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와 싸워라, 리디북스! 

리디북스가 연말연초에 무척 공격적인 마케팅을 했습니다. 말도 안되는 할인금액에 책을 수십년간 빌려주고 또, 그 금액만큼 다른 책을 살 수 있게 한다니. 도서정가제를 고안한 사람이나 옹호하는 사람들은 무슨 기분이었을까요? 책에 달달이 수십만원을 들이는 입장에서 ‘책을 헐값에 덤핑’하는 것은 사실 마냥 달갑지 않게 여길 분이 틀림없이 있다고 어렵잖게 짐작할 수 있습니다. 프랜차이즈 창업의 덫을 다룬 추적60분(KBS) 프로그램을 봤을때 모 피자업체가 통신사와 제휴를 맺고 진행한 반값 행사를 두고 가맹점주가 누가 반값주고 먹다가 제값을 주고 사 먹겠냐고 하소연을 했었지요. 의식주의 범위에 들어가는 외식 조차 이런데, 소위 ‘헬조선’이라고 불리우는 각박한 현실에서 지적 ‘오락’인 독서 또한 어떤 의미에서 이런 할인 행사의 독에 자멸할지 모른다고 생각은 합니다. 저는 이런 책을 사면 책값을 포인트나 전자책 리더기로 돌려주는 이런 등가교환 무시한 연금술 같은 마케팅을 접하면서 리디가 현금사정이 어렵나 싶을 정도였습니다(사실 이전부터 리디북스는 포인트 추가 부여로 월초에 결제를 유도해서 ‘유통’업체의 혈액과도 같은 현금을 대놓고 확보하는 것에 거리낌이 없었습니다).

리디북스의 사정 얘기는 둘째치고 제가 리디북스에 대해 평가하는 점은 정가제 하에서 독서의 허들을 낮추는데 노력했다는 점입니다. 일단 리디북스의 ‘본진’인 스마트폰/태블릿 앱들을 살펴보면 더 이상 한국에서 전자책을 사서 읽으며 수준 이하의 앱을 상대하며 질리지 않아도 된다는 점을 확신하고 있습니다. 일단 안드로이드와 iOS 둘다 쓰지만 iOS 에 한정해서 말하자면 어떤 부분에서는 킨들보다도 훌륭한 점이 있습니다(대표적으로 킨들은 시리즈 도서를 묶음으로 표시하는게 불가능합니다, 라이브러리가 말 그대로 아마존 정글이 되어버리죠). 최고의 경험인지는 제쳐두고 비합리적인 부분은 거의 없다고 생각합니다. 적어도 읽던 도중에 차라리 종이책을 사보지. 라고 생각할 정도는 아닌것 같습니다(종이책을 같이 사는 경우가 많지만서도).

소지하고 있는 스마트폰(과 태블릿)으로 쾌적하게 볼 수 있다는 점은 매우 중요합니다. 왜냐면 스마트 시대에서 기본적으로 사람들은 어떤 매체를 통할지 뿐만 아니라 어떤 화면을 통해 볼지도 선택하며 어떤 화면을 통하든 선택지는 정말 놀랍도록 많습니다. 텔레비전 방송을 실시간으로 보지 않고 통근 통학하면서, 혹은 외출처에서 짬을 죽이면서 휴대폰으로 보는 것은 매우 자연적인 일이 됐습니다. 사실 텔레비전 방송은 이러한 시대에 적합하도록 ‘편집’된 동영상을 인터넷에 추가로 업로드하는 것이 이젠 어렵잖게 볼 수 있는 추세가 됐습니다. 왜냐고요? 길고 늘어지면 사용자가 방송 대신에 고양이가 1분간 뒹구는 동영상을 볼지 모르고 그건 침체되어가는 방송 광고를 벌충하기 위한 온라인 광고 전략에 좋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스낵컬쳐’ 트렌드는 카드 뉴스 같이 방송사와 신문사가 같은 분야 같은 포맷에 뛰어드는 진귀한 상황을 만들어 내고 있습니다.

전차안에서 든 스마트폰에 고양이 동영상이든 텔레비전 프로그램이든 웹툰이나 뉴스가 됐든. 저는 독서 또한 같은 위치에서 시작되어야 한다고 믿습니다. 물론 지나치게 가벼운 책들로 시장이 도배되는 것은 바라지 않지만 책 자체는 손쉽게 닿을 수 있어야 합니다. 신문이나 방송 뉴스가 그러했듯이 언제나 고고하게 마치 ‘우리가 출판계와 말글, 문화와 학문을 지킨다’ 식의 자세로 개정 도서정가제가 그러했듯이 배타적인 자세를 보이게 되면 도서계는 점점 게토화 될 것입니다. 사는 사람이 사고 읽는 사람이 읽겠죠. 올라간 책값을 감수하고 어떤 책을 넣을지 숙고해 고르고 책으로 무거워진 가방을 견딜 수 있는 사람만이 책을 보게 된다면 책은 고양이 동영상에게도 질 수 있습니다. 귀여운 고양이를 1분간만 봐도 지독한 현실에서 눈을 잠시 돌려 힐링을 얻을 수 있거든요. 공짜로.

