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글에게 있어 한국은?

구글에게 있어서 한국은 어떤 국가일까요? 네이버에게 돈이 되는 검색 시장을 내다준 시장일까요? 아니면 포크가 아닌 구글의 안드로이드가 세계에서 가장 많이 침투한 국가 중 하나로 보고 있을까요? 무엇이 되었든 간에 구글이 한국을 제대로 대우해주지 않는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크롬캐스트 울트라는 여전히 출시되지 않고 있고, 오늘 열린 Google I/O 2019에서 발표된 Pixel 3a 시리즈를 비롯해서 Nest Hub도 일본에서는 출시되었지만 우리는 아마 기약도 없을 겁니다. 아래는 방금 일본 구글 스토어에서 찍은 스크린 샷입니다. (VPN으로 접속해야 합니다)

반면, 우리나라 구글 스토어는 이 모양입니다.

보통 애플에서 이런식으로 한국을 차별하면 소위 IT 기자들은 애플이 한국을 업신여긴다는 둥 잘 휘갈기던데 구글의 차별에 대해서는 이렇다할 기사를 못본 것 같습니다. 뭐가 문제일까요?

애플은 프라이버시를 위해 좀 더 노력해야 합니다

애플은 여러가지 광고를 통해서 자사 제품의 프라이버시에 대해 강조해 오곤 했습니다. 라스베가스 CES 행사장에 붙였던 빌보드 어그로… 아니 광고는 화제를 일으켰었죠.

물론 사람들은 애플이 아이클라우드에 대해서는 광고처럼 공고한 태세를 취하고 있지 않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고, Siri에 관해서는 얼마전 워싱턴포스트의 제프리 파울러는 음성을 (비록 익명화 하더라도) 보내는게 문제가 있다고 주장하기도 했었습니다.

SNI 감청이 이뤄지는 한국의 상황에서 DNS over TLS와 ESNI(Encrypted SNI)는 매우 중요한 툴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유감스럽게도 이 둘 다 애플의 주요 두 운영체제와 브라우저가 지원하지 않고 있습니다. DNS over TLS는 안드로이드가 9.0에서 작년부터, ESNI는 파이어폭스가 역시 최근부터 정식으로 지원하고 있습니다. 프라이버시를 생각한다고 광고를 한다면 애플도 이번 WWDC를 기점으로 이 둘을 지원하는 모습을 보여주길 기대하고 있습니다.

카카오는 2010년대의 네이버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카카오는 2010년대의 네이버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아니 어쩌면 그보다 더 할 수도 있습니다. 카카오가 대화 목록에 광고를 넣는다는 내용은 들어보셨을 겁니다. 이런 강수를 둔 바탕에는 카카오톡을 사람들이 벗어나지 못할 것이란 자신이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얼마전에 국민연금을 조회하려고 들어가보니 전혀 생각지 못한 것을 만났습니다. 카카오 페이 인증이라는게 있는 거죠(유감스럽게도 “보안정책상” 캡쳐는 할 수 없었습니다). 잠시 생각에 빠집니다. 사람들에게 고지서며 각종 알림을 카카오톡으로 보내는것도 이제는 자연스러워졌고, 카카오는 거기에 안주하지 않고 법적인 효력이 있는 문서, 이를테면 예비군 통지서 같은 것도 보낸다고 하죠?

뭐 여기까지라면 모르겠습니다만, 카카오는 결제 사업을 가지고 있습니다. 카카오 페이죠, 그리고 카카오T를 가지고 있습니다. 솔직히 말해서 카카오T로 택시를 잡고 스마트 호출 요금과 택시 요금을 내기 위해서 카카오 페이를 쓰고 있습니다. 그럼 카카오는 제 이동 동선과 제 소비 경향까지 알 수가 있습니다. 게다가 카카오뱅크은행은 카카오 계정의 내용을 여신 심사에 반영한다고 동의서를 받는 마당입니다. 빅데이터 어쩌고 할 레벨을 이미 떠났다고 생각합니다.

중국에서 위챗의 영향력은 이미 단순한 메신저의 궤를 벗어나고 있습니다. 상거래 플랫폼이고 생활의 근간이 되고 있습니다. 악명 높은 사회신용 제도의 눈과 수족이 되어 열일하고 있죠. 페이스북과 구글이 중국에 없다고 하지만 사람들은 아마 그 모두를 크게 반기지도 필요로 하지도 않을겁니다.

