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니버스판 도쿄 매그니튜드 8.0을 보고

도쿄 매그니튜드 8.0가 투니버스에서 무사히 종영되었다. 일단 본작에 관한 내용은 추후에 이야기 하도록 하고(사실은 이게 먼저가 되어야 하나, 유감스럽게도 그 당시에는 블로그에 글을 쓰지 않았던 고로 일단 이걸 먼저 하도록 하자), 이 투니버스에서 방영된 ‘투니버스판’ 도쿄 매그니튜드 8.0에 대해서 잠시 한마디 하고자 한다.

보통 ‘더빙판’에 대한 비판이라고 하면 흔한 오타쿠의 난리로 여겨지기 일쑤라 나로써도 참, 깨름직하다. 뭐 대개 내가 보아 온것이, ‘이 목소리가 본인이 생각하는 목소리와 다르다’ ‘이 주인공은 너무 명랑한 톤으로—내지는 그 반대로 연기한다’ 같은 주로 ‘성우’의 연기에 관한 비평이 많은데, 나는 성우에 대한 비평을 하려는게 아니다. 성우는 이미 수많은 지망자가 있고, 육성을 위한 시스템이 있고, 오디션 시스템이 있고, 전속 시스템을 통해 양성되며, 그 후 일정량의 작품을 소화한 후에 프리로 나가서 활동하는 식으로 이미 충분한 양의 성우 풀이 준비되어 있다. 몬스터에만 해도 100명이 넘는 성우가 출연했다. 나는 이번에는 성우에 대한 비평이 아니라. 제작 시스템, 정확히 지목하면 연출가와 번역가를 지목하고자 한다.

애니메이션의 성우가 연주자라고 한다면 애니메이션의 번역가와 연출가는 각각 작곡가와 지휘자라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성우’라는 곡 자체 뿐 아니라 악기의 빠르고 느려지는 완급, 높낮이, 울림과, 늘어지고 풀어짐, 어디에서 쉬고, 어디에서 다시 시작하는지 등을 최종적으로 관리하는 역할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지금까지 연주자의 연주 역량(연기력)에만 돌을 던져왔지, 작곡가와 지휘자의 역량에는 의문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나는 그 둘의 역량에 의문을 던지는 것이다. 성우에는 지속적으로 신인이 공급되어 온 반면, ‘작곡자’와 ‘지휘자’는 어떤가? 공급도 수요도 적체상태 그대로이다. 신동식 씨가 나가고 와라 편의점을 제작했던 석종서PD 정도를 제외하면 거의 이동이 없는 상태.

1화부터 지적하고 싶었지만 우선 번역은 지나치게 의역이 심했다. 굳이 원문에 있는 단어를 좀 더 국어순화 하지 않아도 될 단어나 구를 지나치게 순화해 의역한 나머지 본래 문장의 맛을 떨어뜨렸다. 넘어가자면 넘어갈 수 있다, 뜻이야 통하니까. 하지만 나는 IT 블로거 이전에 영문학도로써, 프로는 아니지만 10수년 이상 번역을 해왔다. 용납할 수 없다. 대표적인 부분을 지목하자면(약간 스포일러성이 있다) .

내가 영상을 가지고 없고, 특히 투니버스 판은 영상을 가지고 있지 않으므로 그냥 기억을 옮기자면. 마지막 편에서 쿠사카베 마리가 말한다. 하늘이 참 높고 푸르다고. 이런 맑은 날의 하늘을 보면 하늘에 오히려 숨이 막혀 질식할 것 같다고 말한다. 그것을 투니버스에서는 괜시리 더 우울해져 버릴 것 같다라고 단순히 해버린다. 각본가와 각본에 대한 문학적인 살인이다. 이후에 날조는 더 가관이나 이 내용의 충격이 하도 강렬하고 내 기억력이 모자란 고로 더는 못옮김을 양해해주시기 바란다. 이런 실수는 그냥 넘어가도록 하자, 이런 실수는 결국 나중의 연출적인 실수와 함께 어우러저 아주 멋진 실패를 일으키게 되니까.

