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냉장고에는 드레텍에서 나온 조그마한 주방용 타이머가 자석으로 붙어 있습니다.
이걸 산 것은 이상한 일이었습니다. 저는 휴대폰과 스마트 스피커의 타이머를 아주 잘 쓰던 사람이었으니까요. 타이머는 이미 제 주머니 안에 있었고, 부르면 대답하는 기계 안에도 있었습니다. 그런 사람이 굳이 별도의 하드웨어를 하나 더 들이는 건, 지금 흐름에서 보면 명백한 퇴행입니다.
그런데 써 보니 빨랐습니다.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요.
왜 빠른지는 얼마 지나지 않아 알게 됐습니다. 버튼의 위치를 외웠기 때문입니다.
이 사소한 발견이 저를 20년 전으로 돌려보냈습니다.

2007년 1월, 스티브 잡스는 아이폰을 발표하면서 멀티터치 디스플레이를 매킨토시의 마우스, 아이팟의 클릭휠에 이은 세 번째 입력 장치의 혁신이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리고 그날, “전화를 재발명했다”라고 말했죠. 터치스크린이라는 물건 자체는 그때도 새것이 아니었습니다. 저만 해도 이미 십수 년 전에 만져본 적이 있었으니까요(이 이야기는 뒤에서 다시 하겠습니다). 새로웠던 것은 손끝으로 미끄러지듯 다루는 그 감각이었고, 그 점에서 잡스의 말은 과장이 아니었습니다. 그 뒤로 두 가지 일이 일어났으니까요.
하나는 다들 아는 이야기입니다. 스마트폰이 물건들을 집어삼켰습니다. 카메라, 계산기, 음악 플레이어, 게임기, 전자사전. 이 블로그 초창기의 글 목록이 그 목록과 거의 일치합니다. 지금은 그중 무엇에 대해서도 쓰지 않고 있죠. 반성하고 있습니다(웃음). 분명히 해두자면 저는 이 수렴의 구경꾼이 아니라 승객이었습니다. 삼켜질 물건들을 부지런히 리뷰했고, 그것들을 삼킨 물건으로 누구보다 빨리 갈아탔습니다.
다른 하나는 덜 이야기됩니다. 스마트폰이 물건을 삼키는 동안, 터치스크린은 버튼을 삼켰습니다. 아이폰의 정전식 터치스크린이 그전까지 주류였던 감압식을 여러 면에서 압도하자, 가전제품과 사무기기는 물론 자동차의 핵심 조작계까지 차례로 유리판 아래로 들어갔습니다. 2026년 현재, 물리 버튼은 흡사 구세대의 유물처럼 취급됩니다.
첫 번째 수렴에 대해서는 별로 할 말이 없습니다. 대체로 옳았으니까요. 제가 의심하기 시작한 건 두 번째이고, 그 의심은 냉장고에 붙은 타이머에서 시작됐습니다.
몸이 외우는 것
그 사소한 발견의 연장선에서 산 것이 카시오 S100X 계산기였습니다. 한 달쯤 쓰니 키 배열과 조작법이 손에 들어왔고, 이제는 간단한 계산조차 이 기계 없이는 효율이 뚝 떨어집니다. 머리맡과 책상에 한 대씩 두고 싶을 지경이고, 계산기를 들고 재빨리 돈 계산을 하고 있으면 어머니는 사채업자 같다며 농담을 건네시곤 합니다. 일본 내수용으로 휴대용 파생 모델이 따로 있다는 걸 알게 된 뒤로는 군침만 흘리고 있습니다.
두 물건의 공통점은 하나입니다. 위치가 고정되어 있다는 것.
물리 버튼이 빠른 이유는 버튼이 빠르기 때문이 아닙니다. 버튼이 도망가지 않기 때문입니다. 위치가 고정되어 있으면 몸이 그 위치를 외웁니다. 몸이 외우고 나면 눈이 필요 없어집니다. 손끝이 알아서 갑니다.
