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1000XM5 개봉, 그리고 사용기

저는 소니의 노이즈 캔슬링 헤드폰인 WH-1000X 시리즈를 WH-1000XM2 시절부터 구입해 오고 있습니다. 2016년에 처음 MDR-1000X로 나왔을때는 Bose QC35를 우선했습니다만, 어찌저찌 그 이후로는 보즈 쪽과 함께 소니 쪽도 같이 사오고 있는데요. WH-1000XM3과 M4에 이어서 이번에는 WH-1000XM5를 구입했기에, 개봉기와 함께 간단한 첫 인상에 대해 설명하고자 합니다. 복습 삼아 이전 기종 포스트(개봉 전, 개봉 후)를 한번 둘러보시고 보시면 한층 이해가 쉽습니다.

언박싱

제품을 주문 한 곳이 쿠팡이었는데 놀랍게도 예의 그 비닐 포장에 완충재도 없이 도착했습니다. 그러나 포장재가 워낙 튼실해서 그런가 그 성의 없는 포장에도 불구하고 문제 없이 도착했다는게 기적이라면 기적이겠습니다. 하지만 이 포장은 WF-1000XM4에서부터 도입된 환경을 위한 포장으로 사람들 사이에서는 ‘원래대로 되돌릴 수 없는 포장’, ‘달걀팩 포장’으로 유명합니다. 정말 뜯느라 괴로웠지요. 며칠 냅두다가 개봉했습니다.

WH-1000XM5 제품 박스, 정면
뒷면에서 보면 예전과는 달리 제품 특징이나 사양 등에 대한 설명도 생략된, 그야말로 필수 규제정보 등만 적힌걸 알 수 있습니다
윗면, 예년 같으면 전면에 큼지막하게 박혀 있을 하이레조 로고 등이 밀려나 있습니다. 특히, MFi나 Alexa, Google Assistant 로고는 아예 후크에 가려져 있습니다.
개봉을 하면 음각으로 1000X SERIES 라고 적혀 있습니다. 종이와 이런저런 재료로 만들어서 빈말로도 고급스럽지는 않지만 쿠팡의 그 험악한 배송을 견딜 정도로 튼튼한 재질이네요. 소니 개발자들이 자랑스럽게 생각하겠습니다.
이번 모델의 케이스는 많이들 ‘삼각 김밥’을 연상시킨다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그 흔한 간단 사용 설명서도 없고 필수적인 내용(규제 정보나 필수적인 내용)만 간략하게 적혀 있는 서류들이 들어있는 종이 상자가 꼬다리에 매달려 있습니다
WH-1000XM3 부터 도입된, 소니 로고가 들어간 금색 지퍼 손잡이는 나름 품위가 있습니다
케이스는 내용물이 없을 때 눌러서 부피를 줄일 수 있게 설계되었습니다
케이스를 개봉해보면 Bose Noise Cancelling Headphones 700과 비슷한 플랫 스위블 형태로 수납되어 있습니다. 가동각도가 넓어서 플랫형태로도 수납이 되고 목에 걸때도 컵이 위로 향하지는 않습니다
헤드 밴드 사이에 컴파트먼트가 있어 열립니다. 검정색 3.5mm to 3.5mm 케이블과 USB-C to A 케이블이 있습니다. 초대 MDR-1000X부터 있던 항공기 어댑터는 폐지되었습니다
평평한 곳에 꺼내 보았습니다. 이 제품은 지문이나 손자국 등이 굉장히 잘 남습니다. 그래서 종종 닦아주어야 할 떄가 있습니다. 다음 제품에서는 개량되었으면 하는 점입니다. 그 외에 가동부가 헤드밴드와 조인트 부분 뿐이라서 긴 머리카락이 걸리는 등의 트러블이 해소되었습니다
반대로 놓으면 이렇습니다.
직전 모델(WH-1000XM4)와는 달리 착용 센서가 겉으로 드러나 있지는 않습니다만 확실히 내장되어, 기능합니다. 소니 측에 따르면 착용 센서의 성능도 향상되었다는 모양입니다
이어컵을 근접해서 찍어 보았습니다. 소니에서는 ‘소프트 핏 레자’로 부르는 재질로 미세한 돌기가 있는 재질입니다. 피지를 빨아들이는 능력이 어지간한 기름 종이 저리가라입니다. 플라스틱 부분과 함께 가끔씩 닦아주지 않으면 성이 차지 않습니다. 제품의 시리얼 번호 등은 왼쪽 이어컵 안쪽에 적혀 있습니다
헤드 밴드 역시 같은 재질입니다
컵과 밴드의 연결부입니다. 무단계로 쑥하고 잡아당기면 생각보다 부드럽게 늘어납니다. 예전과는 달리 밴드를 늘려도 아무런 소리가 나지 않습니다. 소니 로고가 꽤 품위있게 인쇄되어 있습니다
3.5mm 연결부와 전원버튼, 인디케이터, NC/AMB 버튼입니다. CUSTOM 버튼이 다시 NC/AMB 버튼으로 돌아왔지만 기능 상 차이는 없습니다. 다만 기본값으로 노이즈 캔슬링/주변소리 듣기 모드만 왕복하도록 변경되었습니다(‘끔’이 기본값에서는 폐지). 또한 이제는 항시 자동으로 노이즈 캔슬링 최적화를 하기 때문에 길게 버튼을 눌러 최적화 하는 기능은 사라졌습니다
충전 인디케이터와 USB-C 커넥터입니다. 충전 전용이며 USB-C PD(Power Delivery)를 지원하여 PD 지원 충전기라면 상당히 빠르게 충전됩니다

