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 실러의 ‘용기’는 객기였을까?

지난 달에 공개했던 3.5mm 스테레오 미니 플러그의 기원에 대한 글은 잘 읽으셨는지요? 그 글을 다루다보니 필연적으로 3.5mm 스테레오 미니 플러그를 관짝에 묻게 된 필 실러의 2016년 애플 스페셜 이벤트 연단에서 ‘용기(courage)’ 발언이 나오게 되었었는데요.

아이폰7에서 이어폰 잭의 폐지 당위성을 설명하는 필 실러

그는 주장했죠. 전화기의 몸체의 공간은 점점 귀중해지고 있다면서 고정된 크기의 커넥터가 차지하는 자리를 없애므로써 더 많은 걸 넣을 수 있다고 말입니다. 그러면서 내놓은 대안은 다들 아시다시피…

아이폰7에서 이어폰 잭의 폐지 당위성을 설명하는 필 실러, 무선의 가능성을 역설하다.

무선이었습니다. 애플은 한동안 오랄 비 칫솔모라던가 귀에서 우동 등으로 야유당하게 되는 에어팟(AirPods)을 소개했습니다. 저는 그 발표를 보고 나서 쓴 글에서…

여하튼 이제는 ‘용기’를 낼 시간입니다. 덕분에 저는 전화기를 들고 이리저리 왔다갔다 하면서 주방일을 보지 않아도 되고 어딘가 케이블이 걸릴 걱정을 안해도 되겠지요. 고정전화(집전화)가 휴대폰이 됐고, 유선 랜이 무선 랜이 됐습니다. 제가 처음 무선랜 장비를 살때는 모든 것이 기본적으로 6자리 단위였지만 이제는 클라이언트라면 무선랜이 기본적으로 내장 안된 휴대용 컴퓨터나 디바이스가 드물고, 공유기도 사양에 까다롭게 굴지 않는다면 10만원대 이하로도 충분히 살 수 있습니다.

어찌됐든 이 긴글이 주장하고 싶은 사실, 그것은  ‘용기’가 최종적으로 향할 곳은 자유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몇년이 지나면 우리는 이 자유를 당연하게 여길지 모릅니다.

선을 자르는 용기에 대한 생각

그리고 발표 후 처음으로 구매한 블루투스 헤드폰인 QC35에 대한 리뷰에서도 이렇게 적었습니다.

일단 1.5m짜리 선이 없다는 것은 생각보다 커다란 변화이다. 전화기나 아이패드, 컴퓨터 같은 소스 기기를 몇 미터(보스에서는 10미터 정도라고 하지만 사실상 우리집 끝에서 끝까지도 된다) 떨어뜨려놓고도 음악을 듣거나 전화 통화를 할 수 있다. 화장실을 쓰거나 손을 씻을때도 (아직은 방수가 아닌) 아이폰 등 기기를 주머니나 물에서 멀찍이 떨어진 안전한 곳에 플러그를 뽑지 않고도 편하게 두고 일을 보고 손을 씻고 나올 수 있다.

선이 없어지면서 요리와 가사가 편해졌다. 전화기를 부엌에 한켠에 놓고 음악을 들으며 싱크대와 조리대와 냉장고와 정수기를 왔다갔다 하면서 휴대폰과 연결된 1.5미터 선을 신경쓰지 않고 이런 저런 일을 할 수 있다. 그냥 편하게 쉬거나 양손을 사용하는 작업도 여유롭다.

음악을 듣기 위해서 한손에 휴대폰을 들고 있을 필요가 없는 것이다. 그리고 집을 청소할때도 거실 한 켠에 전화기를 놓고 선이 걸리적 거리는 일 없이 양 손 작업을 할 수 있다.

전화기를 한손에 들고 덜렁덜렁 거리는 선을 신경쓰지 않으며 조리나 가사에 임할 수 있다. 적당히 부엌 한켠에 두고서 음악을 듣거나 전화를 걸고 받을 수 있다.

음악을 들으면서 머리를 신나게 흔들며 움직여도 걸리적 거리거나 기기가 딸려 나올 염려가 없다는 점은 역시 처음에는 신기하다. 하지만 이젠 선이 따라서 움직이는 것을 상상하기 괴롭다. (중략)

겨우 몇주가 지났을 뿐인데 이제는 선을 주렁주렁 매달고 다니는 것이 상상하기 힘들 정도이고 가끔 QC35를 유선으로 연결하거나 ER-4P등 기존 이어폰을 끼울때 너무 불편하다. 무선은 너무 편리하다. 가끔 소스 기기(대개는 휴대폰)을 다른 방에 놓고 나와서 ‘어 어디에 뒀지?’ 하는 경우가 있지만 말이다. 게다가 통화 기능도 편리해서 왜 택배 기사 분들이나 운전을 하시는 분들이 모노 블루투스 헤드셋을 사용하시는지 알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수화기를 드는게 귀찮다. 그리고 통화 품질도 끊김없이 괜찮다. 보통 오래 통화할때 스피커폰을 쓰거나 이어셋을 사용하는데 그런 기분으로 사용하면 오랫동안 통화해도 귀도 편하고 팔도 안아프고(전화기를 어디다 놓고 돌아다녀도 되니까) 너무 편리하다.

나는 확신했다. 이것이 미래이다. 물론 앞으로 발전의 여지는 아직 얼마든지 있고, 사실 블루투스의 페어링 경험과 궁합은 많이 좋아졌다고는 하나 아직도 모자람이 있다(애플은 이 부분을 해결하고 싶어했나보다). 하지만 그것이 선을 자르는 용기를 막을 정도는 아니다. 그래서 페어링을 획기적으로 개선했다고 주장하는 에어팟과 비츠 제품을 기대해본다. 이미 여기에 반백만원을 들였기 때문에 또 살 돈이 있을지 의문이지만. 어찌됐든 지금 이 녀석만으로도 흡족스러운 제품을 만나 돈을 잘 썼다는 기분이 든다. 이런건 언제나 환영이다

Bose 보스 QuietComfort 35(QC35) 블루투스 무선 노이즈 캔슬링 헤드폰 사용기(리뷰)

대체적으로 거의 대부분의 내용은 그때 예상했던 대로 되었습니다. 가격은 떨어졌고, 대세는 무선이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마치 LP판을 찾는 감성으로 ‘줄 이어폰’을 찾고 있지요. 우리는 ‘자유’를 당연하게 여기게 되었습니다. 다만 지난번에도 말했지만 아직까지 블루투스의 발전은 지지부진해서, 애플 제품의 테두리를 벗어나는 순간 페어링의 지옥에 빠지게 되니까요.

결론적으로 말해서 애플의 테두리 안에 있는 한, 필 실러의 말은 말은 맞았습니다. 어디까지나 애플의 테두리 안에 있는 한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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