쿡은 잘 해냈다 — 그리고 이번엔 터너스

공원 산책로를 걷는 팀 쿡과 존 터너스
(이미지 = 애플)

15년 전, 나는 이 자리에서 비슷한 글을 한 번 썼다.

2011년 9월 3일에 적은 그 글에서 나는 Financial Times의 분석을 옮기며 결론을 이렇게 맺었다.

결론적으로… 잡스가 없어도 애플은 당분간 잘 굴러갈 것이다. 그가 iCEO에서 CEO로써 일한 10년간 잡스는 많은 것을 발명했다. iMac, iPod, iPhone, iPad…. 그리고 무엇보다도 앞으로를 이어갈 Apple의 새로운 DNA를 발명했다. 라고 나는 결론짓고 싶다.

15년이 흘렀고, 결론은 옳았다. 그리고 2026년 4월 20일, 이번엔 쿡이 떠난다는 발표가 나왔다. 9월 1일부로 존 터너스(John Ternus)가 8대 CEO가 되고, 쿡은 이사회 executive chairman으로 자리를 옮긴다.

15년 전 글을 다시 펼쳐 한 줄씩 거울에 비춰보면, 놀랍도록 같은 형식이 반복되고 있다는 것이 보인다.

잡스의 가장 위대한 창조물

그때 글에서 나는 John Gruber의 한 문장을 인용했었다.

Jobs’s greatest creation isn’t any Apple product. It is Apple itself.

(잡스의 가장 위대한 창조물은 어떤 애플 제품도 아니다. 그것은 애플 자체이다.)

쿡 시대가 끝나는 지금 Gruber는 비슷한 평가를 쿡에게 돌리고 있다 — 쿡이 자기 모습대로 애플을 재형성했고, 자기 방식으로 떠나며, 잡스가 쿡을 골랐듯 쿡이 터너스를 골랐다는 것. 그가 다른 곳에서 쓴 표현을 빌리면 이번 전환은 “all very Cook-ian” — 드라마 없이 매끄럽게 처리된다는 것 자체가 쿡 시대의 마지막 작품이라는 얘기다.

2011년 잡스 → 쿡은 떠밀린 비극이었다. 그 글에서 인용한 Gruber의 한 줄에는 “누구도 원치 않았으되 피할 수 없었던 전환”이라는 비통함이 깔려 있었다. 2026년은 정확히 반대다. 본인이 원하는 시점에, 본인이 고른 후계에게, 본인이 직접 chairman으로 옮겨앉으며. 비극에서 의도된 무드라마(無drama)로의 전환. 거울상의 첫 번째 결이다.

Levinson, 다시 같은 자리에서

그때 글에서 나는 이사회 일원 Art Levinson의 한 마디를 옮겼다.

이사회 전체는 팀이 우리의 차기 CEO로써 적임자임에 완벽한 확신을 가지고 있다… 팀이 13년간 애플에서 재임하는 동안 매우 뛰어난 실적을 보여줬음과 동시에, 그는 그가 해온 모든 일에서 놀라운 재능과 현명한 판단을 보여주었다.

이번에도 Levinson이 다시 같은 형식의 보증을 한다 — 터너스가 쿡을 잇기에 최선의 인물이고, 이사회는 그의 깊은 기술적 지식과 위대한 제품을 만드는 집중력을 신뢰한다고. 다만 그는 이번 전환을 마지막으로 lead independent director로 한 발짝 물러선다.

같은 사람이 두 번의 CEO 전환을 모두 보증하고 떠난다. 이게 Levinson 본인의 자기 회수이기도 하지만, 그때 내가 옮긴 Gartner 분석가의 한 마디 — “애플은 어떤 개인 훨씬 그 이상의 존재이다” — 의 가장 단단한 증거이기도 하다.

인격적 거울상

그때 글에서 옮긴 쿡 묘사를 다시 읽어보자.

그는 감정적인 사람은 아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가 만족스럽지 않을때 그걸 알 수 있다.

한편, 그의 메마른 유머감각과 함께 수수한 성격을 가지고 있다.

Mark Gurman이 2024년 Bloomberg에서 옮긴 터너스 묘사는 다음과 같다 — 매우 부드러운 매너, 이메일에 논쟁적인 내용을 절대 쓰지 않음, 신중한 의사결정자, 쿡과 닮은 매니저적 특성을 많이 가진 인물. 잡스의 호통도, 쿡의 딱딱한 노려봄도 아닌, 갈등을 만들지 않는 부드러움이라고 묘사된다.

여기서 흥미로운 중첩이 일어난다. 터너스는 직무 배경 측면에선 25년차 하드웨어 엔지니어로 잡스 노선에 가깝지만, 인격 측면에선 쿡의 후계자다. 두 사람의 거울상이 한 사람 안에 겹쳐져 있는 셈이다. 그리고 그의 나이는 만 50세를 막 넘겼다. 쿡이 CEO가 됐을 때와 정확히 같은 나이다.