간단한 감상

몇 년전 까지만 하더라도 ‘저음 하면 보즈’ 라는 인상이 있었습니다만, 이제는 그것도 완전히 옛말이 되어서, 소니 쪽의 저음이 더 깊이나 펀치가 있다는 느낌입니다. 모니터링 제품을 듣다가 1000X 시리즈를 들어보면 확실히 음악 감상에 특화되어 있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특히 최근의 대중 음악, 특히 EDM의 경우 특징이 확연하다고 생각합니다. 대중적으로 사용되는(그리고 이전 모델들이 채용했던) 40mm 구경 드라이버가 30mm로 줄어들었습니다만, 드라이버 구경 축소로 인해 체감할 만한 불만은 없었습니다.

특히 이전 모델에서 부족함이 지적되었던 외부 소리 듣기, 통화 품질 등의 면에서 이전 WH-1000XM4에 비해 한결 더 브러시업 되고 개선한 모델로써(그러나 여전히 애플 제품에 비해서 특히 외부 소리 듣기 기능이 낫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습니다), 두차례에 걸쳐 WH-1000XM4 모델을 소개하면서(개봉 전, 개봉 후) 디자인의 진부함을 거듭거듭 지적했는데, 이번에야말로 신선한 디자인으로 나왔습니다.

이전에 나온 모든 1000X 시리즈 헤드폰/이어폰은 전원이 켜질 때를 비롯해서 버튼을 누를 때마다 육성 아나운스가 나왔습니다만, 이제는 그냥 ‘디링’ ‘디리링’ 하는 톤만 들립니다. 다만 전원 끌때 나오는 톤이 너무 작아서 벗은채로 전원을 끄면 ‘전원이 제대로 꺼졌나?’ 확인을 해야 했습니다.

착용감도 좋아지고 통기성도 개선되어서 헤드폰치고는 이례적으로 여름에 나왔습니다만 기존 기종보다 쾌적성이 향상되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다만 피부가 지성이신 분은 기름종이를 방불케 할 정도로 도처에 자국이 남아서 닦아줘야 합니다. 먼지도 정말 잘끼고요. 다음 기종 개발때는 이 기름종이 재질은 재검토를 해줬으면 하는 바람이 있습니다.