터치스크린은 정의상 이게 불가능합니다. 유리는 매끈하고 균질합니다. 지금 이 좌표에 무엇이 있는지는 화면이 결정하고, 화면은 언제든 마음을 바꿉니다. 그러니 알려면 봐야 합니다. 터치스크린은 아무리 잘 만들어도 눈을 요구하는 인터페이스입니다. ‘터치’라는 이름을 달고 있지만, 정작 만질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타이머가 하필 주방에 있다는 사실이 이 점을 더 분명하게 만듭니다. 젖은 손, 기름 묻은 손, 고무장갑 낀 손. 정전식 터치스크린이 아예 반응하지 않거나 엉뚱하게 반응하는 조건이, 요리하는 사람에게는 기본 상태입니다. 물리 버튼은 그냥 눌립니다.
도구가 걷는 세금
S100X에서 제가 가장 아끼는 기능은 환율 계산입니다. 그런데 이 기능을 제대로 쓰려면 환율을 정확히 입력해 둬야 합니다. 그래서 하루에 한두 번 거래 은행의 환율 페이지를 열어 숫자를 갱신하는 것이 습관이 되었습니다.
객관적으로 이상한 짓입니다. 휴대폰으로 하면 이 조작 자체가 필요 없으니까요. 그런데도 하는 이유는, 계산해 보면 이쪽이 남기 때문입니다.
미리 알아보고 입력해 두는 수고를 하루 한 번 치르고 나면, 그 뒤로는 계산할 때마다 드는 수고가 0에 수렴합니다. 휴대폰은 정확히 반대입니다. 준비 비용이 0인 대신, 쓸 때마다 잠금 해제·앱 찾기·앱 열기·화면 응시라는 요금을 조금씩 걷어갑니다.
스탠드얼론 기기가 아직 살아 있는 이유는 이게 전부라고 생각합니다. 길들인 도구는 초기 비용을 한 번 내고 그 뒤로 이자를 받습니다. 범용 기기는 초기 비용을 받지 않는 대신 매번 세금을 걷습니다. 어느 쪽이 유리한지는 오직 사용 빈도가 결정합니다. 1년에 두 번 쓰는 기능이라면 당연히 휴대폰이 낫습니다. 하루에 스무 번 쓰는 기능이라면 이야기가 완전히 달라집니다.
스마트폰이 이긴 것은 대부분의 기능이 전자였기 때문입니다. 계산기와 타이머, 그리고 자동차의 조작계가 살아남아야 하는 이유는 그것들이 후자이기 때문입니다.
파는 사람의 말
예전에 소개해 드린 적 있는 서점 ‘유린도’의 유튜브 채널에 샤프의 계산기 담당자가 나온 적이 있습니다.
“왜 스마트폰이 아니라 계산기가 지금도 필요하냐”라는 진행자(올빼미)의 질문에, 담당자는 “스마트폰의 터치스크린 입력 속도가 버튼의 입력 속도를 따라가지 못한다”라고 답합니다.
물론 이건 계산기를 파는 회사의 계산기 담당자가 하는 말입니다. 그가 뭐라고 답할지는 질문하기 전부터 정해져 있었죠. 그래서 저는 그 발언보다 옆에 붙은 실연 장면이 훨씬 중요하다고 봅니다. 실제로 영상 속 스마트폰은 빠르게 두드리는 숫자를 놓칩니다. 이건 의견이 아니라 화면에 찍힌 결과입니다. 그 외에도 반쯤 농담으로 “스마트폰을 꺼내서 계산기 앱을 여는 것보다, 진짜 계산기를 꺼내는 게 빠르지 않느냐”라고 했다가 바로 반박당하긴 했지만요.
나는 선을 자르자고 했던 사람이다
여기까지 읽으시면 제가 물리적인 것이라면 무조건 편드는 사람처럼 보이겠습니다만, 그렇지 않습니다. 증거가 있습니다. 10년 전에 제가 쓴 글입니다.
2016년 애플이 아이폰 7에서 헤드폰 잭을 없앴을 때, 필 실러는 그것을 ‘용기’라고 불렀습니다. 그 단어를 들은 거의 모두가 비아냥댔죠. 저는 비웃지 않았습니다. 잭이 사라진다는 루머가 확실해지자마자 보스 QC35를 주문했고, 이렇게 썼습니다.
