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g: 도쿄 매그니튜드 8.0

  • 도쿄 매그니튜드 8.0의 재방송을 보고

    투니버스에서 도쿄 매그니튜드 8.0을 보고 평을 한바가 있다. 투니버스가 재미있게도 이 방송이 끝나자마자 다시 한번 재방송을 했다. 해서 나는 다시 한번 눈여겨 볼 수가 있었는데, 문제가 됐었던 부분은 사실 원작을 크게 의식하지 않는다면 오히려 아주 무난하게 매끄럽게 만들어졌다. 번역을 만약 제2의 창작이라고 가정한다면, 오히려 잘 된 편이 아닐까?라고 생각해야 할 정도이다. 

    나는 잘못에 있어서 빠르게 시인하는 것을 미덕으로 생각한다. 물론 나는 합리적인 근거를 가지고 비평―그리고 그에 부속되는 포스트의 작성을 했고, 그 근거와 결론은 나름대로 여전히 옳게 작성되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 못지 않게 잘 제작 되어있다는 결론을 내리게 되었다. 

    나는 이전 포스트 에서 밝힌바와 같이 이 비평 자체에 알게 모르게 죄책감 비슷한 것을 가지고 있었고, 그것을 벗어내려야겠다고 생각한다. 앞으로 이 문제는 더 이상 거론하지  않으려고 한다. 

  • 전속 성우 시스템에 대해 생각하다

    도쿄 매그니튜드에 관해 신랄한 평을 한 뒤로 나는 알 수 없는 죄책감 비슷한것을 가지고 있었다. 솔직히 말해서 나는 어지간해서는 번역이나 로컬라이제이션, 특히 더빙에 화를 내는 경우는 드물고, 그것을 공개적으로 발언하는 것은 더더욱 드물기 때문이다. 이번엔 게다가 구체적으로 누구의 잘못이다! 라고 지명까지 한 마당이다. 해본적이 없는 일이라 가슴이 답답하다.

    재미있게도 투니버스는 이 프로그램을 다시 한번 재 방송을 했는데. 다시 보니 정말 흥미로운 점을 발견했다. 내가 최초에 성우에게 문제가 없다고 했었던 가장 커다란 이유는 성우들이 다른 많은 부분에서 연기를 잘 했기 때문이다. 일상적으로 오가는 회화들의 모습을 보면 의역이 눈에 띄고 원문을 뒤틀은 부분이 보이지만 오히려 그게 나쁘지 않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 이거 전언철회하고 사과해야하는거 아닐까?’ 라는 갈등이 들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심각하게 진지한 부분으로 가면 이상하리만치 견디기가 힘들었다. (최소한의 고집일수도 있다)

    나는 이 훌륭한 성우와, 물론 마찬가지로 훌륭한 연출자 (김이경 PD)가 연출작품에 전반적인 만족을 느끼고 있다. 전체적으로는 매우 훌륭한 편이었다(첫번째 글도 결국 왜 하필 잘나가다 다 냅두고 가장 드라마틱한 장면을 서툴게했는가? 라는 짜증이었으니까)  이력을 보면 연출자는 경력이 매우 길다. 특히, 이 분의 대표작 중 하나가 내가 가장 좋아하는 아따맘마이다. 그런데 한가지 재미있는 사실을 발견했다. 이력을 살펴보면 상당수가 소년 애니메이션이라는 것이다. (나는 이 사실을 글을 쓰는 지금에야 알았다)

    나는 트위터에 전속 성우 시스템이 인재와 작품을 연결하는 풀이자 양성소 역할을 하지만 오히려 최근에 문제가 있다고 썼다. 가령 이런 것이다. 전속 기업이 하는 영상물의 연기의 폭에만 성우가 갇혀 지내게 된다는 것이다. (물론 연출자도)

    연출자의 작품 내역을 보면 연출 초기에는 좀 다양한 작품을 했었던걸 알 수 있지만 근년에 들어와서는 거의 다 소년 애니메이션에 집중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물론 방송사는 근년들어 말할 것도 없으며, 거기에 속한 전속 성우들은 더 말할 것도 없다. 다시 말해, 도쿄매그니튜드 8.0의 내 위화감의 요체는 성우와 연출자가 다양한 스펙트럼을 경험해보지 못한 까닭에 기인하는 어색함이다.