디자인을 제외한 기능적 측면에서는 솔직히 말해서 WH-1000XM4를 좀 더 다듬은 정도로 눈에 띄는 신기능은 Google Fast Pair와 Microsoft Swift Pair를 지원하는 정도려나요. 덕분에 안드로이드나 윈도우 기기를 켜놓고 근처에서 페어링 버튼을 켜기만 하면 아무런 추가 조작 없이 페어링이 가능합니다. 이 기능이 실장되어서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게 되었는지 NFC 태그가 폐지되었습니다. 말씀드린대로 페어링이 편해졌고, 소스 기기에서 접속 버튼만 누르면 접속 기기가 변경되기 때문에 굳이 NFC 태그를 접촉해 페어링할 필요도 없거니와, 태그를 접촉해서 기기의 연결 또는 해제를 할 필요도 없어졌습니다.

WH-1000XM4 당시에 LDAC을 지원하는 삼성 갤럭시 스마트폰에서 DSEE Extreme과 LDAC의 병용이 불가능하다는 점을 지적했었는데요, 발매 초기에 소니 일본 본사에 문의했을 당시에는 답변에도 시간이 걸릴 정도였습니다만 나중에는 LDAC 접속시에는 기기 사양에 따라 DSEE Extreme을 사용할 수 없다는 취지의 주의 표기가 제품 광고나 정보 페이지에 추가되었고, 이번 제품 또한 마찬가지 사양입니다. 통화나 외부 소리 듣기는 쉽게 개선되었음을 알 수 있는 반면, 노이즈 캔슬링이나 음질면에서는 조금 더 시간을 들여서 지긋이 평가하고 싶습니다. 그 점에 대해서는 기회가 되면 보유하고 있는 이전 모델이나 애플이나 보즈 등 경쟁사 제품과도 비교를 해보고서 향후 추가로 포스트를 하도록 하고 일단 첫 인상에 관한 글은 이 정도로 마치고자 합니다.

로지텍 MX Mechanical/MX Mechanical Mini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저는 애플 빠돌이로도 알려져 있지만 한편으로 꽤 잘 알려진 로지텍 빠돌이 입니다. 이 블로그에 들어오는 트래픽의 상당수가 ‘매직 마우스 쥐는 법’임에도 불구하고 저는 매직 마우스를 거의 사용하지 않았을 뿐더러, 매직 마우스 2(와 맥용 매직 키보드)는 아예 사용해본 적이 없습니다. 사실 제가 그런건 맥 자체에 내장된 키보드와 트랙패드를 더 많이 사용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외장 마우스와 키보드, 특히 마우스는 로지텍 제품을 2000년대 후반부터 줄곧 고집해 오고 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한 대만 사는 것도 아닙니다. 예비로 2~3대 사는건 기본일 정도입니다. 덕분에 구형 로지텍 제품이 미개봉 상태로 굴러 다닌다는 전설이 있다거나 없다거나. (그러니 로지텍 홍보 담당자 여러분의 연락을 기다립니다)

언젠가, 로지텍의 홈페이지를 들어갔을때, 로지텍이 하고 있는 MX 시리즈 한 대 당 Girls Who Code에 일정 금액이 간다는 파트너십 페이지를 보고 있을 때였습니다. ‘음? 보지 못했던 제품명이 있어?’ 라고 생각하게 되었죠. 그것이 바로 MX Mechanical이었습니다. 그리고 얼마지 않아서 실수를 깨달은 관리자에 의해 제품명이 사라졌죠(웃음). 하지만 결국 제 속에서는 MX 시리즈 키보드에 기계식 제품이 드디어 나오는구나 라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아시다시피 로지텍은 G 시리즈에서는 꽤 우수한 메커니컬 스위치 제품을 내놓고 있었죠. G913 이라던가… 그런데 왜 업무용 라인업이나 MX 라인업에는 메커니컬 제품이 없는거지 싶었답니다. (사실은 로지텍 홍보 담당자께는 말하고 싶지 않은 사실인데) 저는 게이밍 기어는 Blue Yeti 제품군과 StreamCam을 제외하고 레이저(Razer) 제품만 사용하고 있거든요. Yeti X와 StreamCam 땜에 G Hub를 깔아야 했을때 이를 갈았을 정도에요.