어찌됐든 이 긴글이 주장하고 싶은 사실, 그것은 ‘용기’가 최종적으로 향할 곳은 자유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몇년이 지나면 우리는 이 자유를 당연하게 여길지 모릅니다.
— 「선을 자르는 용기에 대한 생각」, 2016년 9월
그때 저는 ER-4에 슈어와 바워스 앤 윌킨스와 얼티밋 이어즈까지, 유선 이어폰/헤드폰에만 기백만원을 묻어둔 상태였습니다. 그걸 전부 두고 무선으로 넘어갔습니다. 그리고 7년 뒤에 그 판단을 스스로 채점했습니다. 결론은 대체로 맞았다는 것이었습니다. 가격은 떨어졌고, 대세는 무선이 됐고, 사람들은 그 자유를 당연하게 여기게 됐습니다. 애플의 테두리를 벗어나면 페어링의 지옥이 기다린다는 단서가 붙긴 했지만요.
그러니 분명히 해둡시다. 저는 잘라야 할 것은 자르자고 먼저 말한 쪽입니다.
그런 제가 이번엔 아니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왜일까요.
갚아주는 빚과 갚아주지 않는 빚
두 경우를 가르는 질문은 두 개입니다.
첫째, 없앤 대가로 사용자가 무엇을 돌려받았는가.
선을 잘랐을 때 저는 자유를 돌려받았습니다. 이건 수사가 아닙니다. 2016년 그 글에서 제가 든 예도 하필 주방이었습니다. 음악을 들으며 드립커피를 내리려면 싱크대와 저울과 정수기와 전기포트 사이를 오가야 하는데, 1.5미터짜리 선에 묶인 전화기를 손에 들고 그걸 하고 있었다는 것. 택배가 와서 현관으로 뛰어나가다 선이 방 문고리에 걸려 뽑힌 것. 선을 자르자 그게 전부 사라졌습니다. 명확한 거래였습니다. 페어링과 배터리라는 대가를 내고, 이동의 자유를 받았습니다.
버튼을 없앴을 때 사용자가 돌려받은 것은 무엇입니까?
화면이 커졌다고 하겠지요. 하지만 그건 화면이 필요한 일에서의 이야기고, 와이퍼를 켜는 데 큰 화면이 필요한 사람은 없습니다. 실내가 깔끔해졌다고 하겠지요. 그건 사진의 이야기입니다.
돌려받은 쪽은 사용자가 아니라 제조사입니다. 버튼 하나는 부품 하나, 배선 하나, 조립 공정 하나, 불량 가능성 하나입니다. 서른 개의 버튼을 유리 한 장으로 대체하면 그 서른 개가 한꺼번에 사라집니다. 소프트웨어로 언제든 바꿀 수 있고, 나라마다 다른 문자를 인쇄한 금형을 팔 필요도 없어집니다. 전부 제조사 쪽 장부에 찍히는 숫자입니다.
둘째, 그 대가는 시간이 갚아주는가.
이쪽이 더 중요합니다. 2016년에 제가 걱정한 것은 음질과 배터리와 페어링이었습니다. 전부 공학의 문제였고, 공학은 시간이 지나면 대체로 답을 냅니다. 실제로 대부분 해결됐죠. 제가 2001년에 이더넷을 끊고 802.11b로 갈아탔을 때도 똑같았습니다. 더럽게 느렸지만, 느린 건 고쳐질 종류의 문제였습니다. 11g가 나오고 11n이 나오고 11ac가 나오면서 빚은 갚아졌습니다.
터치스크린의 대가는 갚아지지 않습니다. 유리는 매끈해야 화면이고, 매끈하면 만져서 알 수 없습니다. 이건 아직 못 푼 공학 문제가 아니라 그 물건의 정의입니다. 20년을 더 기다려도 유리판은 모양을 갖지 않습니다. 햅틱을 아무리 정교하게 만들어도 손끝이 화면에 닿기 전에는 아무것도 알려주지 못하고, 닿아서 알았을 때는 이미 본 뒤입니다.
