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달폰’ 아이폰 한국 상륙 10주년

다음달 폰의 추억

스티브 잡스가 처음으로 아이폰을 소개하던 때를 아직도 기억한다. 당시 클리앙의 게시판에서도 모두가 술렁이던걸 기억한다. 다만 GSM이어서 한국에서는 쓸 수 없었기에 한국에 출시도 있을 수 없겠구나 라는 생각을 다들 하고 있었다. 물론 그럼에도 수입을 해온 용자가 있었는데, 당시는 그러기 위해서는 개인이 직접 전파인증을 일일히 받아야 했으니 정말 어마무시한 정성이었을테다. 당시에도 지금 이 시대에 2G냐며 씹혔던걸로 기억한다. 생각해보면 세대(G)를 뒤쳐 가는건 이때부터의 아이폰의 전통인가 보다. 2008년에 WCDMA를 채용한 아이폰 3G가 나왔지만 결국 뭐 호사가의 입에만 오르다 다음해로 넘어가게 되었다. 물론 이번에는 한국에서 쓸 수 있었기 때문에 더 많은 용자들이 개별인증을 신청하는 모험을 떠나곤 했다. 그리고 아이폰 3GS가 발표가 되었는데, 사람들의 초점은 이 녀석이 한국에 나오냐 안나오냐 였고. 6월부터 다른 나라에 판매가 시작되자 사람들은 WIPI를 이유로 정부가 막고 있다던가 Wi-Fi 때문에 특정 통신사가 로비를 하고 있다고까지 이른바 음모론을 말하기에 이른다. 한국에서 아이폰이 나오는 것이냐, 안나오는 것이면 왜 안나오는 것이냐 문제는 국경을 넘어서까지 화제가 되었고(당시 CNN 방송을 보고 쓴 포스트가 있다) 결국 날짜를 초읽기 하면서, 언론은 연일 낙관론과 회의론이 섞인 기사를 내놨고, 11월 상순까지도 날짜를 정확히 확정을 못하다가 겨우겨우 11월 28일이 확정되고 22일부터 예약가입을 받고 이런저런 행사와 함께 출시가 되기에 이른다. 가격과 요금제 등등에서 여러가지로 잡음이 많았지만—요컨데 너무 비싼거 아니냐 같은—결과는 여러분이 아시는 대로다. 아, 흔히 사용되는 대항마라는 표현은 이즈음부터도 이미 사용됐었다. 게섯거라도 그렇고.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우체국 습격 사건

당시에는 지금과 달리 애플 제품이 발매가 되면 발매일에 줄 서서 사는게 (해외에서)당연시 되던 시절이라, 한국에서도 발렌타인 데이 같은 국적 불명 행사 수입하듯이 그대로 수입해서 줄을 서기도 했었다. 나같으면 차마 11월 하순에 서울까지 가서 밤을 새지는 못하고, 아무튼 택배로 받기로 했었었다. KT는 물량이 폭주하자 제대로 감당을 하지 못했고, 일반출시보다 먼저 받아야할 예약구입자들이 뒷전으로 밀려날 지경이 되었다. 그 와중에 택배로 받기로 했던 사람들 중에서 정말 성질이 급했던 사람이 있었던 모양이다. 일부가 결국은 배달 도중인 아이폰을 우편집중국을 문자 그대로 쳐들어가 털어온 사태가 벌어졌다. 사람들의 아이폰에 대한 열망은 그 정도였던 것이다.

“가장 힘든 건 막무가내로 떼쓰는 사람들이죠. 지난해 아이폰이 출시된 날 너무 힘들었어요.” 서울우편집중국 조광범(40) 소포팀장은 아이폰이 처음 나오는 날 새벽에 너무 힘들었다고 말했다. 그날은 토요일이었다. 오전 2시 남자 두 명이 집중국으로 찾아왔다. “인터넷으로 배송 추적해 본 뒤 여기로 왔다며 택배를 미리 받고 싶다고 부탁하더군요.” 주말을 참지 못하고 찾아온 것이다. “새벽에 여기까지 와서 간절히 부탁하는데 어째요. 찾아 줬죠.” 그런데 문제는 이때부터였다. 물건을 미리 받았다는 것이 순식간에 인터넷에 퍼지면서 오전 7시까지 새벽에만 모두 32명이 다녀갔다. 조 팀장은 “요즘은 택배로 보낸 내 물건이 어디쯤 가고 있는지 인터넷으로 다 알 수 있다”며 “하지만 이렇게 막무가내로 찾아오면 곤란하다”고 말했다. (중앙선데이 2010.2.6)

