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을 자르는 용기에 대한 생각

애플이 아이폰 7을 발표하면서 헤드폰 잭을 없애면서 아주 오래된, 플러그를 꽂았다 뽑는 여성의 사진을 보여주었습니다. 이만큼 오래된 기술에 속박되고 있다는 얘기를 하려는 것이었겠지요. 그러면서 이것에서 탈피하려는 ‘용기’가 필요하다고 주장했습니다. 그걸 들은 모두가 그 ‘용기’에 대해서 비아냥댔고, 같이 발표된 에어팟(AirPod)과 아이폰 7의 구성품인 라이트닝 커넥터에 대해서 조소가 이어졌습니다.

AirPod
AirPod – Apple 제공

사실 여기에 대해서 저는 간단한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선을 버릴 시기가 왔다는 것입니다. 사실 저는 ER-4를 포함해서, 슈어 제품이나 바워스 앤드 윌킨스 제품도 있고 이젠 사실상 철폐된 브랜드인 로지텍 UE 제품도 여러개 됩니다. 합치면 기백만원은 가볍게 넘길겁니다. 하지만 아이폰 7이 이어폰 잭을 없앤다는 루머가 거의 확실해지자 마자 마자 저는 무선 헤드폰을 고민했고, 결국 오늘 Bose QuietComfort 35(QC 35)를 주문했습니다. 아마 내일 모레 즈음 도착할 것 같습니다. 사실 무선, 특히 블루투스로 가는 것에는 여러가지 리스크가 있습니다. 일단 음질입니다. 소니가 소위 말하는 ‘고해상도 오디오’를 지원하는 블루투스 헤드폰을 만들었지만 소니 전용 기술이라고 봐도 무방하며, 애플은 애시당초 ‘고해상도 오디오’ 자체를 지원하지 않습니다. 에어팟도 결국 애플 제품에 최적화된 블루투스 헤드폰 중 하나가 될 것입니다. 그뿐일거라고 봅니다. 유선 이어폰/헤드폰을 연결해서 듣듯이 ‘고해상도 오디오’ 파일을 재생해서 그 효과를 볼 수 있을  것인가는 솔직히 의문이 듭니다.

Bose Quiet Comfort 35
Bose Quiet Comfort 35, 무선 헤드셋이라면 작업하는데 좀 더 자유로울 것 같다 – Bose 제공.

며칠전에 2008년인가 2009년에 산 블루투스 헤드셋을 꺼내서 페어링해서 써봤습니다. 작동 잘하고 의외로 들어줄 만하더군요. 배터리가 좀 짧긴 하지만 말입니다, 정말 편했습니다. 1.5m의 속박에서 벗어나는 것은 정말 커다란 차이입니다. 가령 음악을 들으면서 드립커피를 만든다고 생각해보지요. 싱크대에서 드리퍼와 서버를 씻고 원두와 저울을 꺼내서 무게를 잰뒤 도로 집어 넣고 뒷편에 있는 정수기에서 계량컵에 물을 담은 뒤, 필요 이상으로 받은 물은 다시 싱크대에 버립니다. 그리고 전기포트에 물을 넣고 끓인뒤에 추출을 합니다. 이 간단한 작업을 하는데도 유선 헤드폰으로는 전화기를 들고 이리저리 왔다갔다 해야합니다. 오늘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헤드폰으로 음악을 듣다가 택배가 와서 전화기를 들고 현관으로 달려가다가 헤드폰 선이 방 문고리에 걸려서 코드가 뽑힌 것입니다. 개인적인 경험으로는 어딘가 전화기를 올려놓으며 음악을 들으며 작업을 하거나 주머니에 있던 전화기가 코드에 끌려서 떨어질 뻔한 경험도 여러차례 했습니다. 애플은 전원을 MagSafe로 만들었는데 노트북이면 모를까 휴대폰 정도라면 이어폰으로도 충분히 끌려서 떨어질 우려가 있습니다. 믿으셔도 좋습니다, 실제 경험입니다. 택시를 타고 병원을 가거나 할때 이어폰으로 음악을 들으면 물론 전화기가 주머니에 있으니 놓고 내릴 염려가 없다는 안심감은 들지만 선은 솔직히 움직임이 제한 된 차안에서는 방해물입니다.