제가 이렇게 단언할 수 있는 건 이미 실험 결과가 나와 있기 때문입니다. 무려 30년치입니다.
제가 터치스크린이라는 물건을 처음 만져본 것은 1993년인가 1994년, 인천 용유도에 있던 영종도 신공항 홍보관에서였습니다. CRT 모니터에 프린터가 달린 키오스크 형태의 안내 장치가 두 대 있었고, 저는 그게 하도 신기해서 몇 번이고 화면을 눌러봤습니다. 화면을 손으로 만지면 반응한다는 것 자체가 당시엔 첨단이었죠. 이걸 언젠가 온 세상에서 만나게 되리라고는 상상도 못 했습니다.
그로부터 30년입니다. 그 사이에 감압식은 정전식이 되었고, 두꺼운 CRT는 손톱만 한 두께의 OLED가 되었고, 해상도와 반응 속도와 색은 그때와 비교하는 것이 무의미할 만큼 좋아졌습니다. 공학이 할 수 있는 거의 모든 것을 했습니다. 그런데 그 30년의 발전이 끝내 건드리지 못한 것이 딱 하나 있습니다. 1994년의 그 키오스크도, 지금 제 주머니 속 아이폰도, 여전히 눈으로 봐야만 만질 수 있습니다. 무선이 음질과 배터리라는 빚을 30년에 걸쳐 갚는 동안, 유리는 이 빚만은 한 푼도 갚지 않았습니다. 갚을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두 경우의 차이입니다. 선을 자른 것은 시간이 갚아준 빚이었고, 버튼을 없앤 것은 시간이 갚아주지 않는 빚입니다.
그리고 하나 더. 선은 저를 묶고 있었습니다. 버튼은 저를 묶은 적이 없습니다.
여기서 잠깐 2007년으로 돌아가 봅시다. 잡스는 그 큰 화면을 무엇으로 조작할지 물으며 스타일러스를 걷어찼습니다. 누가 스타일러스 따위를 원하느냐, 우리는 이미 최고의 포인팅 디바이스를 손에 갖고 태어나지 않았느냐는 것이었죠. 손가락 말입니다. 명언이었고, 옳았습니다. 그런데 손가락이 스타일러스를 이긴 이유가 무엇이었습니까. 정확도가 아닙니다 — 정밀함으로 치면 뾰족한 펜이 이기죠. 손가락이 이긴 이유는 언제나 거기 붙어 있어서 꺼낼 필요도, 잃어버릴 일도 없기 때문입니다. 몸에 속한 것이 별도의 물건을 이긴 겁니다.
그런데 이건 제가 이 글 내내 물리 버튼을 두고 한 이야기와 한 글자도 다르지 않습니다. 버튼이 터치스크린을 이기는 이유도 똑같습니다. 위치가 몸에 속해 있어서, 꺼낼 필요도 찾을 필요도 없다는 것. 잡스는 “몸에 붙은 것이 이긴다”는 원리로 스타일러스를 눌렀는데, 바로 그 원리가 지금은 그가 세운 유리판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이야기에는 후일담이 있습니다. 손가락이면 충분하다던 그 회사가, 팀 쿡 시절에 애플 펜슬을 내놓았습니다. 오래된 발언이 소환되어 애플은 잠깐 곤혹스러웠죠. 하지만 저는 이걸 애플의 말바꾸기라기보다 정직한 항복으로 읽습니다. 손가락은 대부분의 경우에 최고이지만 모든 경우에 최고는 아니라는 것. 정밀함이 필요한 순간에는 전용 도구가 돌아온다는 것을, 다름 아닌 애플이 인정한 겁니다. 계산기가, 타이머가, 그리고 자동차의 와이퍼 레버가 살아남아야 하는 이유가 정확히 그것입니다.
청구서
그리고 2026년, 그 청구서가 도착하기 시작했습니다.