제 생각은 이렇습니다. 카카오는 점점 생활 플랫폼이 되어가고 있고 이건 점점 공고화되고 있습니다. 공교롭게도 종종 인용하는 저희 어머니도 결국 안쓴다 안쓴다 하더니 결국은 오늘 카카오톡을 까시고 말았답니다(?).

2000년대는 네이버가 인터넷과 삶을 장악한다고 우려했다면 2010년대, 그리고 더 나아가서 2020년대에는 카카오가 더 위험한 존재가 될지 모르는 노릇입니다.

입문의 첫걸음마

지금도 팟캐스트 듣기는 종종 합니다만, 제가 매우 좋아하던 팟캐스트는 몇년전의 물건입니다. 2013년경에 중단됐으니 이제는 인터넷적 시간감각으로는 고대 유물이라고 할 수도 있겠습니다. 그 팟캐스트의 내용에 감화되서 매번 사연을 보내기도 했고 말이죠. 한마디로 단적으로 요약하면 오덕으로써 저를 숙성시킨 팟캐스트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진행자는 저를 오덕으로써 숙성시킨 장본인이라고 할 수 있겠죠. 간간히 OST나 좀 나가봐야 책 정도를 사던 정도에서 훨씬 값이 나가는 애니메이션 BD나 굿즈를 사게 된 계기가 이 분의 권유였으니까요.

그 팟캐스트가 끊기고 나서도 얼마전까지 한동안은 계속 연락을 하면서 잘 지냈습니다. 나름 말이 잘 통했다고 생각해요. 저는 근년 트위터 등지에서 정치 발언은 삼가는 추세였지만 지지하는 정당마저 같았으니 말 다했죠. 하지만 그건 제 착각이었나봅니다.

어느날 트위터에서 블록이 되어 있었습니다. 무엇때문일까? 생각을 해보지만(혹시나? 짐작가는게 하나 있긴 하지만), 딱히 이렇다할 답은 없습니다. 그 사실을 확인하고 그냥 깔끔하게 포기를 했습니다. 어련히 이유가 있었으니 그랬겠지 하면서 말이죠.

일단 그렇게 정리를 하긴 했습니다만 아무래도 오타쿠인 저를 오타쿠로써 ‘숙성 시킨 장본인’, 뭐 다르게 말하면 일종의 파문을 당한 격이라, 심적인 내상을 입기는 했습니다. 지금이라도 왜? 라는 질문을 해보고 싶을 정도로요. 하지만 큰 문제 없이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이렇게 독립의 첫걸음을 걷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내일은 내일의 해가 뜰 것이고, 내일에는 내일의 애니메이션이 방영하고 내일의 책이 나오겠죠. 새로운 기분으로 홀로서기를 해야할 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시 한 번, 입문의 첫 걸음입니다.

실시간 TV는 죽었습니다

사실 의도한 것은 아닙니다. 거실의 텔레비전이 죽어버렸습니다. 그냥 죽어버렸다. 라는 말밖에 떠오르지 않습니다, 켜지지 않으니까요. 그렇게 되면서 드라마 광인 우리 어머니가 매우 난감하게 되었습니다. 드라마를 하루라도 보지 못하면 안되는 양반이니까요.

문제는 의외로 심플하게 해결 되었습니다. 텔레비전을 사면 되는 문제긴 한데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맥북 프로를 사용하기 전에 쓴 랩톱을 놓고 pooq(푹)과 tving(티빙)에 가입했습니다. 그리고 왈라! 문제는 해결되었습니다. 어머니는 처음에는 실시간 사수를 했습니다. 그리고 남는 시간에 VOD를 봤습니다. 그러다가 제가 하루는 푹의 타임시프트 기능을 가르쳐드리니 아주 재미있는 변화가 생겼습니다.

어머니는 실시간 방송을 실시간으로 보지 않게 되었습니다. 주말 몇시가 되면 반드시 채널을 맞추던것이 나중에는 기억이 나는대로 켜서 타임시프트로 처음으로 돌려서 보기 시작했습니다. 이 기능에 익숙해지시니 방송을 잠시 멈췄다 볼 수 있기도 하고, 되돌려 보거나 처음의 광고나 중간 광고를 빨리 넘겨 보시기 시작했습니다.

그 순간 저는 실시간 TV는 죽었구나. 라고 생각했습니다. 텔레비전 앞에 정해진 시간 앞에 앉아 보는 것이 시대착오적인 일이 되어가고 있구나. 그렇게 생각한 것입니다. 심지어 우리 어머니도 그러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