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달폰’ 아이폰 한국 상륙 10주년

다음달 폰의 추억

스티브 잡스가 처음으로 아이폰을 소개하던 때를 아직도 기억한다. 당시 클리앙의 게시판에서도 모두가 술렁이던걸 기억한다. 다만 GSM이어서 한국에서는 쓸 수 없었기에 한국에 출시도 있을 수 없겠구나 라는 생각을 다들 하고 있었다. 물론 그럼에도 수입을 해온 용자가 있었는데, 당시는 그러기 위해서는 개인이 직접 전파인증을 일일히 받아야 했으니 정말 어마무시한 정성이었을테다. 당시에도 지금 이 시대에 2G냐며 씹혔던걸로 기억한다. 생각해보면 세대(G)를 뒤쳐 가는건 이때부터의 아이폰의 전통인가 보다. 2008년에 WCDMA를 채용한 아이폰 3G가 나왔지만 결국 뭐 호사가의 입에만 오르다 다음해로 넘어가게 되었다. 물론 이번에는 한국에서 쓸 수 있었기 때문에 더 많은 용자들이 개별인증을 신청하는 모험을 떠나곤 했다. 그리고 아이폰 3GS가 발표가 되었는데, 사람들의 초점은 이 녀석이 한국에 나오냐 안나오냐 였고. 6월부터 다른 나라에 판매가 시작되자 사람들은 WIPI를 이유로 정부가 막고 있다던가 Wi-Fi 때문에 특정 통신사가 로비를 하고 있다고까지 이른바 음모론을 말하기에 이른다. 한국에서 아이폰이 나오는 것이냐, 안나오는 것이면 왜 안나오는 것이냐 문제는 국경을 넘어서까지 화제가 되었고(당시 CNN 방송을 보고 쓴 포스트가 있다) 결국 날짜를 초읽기 하면서, 언론은 연일 낙관론과 회의론이 섞인 기사를 내놨고, 11월 상순까지도 날짜를 정확히 확정을 못하다가 겨우겨우 11월 28일이 확정되고 22일부터 예약가입을 받고 이런저런 행사와 함께 출시가 되기에 이른다. 가격과 요금제 등등에서 여러가지로 잡음이 많았지만—요컨데 너무 비싼거 아니냐 같은—결과는 여러분이 아시는 대로다. 아, 흔히 사용되는 대항마라는 표현은 이즈음부터도 이미 사용됐었다. 게섯거라도 그렇고.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우체국 습격 사건

당시에는 지금과 달리 애플 제품이 발매가 되면 발매일에 줄 서서 사는게 (해외에서)당연시 되던 시절이라, 한국에서도 발렌타인 데이 같은 국적 불명 행사 수입하듯이 그대로 수입해서 줄을 서기도 했었다. 나같으면 차마 11월 하순에 서울까지 가서 밤을 새지는 못하고, 아무튼 택배로 받기로 했었었다. KT는 물량이 폭주하자 제대로 감당을 하지 못했고, 일반출시보다 먼저 받아야할 예약구입자들이 뒷전으로 밀려날 지경이 되었다. 그 와중에 택배로 받기로 했던 사람들 중에서 정말 성질이 급했던 사람이 있었던 모양이다. 일부가 결국은 배달 도중인 아이폰을 우편집중국을 문자 그대로 쳐들어가 털어온 사태가 벌어졌다. 사람들의 아이폰에 대한 열망은 그 정도였던 것이다.

“가장 힘든 건 막무가내로 떼쓰는 사람들이죠. 지난해 아이폰이 출시된 날 너무 힘들었어요.” 서울우편집중국 조광범(40) 소포팀장은 아이폰이 처음 나오는 날 새벽에 너무 힘들었다고 말했다. 그날은 토요일이었다. 오전 2시 남자 두 명이 집중국으로 찾아왔다. “인터넷으로 배송 추적해 본 뒤 여기로 왔다며 택배를 미리 받고 싶다고 부탁하더군요.” 주말을 참지 못하고 찾아온 것이다. “새벽에 여기까지 와서 간절히 부탁하는데 어째요. 찾아 줬죠.” 그런데 문제는 이때부터였다. 물건을 미리 받았다는 것이 순식간에 인터넷에 퍼지면서 오전 7시까지 새벽에만 모두 32명이 다녀갔다. 조 팀장은 “요즘은 택배로 보낸 내 물건이 어디쯤 가고 있는지 인터넷으로 다 알 수 있다”며 “하지만 이렇게 막무가내로 찾아오면 곤란하다”고 말했다. (중앙선데이 2010.2.6)