    자, 여기까지는 그저 그런 ‘까내리기’라고 하자. 사실 이 말을 하고 싶은것도 아니다. 만약. 전속 성우 시스템하에서 신인들이 특정사에 소속되어 ‘극단’을 형성하고 그 ‘극단 풀’에서 인력이 자급자족된다면 당장은 좋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만약 이런 일이 생긴다면 어떨까? 누군가 맘을 잡고 멋진 작품을 한번 만들어봐야겠어. 라던가 새로운 채널을 만들거나 시장에 참여한다고 가정해보자. 상당한 장애에 봉착할 것이다. 계약이 끝난 프리랜서 성우로 풀을 짜던지 아니면 새로 신인을 키우지 않는다면 말이다. 그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젊은 프로 성우들의 풀 상당수가 특정 기업에 전속이며, CJ E&M의 신동식 씨의 뉴타입 컬럼 내의 지적대로, 아예 ‘특정 극회 성격을 ‘조준’하고 오디션을 보는 경우도 생기고 있다. 그런 상황에서 그 특정 기업은 특정 성향, 특정 성격의 작품만을 더빙하고 있다. 이 상황은 결코 ‘신인’에게 좋은 육성 환경이라고 할 수 없다. 기업에 맞는 성우가 만들어지지 성우 자신의 깊고 넓은 폭은 기르기 어려울 것이다. (적어도 전속기간 동안은)

    물론 시장이 작고 불안정해서 이 시스템이 붕괴된다면 어떻게 될까? 라는 생각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그 상황에서 안정적인 ‘요람’인 전속 성우 체제와 극회 시스템은 매우 안정적인 산실이고 지망자로써는 ‘노려야 할’ 대상이다. 그나마 신인을 뽑고 양성해서 사용해주는 시스템은 현재로써는 없으니까.

    하지만 나는 단언할 수 있다. 만약 우리나라에서 더빙 성우의 질이 더 정체된다면(혹은 더 넓어지지 못한다면), 그것은 전속 성우 체제 때문이다. 전속독과점 체제에서 후발주자는 성우를 쓸 수 없다. 성우를 키우는 것은 자본과 시간이 필요로 하는 것이다. 프리랜서 성우 풀로는 어렵고(캐스팅 구성면에서나, 비용면에서나), 젊은 신진 성우들은 전부 매여있고, 직접 키울 수는 없다. 얼마나 어려운일인가. 만약 내가 지금 시장에 참여한다면 더빙을 포기할 것이다. 내말이 틀렸는지는 양대 더빙 성우극회를 운영하는 애니메이션 채널 설립이후의 상황이 어떠했는지를 살펴보시기 바란다. 캐스팅과 더빙에 얼마나 고생을 했는지. 그나마 2번째 극회를 가진 대원방송 조차도 수년동안 죽어라 고생하고, 사정이 나아지자 그제서야 전속 성우를 뽑고, 전속성우들끼리 ‘뺑뺑이’를 하다가 몇기 뽑혀 풀이 생기자 나아졌음을 기억하라. 일개 회사 뿐만 아니라 전체 업계로 봐서도 이 얼마나 비효율적인가. 얼마나 더 많은 회사가 이 짓거리를 감수할 지 의문이다. 가장 후발 주자인 애니플러스는 아예 더빙은 안한다. (뭐 특수성도 있지만)

    나는 주장한다. 전속성우제도는 발전적으로 해체해야한다. 흔히들 성우나 성우를 둔 팬들은 “왜 성우를 연예인 보다 한 단계 아래로 생각하는지?” 에 대한 의문을 갖고 있었다(비하의 의미가 아니라, 왜 어째서 업계최고의 성우가 업계에서 찬밥인 배우보다 대우가 그저그러한가에 대한 현실이다). 그 이전에 현실을 살펴보라. 탤런트의 전속 제도와 극회 제도는 벌써 주류 문화에서는 2~30년전에 사실상 사문화된 제도라는 것을.