그리고 택배로 (어마무시한 지연과 우체국이 털렸다는 소식에도)얌전히 받은 사람도 처음 거사(?)를 치르는 KT의 미숙한 대처 때문에 개통을 못하고 발을 동동 구르게 된다. 나 또한 마음을 잔뜩 태우다가 겨우겨우 됐고 KT는 이때 불편을 겪은 사람들에게 보상을 제시해서 달래야만 했다. 물론 그것도 유명무실해 욕을 얻어먹었지만.

아이폰을 처음 접하며 놀랐던 기억

사실 당시 iPhone OS라고 불리던 OS를 탑재한 기기를 처음 쓴것은 아니었다. 아이팟 터치 2세대를 사서 썼고 그리고 때만 되면 카메라가 없고, GPS가 없는 것을 한탄했다. 분명히 한계가 있었으니까. 당시에는 테더링이나 에그(모바일 Wi-Fi 공유기) 같은게 없었으니 더더욱 목말랐던 것이다. 아이폰을 받아 심을 꽂고 전원을 켜고 컴퓨터에 연결해 액티베이션 한 후, 처음 외출했을때. 그때 나는 자유를 체감했다. 전철에서 아마존 CD를 살 줄이야.

자유는 달콤하고 좋았다. 아이폰 앱은 새로운 노다지라고 여겨졌고, 여러 선구자들이 늦게 시작한 한국 환경에 맞는 앱을 개발했다. 예를 들면 초성 다이얼이 안되는 불편함을 해결하기 위해서 초성 다이얼이 되는 앱을 개발한 분도 계셨더랬다.

아이폰을 쓰면서 내게 생긴 가장 큰 변화라고 하면 뭐니뭐니 해도 트위터일 것이다. 지금도 하루에 몇번을 들여다 보는지 모르지만 아이폰을 시작하기 전까지는 그렇게 열심히 하지는 않았었다. 하지만 아이폰을 사용하게 된 이후로는 3G+카메라의 조합으로 더 강해져서 이후로는 트위터라는 것을 생활에서 지울 수가 없게 되었다. (사실 이 즈음해서 한국에서도 트위터 바람이 불었지만 머잖아 사그라든다) 카메라도 반가운 추가였다. 아무리 좋은말로 말해도 카메라가 좋은 퀄리티라고 할 수는 없었지만 말이다.

당시 나는 아이폰이 전지전능해 보였고(아이러니하지만 이건 당시 삼성이 옴니아에 붙인 표현이다), 정말 이것저것 했었다. 당시 내 블로그에 아이폰이 강력하지만 배터리가 부족하다는 불만도 올린 적이 있다.

아무튼 기계를 받아서 개통을 한 다음에 아이폰을 가지고 놀았다. 트위터를 하고 블로그에 글을 쓰고, 박스웹(m.boxweb.net)을 이용해서 커뮤니티를 돌아다니고 웹검색을 통해서 카페에 글을 읽고 쓰고, 뉴스를 보기도 하고 메일을 보고 음악을 듣고 전화를 했다. 아이폰의 카메라는 몇만화소인지조차 모르겠으나, 그 활용도면에서는 1200만화소짜리 DSLR에 못지않는 활용이 가능하다. 사진을 찍어서 바로 트위터나 블로그에 첨부하는 등 다양한 활용이 가능했다. 어제는 집에서 뒹굴거리며 Wi-Fi로 했고, 오늘은 실전으로 바깥에 나가서 3G로 사용했다.

