힘들었습니다. 지금은 그냥 자연스럽게 발견되면 올리는 수준입니다.

몇년 뒤에 저는 오늘을 어떻게 생각할까요? 쿄애니에 빠졌던 저, 쿄애니 사건에 분주했던 저, 그 모두를 긍정할 수 있는 날이 왔으면 좋겠습니다. 쿄애니가 건강해졌으면 좋겠습니다. 제발.

스즈미야 하루히에 이끌려 등교 거부였던 중 2 소녀, 얼굴을 들다

35인이 방화로 희생된 교토 애니메이션 제1 스튜디오 근처의 헌화대에는 연일 팬들이 찾아오고 있다. 맹열한 더위 속에서 가만히 오랫동안 손을 합장하는 사람들은 “나는 쿄애니에 구원 받았다”라고들 이구동성으로 말한다. 그 이유를 들어보았다.

”스즈미야 하루히의 우울”에

“하루히와 쿄애니가 있었기에 제가 있어요”

교토부 난탄시의 중학 2학년의 여학생(14)는 27일 어머니를 곁에 데리고 사건 현장 근처의 헌화대를 찾았다. 흐트러 쓰러질 것 같으면서도 종이학을 바쳤다.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중학교에 들어가 본래의 자신을 드러내지 못하고 ‘동급생한테 미움받기 싫어’서 신경을 곤두세웠다. 주위에 녹아들지 않은채 학교에 가는 것이 점점 힘들어졌고 작년 9월 부터 등교 거부를 하게 되었다.

집에 있던 시간과 마음의 틈새를 매워주었던 것은 유료 동영상 사이트에서 별 생각 없이 본 쿄애니 제작의 애니메이션 “스즈미야 하루히의 우울” 였다.

제1화, 주인공 하루히가 고교 입학식 후 자기 소개에서 퍼부은 대사가 가슴을 찔렀다. “보통 사람에게는 흥미없습니다. 이 중에서 우주인, 미래인, 이세계인, 초능력자가 있다면 나한테로 오십시오. 이상”

눈이 번쩍 뜨였다. “나는 저런 식으로 자신이 원하는 동료나 친구를 구하는 것이 불가능했다”. 사람들에게 열등감을 느끼고 마는 자신과는 정 반대의 모습이었다.

괴인에 말도 안되는 언동을 반복하는 하루히. 자신이 생각하는 대로 마구 달리고, 반에서 고립되면서도 동료들 사이에서는 사랑받고 있다. 그런 모습을 보고 있자면 자연스럽게 자신도 미소를 짓게 되었다. 싫은 사람에게는 필사로 신경 써줄 필요 없어. 나도 좀 더 자신을 드러내도 되는구나. 라고 생각했다.

2학년에 올라온 올해 4월 오랫만에 학교는 긴장했지만 자신을 가지고 등교할 수 있었다. 사이좋아지고 싶은 여자애에게 자신이 말을 걸었다. 지금은 애니메이션에 대해 이야기로 달아오르는 가장 큰 친구이다. 괴로울때에는 하루히가 동급생을 부를 때의 ‘어느 누구에게도 위축되지 않는 위세 좋은 목소리’를 생각해낸다. 이제 학교에 가는 것이 무섭지 않다.

그림을 잘 그리게 된다면, 용기를 준 쿄애니에서 애니메이션을 만들고 싶다. 그런 꿈이 생긴 직후 이런 사건이 벌어졌다. “쿄애니가 제일 도움이 필요로 하는 순간,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것이 괴롭고 한심하다” 그리고 얼굴을 올려서 말했다. “조금이라도 힘이 되고 싶으니까, 굿즈를 사고 모금활동에 참가합니다”. 울음기 있는 목소리에 힘이 실려있었다.

”러키☆스타”에

“제일 힘들었던 순간에 힘을 받았다. 인생을 밝게 변하게 해주었다. 정말 고맙습니다”

이바라키 현 도네정의 학원 강사 혼죠 나오키 씨(34)는 감사의 뜻을 담아 헌화대에 꽃을 바쳤다.

사법 시험 합격을 목표로 했던 대학 법학부 4년 때, 우울증이 생겼다. “일어나 있는 시간은 모조리 공부 삼매던 매일, 심신이 초췌해졌다”. 외출도 거의 안하고 1년간 쉬었다.

그런 때 아무 생각 없이 보았던 것이 쿄애니의 애니메이션 “러키☆스타”였다. 여고생들의 일상을 코미컬하게 그린 작품이다.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고 진심으로 즐기는 것이 가능해서 오랜만에 소리내며 웃었다. 복잡한 스토리가 있는 것은 아닌데도 정신차려보니 빨려 들어 있었다”. 아무것도 재미를 느끼지 못하던 자신의 속에서 무언가가 터져나와 떨쳐 낼 수 있었다. 다음날 애니의 무대를 보기 위해 모델이 된 사이타마현 쿠키시 사기노미야에 향하는 전철을 탔다.

사법시험 합격은 하지 못했으나, 대학을 졸업하고 학원 강사 직업에 보람을 느낀다고 말한다. “”러키☆스타”가 없었다면 지금의 자신은 없을 겁니다”

”Free!”에

도쿄도에서 찾아온 여성(21)은 헌화대 앞에서 양손으로 얼굴을 감싸고 움츠렸다. “나의 목소리를 구해주신 분들인데 왜 희생되어야만 하는 걸까”

고등학교 입학후, 주위에 녹아들지 못하고 친구를 만들지 못했다. “죽고 싶다”고 생각했다. 고1의 여름방학 전, 수영에 청춘을 건 소년 들을 그린 쿄애니 작품 “Free!”를 텔레비전에서 보았다. 익숙하지 않은 환경에서 분투하는 등장인물들의 모습이 자신의 모습과 겹쳐져 푹 빠지게 되었다.

좋아하는 캐릭터는 벽에 부딛혀가면서도 앞을 바라본다. “살아만 있다면 다음이 있어” 여성은 죽는 것을 포기하기로 했다.

드럭스토어에서 아르바이트로 매일을 보내며 점심값도 아꼈다. 모든 것은 애니메이션의 굿즈를 사기 위해 “쿄애니를 위해 돈을 쓰고 있는 이상 살아 있는 의미는 있지 않을까” 라고 생각했다.

학교에서는 친구를 사귀지 못했지만 쿄애니 작품의 이벤트에 가면 옆에 앉은 사람과 이야기 하거나 굿즈를 교환하거나 하면서 동료가 생겼다. “쿄애니가 없었다면 친구도 없었다”.

“자신이 좋아하는 캐릭터를 낳은 작화 감독이나 아름다운 작품을 완성해낸 많은 수의 직원들의 안부를 알 수가 없다. 매일 밤 불안에 떨고 있지만 쿄애니로 이어진 동료들과 서로 위로하고 있다고 한다.

(아사히신문 전자판 7/29 원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