    이 글을 읽는 젊은 분들은 모르시겠으나 상당수 우리가 아는 중년 탤런트들은 방송사에 채택되어 극회에 소속되어 전속활동을 했었던 사람들이다. 이 선발 체제와 전속 체제는 90년대 들어 기획사에 의한 채용이 일상화되면서 사실상 일몰을 맞이한다. 여기에 많은 사람들이 우려를 표한다. 사실 지금 한국 드라마/영화를 이끄는 중견 배우들이 전속극회 시절에 기본기를 갈고 닦으며 성장한 반면, 최근 기획사 선발 구조하에서 기본기가 안되는 배우들이 양산되고 있는걸 보고 말이다. 하지만 방송사가 신인을 독점하는 것이 끝남으로써 훨씬 다양한 신인이 공급되고 다양한 작품이 만들어졌으며 ‘때로는’ 전속 시기 못잖은 좋은 신인과 좋은 작품을 배출하였다.

    왜, SBS에서 더빙한 짱구는 못말려의 캐스트와 투니버스에서 더빙한 캐스트, 극장판 더빙의 캐스트는 다른가. 이런 생각을 해본다. 많은 더빙 팬들이 아쉬워한다. “왜 새로운 작품, 더 다른 작품이 들어오지 않는가?” “왜 더 빨리 들어오지 않는가?” 만약 누군가 하려고 해도 성우 풀은 한정되어 있고(근년 젊은 성우들이 전부 어디로 향하는지 생각해보라), 설사 가능해서 성우를 그러모아도 방영사에 따라 또 캐릭터의 목소리가 바뀌는 참사를 겪을 것이다. 캐릭터는 곧 성우이며 성우는 곧 캐릭터이다. 수시로 캐릭터의 성우가 바뀌는데 캐릭터에게 애착을 줄 사람은 많지 않다. 그 말은 그 역할을 맡은 성우(들) 자신에게 떨어지는 애착의 배당율 또한 떨어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전속 성우제로 인한 폐해이다. 자신의 목소리(역할)를 온전히 소유하지 못한다는 것 말이다.

    성우는 프로페셔널 연기자이며 탤런트이다. 프로는 자기 자신을 자주성을 가지고 관리하고 행동해야한다. 지금과 같이 특정 회사에 매여있고, 또 매이는 인재들이 쌓여가면 그것은 작품에도 결코 좋은 영향을 줄 수 없다. “성우는 프로 탤런트”라는데 이의가 없다. 실제로 성우 겸 연기자들이 많다(이건 현실적인 문제도 있지만, 나는 나쁘게만 보고 싶지 않다). 성우는 어딘가에 묶여있는것 이전에 좀 더 다양한 활동을 하고, 때로는 영역과 분야(연기,무대,노래 등)를 넘나드는 활약을 할 필요가 있다. 특히 젊고 유능할 수록 그러하다. 방송사가 아니라 독립적으로 소속된 매니지먼트에 의해 채용, 양성되어야 한다. 방송사는 제작을 하고 인적자원은 인적자원 관리의 프로가 제공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나는 관계자도, 흔히 말하는 ‘성우 팬덤’에 속하지도 않으며, 성우를 많이 아는것도 아니다. 그래서 매니아나 업계 관계자가 볼때는 이 자식 뭣도 모르고 써대고 있군 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또 이 글이 화제를 끌 것 같지도 않다. (이중적이게도 이 글이 어떤 영향을 일으키길 바라지만 시끄럽진 않았으면 좋겠다) 아니 끌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냥 한 작품을 접하고 나서, 평소에 생각해오던 바에 살을 붙인 내 개인적인 의견 개진이라고 생각해주시면 고맙겠다.

    덧. 이 글은 내가 트위터에 트윗한 내용을 바탕으로 수리를 맡긴 컴퓨터가 돌아오자 작성한 글이다. 컴퓨터가 돌아와서 정말 반갑다.