어디서든 인터넷은 생각보다 위력적인 것이었다. 영등포까지 영화를 보러 오가는 길 동안 음악을 들으며 아이폰으로 서핑하며 보내자, 거짓말 조금 보태서 금정에서 환승하는 것을 놓칠뻔했고, 정신차리고 그만두자 금천구청에 갈때까지 금방 몰두하게 되었다. 영화를 기다리면서 스타벅스에서 인터넷을 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유튜브로 ‘놀라는 고양이’ 동영상을 보다가 뿜어서 반경 수미터의 집중을 모았다. 그러다가 영화가 끝나고 영화의 감상에 대한 일성을 영화관에서 나오자마자 같이 영화를 본 그 누구보다도 빨리 세상으로 타전했다. 몇시간의 빈 시간과 이동시간의 지루함을 일소시켜줌과 동시에 인터넷 세상과 끊임없이 연결해 주었다. 아이팟 터치에 휴대폰을 더했을 뿐인데 할 수 있는 일과 즐거움은 몇배가 되었다.

배터리 문제는 아킬레스의 건이지만, 언론에서 말하는 것 만큼이나 심각하지는 않다. 집과 바깥에서 사용해본 결과 하루 일정 정도는 가볍게 소화할 수 있었다. 전철을 타고 한시간 가량 이동하고 한시간 정도를 앉아서 인터넷을 하고 다시 한시간 정도 돌아오면서 사용하고도 배터리는 충분히 남았다. 물론 그 사이사이에 트위터를 하고 메일을 확인하고 문자를 보내고 전화를 했다. 대기시에는 배터리가 아주 천천히 닳는다. 인터넷이 전력을 먹는 왠수인것이다. 문제는 이 기계는 종일 인터넷을 항상 할 수 밖에 없는 기계라는 점이다. 그래서 적지 않은 용량임에도 불구하고 배터리 수명이 간당간당 한 것이다. 아마 어떤 기계도 이렇게 하루종일 조물딱거리면서 인터넷을 사용하면 좋건싫건 이정도 수순으로 소모되지 않을까 싶을 정도.

나는 아이폰의 배터리를 들어서 ‘에반게리온’을 비유한 적이 있다. ‘궁극의 최종병기’이지만, 케이블이 분리되면 5분밖에 작동하지 않는 에바처럼, 엄청난 파워와 능력을 갖추고 있지만 그만큼 엄청난 전력을 사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 이후로 정말 많은 것이 발전했고 몰라보도록 변했지만 배터리는 여전히 아쉬울때가 있다는 것이 아이러니다.

아이폰 쇼크, 그 후.

아이폰 10년, 모바일 뱅킹과 쇼핑이 PC에서의 쇼핑을 앞서게 되었고 사람들은 이제 폰에 내장된 GPS를 이용해서 택시를 잡고 음식을 주문한다. 메신저 소프트로 시작한 카카오톡은 다음과 합쳐서 모두를 놀라게 했다. “언제든지 인터넷”이 당연해져서 사람들은 이제 음악이나 동영상을 다운로드 받지 않고 스트리밍해서 즐기기 시작했다. 불법복제율이 줄어들었고 거대한 시장이 되었다.

또 한편으로 국경이 없는 시장이 열렸다. 좋은 앱과 서비스는 국경이 없고, 밀려드는 서비스도 있는 한편 해외로 나간 서비스도 있다. 아이폰 이후로 안드로이드의 보급으로 구글이 자리를 잡는데 계기를 제공하기도 했다.

무엇보다도, 아이폰의 최대 공헌은 경쟁자들에게 충격을 주었다는 점이다. 당장 삼성이 아이폰에 대한 대항을 위해 옴니아로 조롱을 듣는 동안 여러가지를 벤치마크해서 내놓은 것이 갤럭시 S 시리즈지 않던가? 너무 열심히 벤치마크해서 “세기의 특허 소송”이 벌어지게 만들었지만.

아이폰이 들어서고 나서 본격적으로 제대로 된 모바일 웹페이지가 생겨났고 2010년대에 들어서 아예 반응형 웹사이트가 일반화되는 계기가 되었다. 아이폰 이전의 이동통신사가 만든 3사마다 제각각의 독자적인 규격의 폐쇄적인 웹에서 완전히 열린 웹으로 바뀌었으며, 아이폰 쇼크 이후로 모바일 기기를 비롯해서 어디서든 읽을 수 있는 페이지가 폭증했다. 반대로 플래시는 아이폰에 이어, 아이패드에서 지원을 하지 않겠다는 유명한 스티브 잡스의 편지(“Thought on Flash”, 이건 위키백과 항목까지 있다) 이후로 한동안은 “플래시가 안되는 폰(태블릿)”이라고 불리웠지만 결국 어도비는 모바일에서, 그리고 데스크톱에서 영구히 플래시를 포기해버리고 만다.