그리고 택배로 (어마무시한 지연과 우체국이 털렸다는 소식에도)얌전히 받은 사람도 처음 거사(?)를 치르는 KT의 미숙한 대처 때문에 개통을 못하고 발을 동동 구르게 된다. 나 또한 마음을 잔뜩 태우다가 겨우겨우 됐고 KT는 이때 불편을 겪은 사람들에게 보상을 제시해서 달래야만 했다. 물론 그것도 유명무실해 욕을 얻어먹었지만.

아이폰을 처음 접하며 놀랐던 기억

사실 당시 iPhone OS라고 불리던 OS를 탑재한 기기를 처음 쓴것은 아니었다. 아이팟 터치 2세대를 사서 썼고 그리고 때만 되면 카메라가 없고, GPS가 없는 것을 한탄했다. 분명히 한계가 있었으니까. 당시에는 테더링이나 에그(모바일 Wi-Fi 공유기) 같은게 없었으니 더더욱 목말랐던 것이다. 아이폰을 받아 심을 꽂고 전원을 켜고 컴퓨터에 연결해 액티베이션 한 후, 처음 외출했을때. 그때 나는 자유를 체감했다. 전철에서 아마존 CD를 살 줄이야.

자유는 달콤하고 좋았다. 아이폰 앱은 새로운 노다지라고 여겨졌고, 여러 선구자들이 늦게 시작한 한국 환경에 맞는 앱을 개발했다. 예를 들면 초성 다이얼이 안되는 불편함을 해결하기 위해서 초성 다이얼이 되는 앱을 개발한 분도 계셨더랬다.

아이폰을 쓰면서 내게 생긴 가장 큰 변화라고 하면 뭐니뭐니 해도 트위터일 것이다. 지금도 하루에 몇번을 들여다 보는지 모르지만 아이폰을 시작하기 전까지는 그렇게 열심히 하지는 않았었다. 하지만 아이폰을 사용하게 된 이후로는 3G+카메라의 조합으로 더 강해져서 이후로는 트위터라는 것을 생활에서 지울 수가 없게 되었다. (사실 이 즈음해서 한국에서도 트위터 바람이 불었지만 머잖아 사그라든다) 카메라도 반가운 추가였다. 아무리 좋은말로 말해도 카메라가 좋은 퀄리티라고 할 수는 없었지만 말이다.

당시 나는 아이폰이 전지전능해 보였고(아이러니하지만 이건 당시 삼성이 옴니아에 붙인 표현이다), 정말 이것저것 했었다. 당시 내 블로그에 아이폰이 강력하지만 배터리가 부족하다는 불만도 올린 적이 있다.

아무튼 기계를 받아서 개통을 한 다음에 아이폰을 가지고 놀았다. 트위터를 하고 블로그에 글을 쓰고, 박스웹(m.boxweb.net)을 이용해서 커뮤니티를 돌아다니고 웹검색을 통해서 카페에 글을 읽고 쓰고, 뉴스를 보기도 하고 메일을 보고 음악을 듣고 전화를 했다. 아이폰의 카메라는 몇만화소인지조차 모르겠으나, 그 활용도면에서는 1200만화소짜리 DSLR에 못지않는 활용이 가능하다. 사진을 찍어서 바로 트위터나 블로그에 첨부하는 등 다양한 활용이 가능했다. 어제는 집에서 뒹굴거리며 Wi-Fi로 했고, 오늘은 실전으로 바깥에 나가서 3G로 사용했다.