웹사이트 사건이 있은지 얼마 안되어 5월, MX Mechanical 과 MX Mechanical Mini가 발표 됩니다. HHKB Professional Hybrid Type-S를 산지 얼마 안되어서 일이라 조금 침울해졌습니다.

갑자기(?) 발표된 MX Mechanical 시리즈와 MX Master 3S(이것도 샀는데 다음번에 따로 포스팅하겠습니다)에 조용한 파장이 주변에서 일었습니다. ‘MX 시리즈 좋은건 알겠는데 팬터그래프는 좀…’ 하시던 분들이 꽤 계셨거든요. 그런데 ‘짜잔!’ 하고 카일(Kailh) 축을 사용한 기계식 키보드가 나온 것입니다. 그리고 한국 발매도 생각보다 빨랐습니다. 6월 초에 발매가 되었거든요. 다만 위에 인용한 트윗에서도 언급한 사실이지만 ‘갈축을 기본으로 청축/적축을 고를 수 있다’고 되어 있습니다만, 한국에서는 갈축 기본 모델만 출시되었다는 점입니다. 써보시면 아시겠지만 갈축이 무난하기는 합니다만 그래도 평소에 써오던 축을 고를 수 없어서 처음에는 익숙해지는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특히 나중에 언급할까 싶지만 이 키보드는 풀 프로파일이 아니라 로우 프로파일이라 키 스트로크가 약간 얇습니다. (뭐 G913 같은 로지텍 게이밍 무선 키보드 생각하시면 됩니다) 기계식 키보드는 주로 게이밍 키보드를 구입해서 적축을 주로 써왔었는데 적당히 덜 시끄러우면서 약간 찰칵찰칵 걸리는 느낌이 있어 치는 느낌이 좀 다릅니다. 장문을 치는데 있어서도 조금 익숙해지면 생각한 대로 정확하게 키를 타이핑할 수 있고 조금 모자른 듯 힘을 줘서 키를 쳐도 ‘타이핑했다’ 라는 촉감이 오면 어김없이 입력되어서 스트레스가 많이 줄었습니다.

MX Keys가 펜타그래프 치고는 적당한 키감과 정확한 입력으로 나름 인기를 끌었는데요. MX Mechanical과 MX Mechanical Mini는 적당이고 정확이고 자시고 기계식을 달라는 분들의 요구에 부응할 만한 기종입니다. 처음에 발표되었을 때 가격은 어느 정도가 될 것인가도 화제였었는데요. 일단 출시 가격은 풀 사이즈 MX Mechanical이 199,000원, 그리고 70% 사이즈인 MX Mechanical Mini가 189,000원이 되었습니다. MX Keys의 가격과 그 이후로 오른 환율을 생각하면 뭐 그럭저럭 납득할 가격이긴 합니다. 물론 각각 한 개씩 사니 40만원 가까이 지갑에서 ‘삭제’당한건 슬프지만요. (여담인데, 엔저가 기승을 부리는 일본에서는 MX Mechanical이 2만엔을 넘기는 가격으로 출시되었고, MX Mechanical Mini가 19,000엔 가까운 가격이 되었습니다)