아이폰 쇼크 이후로 모두가 손에 실시간으로 동영상을 포함한 멀티미디어를 재생할 수 있는 매체를 손에 쥐었고, PC와 TV는 예전만한 위상을 차지 하지 못하게 되었다. 내 동생은 자기 방에 TV를 두지 않고 거의 대부분을 스마트폰, 가끔 PC를 쓰며 여가시간을 보내곤 한다. 나 또한 상당시간은 아이폰을 포함한 스마트폰을 사용한다.

아이폰이 처음 나오면서 KT 임직원들은 어떤 생각으로 요금을 구성했을지 궁금하다. 아이폰 전용 요금제를 쓰기 전에는 음성이 주(主) 로, 무료 통화시간이 600분이 주어지는데 이게 이월되고, 메시지가 몇건인가 제공되고, 데이터가 약간 제공되는 요금제였는데 아이폰이 나오면서 데이터가 몇MB, 음성은 몇몇 분 제공 되고 문자가 몇개 제공됩니다 하는 식의 요금제로 재편되었다. 이렇게 데이터가 주가 되더니 아이폰 4~4S 즈음, 그러니까 3G 말기가 되서는 무제한 데이터가 나와서 이동통신사의 데이터 용량을 마구마구 잡아먹더니 LTE가 나온 이후에는 이 무제한 광풍이 좀 잦아들어서 데이터는 용량이 다시 생겼지만 2010년대 중반 이후에 들어서는 아예 음성이나 문자는 무제한인 요금제가 일반화되었다. 2010년대 후반에는 3G때에 비해 무진장 값이 오르긴 했지만 데이터 무제한이 다시 부활하기도 했다. 이렇게 요금제의 패턴이 바뀌는 동안 이동통신사의 수익구조가 완전히 변경되었음은 말할 나위가 없다.

아이폰 10년 그리고 앞으로는?

자, 이제 아이폰이 한국에 나온지도 벌써 10년인데, 돌이켜보면 많은게 변했다 싶은 것이다. 분명히 2019년은 아이폰을 비롯해서 애플 제품을 사용하는데 있어서 가장 좋은 시기임에 틀림이 없다. 이제는 해외 카드가 없어도 원화로 앱스토어 결제가 가능하게 되었고 휴대폰 결제도 되서 카드가 없는 학생에게 아이폰을 권하기 뭐하던 시절도 지나갔다(뭐 사실 그전에 이미 체크카드들이 해외 결제가 되는게 늘긴 했다). 언론에 맨날 씹히던 A/S는 나 자신도 정말 블로그 도처에서 씹어댔었는데(쑥쓰러우니 링크는 생략한다), 지금도 예전에 비하면 많이 나아졌지만 미묘~한것이 사실이다. 사람들이 염원하던 애플 스토어는 가로수길에 Apple 가로수길이 생기며 현실화되었지만, 휴일에 제품 발매 직후에 가면 그야말로 도떼기 시장이라, 가로수길 직원 조차도 “하나는 더 생겨야 할 것 같다”는 소리를 들을 정도인지라, 애플아 좀 더 힘써봐라 싶은 것이다. 아이튠스 스토어는 결국 애플 뮤직으로 갈음된 느낌이고(아이튠스 스토어가 생긴들 얼마나 다운로드 받을지 모르겠다) 말이다. 국정감사에서 다른 업체보다 적은 애플의 (직영)서비스센터 개수를 두고 가타부타 말이 있었지만, 업계에서 가장 긴 고객지원/스토어 전화/채팅 시간이라던지, 보증기간과 파손시 비용을 보전해주는 애플 케어 플러스도 한국에서도 정식적으로 시작되었고. 아무튼 굼벵이마냥 개선은 되고 있는 듯하다.