어디서든 인터넷은 생각보다 위력적인 것이었다. 영등포까지 영화를 보러 오가는 길 동안 음악을 들으며 아이폰으로 서핑하며 보내자, 거짓말 조금 보태서 금정에서 환승하는 것을 놓칠뻔했고, 정신차리고 그만두자 금천구청에 갈때까지 금방 몰두하게 되었다. 영화를 기다리면서 스타벅스에서 인터넷을 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유튜브로 ‘놀라는 고양이’ 동영상을 보다가 뿜어서 반경 수미터의 집중을 모았다. 그러다가 영화가 끝나고 영화의 감상에 대한 일성을 영화관에서 나오자마자 같이 영화를 본 그 누구보다도 빨리 세상으로 타전했다. 몇시간의 빈 시간과 이동시간의 지루함을 일소시켜줌과 동시에 인터넷 세상과 끊임없이 연결해 주었다. 아이팟 터치에 휴대폰을 더했을 뿐인데 할 수 있는 일과 즐거움은 몇배가 되었다.

배터리 문제는 아킬레스의 건이지만, 언론에서 말하는 것 만큼이나 심각하지는 않다. 집과 바깥에서 사용해본 결과 하루 일정 정도는 가볍게 소화할 수 있었다. 전철을 타고 한시간 가량 이동하고 한시간 정도를 앉아서 인터넷을 하고 다시 한시간 정도 돌아오면서 사용하고도 배터리는 충분히 남았다. 물론 그 사이사이에 트위터를 하고 메일을 확인하고 문자를 보내고 전화를 했다. 대기시에는 배터리가 아주 천천히 닳는다. 인터넷이 전력을 먹는 왠수인것이다. 문제는 이 기계는 종일 인터넷을 항상 할 수 밖에 없는 기계라는 점이다. 그래서 적지 않은 용량임에도 불구하고 배터리 수명이 간당간당 한 것이다. 아마 어떤 기계도 이렇게 하루종일 조물딱거리면서 인터넷을 사용하면 좋건싫건 이정도 수순으로 소모되지 않을까 싶을 정도.

나는 아이폰의 배터리를 들어서 ‘에반게리온’을 비유한 적이 있다. ‘궁극의 최종병기’이지만, 케이블이 분리되면 5분밖에 작동하지 않는 에바처럼, 엄청난 파워와 능력을 갖추고 있지만 그만큼 엄청난 전력을 사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 이후로 정말 많은 것이 발전했고 몰라보도록 변했지만 배터리는 여전히 아쉬울때가 있다는 것이 아이러니다.

아이폰 쇼크, 그 후.

아이폰 10년, 모바일 뱅킹과 쇼핑이 PC에서의 쇼핑을 앞서게 되었고 사람들은 이제 폰에 내장된 GPS를 이용해서 택시를 잡고 음식을 주문한다. 메신저 소프트로 시작한 카카오톡은 다음과 합쳐서 모두를 놀라게 했다. “언제든지 인터넷”이 당연해져서 사람들은 이제 음악이나 동영상을 다운로드 받지 않고 스트리밍해서 즐기기 시작했다. 불법복제율이 줄어들었고 거대한 시장이 되었다.

또 한편으로 국경이 없는 시장이 열렸다. 좋은 앱과 서비스는 국경이 없고, 밀려드는 서비스도 있는 한편 해외로 나간 서비스도 있다. 아이폰 이후로 안드로이드의 보급으로 구글이 자리를 잡는데 계기를 제공하기도 했다.

무엇보다도, 아이폰의 최대 공헌은 경쟁자들에게 충격을 주었다는 점이다. 당장 삼성이 아이폰에 대한 대항을 위해 옴니아로 조롱을 듣는 동안 여러가지를 벤치마크해서 내놓은 것이 갤럭시 S 시리즈지 않던가? 너무 열심히 벤치마크해서 “세기의 특허 소송”이 벌어지게 만들었지만.

아이폰이 들어서고 나서 본격적으로 제대로 된 모바일 웹페이지가 생겨났고 2010년대에 들어서 아예 반응형 웹사이트가 일반화되는 계기가 되었다. 아이폰 이전의 이동통신사가 만든 3사마다 제각각의 독자적인 규격의 폐쇄적인 웹에서 완전히 열린 웹으로 바뀌었으며, 아이폰 쇼크 이후로 모바일 기기를 비롯해서 어디서든 읽을 수 있는 페이지가 폭증했다. 반대로 플래시는 아이폰에 이어, 아이패드에서 지원을 하지 않겠다는 유명한 스티브 잡스의 편지(“Thought on Flash”, 이건 위키백과 항목까지 있다) 이후로 한동안은 “플래시가 안되는 폰(태블릿)”이라고 불리웠지만 결국 어도비는 모바일에서, 그리고 데스크톱에서 영구히 플래시를 포기해버리고 만다.