유럽의 신차 안전도 평가 프로그램인 Euro NCAP은 올해 1월부터 적용되는 새 평가 체계에서, 방향지시등·비상등·경적·와이퍼·긴급콜(eCall) 다섯 가지 핵심 기능의 조작 방식을 채점에 반영하기 시작했습니다. 정확히 하자면, 물리 버튼이 없다고 곧바로 탈락하는 방식은 아닙니다. 2026 체계는 안전을 네 단계로 나눠 각 단계를 100점 만점으로 매기고 단계별 최소 문턱을 넘겨야 별을 주는데, 물리 조작계는 그 안에서 점수를 유리하게 받는 항목입니다. 이 다섯 기능을 메뉴 속에 감춘 차는 여기서 점수를 잃고, 그 실점이 문턱을 무너뜨리면 최고 등급인 별 다섯을 놓칩니다.1 그래서 여러 매체가 “물리 버튼이 없으면 별 다섯은 없다”라고 요약하는 것이고, 결과만 보면 대체로 맞는 요약이기도 합니다.
이 미묘한 차이가 오히려 중요합니다. 안전 기관은 터치스크린 조작을 통과냐 탈락이냐의 문제로 다루지 않았습니다. 점수로 환산되는 위험으로 다뤘습니다. 주의분산이 취향의 흠이 아니라 계량 가능한 실점이라는 뜻입니다. 게다가 이 조작계는 장갑을 낀 상태에서도 쉽게 찾아 누를 수 있어야 하고, 운전자가 도로에서 눈을 떼지 않도록 촉각으로 피드백을 줘야 한다는 조건까지 붙었습니다.2 눈이 아니라 손이 알아야 한다는 것 — 이 글이 처음부터 한 이야기를, 규제 기관이 채점표에 옮겨 적은 셈입니다.
Euro NCAP의 전략개발 디렉터 매튜 에이버리의 표현이 인상적입니다. 그는 《선데이 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터치스크린 남용이 특정 회사의 문제가 아니라 업계 전반의 문제라고 지적하면서, 거의 모든 제조사가 핵심 조작계를 중앙 화면으로 옮기는 바람에 운전자가 도로에서 눈을 떼도록 강요당하고 주의분산 사고 위험이 올라가고 있다고 말했습니다.3
강요당하고 있다. 이 표현이 정확합니다. 아무도 와이퍼를 메뉴 속에서 찾고 싶어 하지 않았습니다.
흥미로운 건 그다음입니다. 이 기준에 맞추려면 설계와 공급망을 손봐야 해서 원가가 오를 것이라는 반응이 업계에서 나왔습니다. 저는 이 반응이 제 주장을 대신 증명해 준다고 생각합니다. 버튼을 되돌리는 데 돈이 든다면, 버튼을 없앤 것은 애초에 돈을 아끼는 일이었다는 뜻이니까요. 실제로 여러 매체는 제조사들이 터치스크린으로 옮겨간 이유 중 하나로 대시보드의 현대화와 나란히 제조 원가 절감을 꼽습니다. 물리 버튼과 다이얼은 복잡한 배선과 추가 부품을 요구하지만, 소프트웨어 기반 화면은 그렇지 않으니까요.4 앞에서 “제조사 장부에 찍히는 숫자”라고 쓴 것은 제 심증이 아니라, 업계가 스스로 인정해 온 계산이었습니다.
그리고 이건 유럽만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중국 공업정보화부(MIIT)도 핵심 기능에 실제 물리 버튼을 요구하는 규정 초안을 마련했고, 통과되면 2027년 7월부터 생산되는 모든 신차에 적용됩니다.5 세계에서 가장 큰 두 자동차 시장이 같은 방향으로 핸들을 꺾고 있는 겁니다. 20년간 한 방향으로만 달리던 흐름이, 지금 처음으로 반대쪽 깜빡이를 켰습니다.
눈을 감고도
저는 이 글을 주방 타이머와 계산기 이야기로 시작했습니다. 사소한 물건들이고, 사소한 취향으로 읽히기 쉬운 이야기입니다. 그렇게 읽으셔도 무방합니다. 타이머가 불편한 건 짜증나는 일이지 위험한 일은 아니니까요.