근데, 이쯤 되면 궁금 해 하실 분이 계실 것 같습니다. 블로그에다 글을 쓸 정도로 해피 해킹 키보드를 만족스럽게 쓰면서도 왜 로지텍의 기계식 키보드를 기다렸냐는 것이지요. 간단합니다. Logi Flow 기능 때문입니다. 사실 이 기능은 로지텍 키보드 자체의 기능이라기 보다는 마우스의 기능이고 키보드는 부수적으로 딸려 오는 기능에 까깝습니다만, 저는 맥과 윈도우 PC를 동시에 가동해놓고 한 책상 위에서 사용하고 있고, 때론 둘 다 필요에 따라 조작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 키보드와 마우스를 두 개 놓게 되지만 책상이 정신없어지죠. 그래서 MX Keys(MX Keys Mini)를 같이 사용해 왔습니다. 한쪽에는 해피 해킹을, 한쪽에는 MX Keys를 놓고 쓴 것이죠. 해피 해킹 키보드 자체도 최대 5대(유선 1대 포함)까지 기기를 전환해서 쓸 수 있는 녀석이기 때문에 수동으로 전환해가면서 사용했지만 사람 역시 한번 편한 맛을 보니 돌이키기가 힘들어졌습니다. 마우스 커서만 이동하면 저절로 키보드가 따라서 전환되는 맛을 잊을 수가 없었던 겁니다. 키를 누르기만 해도 이동하는데 말이죠.

한편, MX Keys에서 제가 매력으로 생각했던 기능 중 하나는 조명 기능이었습니다. 물론 켜면 광속으로 배터리가 닳아버리는 그런 기능이었기에 꺼놓고 쓸 때가 많았지만요. 그래도 그래파이트 색의 몸체에 흰색으로 은은하게 빛나는 키탑은 ‘이것이 플래그십’이라고 말하는 것 같았습니다. 이건 MX Mechanical과 MX Mechanical Mini도 마찬가지라서 특히 밤에 불끄고 있으면 빛나는 화면과 은은히 불이 들어온 키보드의 조명이 참 형용하기 힘든 기분이었죠. 하는 것이 고작 트위터에 단문을 써서 올리는 것이라 할지라도 뭔가 담대한 프로젝트라도 하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습니다. 지금 이 글을 쓰는 것도 새벽 3시 너머 방의 불을 끄고 MX Mechanical Mini를 두드리면서 입니다만, 어두운 환경에서도 모티베이션을 올려주는 듯한 느낌이 있습니다. 특히 MX Keys와는 달리 모든 키 하나하나에 LED 조명이 달리면서 좀 더 다양한 효과를 즐길 수 있게 된 것도 만족스럽습니다(로지텍의 설명에 따르면 MX Keys는 여러개의 긴 섬유를 통해 모든 키에 불이 들어오게 했지만 MX Mechanical 시리즈의 경우 기계식 스위치를 쓰므로 그 수를 쓸 수 없어서 개별 키에 불이 들어 오는 형태가 되었다고 합니다). 제가 가장 좋아하는 효과는 대비(Contrast)입니다. 문자키는 좀 흐릿하게, 기능 키가 밝게 불이 들어와서 매우 아름답고 실용적입니다. MX Keys와 마찬가지로 손을 얹어놓으면 불이 들어오고 키보드에서 손을 일정 시간 이상 떼면 불이 꺼지는 기능을 내장하고 있습니다. 물론 배터리는 어마무시하게 먹는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습니다.

사실 이 제품은 (잘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로지텍의 사무용 키보드 중에서 메커니컬 스위치를 채택한 첫 기종은 아닙니다. 뭐, 본격적으로 힘을 주고 있다는 점에서는 차이가 있습니다만 게이밍 제품군은 물론 사무용 제품군에서도 메커니컬 스위치(이때는 적축이었을 겁니다)를 채택한 기종을 내놓은 바가 있습니다. 게이밍 시장에서 G913 라이트스피드가 은근히 인기가 있다고 들었는데 그래서 품질 이슈에 커다란 우려를 하지는 않았습니다. 다른 분이 어떠신지는 몰라도 로지텍 제품을 쓰면서 사후 서비스를 받을 일이 전혀 없었던 것도 이유긴 합니다, 요컨데 Anywhere MX(1세대 MX Anywhere, M905)는 09년에 처음 두 대 사서 아직까지도 이슈가 있는 녀석이 없을 정도인데요. (물론 후계기종이 생기면서 사용량이 줄어든건 감안하더라도) 그래서 방심을 했습니다.

