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이 법무부와 전쟁을 벌이고 있습니다(가디언이 잘 정리했습니다). 작년 있었던 샌 버나디노 총격 테러 사건의 용의자가 가지고 있던 아이폰 5c가 모든 문제의 시작입니다. 그는 클라우드에 백업을 중단했습니다. iOS는 8.0 이후 기본적으로 암호로 장비를 암호화했고, 5s 이후로는 하드웨어 차원에서 보안이 강화됐습니다. 그리고 애플은 자신들은 풀 도리가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또, 이 사건이 표면화 되기 전 지난 몇 달간 FBI와 법무부가 애플을 어르고 달랜 것이 밝혀졌습니다. 사실 연방 정부의 이러한 액션은 수많은 지역에서 수백개의 증거로 수집된 아이폰이 잠긴 상태로 잠들어 있어서 지방 검찰들이 무척 짜증이 나있다는 점에서 이해가 되는 것도 사실입니다. CEO 팀 쿡은 이례적인 고객에 대한 편지를 써서 애플은 이 전화를 풀 도리가 없고 미국 사법 당국이 자신들에게 아이폰의 잠금을 풀 수 있는 ‘뒷구멍(백도어)’를 만들라고 강요하는 것이며 이런 뒷구멍을 만들면 해커가 유용(exploit)할 가능성도 있을 뿐더러 미국 뿐 아니라 다른 나라에 나쁜 선례를 남긴다고 주장했습니다. 팀 쿡은 이 요청을 ‘소름 끼친다(chilling)’고 까지 말했으며, FBI가 우리에게 악성 종양과 같은 소프트웨어를 만드는 것과 같다고 까지 주장했습니다.
한편 우리나라에서는 이 글을 쓰는 순간에도 테러 방지법에 대한 무제한 논의(이른바 필리버스터)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글쎄요, 법안을 자세히 읽어보지는 않았지만 조지 W. 부시 정권에서 9/11 테러 이후로 도입했던 애국자법과 마찬가지로 정보기관에 막대한 권한을 주는 법안이라고 추측됩니다. 물론 강력한 권한이 반드시 악용되리라는 보장은 없습니다. 하지만 에드워드 스노든(Edward Snowden)이 폭로했던 것처럼 마냥 안심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나라 헌법은 “모든 국민은 통신의 비밀을 침해받지 아니한다(헌법 제 18조)”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또 통신비밀보호법으로 하여금 그 절차와 범위를 제한하고 있습니다(‘범죄수사 또는 국가안전보장을 위해 보충적 수단으로 이용되어야 하며 국민의 통신비밀 침해가 최소한에 그치도록 노력하여야 한다.’ 3조 2항) 저는 헌법상의 권리에 대한 침해는 어디까지나 필요 최소한으로 제한 되어야 한다고 믿습니다. 사실 지금도 빈번하게 통신 기록에 대한 열람은 이뤄지고 있습니다. 연합뉴스의 기사에 따르면 카카오톡의 운영사인 카카오는 2015년 하반기 투명성 보고서에서 수사기관에 제공을 재개하겠다고 밝힌 2015년 10월 이후 당해년도 연말까지 3개월간 9건의 통신제한조치 요청 중 8건을 처리했다고 밝혔습니다.
물론 테러를 막는 것은 중요합니다. 하지만 저는 그것이 ‘초 헌법적인’ 법규로 이뤄져야 할 필요성을 느끼지는 못합니다. 다시 말해 지금 현재의 법 체계로도 충분히 수사 당국은 필요한 정보를 법원의 심사를 거쳐 얻을 수 있습니다. 인신 구속만 하더라도 현행범이라면 긴급체포를 할 수 있고, 사안의 경중 등에 따라 다르겠지만 법원의 영장을 기다리지 못할 정도로 급한 일이라면, 가령 테러범이 폭탄을 들고 어슬렁 거린다고 가정해 봅시다. 한가하게 이메일로 통신 내역을 전달받는게 아니라 있는대로 뒤져서 신병을 확보하는게 우선이라고 생각하지 않으십니까?
지금 애플은 미국 법원의 명령과 법무부의 압력과 싸우고 있습니다. 애플을 자유의 투사처럼 볼 생각은 없지만 실리콘 밸리에서 광범위한 지지를 얻고 있고, 스노덴의 말마따라 이번 10년간 가장 중요한 시험대에 오른 것이 사실입니다. 만약 애플이 여기서 투항하게 된다면 멀리 갈 것도 없이 우리의 전화기도 마냥 안전하지는 못할 것입니다.
덧붙임. 헌법 재판소가 원고가 사망했다는 이유로 광범위한 인터넷 패킷 감청의 위헌 여부에 관한 헌법 소원에 대해서 사실상 판단을 포기한 것을 매우 유감으로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