한편, 글을 쓰는 지금 눈앞에 방금 애플 가로수길에서 가져온 뜯지 않은 아이폰 11 프로 맥스(다시 생각해봐도 이거 참 긴 이름이다)가 있다. 약간 더 자랑하자면 에어팟 프로도 있다. 둘 다 올해 신제품인데 예전같으면 출시와 함께 테이프를 끊었을텐데… 이렇게 느지막히라니 나도 이제 많이 열정이 식었구나 싶으면서 동시에, 물론 이런 IT 가젯의 최대 대목이 할리데이 시즌/연말이라는걸 알지만서도, 미국이나 일본, 싱가포르 등에 비해 여전히 항상 한두달 늦는 출시를 보면서 애플코리아 씨 앞으로 좀 더 분발 해주십사. 하는 것이다. 게다가 애플 페이는 둘째치고 애플TV+는 100여국에 출시하면서도 한국은 기약이 없잖아요. 라는 말을 덧붙이고 싶다.

AirPods Pro를 두고 드는 업계 생각

AirPods Pro(에어팟 프로)가 어마무시한 지각 변동을 일으키고 있다. 노이즈 캔슬링 헤드폰의 가격은 보즈나 소니나 할 것 없이 49만 9천원으로 담합 아닌 담합이 일어나고 있었는데 전부다 30만원대로 내려 앉았다. 전세계에서 가장 많은 블루투스 이어폰을 팔아 치우는 애플의 힘을 무시할 수는 없었던 것이다. 심지어 보따리 상 조차도.

나는 이번 에어팟 프로를 두고 두 회사에 연민을 가지고 있다. 첫째는 소니다. 정말 피를 토하는 노력을 해서 액티브 노이즈 캔슬링의 제왕인 보즈(보스)를 이겼다고 생각했고, 그 정점을 찍는, 노이즈캔슬링과 전 세대에서 정말 욕을 무진장 얻어먹었던 연결성을 해결한 완전 무선 이어폰인 WF-1000XM3을 내놓았는데… 애플은 조용히 소니 물을 먹일 준비를 하고 있었던 셈이다. 소니는 이번에는 에어팟 프로를 열심히 뜯어서 연구해야 할 판이다. 게다가 이미 보즈도 Noise Cancelling Headphone 700이라는 반격구를 내놨다.

두번째는 로지텍이다. 로지텍은 Ultimate Ears를 인수했었다. 2010년대 초반까지만 하더라도 이어폰 덕질을 하면서 UE 제품을 한번도 안써본 사람은 없었으리라고 장담한다. 블랙 프라이데이 시즌인데 블랙 프라이데이에 싼값에 풀리는 Triple.Fi 10 제품을 입수하려고 모두가 혈안이었던 추억이 난다. 그런데 얘네가 뭘 잘못먹었는지 이어폰 라인업을 다 죽여버리고 이상한 스피커만 찍어냈다. 만약 얘네가 장기적인 안목으로 이어폰 라인업을 살리고 있었다면 로지텍이 가진 블루투스/무선 노하우에 UE의 어쿠스틱 기술을 합쳐서 음질로 승부할 수 있는 좋은 메이커가 되지 않았을까 생각하며 아쉬움에 잠긴다.

갑자기 그냥 이런 생각이 들었다.

쿄애니 사건 4개월

두 가지 커다란 사건을 떠올리다

쿄토 애니메이션 방화 살인 사건, 일명 쿄애니 사건이 일어난지 벌써 넉달이 되었습니다. 저는 사건이 일어났을때 자고 있었고, 사건이 상상이상으로 커졌을 무렵 깨었고 그 때부터 제 인생이 달라졌다고 해도 과언은 아닙니다. 이런 감각이 처음은 아닌데, 이제 막 전송되기 시작한 HD 화질로 쓰나미가 밀려드는 해안가 도시를 보여주던 11년 어느 날이나, 언제나 그랬듯이 텔레비전 뉴스 채널을 맞추고 잠든 채 일어나보니 가라앉는 배를 보던 때가 생각납니다.