문자 그대로 화면에서 흘러넘치는 고양이와 싸우기 위해 책을 공짜로 뿌릴 수는 없습니다. 전자책 판매도 장사고, 사람과 회사를 거치는게 책이니 만큼 수익 배분은 여느 컨텐츠가 그렇듯이 매우 민감한 사안이므로 섯불리 공짜로 뿌릴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소위 90% 장기 대여와 전액 캐시백이 한 회사의 법의 헛점을 슬쩍 빗겨가는 기행으로만 보기에는 그 의미가 긍정적이고 참신하다고 봅니다. 이 얘기를 했을때 주변 사람들 중 두 사람이 ‘결국은 어떻게든 책을 (캐시백으로 돌려주는 만큼) 더 사게 만드는거 아니냐’였습니다. 엄청 득을 보는 느낌으로 ‘한정 상법’을 써서 돈을 열게 해서 ‘독자’는 (다 읽을지 어떨지는 모르지만) 책을 쌓아두게 됩니다. 그걸 다 읽는 것도 좋고 그걸로 생긴 적립금으로 다른 책(심지어 만화책이나 라이트 노벨도 좋습니다)을 사서 읽어도 좋습니다. 어찌됐던 이미 돈을 주고 전자책을 사는 것을 유인하는데 성공했고, 사람은 신년 금연이나 방학 개시 직후 독서 노르마를 결심하듯이 하다못해 페이지 몇장이라도 넘길테지요. 그 지속 가능성을 따지기 이전에 우리는 돈을 주고 컨텐츠를 사서 잠시라도 열어보게 하는것 부터가 어렵다는 걸 잘 압니다. 그리고 사본 적이 있는 사람이 산다는 건 말할 나위가 없겠지요.

리디북스에 대해 얘기하면서 지인들과 ‘이거 꼭 전자서적의 스팀 같다’라고 얘기한적이 있습니다. 전 솔직히 산 책을 다 읽지도 않았고 50년 대여라는 책을 아마 50년 뒤에 기간이 만료될때까지 읽지도 않을지 모릅니다. PC 게임을 즐기시는 분들이 공통적으로 인정하시는 것이, ‘스팀이 게임 구매 절차를 간소화해서 결과적으로 불법복제 감소와 구매 증가에 기여했다’ 입니다. 스팀 사용자들 보면 당장 하지도 않을 게임을 라이브러리에 ‘수집’해놓고 뿌듯해 하시거나 자조하는 경우가 발로 채이듯이 많습니다. 할인 한다! 내지는 공짜로 풀린다더라! 는 말에 낚이는건 비단 스팀만의 경우도 아닙니다. 하지만 공통적으로 아무리 할인을 하더라도(심지어는 공짜로 뿌려도) 그걸, 가령 새 게임이나 앱을 원하는 마음이 없으면 소용이 없습니다. 사용자가 스팀 웹사이트에 접속하거나 앱스토어/플레이 스토어에 접속해서 둘러보고 구매나 다운로드 하는 것 자체를 하지 않으려 하면 답이 안나는 문제입니다. 이미 많은 앱들이 이 문제에 곤란을 직면하고 있죠. 현실 세계로 가면 고객들이 찾는 발길이 줄어 서점이 문을 닫습니다. 그게 도서정가제 개정의 주요 취지 중 하나였지요. 어찌됐든 리디북스는 자사의 온라인 서점을 둘러보면서 책을 사고 몇페이지라도 읽도록 유인하는데 성공했습니다. 고양이 동영상 하나 검색해 볼 시간이라도 뺏었어요, 만세! 이건 결코 우습게 볼 수준이 아닙니다. 뒹굴거리기만 하면 되는 고양이와는 다르게 사람은 자기에게 관심을 뺏기 위해 돈과 노력이 많이 들어가는 동물이라 문제가 골치아프지만요(아, 고양이들은 좋겠다).

해서, 그러잖아도 코가 꿰였다고 생각할 정도인 리디북스 라이브러리가 더 늘어났습니다. 글을 쓰기 며칠전에 스팀에 대규모 장애가 있어서 야단이 난 적이 있습니다. 금으로 바꿔준다는 약속을 포기하고도 이 종이가 통할 것이라는 믿음하에 시장경제가 굴러가듯이 이 시스템이 변함없이 잘 굴러갈 것이라고 믿음을 주고 그러한 노력을 다하는 것이 장기적으로 리디북스에게 과제가 될 것입니다. 제 희망사항이기도 하구요. 유튜브가 망하면 고양이 동영상들을 찾는 지친 영혼들이 얼마나 상처가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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