  • 나는 완벽을 추구한다.

    블로거라는 ‘직업’은 사실 자신의 이름를 파는 직업이다. ‘나의 지혜를 웹에 덜어서 자랑함으로써 자신의 이름을 파는’ 직업인 것이다. 지금까지는 사생활을 추구하기 위해서 ‘푸른곰’이라는 가명을 사용하고 있으나 언제 내 실명을 사용해서 프로로 돌아갈 지 모르는 노릇이다.

    이름을 파는 직업에서 당연히 신경을 써야 하는 것은 자신이 어떠한 평판을 얻느냐는 것이다. 나는 자체적인 분석툴을 쓰기도 하고 Google Analytics 툴을 쓰기도 하고 각 페이지의 소셜 툴을 통해서 얼마나 많이 공유되었는지를 살펴보기도 한다. 특히 어떤 페이지가 많이 검색되었는지와 어떤 페이지가 많이 공유되었는지는 그 페이지가 얼마나 인기있었는지 얼마나 유익했는지를 살펴보는 지표가 된다. 그런데 한 페이지가 눈에 띄었다. 바로 투니버스판 도쿄 매그니튜드 8.0의 더빙에 관한 트위터 코멘트였다. (사생활 보호를 위해 프로필 사진과 이름은 삭제했다)

    솔직히 말해서, 나는 단순히 더빙판을 까려는게 아니다.

    보통 ‘더빙판’에 대한 비판이라고 하면 흔한 오타쿠의 난리로 여겨지기 일쑤라 나로써도 참, 깨름직하다.  (본문 중)

    우선 첫째로 본문에서도 말했듯, 전반적인 품질은 우수했다. 다만 그 장면의 질이 기대를 저버렸기 때문에 그를 비판한 것이다.

    물론, 나는 마지막회 연기를 보면서 잠시 눈시울이 시큼해졌다. 분명 성우들은 매우 훌륭한 연기를 했다. 그러나 이 장면을 보면서 마음이 차가워졌다.

    나는 완벽을 추구한다. 특히 프로의 작업이라면 더더욱 완벽을 추구해야 한다고 믿는다. 블로그 글 하나를 작성하면서도 조사를 거듭하고 마음에 들지 않으면 영영 Draft 상태에 머물거나 Trash로 들어가기도 한다. 이 ‘까는 글’ 하나만 하더라도 수 차례의 초고작업과 수정과 작성을 통해 몇 시간의 집중을 거친 작업 끝에 작성된 글이다. ‘이렇게 디테일하게 까는’ 글은 결코 쉽게 나오지 않는 것이다.

    나는 남의 부탁을 매우 신중하게 받아들이는 편이다. 완벽을 기할 수 없다면 나는 그 일을 맡지 않는다. 물론 나와는 달리 녹음 현장의 프로페셔널은 타협을 해야할 때가 있다. 비용과 시간과 능력의 효율 밸런스를 조절해야 한다는 말이다. 단순히 완벽만을 추구하는 것은 아마추어의 사치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디테일에 대한 완벽주의, 그것이 무언가 다른 것을 낳을 것이라고 믿는다. 여기에 이런걸 붙이는게 구차하게 느껴지지만, 내가 스티브 잡스와 애플, 그리고 한창 때의 소니를 좋아했던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것이 ‘그렇게 디테일하게 깠던’ 이유이다. 나는 그만큼 투니버스에 애정을 가지고 있다. 투니버스 태그를 검색해보시길)

     

  • 투니버스판 도쿄 매그니튜드 8.0을 보고

    도쿄 매그니튜드 8.0가 투니버스에서 무사히 종영되었다. 일단 본작에 관한 내용은 추후에 이야기 하도록 하고(사실은 이게 먼저가 되어야 하나, 유감스럽게도 그 당시에는 블로그에 글을 쓰지 않았던 고로 일단 이걸 먼저 하도록 하자), 이 투니버스에서 방영된 ‘투니버스판’ 도쿄 매그니튜드 8.0에 대해서 잠시 한마디 하고자 한다.

