쿄애니 사건 3주기를 앞두고 드는 생각

흔히 ‘극한의 참사에서 인간의 본성은 가장 잘 드러난다’는 말을 한다. 인간의 본성이 무엇인지 확신이 서지 않지만 교토애니메이션 방화 살인 사건의 현장 인근 주민들이 ‘불특정 다수가 찾아오는 상황이 계속 되고 있다’며 현장 공원화나 위령비 설치에 반대한다는 입장에 얼굴이 찌뿌려진다.

원래 쿄애니 사옥 부근은 (옳고 그름을 떠나) ‘성지 순례’하던 오타쿠들이 이따금 찾아가서 기념 사진 정도 찍고 오는 장소였다. ‘성지 순례’가 ‘추도’가 되었을 뿐이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건물 자체가 사라진 김에 앓던 이 뽑자’ 심보가 아닌지 생각이 드는건 내가 마음이 흉하기 때문인가?

거기에 비를 세우거나 공원을 만든 들 얼마나 많은 사람이 몰려들겠는가? 하더래도 기껏해야 합장하는 정도밖에 더 되겠는가? 공원이나 비를 세워놓으면 추도한다고 방문객들이 놓은 공물이 눈에 띄고, 사건을 플래시백 한다는 생각이 들 수는 있다. 하지만 그건 쿄애니측과 조율해서 추도 시설물 자체를 길가에서 바로 눈에 안띄게 놓는다던지 방문객에게 공물을 삼가달라고 요청하던지 하면 될 문제라고 생각한다.

나는 비슷한 유례가 없는 참사를 리얼타임으로 목도했다. 500명이 사망한 삼풍백화점 붕괴사고가 그것으로, 해당 사건 추도비가 님비로 인해 사건과는 전혀 연고가 없는 땅에 들어서고 현장에는 고급 주상복합 아파트가 들어선 것이 떠오른다.

설령 이 모든 점을 참작하더라도 근린 주민 입장에서 상기하고 싶지 않은 사건을 떠올리는 무언가를 ‘확정 된 형태’로 반영구적으로 남기기 싫은 마음이 아예 이해가 안가는 점은 아니나, 여기서 인간의 본성을 묻고 싶다.

공감하는 마음, 이것이 살인귀에게는 없고 우리에게는 있는 인간으로써의 본성이라고 생각한다. 근린 주민의 심경이나 근린 주민과 마찰을 일으키지 않고 싶은 쿄애니 측 심경을 이해는 하지만 미증유의 참사를 겪고 나서도 전혀 엉뚱한 곳을 기리게 된 한국인의 전철을 다시 밟는 우를 저지르지 않기를 바란다.

나는 사건 발생 당일부터 거의 3년이 다 된 지금까지 관련 소식을 쫓고 있으나(#쿄애니사건 해시태그 참조), 이미 줄어든 기사만큼이나 관심이 줄었고 염려하던 풍화는 이미 일각일각 일어나고 있다. ‘좋은게 좋은거지’ 하며 사건 자체를 망각의 저편으로 묻는다면 필경, 훗날 후회하게 될것이다. 그렇게 유야무야 ‘묻어두기’하는 풍조가 근현대사 교과서를 비롯해서 오늘날 한일(韓日) 관계의 여러 악폐를 낳고 있음을 굳이 언급할 필요도 없을 터이다, ‘묻어두기’는 일견 편리하지만 굉장히 많은 왜곡을 낳는다. 방학숙제를 미뤄두는 것과 다를게 없다. 한번 어긋나버린 것을 수복하기는 매우 어렵다. 미뤄둔 숙제를 개학을 앞두고 한꺼번에 해결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일본의 뜻을 같이하는 동지들이 부디 삼풍백화점 붕괴사고 위령비와 비슷한 과오를 저질러 오랜 세월 동안 괴롭지 않기를 간절히 바랄 뿐이다.

마지막으로, (글을 올리는 시점에서) 이틀 뒤인 6월 29일은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가 있었던 날이다. 내게 있어 6월 29일과 7월 18일은 비슷한 의미가 있는 날이다. 두 사고의 부상자와 희생자, 그리고 그 가족들과 친지들에게 심심한 위로를 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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