이 녀석은 제가 겪은 것만 크게 두가지 초기 품질 이슈가 있었습니다. 일단 MX Mechanical이나 MX Mechanical Mini나 공통적으로, 플라스틱 프레임이 약간 뒤틀려 있어서 경사각 받침대를 세울 때, 덜그덕 거리는 현상이 있었습니다. 이걸 교환을 하기 직전에 가서 아주 간단한 해결책을 전수받았습니다.

살짝, 힘을 크게 준 것도 아닌데 비틀어 보니 정말로 거짓말처럼 덜그덕거리지 않게 되었습니다. 1mm의 오차도 없이요. 두 기종 다 그랬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국 MX Mechanical은 교환을 보낼 수밖에 없었는데, 이유는 어처구니 없게도 Enter키가 두개 있어서 였습니다. 왼쪽 Shift와 오른쪽의 Enter키가 색과 크기가 똑같은데 왼쪽 Shift 키 자리에 Enter 키캡이 꽂혀서 출하되었고 저는 평소하던대로 키를 보지 않고 타이핑을 하다보니 며칠 지나기 전까지는 여기에 Enter 키 캡이 꽂혀있다는걸 몰랐습니다. (웃픈 얘기지만 사진까지 찍어놓고 업로드까지 했지만 저를 비롯해 아무도 몰랐습니다)

위의 이미지를 보시면 MX Mechanical Mini에는 왼쪽 Shift가 정상적으로 꽂혀져 있지만 위에 있는 MX Mechanical에는 Shift 대신에 Enter가 꽂혀져 있다는걸 아실겁니다. 이걸 사진을 찍어서 판매처에 보내주니 얼마나 황당 해하던지… 잠시 웅성웅성 거린 끝에 바로 반품&교환을 해주겠다고 대답을 받았고 현재 돌려보낸 상태입니다. 그래서 이 글은 일부는 MX Mechanical로 그리고 나머지는 MX Mechanical Mini로 입력하고 있습니다.

아마 이 글을 보시는 분 중에서는 텐 키가 있는 MX Mechanical이나 아니면 텐키리스인 MX Mechanical Mini 중 어느것을 사느냐를 두고 고민하실텐데요. 솔직히 ‘책상을 깔끔하게 쓰고 싶다’라는 당초 목표를 이룬다면 Mini가 현명합니다. 컴팩트 키보드(75% 사이즈)지만 펑션키와 텍스트를 입력하는 작업을 할 때 많이 사용하는 키가 해피 해킹과는 달리 측면에 줄러리 있고, 그리고 커서 키가 멀쩡히 있죠. 문자키는 전부 19mm 키 피치를 확보했고, 주요 기능키도 거의 풀사이즈와 다를바가 없지만, 우측에 위치한 일부 기능 키가 사이즈가 MX Mechanical에 비해서 줄어들기는 했습니다. 하지만 아마 거의 사용하시는데 지장은 없으실 거에요. (펑션키 얘기를 하자면 QWERTY 위에 디스플레이 밝기 조절 키와 이전곡/다음곡 키가 사라졌고, 10키가 없으므로 10키 위에 있는 계산기, 데스크톱 보기, 찾기는 사용할 수 없습니다. 대신 스마트폰이나 헤드폰등에서처럼 재생 버튼을 두번 누르면 다음 곡, 세번 누르면 이전 곡이 나오고 화면 잠금 기능은 Fn+Del키로 가능)

그래서 사실 저렴하기도 하고 Mini를 사용하셔도 전혀 지장이 없을 겁니다. 엑셀 등 사무작업으로 인해 숫자를 많이 입력해야 하시는 경우를 제외한다면 말이죠. 근데 그것도 책상에 여유가 있을 때 얘기고 위의 사진처럼 꽤 많은 공간을 절약할 수 있어서 게이밍 키보드에서 TKL이 인기인 이유가 ‘마우스와 키보드를 손을 옮겨가며 사용할때 손을 움직이는 거리가 줄어든다’인데 똑같이 들어맞는다고 할 수 있습니다.