아이폰 쇼크 이후로 모두가 손에 실시간으로 동영상을 포함한 멀티미디어를 재생할 수 있는 매체를 손에 쥐었고, PC와 TV는 예전만한 위상을 차지 하지 못하게 되었다. 내 동생은 자기 방에 TV를 두지 않고 거의 대부분을 스마트폰, 가끔 PC를 쓰며 여가시간을 보내곤 한다. 나 또한 상당시간은 아이폰을 포함한 스마트폰을 사용한다.

아이폰이 처음 나오면서 KT 임직원들은 어떤 생각으로 요금을 구성했을지 궁금하다. 아이폰 전용 요금제를 쓰기 전에는 음성이 주(主) 로, 무료 통화시간이 600분이 주어지는데 이게 이월되고, 메시지가 몇건인가 제공되고, 데이터가 약간 제공되는 요금제였는데 아이폰이 나오면서 데이터가 몇MB, 음성은 몇몇 분 제공 되고 문자가 몇개 제공됩니다 하는 식의 요금제로 재편되었다. 이렇게 데이터가 주가 되더니 아이폰 4~4S 즈음, 그러니까 3G 말기가 되서는 무제한 데이터가 나와서 이동통신사의 데이터 용량을 마구마구 잡아먹더니 LTE가 나온 이후에는 이 무제한 광풍이 좀 잦아들어서 데이터는 용량이 다시 생겼지만 2010년대 중반 이후에 들어서는 아예 음성이나 문자는 무제한인 요금제가 일반화되었다. 2010년대 후반에는 3G때에 비해 무진장 값이 오르긴 했지만 데이터 무제한이 다시 부활하기도 했다. 이렇게 요금제의 패턴이 바뀌는 동안 이동통신사의 수익구조가 완전히 변경되었음은 말할 나위가 없다.

아이폰 10년 그리고 앞으로는?

자, 이제 아이폰이 한국에 나온지도 벌써 10년인데, 돌이켜보면 많은게 변했다 싶은 것이다. 분명히 2019년은 아이폰을 비롯해서 애플 제품을 사용하는데 있어서 가장 좋은 시기임에 틀림이 없다. 이제는 해외 카드가 없어도 원화로 앱스토어 결제가 가능하게 되었고 휴대폰 결제도 되서 카드가 없는 학생에게 아이폰을 권하기 뭐하던 시절도 지나갔다(뭐 사실 그전에 이미 체크카드들이 해외 결제가 되는게 늘긴 했다). 언론에 맨날 씹히던 A/S는 나 자신도 정말 블로그 도처에서 씹어댔었는데(쑥쓰러우니 링크는 생략한다), 지금도 예전에 비하면 많이 나아졌지만 미묘~한것이 사실이다. 사람들이 염원하던 애플 스토어는 가로수길에 Apple 가로수길이 생기며 현실화되었지만, 휴일에 제품 발매 직후에 가면 그야말로 도떼기 시장이라, 가로수길 직원 조차도 “하나는 더 생겨야 할 것 같다”는 소리를 들을 정도인지라, 애플아 좀 더 힘써봐라 싶은 것이다. 아이튠스 스토어는 결국 애플 뮤직으로 갈음된 느낌이고(아이튠스 스토어가 생긴들 얼마나 다운로드 받을지 모르겠다) 말이다. 국정감사에서 다른 업체보다 적은 애플의 (직영)서비스센터 개수를 두고 가타부타 말이 있었지만, 업계에서 가장 긴 고객지원/스토어 전화/채팅 시간이라던지, 보증기간과 파손시 비용을 보전해주는 애플 케어 플러스도 한국에서도 정식적으로 시작되었고. 아무튼 굼벵이마냥 개선은 되고 있는 듯하다.

