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스타페이퍼(Instapaper)의 턴어라운드

예전에 에버노트(Evernote)의 흥망사를 자세히 다룬 적이 있습니다. 그 글은 의외로 인기가 있어서 많은 분들이 감사하게도 많이 읽어 주셨습니다.

에버노트의 특징이라면 “만약 앱스토어가 없었다면 지금의 에버노트는 없었을 것이다”라는 점입니다. 그런 시선에서 보면 인스타페이퍼(Instapaper)라는 서비스 역시 앱스토어가 없었다면 지금의 인스타페이퍼는 없었을 것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인스타페이퍼의 아이콘입니다.
인스타페이퍼의 로고타입입니다.

인스타페이퍼(Instapaper)는 텀블러의 공동 창업자이자 수석 개발자였고 훗날 iOS용 팟캐스트 앱인 오버캐스트(Overcast)를 개발한 마르코 아먼트(Marco Arment)가 웹에 있는 텍스트를 깔끔하게 파싱·추출해서 저장하는 ‘나중에 읽기(Read It Later)’ 서비스로 공개했습니다. 처음엔 확장 기능 같은 것도 아니었고, 북마크바에 조그마한 스크립트를 담은 바로가기를 드래그해서 원하는 사이트에서 그걸 누르면 인스타페이퍼 사이트에서 읽을 수 있는 그런 서비스였습니다.

처음에는 웹 서비스로 시작했으나, 같은 해 앱스토어가 론칭하면서 유료 앱으로 출시되어 커다란 성공을 거두게 됩니다. 하지만 마르코 아먼트는 몇 년이 지나면서 1인 개발 체제의 한계를 느끼게 되었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 뉴욕의 베타웍스라고 하는 스타트업에 지분을 매각했습니다.

마르코 아먼트 1인 체제에서 불가능했던 웹 인터페이스의 개편이나 기능 확장, 그리고 프리미엄 구독 모델이 이때 등장하게 됩니다. 2013년 4월의 일입니다.

비슷한 시기에 출발했던 Read It Later라는 앱이 있었습니다. 포켓(Pocket)이라고 훗날 불리게 되는데요. 인스타페이퍼가 스타트업에 매각되었다면, 포켓은 비슷한 시기에 대규모 벤처캐피털 투자 유치를 하게 됩니다.

그리고 2012년 포켓이라는 이름으로 리브랜딩하며 서비스의 대부분을 무료화하는 데 이르렀습니다. 공교롭게도 두 제품 모두 2016년 8월과 2017년 2월에 각각 핀터레스트와 모질라에 인수됩니다.

그 이후의 루트가 서로 다른데요.

핀터레스트 산하에서 EU의 GDPR마저 지키지 못할 정도로 빠듯한 상황이었는데, 인스타페이퍼의 경우 핵심 개발팀이 회사를 MBO 방식으로 사들임으로써 핀터레스트에서 독립하게 되었고 빅테크에 의존하는 구조가 해소되었습니다. 지금 인스타페이퍼는 2013년부터 개발에 참여했던 브라이언 도노휴라는 사람이 소유 및 운영하고 있습니다.

반면 포켓의 경우 파이어폭스의 기본 통합 기능으로 편입되고, 기본 탭의 콘텐츠 추천 엔진으로 역할이 바뀌었을 뿐만 아니라 콘텐츠를 유통하는 플랫폼이 되었습니다.

두 제품의 극적인 차이는 2019년에서 2022년 사이로 생각되는데요.

다시 독립 기업이 된 인스타페이퍼는 유료 구독을 부활시켰고, 외부 투자 없이 순수하게 사용자 요금만으로 흑자 전환에 성공했습니다.

한편 포켓은 모질라의 수익 다변화 모델로 운영되었지만, 2023년 이후 파이어폭스 계정과의 통합을 강제하다가 2025년에 결국 서비스를 폐지하게 되었습니다.

반면 인스타페이퍼는 계속해서 사용자 요금만으로 운영되는 구조를 고수했습니다. 포켓이나 그 이후에 등장한 경쟁 앱들이 콘텐츠 추천 및 큐레이션 기능을 포기하지 않았던 반면, 인스타페이퍼는 텍스트를 읽는 텍스트 리더 포지션을 유지하며 핵심적인 파싱 기술과 저장, 이 두 가지에 집중했습니다.