    보통 ‘더빙판’에 대한 비판이라고 하면 흔한 오타쿠의 난리로 여겨지기 일쑤라 나로써도 참, 깨름직하다. 뭐 대개 내가 보아 온것이, ‘이 목소리가 본인이 생각하는 목소리와 다르다’ ‘이 주인공은 너무 명랑한 톤으로—내지는 그 반대로 연기한다’ 같은 주로 ‘성우’의 연기에 관한 비평이 많은데, 나는 성우에 대한 비평을 하려는게 아니다. 성우는 이미 수많은 지망자가 있고, 육성을 위한 시스템이 있고, 오디션 시스템이 있고, 전속 시스템을 통해 양성되며, 그 후 일정량의 작품을 소화한 후에 프리로 나가서 활동하는 식으로 이미 충분한 양의 성우 풀이 준비되어 있다. 몬스터에만 해도 100명이 넘는 성우가 출연했다. 나는 이번에는 성우에 대한 비평이 아니라. 제작 시스템, 정확히 지목하면 연출가와 번역가를 지목하고자 한다.

    애니메이션의 성우가 연주자라고 한다면 애니메이션의 번역가와 연출가는 각각 작곡가와 지휘자라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성우’라는 곡 자체 뿐 아니라 악기의 빠르고 느려지는 완급, 높낮이, 울림과, 늘어지고 풀어짐, 어디에서 쉬고, 어디에서 다시 시작하는지 등을 최종적으로 관리하는 역할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지금까지 연주자의 연주 역량(연기력)에만 돌을 던져왔지, 작곡가와 지휘자의 역량에는 의문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나는 그 둘의 역량에 의문을 던지는 것이다. 성우에는 지속적으로 신인이 공급되어 온 반면, ‘작곡자’와 ‘지휘자’는 어떤가? 공급도 수요도 적체상태 그대로이다. 신동식 씨가 나가고 와라 편의점을 제작했던 석종서PD 정도를 제외하면 거의 이동이 없는 상태.

    1화부터 지적하고 싶었지만 우선 번역은 지나치게 의역이 심했다. 굳이 원문에 있는 단어를 좀 더 국어순화 하지 않아도 될 단어나 구를 지나치게 순화해 의역한 나머지 본래 문장의 맛을 떨어뜨렸다. 넘어가자면 넘어갈 수 있다, 뜻이야 통하니까. 하지만 나는 IT 블로거 이전에 영문학도로써, 프로는 아니지만 10수년 이상 번역을 해왔다. 용납할 수 없다. 대표적인 부분을 지목하자면(약간 스포일러성이 있다) .

    내가 영상을 가지고 없고, 특히 투니버스 판은 영상을 가지고 있지 않으므로 그냥 기억을 옮기자면. 마지막 편에서 쿠사카베 마리가 말한다. 하늘이 참 높고 푸르다고. 이런 맑은 날의 하늘을 보면 하늘에 오히려 숨이 막혀 질식할 것 같다고 말한다. 그것을 투니버스에서는 괜시리 더 우울해져 버릴 것 같다라고 단순히 해버린다. 각본가와 각본에 대한 문학적인 살인이다. 이후에 날조는 더 가관이나 이 내용의 충격이 하도 강렬하고 내 기억력이 모자란 고로 더는 못옮김을 양해해주시기 바란다. 이런 실수는 그냥 넘어가도록 하자, 이런 실수는 결국 나중의 연출적인 실수와 함께 어우러저 아주 멋진 실패를 일으키게 되니까.