한편, 글을 쓰는 지금 눈앞에 방금 애플 가로수길에서 가져온 뜯지 않은 아이폰 11 프로 맥스(다시 생각해봐도 이거 참 긴 이름이다)가 있다. 약간 더 자랑하자면 에어팟 프로도 있다. 둘 다 올해 신제품인데 예전같으면 출시와 함께 테이프를 끊었을텐데… 이렇게 느지막히라니 나도 이제 많이 열정이 식었구나 싶으면서 동시에, 물론 이런 IT 가젯의 최대 대목이 할리데이 시즌/연말이라는걸 알지만서도, 미국이나 일본, 싱가포르 등에 비해 여전히 항상 한두달 늦는 출시를 보면서 애플코리아 씨 앞으로 좀 더 분발 해주십사. 하는 것이다. 게다가 애플 페이는 둘째치고 애플TV+는 100여국에 출시하면서도 한국은 기약이 없잖아요. 라는 말을 덧붙이고 싶다.

AirPods Pro, 우려 사항은?

에어팟 프로가 발표되어, 미국에는 이달 30일 출시될 모양입니다. 할리데이 시즌의 다크 호스가 될려고 작당 했나 봅니다. 물량만 받춰준다면 현실미 없는 얘기는 아닐 겁나다.

우리나라에도 가격이 발표되고 페이지와 판매 페이지가 열렸는데. 가격은 그러려니 합니다. 문제는 다른데 있습니다.

1~2년 쓸 수밖에 없는 물건에 이 가격은 적당한가?

사실 제품은 극찬을 받는듯하고 괜찮은듯 합니다. 근데 문제는 얘도 결국 오리지널 에어팟과 마찬가지로 1-2년 지나면 배터리가 열화되서 교체해야 할겁니다. 그럼 자연스럽게 1-2년 쓰는 물건에 이 가격이 합당한가 라는 질문을 하게 됩니다. 배터리 들어간 블루투스 제품의 숙명이지만, 교체 비용이 말이죠 ㅠㅠ

애캐플 사세요, 고갱님

그렇다면 우리는 보장을 1년이라도 늘리기 위해서 결국은 애플 케어 플러스를 사야만 하는 걸까요? 정말 난감합니다. 사보고 싶은데 생명이 눈에 훤하니 말이죠.

새 맥북 프로를 보고 느낀점

 

%ec%88%98%ec%a0%95%eb%90%a8_mbp13rd-tb-2016-spgry-blueburst_pr_00-0008-048-print이야, 애플이 해냈습니다. 해냈어요. 예상대로 애플은 맥북프로에서 USB-C와 헤드셋 단자만 빼 놓고 모든 단자와 IO를 날려버렸어요. 여기에 대해서 말이 많습니다. 가령 라이트닝을 사용하는 아이폰과 연결을 하기 위하여(불과 몇개월 전에 나온 아이폰 7과 연결하기 위해서) 젠더가 필요한 상황이라던가 SD 단자를 생략해서 수많은 사진 매니아를 엿먹였다라는 상황 등등까지 포함해서 정말 이게 맥북 ‘프로’란 말인가? 라는 의문이 들었던 것이 사실입니다.

아이폰/아이패드와의 연결에서 모순

일단 제 생각을 말씀드리면, 아이폰과 아이패드를 어댑터 없이 연결할 수 없는 모순은 다음 기종을 지켜보고 싶습니다. 어쩌면 다음 아이폰이나 아이패드에서는 USB-C to 라이트닝 케이블이 기본이 되고 USB Type A를 사용하는 대다수의 사용자들에게 별도의 케이블이나 어댑터를 사도록 해야하는것 아닌가. 라고 생각합니다. 이것의 전환 시점은 ‘USB-C 장치가 충분히 자리잡았다’라는 생각이 들 때겠지만 솔직히 애플 맘일 겁니다.

반대로 기기 면을 생각하면 애플이 맥북의 모든 단자를 Type C로 바꾸었다는 것은 어쩌면 아이폰/아이패드에서 라이트닝의 여명이 남지 않았을 수도 있다는 얘기일 수도 있습니다. 라이트닝이 리버시블(양면)을 지원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사실은 반쪽만 사용하는 점도 있고, USB 3.0을 지원하지 않는다는 점도 있고, 고속 충전을 아직 지원하지 않는다는 점도 언급해두어야 할 것 같습니다. 굳이 말하자면 USB-C 단자가 조금 크고 두껍다라는게 걸릴 정도입니다. 또 모르겠습니다. 필 실러가 웃으면서 아이폰에 있어서  USB-C의 장점을 언급하게 될지.