그리고 킨들과 코보 등 전자책(e-book) 리더와의 연동을 더욱 강화했죠. 최근에는 웹 서비스와 앱을 완전히 개편했는데, 특히 아이폰 앱의 반응이 좋았습니다. 그래서 포켓의 종료와 함께 다시 한 번 인스타페이퍼가 주목을 받고, 많은 사용자들에게서 “인스타페이퍼가 부활했다”라고 불리게 됩니다.

또 여기에 재미있는 사실이 있는데요. 아시다시피 인스타페이퍼의 장점은 웹페이지를 파싱하는 기술이었습니다. 그게 핵심 기술인데, 웹페이지를 파싱해 텍스트만 추출하는 기술은 굉장히 가치가 있습니다. 바로 LLM 학습에 양질의 텍스트를 넣기 위한 도구로서 사용하기에 이보다 좋은 툴이 없었다는 거죠.

그래서 인스타페이퍼는 이런 식으로 파서를 인스타파서 API로 2026년 3월에 다시 출시하게 되고 이를 라이선스하는 수익 모델을 정착시키기에 이릅니다.

인스타페이퍼는 재기했습니다. 하지만 과거처럼 대중적인 대형 서비스가 되었다는 뜻은 아닙니다. 인스타페이퍼는 사용자 수나 매출 등 구체적인 경영 지표를 공개하지 않고 있습니다. 게다가 인스타페이퍼를 포켓을 이기고 시장을 장악한 승자라고 볼 수도 없습니다. Readwise Reader, Matter, Raindrop.io 등등 경쟁 도구가 워낙 다양해졌거든요.

하지만 분명히 재기한 서비스라고 볼 수 있습니다. 우선 포켓이 종료되면서 가장 오래된 메이저 서비스로 남게 되었고 PDF, 태그, 노션, 옵시디언, AI 음성 읽기 기능 등 현대적인 기능을 아직도 적극적으로 추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앞서 말씀드렸다시피 웹과 iOS 앱을 대대적으로 재구축했고 핵심 파싱 기능을 API 사업으로 확장했습니다. 무엇보다도 모기업에 의존하거나 벤처캐피털에 의존하는 게 아니라, 사용자의 구독료로 수익을 내며 운영되는 독립된 사업체가 되었다는 점입니다.

인스타페이퍼의 이야기가 흥미로운 이유는 빨리 성장해 대기업에 팔린 뒤에 사라진다는 서사와 조금 결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기술 스타트업에 흔히 적용되는 이야기인데요, 한때는 너무 커져서 창업자가 떠났고, 두 차례 인수됐고, 무료 경쟁자한테 밀려서 거의 잊혀졌습니다. 버려지다시피 했죠. 하지만 실제로 제품을 만들던 사람들이 회사를 다시 독립시키고, 거대하게 성장하는 것보다 생존하는 길을 택했습니다. 그 결과 시장을 장악했던 경쟁자가 사라지고, 작게 근근이 살아남아 있던 인스타페이퍼가 오히려 살아남았습니다.

인스타페이퍼의 경우는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겠습니다: 큰 회사의 무료 부가 기능보다 고객이 직접 비용을 내는 작은 전문 도구가 더 오래 살아남을 수도 있다는 것이죠.

인스타페이퍼의 진짜 자산은 무엇일까요? 브랜드일까요? 아니면 사용자 수일까요? 저는 그게 아니라고 봅니다. 18년 동안 다듬은 ‘복잡한 웹을 깨끗한 글로 바꾸는 능력’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모바일 독서 시대에 만들어진 그 능력이 전자책과 AI 시대에 다시 가치를 인정받으면서, 인스타페이퍼는 완벽하게 턴어라운드했습니다. 흥미로운 사실은 마르코 아먼트 자신이 인스타페이퍼에서 느낀 바가 있었는지, 그의 다음 프로젝트인 오버캐스트에서는 철저하게 사용자의 구독 모델을 중심으로 운영되고 있다는 점입니다. 벤처캐피탈이나 주주가 소유하지 않고 개발자가 직접 소유하고 개발자가 직접 사용하고 개발하는 형태의 인스타페이퍼와 유사한 모델로 운영되고 있다는 점이 다른 이들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푸른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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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곰은 2000년 MS의 모바일 운영체제인 Pocket PC 커뮤니티인 투포팁과 2001년 투데이스PPC의 운영진으로 출발해서 지금까지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2005년 이후로 푸른곰의 모노로그를 운영하고 있으며 지금은 주로 애플과 맥, iOS와 업계 위주로 글을 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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