7월 18일 이후로 일본 언론을 긁어서 관련 소식을 모았고, 이후 이 뉴스를 보고 싶지 않은 사람이 있을 지 모른다 내지는 이 뉴스를 나중에 검색하고 싶을 사람이 있을지 모른다는 의견을 받아서 #쿄애니사건 이라는 해시태그를 써서 뉴스를 트윗 했습니다. 이 해시태그는 다른 사람도 간간히 쓰다가 이제는 완전히 제 독점 태그가 되어 버렸습니다. 사실 해시태그라는것이 다중(多衆)이 사용하기 위해 만든 것도 있고, 발신하는 측에서 독점하는 경우도 있습니다만, 관심이 옅어진 것 같아 조금 쓸쓸하기도 합니다.

사건 직후에

사건 이후, 뉴스 창을 10개 넘게 열어놓고 새로고침을 해가고 검색을 해가며 올리던 때가 있었습니다만, 이후로는 뉴스 검색을 이용했고, 지금은 키워드 알림을 메일과 RSS로 받아가며 큼지막한 건을 올리고 있습니다. 정신을 차려보니 한달이 지나고 두달이 지났는데 언론의 관심도 많이 줄어들었고 기사도 줄었고 제 에너지도 많이 줄었다는 것을 느낍니다.

비공개 및 공개 추도 행사도 무사히 끝났고, 쿄애니의 감사 이벤트도 일부가 치뤄졌습니다. 격년 행사인 이 이벤트가 끝나고 저는 2015년에도 17년에도 직접 가지 못한 것을 통탄하며 사후 통판에 뭐가 나올지 뭘 지를지를 고민하며 지갑 사정을 보며 한숨 짓곤 했습니다.

이건 테러입니다

작년에 있었던 개인적인 사정으로 여러모로 19년에는 15년/17년 두 해에 비해 대폭 축소된 예산을 사용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고 짐작하지만. 그래도 지르고 싶었습니다. 지금이라도 그렇습니다. 지를 수 있다면 지르고 싶은 마음입니다. 다행히라고 해야할지 쿄애니의 상품 개발이나 판매 기능은 제1스튜디오와 분리되어, 신제품 일부와 기존 재품의 재판을 활발히 하고 있는 모양입니다만, 솔직히 이미 산것들이 아니라면 카드를 들고 손을 떨고 있었겠지요. 이 사건은 비단 희생자와 부상자, 그리고 그 가족 뿐 아니라 팬들의 일상 역시 산산조각 낸 그야말로 테러라고 해도 부족함이 없습니다.

풍화를 느끼다

어저께 빙과를 마저보고, 오늘 타마코 마켓을 다 봤습니다. 타이틀을 보면서, 엔딩을 보면서 고인이 된 분들을 보면 가슴이 아픕니다. 쓸쓸하구요. 점점 구글이 보내주는 쿄애니 관련 기사가 줄어드는 것을 보면서도 쓸쓸함을 느낍니다. 구글 뉴스에 키워드로 「京都アニメーション OR 京アニ」를 지정해서 둘 중 하나가 나오면 메일이나 RSS 피드에 올라오도록 해놨는데 점점 빈도수나 기사수도 줄어들고 있고, 다른 사건에서 인용으로 거론되는 횟수가 늘어나고 있습니다. 이게 풍화라는건가요.

풍화라니 생각나는데 많이들 이 사건을 잊고 이겨보려고 노력하는 것 같은 점은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바이올렛 에버가든의 공개일이 결정되었고 말이죠(반대로 Free!는 기한 없이 밀려났지만요). 많은 분들이 벌써 직장에 돌아와서 격무를 하실 것을 생각하면 그분들의 심정은 또 어떨지 가슴이 많이 아픕니다. 그래서 공개일이 결정되었다는 사실을 알고 복잡한 마음이 들었고 사실 이 글을 쓰기 전에는 아직 고지 PV는 보지 못했습니다.

마치며

이 글을 쓰는 시점에서 그 좋아하는 신카이 감독의 “날씨의 아이”도 이 핑계 저핑계 대면서 관람을 미루고 있는 마당에 뻔뻔한 말이지만 이 작품이야 말로 정말 도일(渡日)해서라도 봐야 하나 고민하게 됩니다.

아까 ‘두 개의 커다란 사건’을 언급했습니다만, 비단 저만 그러겠냐만서도 이 사건 역시 제 인생을 바꾼 커다란 사건이었습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그럴테죠. #쿄애니사건 해시태그로 뉴스를 올릴때 ‘불타는 제1 스튜디오’ 사진이나 영상이 나오면 미리 경고를 하는 이유입니다.