앞서서 말씀드린대로 당장은 케이블을 바꾸거나 젠더를 끼우면 해결될 문제라고 봅니다만, 어쩌면 후자처럼 장치의 단자 자체가 바뀌면서 이 모순이 해결될지 모릅니다.

단자들의 학살

이번 맥에서는 역시 단자들이 학살 당했습니다. 그냥 덜렁 USB 포트 4개와 헤드셋 잭 밖에 없습니다. 재미있는 얘기를 하나 해드리지요. 물건을 잘 버리지 않는다면 옛날 물건을 종종 구석에서 발견하게 됩니다. 우선 모토롤라에서 나온 28.8k 외장 모뎀이 있습니다. 이 녀석은 시리얼 포트로 연결합니다. COM1~4포트 중 하나를 사용하겠지요. 시리얼 마우스와 합쳐서 이 컴퓨터에는 시리얼 포트를 사용하는 기계는 딱 두대만 사용 할 수 있습니다(COM1~4가 있지만 홀수 단자를 사용하는 경우 다음기기는 반드시 짝수 포트를 해야합니다). 이 모뎀까지 포함해서 말이죠. 그리고 베란다에 패럴렐 포트라고 하는 무시무시한 크기의 단자로 연결하는 레이저 프린터가 있습니다. 그리고 SCSI로 작동하는 CD-RW 외장 드라이브도 있습니다. 이 녀석은 데이지 체인이라고 해서 컴퓨터에서 장치를 연결하고 그 장치에서 또 다른 장치를 연결할 수 있는데, 마지막 장치에 터미네이터라는 녀석을 끼워야 합니다. SCSI를 위해서는 SCSI 카드를 끼워야 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만, SCSI를 기본 내장한 컴퓨터는 애플의 고급 기종 빼고는 없었기 때문입니다. 키보드와 마우스를 한번 봅시다. 키보드는 AT라고 하는 엄지손가락 굵기의 커넥터를 사용하던 단자에서 PS/2를 사용하는 녀석으로 옮겼습니다. 마우스도 아까 말했던 시리얼 단자에서 자원을 별도로 사용하지 않는 PS/2로 바뀌었습니다. 이 단자는 모양이 똑같지만 서로 다른 포트에 꽂으면 작동하지 않기 때문에 단자와 커넥터에 보라색과 초록색으로 색을 나누어 표시했습니다. 여담으로 제가 쓰기 이전의 컴퓨터에는 마우스를 사용하기 위해 마우스 카드라는 물건을 달아야 했다는 모양입니다. 웹캠이나 스캐너도 전용 카드를 달아야 했던 기억이 나네요.

제가 IO 장치와 단자에 대해서 이렇게 열거하는 이유는 지금은 거의 대부분이 USB로 대체되었다는 것을 말하기 위해서입니다. USB 초기에는 컴퓨터에 많아봐야 USB 단자가 2개인 경우가 많았고 USB를 전격적으로 민 시작이라고 일컬어지는 아이맥 조차도 2개의 단자만 있었습니다. 지금 데스크톱 제품에서는 아무리 적어도 4개~6개 이상이고 슬림형이라는 제 노트북도 3개의 USB 3.0 포트가 있습니다. USB를 대체/보완하려는 여러가지 시도가 있었던것이 사실이지만 결국 USB 2.0에 와서 기울더니 3.0와 타입 C에서  전력과 디스플레이, 오디오 등을 통합시키고 선더볼트마저 규격에 포함 되면서 애플조차도 썬더볼트의 독자 포트를 포기하기에 이릅니다.

미래로 가는 길

제가 언급한 모든 장치는 1999년 당시에는 일상적으로 사용되던 것이었습니다. 그때 그 모든 것이 들어간 컴퓨터를 조립했으니까 틀림없어요. 그런데 17년만에 우리는 단자 하나로 모든 장치를 연결하고 있고, 이제는 그 단자로 더 많은 것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SCSI와 ADB 버스를 버리고 USB로 완전히 돌아섰을때 얼마나 욕을 얻어먹었는지 저로써는 실제 현장에 없었으니 알 길이 없으나 이제 누구든 간에 USB 없이 생활하는 것은 이제 불가능합니다.

