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iPadOS를 보면 뭔가 PC 같기도 하고, 태블릿 같기도 하고 어정쩡 한 느낌을 받습니다. 그래서 애플에 의문이 드는 것입니다. 스티브 잡스가 생전에 월트 모스버그와 카라 스위셔라는 전설적인 IT 언론인과 함께 2010년 개최된 D8 Conference에 나와서 PC에 대한 생각을 밝힌 적이 있습니다.
“When we were an agrarian nation, all cars were trucks … But as vehicles started to be used in the urban centers, cars got more popular.”
“PCs are going to be like trucks. They’re still going to be around, they’re still going to have a lot of value, but they’re going to be used by one out of X people.”
“농경사회일때는 모든 차들은 트럭이었죠, 하지만 자동차가 도심에서 사용되기 시작하면서 승용차가 더 인기 있어졌습니다.”
“PC는 트럭 같은 존재입니다. 계속 남을 것이고, 계속 많은 가치를 창출하겠죠. 하지만 PC는 일부 사람들이 쓰는 물건이 될 겁니다.”
잡스가 iPad를 처음 소개할 때에 그는 아이패드를 ‘맥과 아이폰 사이의 중간’ 이라고 규정했습니다. 그런데 점점 아이패드가 강력해지고, 비싸짐에 따라 기술 비평가나 호사가들의 등쌀에 못이겨서 애플은 아이패드를 ‘PC’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What’s a computer?” 라는 펀치라인으로 안좋은 의미로 세간의 주목을 끌었던 광고도 그렇고 말이죠(해당 광고는 애플 유튜브 채널에서 내려갔습니다).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Mac을 대체하는 기기로서의 아이패드가 아니라 맥을 보완 하는 기기로서의 아이패드가 존재해야 한다는 것이죠. 맥은 책상에 있고, 전화기(iPhone)은 손이나 주머니에 있는데 나는 소파나 침대에 있습니다. 그 상황에 사용하기 위한 기기여야 한다는 것이죠.
물론, 애플의 입장도 이해는 갑니다. 아이패드는 저가의 안드로이드 태블릿과 차별화하기 위해서 성능과 기능을 올려야 했고, 가격도 올라갔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아이패드가 맥을 삼키는 위치를 허용할 필요는 없습니다. 특히 Intel 칩을 쓸 때라면 모를까, Apple Silicon으로 아이폰/아이패드/맥의 구조가 거의 일원화 된 지금, 굳이 두개의 PC 플랫폼이 존재할 이유는 없습니다.
PC가 성능이 좋아져서, 고가의 고성능 PC가 전통적인 썬이나 실리콘 그래픽스 등의 워크스테이션을 구축(驅逐)한 사례가 있고, 그리고 워크스테이션에서나 가능했던 고도의 3D 연산이나 영상 편집과 이펙트가 PC로 얼마든지 구동 되는 세상입니다. 그렇지만 PC는 어디까지나 PC입니다. 누구도 PC를 워크스테이션이라고 부르지 않아요.
많은 사람들이 자학조로 그럽니다. “비싼 아이패드를 샀는데 결국은 유튜브 머신, 넷플릭스 머신”이라고. 물론 아이패드의 성능이 좋아졌으니 그걸로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렇다고해서 아이패드가 PC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웹브라우저를 돌리고 메일을 보고, 유튜브나 스트리밍 영상을 보고 SNS를 하고 책을 보고, 뉴스를 보는 것. 그것이 본디 아이패드의 용도입니다. 사람들은 일부 호사가들의 엉뚱한 착각과 그에 놀아나는 애플 덕에 하지 않아도 되는 자학을 하고 있습니다. 잡스의 비유를 빌자면, 승용차를 몰고 있으면서, 트럭마냥 짐칸 가득 뭘 싣지 못한걸 한탄하는 느낌이랄까요?
물론 성능이 올라갔기 때문에 과거처럼 단순한 아이패드의 모습 그대로 남아 있는 것은 비효율적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아이패드의 본질을 흐려서는 안됩니다. 그것을 가장 잘 알고, 가장 철저히 관철해야할 존재가 애플 입니다. 호사가들이 아니라요. 애플은 이미 훌륭한 PC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왜 또 트럭을 만들려 하나요? 그게 부질 없고, 쓸모 없는 일이라는걸 알지 못하는 걸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