아오바 용의자가 사실상 첫 취조에 응한 모양입니다. 완전히 계획범죄에 대량 살인을 획책했음이 드러났습니다. 이 사람을 쥐어짜 육포를 만들어도 맘으로는 모자람이 없지만 어찌되었든 4개월 전으로 돌아갈 수는 없으리라는걸 압니다. 세월호 당시 인근에 거주했던 입장에서 그 상처를 공유하는 사람들의 마음도 알고 있습니다. 그나마 상책이 있다면 결국 우리가 하나가 되어 서로를 보듬는 것이 상책이라는 생각이 드는 것입니다. 상처입은 모든 부상자, 유가족, 그리고 지역주민과 팬들에게 위로를 드리며 졸문을 마칩니다.

날씨의 아이를 둘러싼 기묘한 악연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최신작인 “날씨의 아이”가 현재 상영 중입니다. 어그로를 잔뜩 끌었던 수입사 입장문 대로라면 다음 주 상영관수부터 폭삭 주저앉아 전작인 “너의 이름은.”에 한참 미치지 못할 것이 확실한 상황입니다만 제 생각에, 너의 이름은.은 일본 현지 상황을 미뤄봐서도 이례적인 히트였던데다가 이번에는 너무 큰 악재가 있었습니다.

아무튼 그것과 별개로 이 작품과는 악연이 있었습니다. 반복적으로 말이죠. 너의 이름은. 때 이런저런 행운을 겪었던 것과는 정 반대라고 할까요. 예를 들어 너의 이름은 때는 영화제 예매에 실패하니 감사하게도 다른 분이 표를 양도해주셨고, 아주 기가 막힌 타이밍으로 무대인사도 참여할 수 있었습니다.

이번에도 운 자체는 크게 나쁘지는 않았습니다. 다만 상영전 시사회에 당첨이 되서 갈 수 있었지만 열이 끓어서 못갔고, 무대인사 상영도 표가 있다는걸 뒤늦게 알고 예매했지만 예매 직후 아킬레스건염에 걸려서 제대로 걷지도 못하는 지경이라 상경은 포기하게 이르렀습니다.

글쎄요, 모르겠습니다. 특히 무대인사 상영은, 예전이라면 다리가 부러져도 갔을 것 같습니다만 결국은 포기하게 되었습니다. 저 스스로는 어쩌면 예전만큼 신카이 감독에 대한 열정이 식은것 아닐까 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한편으로 이번 작품과 같이 제목에 “아이”가 들어가는 작품이 “별을 쫓는 아이”가 있습니다만. 그때도 국내 첫 상영이었던 SICAF 상영을 놓쳤었죠. 일종의 징크스려나요. 그때 나눈 멘션이 신카이 감독과 나눈 첫 멘션입니다.

AirPods Pro, 우려 사항은?

에어팟 프로가 발표되어, 미국에는 이달 30일 출시될 모양입니다. 할리데이 시즌의 다크 호스가 될려고 작당 했나 봅니다. 물량만 받춰준다면 현실미 없는 얘기는 아닐 겁나다.

우리나라에도 가격이 발표되고 페이지와 판매 페이지가 열렸는데. 가격은 그러려니 합니다. 문제는 다른데 있습니다.

1~2년 쓸 수밖에 없는 물건에 이 가격은 적당한가?

사실 제품은 극찬을 받는듯하고 괜찮은듯 합니다. 근데 문제는 얘도 결국 오리지널 에어팟과 마찬가지로 1-2년 지나면 배터리가 열화되서 교체해야 할겁니다. 그럼 자연스럽게 1-2년 쓰는 물건에 이 가격이 합당한가 라는 질문을 하게 됩니다. 배터리 들어간 블루투스 제품의 숙명이지만, 교체 비용이 말이죠 ㅠㅠ

애캐플 사세요, 고갱님

그렇다면 우리는 보장을 1년이라도 늘리기 위해서 결국은 애플 케어 플러스를 사야만 하는 걸까요? 정말 난감합니다. 사보고 싶은데 생명이 눈에 훤하니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