12인치 맥북을 보면서 거기에 달린 USB-C 단자 하나만 보고 사람들이 식겁했지만 HP의 스펙터라는 녀석이 있는데요. 제가 쓰는 ThinkPad X1 Yoga 정도의 사양을 맥북 사이즈에 넣으면서 USB-C 단자를 두 개 더 넣어 세 개를 만든 녀석입니다. 맥북에 비해 장점이라면 전원 말고 USB를 연결할 방법이 있다는 정도일까요? 스펙터의 가능성이나 성공유무에 대해서는 논하지 않겠지만 저는 스펙터가 나온 순간 미투 제품이 나왔다는 점을 보고 만족스러운 마음으로 애플이 새로운 길을 열었다는 사실을 확신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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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북프로에 탑재된 USB-C 단자는 선더볼트를 비롯해서 5K 디스플레이를 두개까지 연결하고도 남습니다. USB-C 모니터 중에서는 노트북에 전력을 공급하고 스피커가 있고, USB Type A 포트를 가진 경우도 있습니다.

1999년의 제가 키보드와 마우스, 프린터와 CD-RW를 연결하면서 이 모든 것을 USB 단 하나의 단자로 해결 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듯이(그때도 USB는 있었고 신형 마우스나 키보드는 USB 기반에 USB-PS2 동글이 딸려오기도 했습니다), 몇년뒤에 USB-C 이전의 수많은 전용 단자와 전원 커넥터가 있던 과거 세상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습니다. 그것을 보고 움직이는 것이 미래를 보는 비전 아닐까요?

물론 지금 당장은 고생길이 열리겠지만요. 1998년 iMac이 나오던 시절의 맥 사용자들이 이해되기 시작했습니다. 이 깜깜한 기분도 나중에 웃어넘길 과거담이 되면 좋을텐데요.

애플의 점증적 변화에 관하여

애플이 예전만 못하다고 합니다. 아이패드(iPad)는 아직 최전성기 수준을 따라잡지 못하고 있고, 아이폰(iPhone)은 전 모델인 6/6 Plus(6 시리즈)에서 공전의 히트를 쳤는데 지금 모델인 6s/6s Plus(6s 시리즈)는 좀 모자란 것 같습니다. 제 생각에는 6 시리즈에서 워낙 많이 팔려서 틱-톡 라이프사이틀에서 톡에 해당되는 6s 시리즈가 덜 팔린 느낌입니다. 저 같이 매년 아이폰을 빠짐없이 사는 사람은 그렇게 많지 않을 것 같고 대개는 약정을 걸고 보통 18~24개월 이상을 사용하기 때문이죠. 6 시리즈가 너무 많이 변했죠, 그리고 엄청 많이 팔렸죠. 가장 큰 이유로 화면이 커진게 대표적이구요. 6 시리즈에는 안드로이드에서 유입이나 5/5s 사용자도 꽤 많이 유입되었는데 여러가지 기능이 추가 되었다 해서 기존 6 시리즈 사용자가 6s 시리즈를 살 것 같지도 않습니다. (사실 6s가 사용할 수 없어서 6를 잠시 썼는데 3D Touch빼곤 아쉬운게 없었습니다. 크게 느리지도 않고) 진짜 제 생각에는 다음 7(가칭) 시리즈는 기변 시도도 있고 조금 더 나을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앞 일은 알 수가 없죠. 3.5mm 플러그를 없앤다는 얘기가 있는데 그것 때문에 안산다는 분들이 꽤 계시더라구요. 물론 저는 새 아이폰이면 (늦건 빠르건)사겠지만요.

애플이 TV를 본격적인 사업분야로 시작하고, 인공지능을 도입하고, 비밀리에 차를 만드는거 아니냐는 얘기가 있지만, 일단 애플의 주요 사업 영역은 잡스가 만들었다고 봅니다. 뭐 잡스가 CEO를 관뒀을때도 몇 년 정도의 구조는 이미 짜놓았지 않았나 하는 분석이 있었는데 말이죠. 사실 지금 한창때에 비해서는 좀 떨어진다고는 하지만 팀 쿡은 애플을 세상에서 가장 가치 있는 기업으로써 튼튼하게 토대를 닦았기는 합니다.