“이미 다음 물결은 설계되었다”

그때 글에서 가장 무거운 한 줄은 Forrester 분석가 Charles Golvin의 인용이었다.

잡스의 은퇴는 수 년간 전략적인 관점에서 제품에 커다란 영향을 주지 않을 것이다… 이미 애플 제품의 다음 물결은 벌써 설계되었다.

15년의 결과로 그 한 줄은 옳았다. iPad, iPhone 4S, 그리고 잡스가 직접 그리지 않은 Apple Watch와 AirPods까지. 활주로는 충분히 길었다.

2026년에도 같은 말을 할 수 있을까.

여기서 글의 톤을 바꿀 차례다. 정직하게 짚어야 할 자리가 있다.

AI라는 두 번째 활주로

잡스는 쿡에게 다음 10년의 활주로를 깔아주고 떠났다. 쿡이 터너스에게 넘기는 활주로는 그만큼 길지 않다.

Gruber조차 지난 2년이 애플에게 AI 측면에서 좋은 시간이 아니었다고 평했다. 애플은 2025년 AI 기반 Siri 출시 목표를 놓쳤으며, 결국 Google Gemini 모델 기반의 새 Siri를 올해 내놓을 예정이다. 자기 모델로 못 가서 외주로 가는 모양새다. 애플답지 않다.

그리고 한 가지 더 — Jony Ive는 2019년에 애플을 떠났고, 2025년 OpenAI에 합류했다. 즉 애플의 디자인 비저너리는 지금 경쟁사의 핵심 인물이 되어, 새 시대의 하드웨어를 다른 깃발 아래에서 만들고 있다.

2011년의 비저너리 부재는 “회사 안에 없음”이었다. 2026년의 비저너리 부재는 “정확히 반대편에 있음”이다. 이게 거울상이 깨지는 결정적 자리다.

그럼에도 낙관하는 이유

그러나 형식의 거울상은 아직 살아있다.

2011년 우려는 “쿡에게 미적 비전이 있을까”였다. 그 글에서 나는 이렇게 썼다 — “이미 그는 애플의 디자이너들을 밀어주어, 드물지만 엔지니어들보다 디자이너들이 힘을 가지게 되도록 한 그의 추세로 이미 어느 정도 해소된 셈이라고 풀이했다.” 이 분업 구조 덕분에 우려는 결과적으로 기우가 됐다.

2026년 우려는 “터너스에게 외교·정책 능력이 있을까”다. 그러나 쿡은 chairman으로 남아 전 세계 정책 입안자들과의 관여를 맡고, 터너스의 후임으로는 Johny Srouji가 확장된 역할로 들어와 하드웨어 엔지니어링과 하드웨어 기술을 총괄한다. 같은 형식의 분업이다. 우려는 구조적으로 이미 해소되어 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 Apple Silicon으로의 전환은 터너스의 작품이었다. AI가 결국 칩 위에서 돌아간다는 점을 생각하면, AI 시대의 활주로를 새로 깔아야 하는 회사가 칩 엔지니어 출신을 CEO로 앉힌 것은 우연이 아닐 것이다. 잡스가 쿡을 고를 때 모바일 시대에 필요한 글로벌 공급망을 보았듯, 쿡은 AI 시대에 필요한 수직 통합 하드웨어 역량을 본 것이다.

진자가 한 번 더 흔들렸다

그때 글의 마지막 줄은 RBS 분석가 Mike Abramsky의 인용이었다.

우상이 이끄는 방식에서 팀이 이끄는 방식으로, 돌발적으로 일어난 혁신에서 계속적인 혁신으로 계속 될 것이다.

이번엔 진자가 한 번 더 흔들렸다. 팀이 이끄는 방식에서 다시 빌더가 이끄는 방식으로. 운영자에서 다시 엔지니어로. 잡스 → 쿡 → 터너스가 직선이 아니라 진자라는 점이 이번 전환에서 가장 흥미로운 결이다.

15년 전 결론을 한 번 더, 그러나 이번엔 약간 다른 색깔로 쓴다.

쿡이 없어도 애플은 당분간 잘 굴러갈 것이다. 단, 이번엔 활주로를 본인이 직접 깔아야 한다.

푸른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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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곰은 2000년 MS의 모바일 운영체제인 Pocket PC 커뮤니티인 투포팁과 2001년 투데이스PPC의 운영진으로 출발해서 지금까지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2005년 이후로 푸른곰의 모노로그를 운영하고 있으며 지금은 주로 애플과 맥, iOS와 업계 위주로 글을 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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