    이 장면을 계속 얘기해보자, 쿠사카베의 저 고백은 천천히  한숨을 토해내듯이 적당히 체념을 거듭하면서 몇번의 쉼표가 반복된다. 그리고 망설임이 정리가 되고 마침표가 나오고 가방을 꺼내드는 장면이 나온다. 이것은 미라이의 고민과 자신을 투영해가며 반추한 뒤 그것을 끝내고 할일을 해야지 하고 매듭을 짓는 것으로, 투니버스 판에서는 이 갈등이 깔~끔하게 회쳐져있다. 한편으로, 그에 이어서 나오는 장면은 정말 절절한 연출적인 실패와 번역의 혼란에 의해 흐름이 흐트러져버렸다. 대표적으로 기억에 남는 장면은 이것이다.
    “유우키… (끌림)먹기 싫은것도 많이 있었을텐데…(끌림) 불평 하나도 않하고….(끌림) 정말 열심히 걸었지요?”(올림,울음) (원어)
    “유우키는요, (올림)싫어하는 음식이 참 많거든요? (올림)그런데 뭐든지(약간 올림) 잘먹고 열심히 잘 걸어 왔어요(끌림,울음))”

    괄호는 내가 말의 감정을 표현하기 위해서 임의로 표시한 것이다. 얼마나 엉망진창으로 우리말로 옮겼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번역가의 의역과 연출가의 장난질로 거의 후시녹음을 자의대로 원판과는 전혀 상관없이 다시 한 셈이다. 차라리 오리지널 스크립트(다시 말해서 원판 목소리가 아니라 오디오 스크립트, 즉 대본)라도 제대로 따라 했으면 좋겠는데 그도 아닌 모양이다. 그러니까 욕을 얻어 먹어도 싸다. 하여, 성우가 독단으로 해석해서 했으면 연출이 막아서 지도를 했어야 했고, 연출이 의도 했으면 연출이 욕을 먹어야 했다. 어느쪽이든 연출이 작품의 해석을 게을리하고 대충 했다는 측면에서 욕을 먹어야 한다.

    물론, 나는 마지막회 연기를 보면서 잠시 눈시울이 시큼해졌다. 분명 성우들은 매우 훌륭한 연기를 했다. 그러나 이 장면을 보면서 마음이 차가워졌다. 전혀 다른 나라 말의 문장이니 우리나라 말과 박자나 억양이 100% 일치할 수는 없지만, 저 감정선을 유지할 수는 있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적어도 저렇게 극단적인 대치관계를 띌 수는 없다. 나는 이 부분을 보면서 결론을 내렸다. 이 두사람이 정말 말도 안되는 실수를 했구나.

    이 실수를 만회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하는 것인가? 다른 창작물의 번역도 마찬가지지만 1) 업계에 정통한 사람이 2) 작품과 관련분야를 깊게 이해하고서 번역에 임해야 한다.  가령 이 경우에는 더빙과 연출에 지식이 있는 사람이 작품을 세심하게 읽고 작품의 배경지식은 최소한 알고 번역을 해야한다는 얘기다. 왜 더빙과 연출에 대해 알아야 하느냐 그래야 방송에 적합하도록 대사를 번역하고 나중에 녹음시에 이 부분을 어떻게 녹음하는지에 대한 어드바이스를 내릴 수 있기 때문이다. 번역은 제2의 창작이라고 한다. 애니메이션은 종이에 글을 옮기는것과 다르다. 들리고 보이는 것이다. 시청자가 접하기에 최대한 원작에 가까운 감정선을 유지하도록 번역하고 그게 힘들면 ‘그렇게 느껴지는 착각이 들도록’ 만들어야 한다. 그렇게 레플리카를 만드는 것이다.

    어느 사람은 말한다. 결국 원래 원작 또한 일본어로 된 스크립트를 읽어서 감정을 나타내는 것 뿐으로, 한국어 녹음 또한 한국어로 감정을 나타내는 것으로 100% 일본어 녹음과 일치할 필요가 있는가? 라고. 그것에 대한 내 반박은 다음과 같다. 미국군이 전함을 오리지널로 만들었으니까, 미국군 오리지널 전함의 레플리카를 한국 바다에 띄우기 위해서 우리나라 식대로 만든 배를 바탕으로 만든 미국배의 모형을 물에 뜨도록 적당히 구축해 놓고 미국 배의 레플리카라고 우기면 된다는 것인가?

    5.26 추가. 혹시 이 더빙의 비평에 대하여 깨름직한 점이 있다면 후속 포스트를 읽어보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