하지만 원리는 같습니다. 유리판은 자기가 지금 무엇인지 알려주지 않고, 알려면 봐야 하고, 보려면 다른 것에서 눈을 떼야 합니다. 주방에서 그 대가는 몇 초입니다. 시속 100킬로미터에서 그 대가는 다릅니다.
그러니 “물리 버튼도 나름의 매력이 있다” 같은 말로 끝내지는 않겠습니다. 이건 취향의 문제가 아닙니다. 지난 20년간 업계는 버튼을 없애면서 그것을 사용자를 위한 발전이라고 설명했지만, 실제로 일어난 일은 자기 원가를 사용자의 눈과 주의력으로 지불한 것에 가깝습니다. 이제 안전 기관이 그 계산서를 공개하기 시작했을 뿐입니다.
멀티터치는 훌륭한 발명이었습니다. 잡스의 말은 과장이 아니었습니다. 다만 훌륭한 발명이라는 것과 모든 것을 대체해야 한다는 것은 전혀 다른 이야기이고, 그 둘을 혼동한 20년이 이제 청구서를 받고 있습니다.
제 냉장고의 타이머는 여전히, 눈을 감고도 눌립니다.
[1] Euro NCAP의 2026 평가 체계는 안전을 네 단계(Safe Driving·Crash Avoidance·Crash Protection·Post-Crash Safety)로 나눠 각각 100점 만점으로 채점하고, 단계별 최소 문턱을 넘겨야 별 등급을 준다. 방향지시등·비상등·경적·와이퍼·긴급콜(eCall) 다섯 기능의 물리 조작계 여부는 이 중 안전운전 단계의 HMI 항목에서 점수에 반영되며, 물리 버튼이 없으면 자동 탈락하는 것이 아니라 감점되어 문턱 미달 시 최고 등급을 놓치는 구조다. Euro NCAP, “Euro NCAP announces 2026 protocol changes” 및 공식 프로토콜 문서(Overall Assessment Protocol v10.0, 2025. 6). https://www.euroncap.com/en/press-media/press-releases/euro-ncap-announces-2026-protocol-changes-to-tackle-modern-driving-risks/ · 결과 중심 요약(“물리 버튼 없으면 5스타 불가”)은 다음을 참고. Autocar India (2025). https://www.autocarindia.com/car-news/no-5-star-euro-ncap-rating-without-physical-buttons-from-jan-2026-438013
[2] 해당 조작계는 장갑을 낀 상태에서도 쉽게 찾을 수 있어야 하고, 운전자가 시선을 도로에서 떼지 않도록 촉각 피드백을 제공해야 한다는 조건이 함께 명시되었다. autoinsiderhq, “Euro NCAP 2026 Safety Rules” (2026. 1). https://autoinsiderhq.com/euro-ncap-2026-safety-rules/
[3] 매튜 에이버리(Matthew Avery) Euro NCAP 전략개발 디렉터의 발언은 영국 《선데이 타임스》 인터뷰에서 나왔으며, ETSC(유럽교통안전위원회)가 인용·정리했다. ETSC, “Cars will need buttons not just touchscreens to get a 5-star Euro NCAP safety rating”. https://etsc.eu/cars-will-need-buttons-not-just-touchscreens-to-get-a-5-star-euro-ncap-safety-rating/
[4] 제조사들이 터치스크린을 채택한 배경에 대시보드 현대화와 함께 제조 원가 절감이 있었다는 분석. 물리 버튼·다이얼은 배선과 부품을 추가로 요구하지만 소프트웨어 기반 인터페이스는 그렇지 않다. Autoblog, “Physical buttons could make a comeback thanks to a new safety regulation” (2025). https://www.autoblog.com/news/physical-buttons-could-make-a-comeback-thanks-to-a-new-safety-regulation
[5] 중국 공업정보화부(MIIT)가 핵심 기능에 물리 버튼을 요구하는 규정 초안을 마련했으며, 통과 시 2027년 7월 1일 이후 생산되는 모든 신차에 적용된다. AOL/Autoblog, “Europe and China Now Require Physical Buttons in Cars — Will the US Follow?” https://www.aol.com/articles/europe-china-now-require-physical-140000111.html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