이 장면을 계속 얘기해보자, 쿠사카베의 저 고백은 천천히  한숨을 토해내듯이 적당히 체념을 거듭하면서 몇번의 쉼표가 반복된다. 그리고 망설임이 정리가 되고 마침표가 나오고 가방을 꺼내드는 장면이 나온다. 이것은 미라이의 고민과 자신을 투영해가며 반추한 뒤 그것을 끝내고 할일을 해야지 하고 매듭을 짓는 것으로, 투니버스 판에서는 이 갈등이 깔~끔하게 회쳐져있다. 한편으로, 그에 이어서 나오는 장면은 정말 절절한 연출적인 실패와 번역의 혼란에 의해 흐름이 흐트러져버렸다. 대표적으로 기억에 남는 장면은 이것이다.
“유우키… (끌림)먹기 싫은것도 많이 있었을텐데…(끌림) 불평 하나도 않하고….(끌림) 정말 열심히 걸었지요?”(올림,울음) (원어)
“유우키는요, (올림)싫어하는 음식이 참 많거든요? (올림)그런데 뭐든지(약간 올림) 잘먹고 열심히 잘 걸어 왔어요(끌림,울음))”

괄호는 내가 말의 감정을 표현하기 위해서 임의로 표시한 것이다. 얼마나 엉망진창으로 우리말로 옮겼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번역가의 의역과 연출가의 장난질로 거의 후시녹음을 자의대로 원판과는 전혀 상관없이 다시 한 셈이다. 차라리 오리지널 스크립트(다시 말해서 원판 목소리가 아니라 오디오 스크립트, 즉 대본)라도 제대로 따라 했으면 좋겠는데 그도 아닌 모양이다. 그러니까 욕을 얻어 먹어도 싸다. 하여, 성우가 독단으로 해석해서 했으면 연출이 막아서 지도를 했어야 했고, 연출이 의도 했으면 연출이 욕을 먹어야 했다. 어느쪽이든 연출이 작품의 해석을 게을리하고 대충 했다는 측면에서 욕을 먹어야 한다.

물론, 나는 마지막회 연기를 보면서 잠시 눈시울이 시큼해졌다. 분명 성우들은 매우 훌륭한 연기를 했다. 그러나 이 장면을 보면서 마음이 차가워졌다. 전혀 다른 나라 말의 문장이니 우리나라 말과 박자나 억양이 100% 일치할 수는 없지만, 저 감정선을 유지할 수는 있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적어도 저렇게 극단적인 대치관계를 띌 수는 없다. 나는 이 부분을 보면서 결론을 내렸다. 이 두사람이 정말 말도 안되는 실수를 했구나.

이 실수를 만회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하는 것인가? 다른 창작물의 번역도 마찬가지지만 1) 업계에 정통한 사람이 2) 작품과 관련분야를 깊게 이해하고서 번역에 임해야 한다.  가령 이 경우에는 더빙과 연출에 지식이 있는 사람이 작품을 세심하게 읽고 작품의 배경지식은 최소한 알고 번역을 해야한다는 얘기다. 왜 더빙과 연출에 대해 알아야 하느냐 그래야 방송에 적합하도록 대사를 번역하고 나중에 녹음시에 이 부분을 어떻게 녹음하는지에 대한 어드바이스를 내릴 수 있기 때문이다. 번역은 제2의 창작이라고 한다. 애니메이션은 종이에 글을 옮기는것과 다르다. 들리고 보이는 것이다. 시청자가 접하기에 최대한 원작에 가까운 감정선을 유지하도록 번역하고 그게 힘들면 ‘그렇게 느껴지는 착각이 들도록’ 만들어야 한다. 그렇게 레플리카를 만드는 것이다.

어느 사람은 말한다. 결국 원래 원작 또한 일본어로 된 스크립트를 읽어서 감정을 나타내는 것 뿐으로, 한국어 녹음 또한 한국어로 감정을 나타내는 것으로 100% 일본어 녹음과 일치할 필요가 있는가? 라고. 그것에 대한 내 반박은 다음과 같다. 미국군이 전함을 오리지널로 만들었으니까, 미국군 오리지널 전함의 레플리카를 한국 바다에 띄우기 위해서 우리나라 식대로 만든 배를 바탕으로 만든 미국배의 모형을 물에 뜨도록 적당히 구축해 놓고 미국 배의 레플리카라고 우기면 된다는 것인가?

5.26 추가. 혹시 이 더빙의 비평에 대하여 깨름직한 점이 있다면 후속 포스트를 읽어보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