사실 이어폰 선이 없어지는 것은 제가 이더넷 선을 끊고 많은 기기를 와이파이로 옮긴 2001년(경)을 떠올리게 합니다. 그 당시에는 802.11b 밖에 없어 더럽게 느렸고(다행히 그때는 초고속 인터넷 자체도 느렸습니다), 2000년대 중반이 되면서 11g로 업그레이드 했지만 여전히 확실히 이더넷이 유리했고 무선랜으로 완전히 전환하는것은 어리석게 보였을 겁니다.  11n이 되면서야 굳이 대용량이나 적은 핑 딜레이가 필요할 때를 제외하면 무선으로 항상 작업하는게 이상하지 않게 됐고, 올해 11ac로 올린 다음에는 대용량이 필요할때도 랜 케이블이 크게 아쉬울게 없게 됐습니다.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지금 애플이 이어폰 구멍을 없애는 ‘용기’를 냈습니다만 몇 년이 지나면 무선랜과 같이 될지 모릅니다. 사실 제가 처음 학교에서 네트워크(LAN)에 연결된 컴퓨터를 썼을때는(90년대 중반) TCP/IP도 아니고 NetWare에 토큰링이라고 T자로 된 어댑터를 달고 모든 컴퓨터를 줄줄이 연결하던 시절이었지만(허브나 스위치, 라우터가 없었습니다) 90년대 후반이 되면서 사실상 이더넷으로 완전히 정리됐죠. 20여년 됐네요. 이더넷이 무선랜 때문에 완전히 없어지진 않듯이 헤드폰도 그럴겁니다.

고백하건데 지금 이 시점에서 무선 블루투스 헤드폰을 지르는 것이야 말로 용기가 필요합니다. 3.5mm 플러그와는 달리 무선 전송 기술은 소니가 ‘고해상도 오디오’를 지원하면서 독자적인 코덱을 내놓았듯이 앞으로 어떤 식으로 전개 될지 알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비록 QC 35가 자체적으로 8대의 장치를 기억하고 2대를 동시에 연결하며 스마트폰 앱으로 쉽게 전환이 가능하다고 합니다만 그냥 선을 뽑아서 듣고 싶은 기기에 꽂는 것만큼 단순할리는 없습니다. 배터리도 생각해야 하는데 사실 QC 35는 무선으로 20시간을 들을 수 있는 스펙입니다만 QC 15는 35시간을 쓸 수 있는데 어찌됐든 짧습니다(사실 여기엔 재미있는 함정이 있는데,  QC35에는 유선 3.5mm 케이블이 따라오고 유선으로 들으면 배터리 시간이 40시간으로 두배로 늘어납니다. 그리고 QC15와는 달리 배터리가 다 되어도 노이스 캔슬링 없이라면 유선으로 기기에서 공급되는 전원을 통해 들을 수 있습니다) 게다가 어쨌든 충전이 필요합니다. 두시간여를 충전해야하기 때문에 장기 여행에서는 모바일 배터리로 충전해야하는 기기가 하나 더 늘어날 가능성도 큽니다.

하지만 앞서도 말씀 드렸듯이 08년인가에 구입한 블루투스 헤드셋도 어찌저찌 잘 작동하는걸 보니 일단 몇년은 잘 작동하겠지 싶습니다. 실제 속도를 수백Mbps 낼 수 있는 무선랜 라우터도 여전히 11Mbps의 802.11b를 지원하고 있고, 정말 막장인 경우 유선 커넥터도 있습니다. 반 백만원짜리 헤드폰이 과연 얼마나 버틸지 모르겠습니다.

여하튼 이제는 ‘용기’를 낼 시간입니다. 덕분에 저는 전화기를 들고 이리저리 왔다갔다 하면서 주방일을 보지 않아도 되고 어딘가 케이블이 걸릴 걱정을 안해도 되겠지요. 고정전화(집전화)가 휴대폰이 됐고, 유선 랜이 무선 랜이 됐습니다. 제가 처음 무선랜 장비를 살때는 모든 것이 기본적으로 6자리 단위였지만 이제는 클라이언트라면 무선랜이 기본적으로 내장 안된 휴대용 컴퓨터나 디바이스가 드물고, 공유기도 사양에 까다롭게 굴지 않는다면 10만원대 이하로도 충분히 살 수 있습니다.

어찌됐든 이 긴글이 주장하고 싶은 사실, 그것은  ‘용기’가 최종적으로 향할 곳은 자유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몇년이 지나면 우리는 이 자유를 당연하게 여길지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