사실 ‘파괴적 혁신(disruptive innovation)’이 없는 상황에 대해서는 2013년부터 약간 우려를 했던 것은 사실입니다. 그리고 얼마전에는 존 그루버는 Macworld에 한 기고에서 애플이 가장 잘하는 일이 차근차근 발전을 향해 굴러가는 것, 심지어 실시간으로 보면 반복적인 발전 과정을 놓치기 쉬울 것이라고 했을 정도입니다만. 확실히 놀라운 혁신은 드물지만 이번 WWDC 키노트를 보면 iOS 10와 새로운 macOS는 기대가 됩니다. 정말 많은 신기능과 변경점이 iOS 7 때의 두근거림을 떠올리게 만듭니다. 베타를 쓰지 않는 저입니다만 얼른 퍼블릭 베타를 써보고 싶어서 좀이 쑤십니다(개발자 베타를 쓸 엄두는 나지 않습니다).

아이패드만 하더라도 PC를 대체하겠다!라는 거창한 목표로 이런저런 기능이 추가 됐는데 말입니다. iPad 4세대를 쓰다가 아이패드 프로 9.7″을 사용하니 정말 많은 것이 변하고 편리해져서 정말 만족스러웠습니다. 스플릿뷰나 슬라이드 오버 같은 많은 리뷰어들이 값을 빼면 아이패드 프로 9.7″를 최고의 태블릿으로 보는데 이견이 없습니다.

애플 워치 같은 (물론 점유율은 엄청나지만) 미묘한 제품이 있지만 또 압니까? 정말 애플 차가 나올지. 차가 아니더라도 뭔가가 나올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맥북 12″는 만들어졌던 당시에는 정말 과격한 생략이 들어간 맥북 에어보다도 더 과격한 삭제가 이뤄졌죠. 소문이 흘러나오는 맥북 프로의 신 모델도 (물론 포트 수는 더 많겠지만) USB-C로 점철이 된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습니다만.. USB-C에 올인한 애플의 도전이 얼마나 성공할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2016년 현재 많은 랩톱들이 USB-C를 지원하기 시작한걸 보면(심지어 HP 스펙터는 모든 포트를 두개의 USB-C로 대체해 버렸죠) FireWire나 선더볼트보다는 나을지 모르겠네요. HP 스펙터 얘기를 했는데, USB-C로 모든걸 대체해 버린 애플의 과격함이 마치 맥북 에어 이후 울트라북 등의 형태로 상당수의 노트북을 바꿨듯이(요즘 나오는 노트북은 이더넷 포트가 외장인 것이 정말 많더군요) 말입니다. 정말 깜짝 놀랄만한 발명은 아닐지라도 아이팟이 그랬고, 아이폰이 그랬고, 아이패드가 그랬고, 그 모든 제품에서 도입한 모든 애플의 개선과 변화가 업계와 우리 삶에 많은 변화를 가져다 주었던걸 그리고 그 개선이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걸 감안하면 마냥 ‘애플이 혁신을 포기했다’ 라고 말할 수 있을지 싶긴 합니다.

앱스토어 구매에 문제가 있었다고 생각될때(구매내역 삭제 등)

앱스토어 리뷰를 보면 생각했던 것과 앱이 다르다거나 구매내역 삭제를 바란다는 글이 있습니다만, 일단 한가지 말씀드리죠. 구매내역 삭제 안해도 여러분이 쓰시는데 전혀 지장없습니다. 특히 구매내역을 삭제하는 것과 휴대폰 저장공간은 전혀 상관없습니다. 구매내역이 남더라도 여러분의 전화기나 컴퓨터가 아니라 애플 서버에만 남습니다. 

백번 양보해서 그게 가능하다 치더라도 최소한 리뷰에 적는다고 어떻게 되는거 아닙니다. 개발자가 개선을 위해 리뷰를 참고는 하지만 구글 플레이처럼 읽고 어떻게 대응해줄 수는 없습니다. 그러니 리뷰란에 구매내역 삭제 좀 적지 마세요. 그렇지만 어떻게서든 없애야겠다거나, 앱이 뭔가 문제가 있어서 도저히 돈이 아까워서 못참겠다거나 판사님 , 고양이가 대신 암호 또는 터치ID를 이용해 구매 했어요… 같은 경우가 있을 수 있습니다.

여담으로 전화가 와도 바로 사람이 말하는게 아니라 지금 통화할 건지 아니면 다른 시간으로 바꿀건지 ARS가 물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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