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라파고스에 어서오세요

2000년대 초반의 일이다. 일본의 휴대폰을 보면서 정말 눈이 휘둥그래해진 적이 있다. 세상에 우리가 이런 휴대폰을 사용하고 있을때 일본인들은 이렇게 첨단의 휴대폰을 사용하고 있다니. 라고 말이다. 나는 그래서 어떻게 하면 그들을 앞서는 휴대폰을 만들 수 있을까? 라는 궁리를 머리속으로 짜내 본 적도 있다. 개중에는 지금의 스마트폰과 엇비슷한 것도 있었다.

일본인들은 지금도 그럴런지 모르겠지만 PC는 없어도 휴대폰 없이는 살지 못한다고 할 정도로 휴대폰 문화가 발달 해 있었다. 휴대폰으로 못하는 일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들이 자신들이 쌓아 올린 휴대폰을 부르는 명칭은  ‘가라케’다(물론 신문 등에서는 종래형 휴대전화 라는 표현을 사용하지만). 갈라파고스와 휴대폰의 케이타이를 합친 것이다. 방수, 방진에 텔레비전을 보고 방송을 보면서 투표를 할 수 있고, FeliCa(우리나라로 치면 T머니 칩 같은 IC칩)을 지원하면 전자 지갑으로 결제를 하고 정기권이 탑재되어서 통근할 때 전차표를 따로 지갑에 넣고 다닐 필요가 없이 그냥 휴대폰을 찍고 다닌다. 게다가를 지원하는 곳이라면 출입증으로 쓸 수도 있다. 카메라 성능은 세계 최고 수준이라고 자랑을 할 수준인데…

일본인들은 일본 휴대폰은 세계 최고라고 자랑스러워 했고 대다수 사람들은 동의했다만, 스마트폰 세계에서는 이 모든게 소용이 없었던 것이다. 일본 사람들은 애플의 등장을 제2의 흑선(쿠로후네;黑船)이라고 했을 정도고, 삼성의 성장에 대해서는 대놓고 경계를 하고 있지만, 어찌 해볼 도리가 없어 하고 있다. 일본 업체들은 지금도 세계 시장에서 해메고 있고, 겨우 일본시장에서야 안드로이드라는 구세주를 만나서 ‘갈라파고스 기능’을 집어넣어서 근근히 팔아치우고 있다. 애플은 그나마 전세계 공통 사양으로 나왔다지만 삼성 같은 경우에는 현지화로 승부하고 있어서 더욱 경계하고 있다. 내수에서 외세에 야금야금 파이고 있는 동안, 파나소닉은 방수방적기능과 빌딩퀄리티를 셀링포인트로 내세워서 유럽시장에 나갔다가 그냥 처참하게 깨져서 철수해야 했다. 이제 남은 것은 소니 밖에 없다지만 소니의 영향력은 초라하기만 하다.

우리나라 스마트폰은 정말로 훌륭하다. 삼성 스마트폰은 세계에서 가장 잘 팔린다. 뭐 LG 제품도 나쁘지 않고, 기타 제품도 훌륭한 편이라고 생각한다. 문제는 그러나 해외 제품이 애플을 제외하고 단 한대도 판매되지 않는 시장이라는데 있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휴대폰이 세계 최고이기 때문에 굳이 해외 제품이 들어와서 고민할 필요가 없을까, 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만 결과적으로 다양한 휴대폰이 나오지 않기 때문에 시장의 활력성은 죽어갈 것이고 과점업체(=삼성,LG, 특히 삼성)의 횡포는 더 심해만 갈 것이다. 휴대폰의 가격이 내려가지 않는다 라던가, 국내의 기능이 차별이 나온다던가, 해외에 나오는 모델이 한국에 안나온다던지…

무엇보다도 언제까지고 한국산 휴대폰이 최고의 자리를 유지할 것인가? 에 대한 의문이다. 캐나다의 RIM이나 핀란드의 노키아는 한 때 세계를 쥐락펴락하는 메이커였다. 만약 우리나라 메이커가 리드를 놓친 상황에서 우리나라에 해외 메이커가 없는, 한국 메이커만이 남은 시장이 된다면 이제 우리는 어떻게 될 것인가? 라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그야말로 갈라파고스 그 자체가 되는것 아닌가? 아니 이미 훌륭한 갈라파고스 그 자체 아닌가?

음, 뭐 IT강국이니 모바일 강국이니 허울은 좋지만 결국 이미 우리나라 또한 갈라파고스가 되어버린것 아닌가? 단지 우리나라가 리드를 하고 있으니 그 문제에 대해서 생각해보지 않을 뿐…

자, 갈라파고스에 어서오세요.

덧말. 이 이야기를 예전에 트위터에 해본적이 있다. 그러자 ‘푸른곰 님은 어떤 기종을 생각하신적이 있나요?’ 라던가, ‘아이폰이나 갤럭시 이외에 좋은 기종이 있던가요?’ 같은 소리를 들은적이 있는데, 후 글쎄, 설령 지금 쓰레기 같은 기종을 내놓더라도 앞으로 무슨 기종을 내놓을지 모르는데 아예 판매 사업 자체를 접어 버리면 앞으로 좋은 기종을 내놓아도 선택지 자체가 없어져 버린다. 가령 모토롤라 모빌리티가 나갔는데 구글과 모토롤라는 ‘X Phone’이라는 야심찬 프로젝트를 시작하고 있다지만 그림의 떡이다. 그야말로 갈라파고스가 되어버린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