슬슬 이 글의 종반으로 접어드는데, 마지막으로 언급할 점은 3대 동시 접속, 블루투스 및 Logi Bolt수신기 지원이라는 점입니다. 동시 접속 운운은 사실 앞서도 말씀했으니 생략하고, 연결은 블루투스와 Logi Bolt 수신기 경유로 가능합니다. 블루투스로도 안정적이어서 채터링 등이나 끊김등의 문제를 겪지는 않았으나 맥의 경우 FileVault 해제 문제, 그리고 윈도우 PC의 경우 UEFI 설정 문제 등이 있어서 리시버 사용이 무난할 때가 있습니다. 그리고 로지텍 왈 지연이 향상되었다고 하지만 체감상 느끼기는 어렵습니다. 다만, 리시버를 사용하면 왠지 연결까지의 속도가 훨씬 덜 걸리는 것 같습니다. 이는 Logi Flow를 사용할때 연결 속도가 차이가 나기 때문에 은근히 작업의 효율과 흐름을 끊지 않는 요소가 되어주고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Logi Bolt는 Unifying과 호환성이 없지만 6대까지의 호환기기를 하나의 수신기로 연결 가능하며 보안이 향상되었습니다. (페어링 과정부터가 좀 더 엄격해졌습니다, 어렵지는 않으니 걱정마세요) MX Keys Mini 때는 Logi Bolt 수신기를 안줘서 때아닌 품귀를 빚기도 했는데, 안심하셔도 됩니다. MX Mechanical/MX Mechanical Mini 그리고 동시에 출시된 MX Master 3S 모두 박스에 Logi Bolt 수신기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마우스와 키보드를 사시면 최소한 수신기를 두 개 가지게 되시는 셈이니 두대의 PC나 맥에 바로 연결해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다만, USB-C 버전 같은건 없으니(바가지 씌우는 듯한 가격의 변환 어댑터는 따로 팝니다) 맥에 수신기를 연결하실때는 별도의 허브나 동글이 필요합니다. 저는 Unifying과 함께 로지텍 마우스 키보드에만 두개의 수신기를 써야하는 상황이 탐탁치가 않습니다. 여기에 Logitech G 제품군을 쓰신다면 Lightspeed 수신기도 따로 쓰셔야 해서 로지텍 제품 수신기만 3개를 써야하는 웃기지도 않는 상황에 직면할 수도 있습니다.

MX Mechanical과 MX Mechanical Mini는 기존 로지텍 Master Series(MX 시리즈) 마우스나 키보드를 사용하셨던 분들 중에서 기계식 키보드를 선호하시는 분들에게 최대한 MX 시리즈의 기존의 장점은 계승하면서 어느정도 정평이 나있는 브랜드의 스위치를 채용한 기계식 키보드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습니다. 그러나 제가 겪은 두가지의 퀄리티 문제를 포함해서 악명 높은 사후지원(추후 포스트 예정)은 좀 걱정입니다. 긴 글 읽어 주셔서 굉장히 감사드립니다.

추기(2022/06/28):
이 제품은 N-키 롤 오버(N-Key Roll Over,NKRO)를 지원하지 않습니다. 동시 입력은 USB HID의 한계인 6키 까지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쿄애니 사건 3주기를 앞두고 드는 생각

흔히 ‘극한의 참사에서 인간의 본성은 가장 잘 드러난다’는 말을 한다. 인간의 본성이 무엇인지 확신이 서지 않지만 교토애니메이션 방화 살인 사건의 현장 인근 주민들이 ‘불특정 다수가 찾아오는 상황이 계속 되고 있다’며 현장 공원화나 위령비 설치에 반대한다는 입장에 얼굴이 찌뿌려진다.

원래 쿄애니 사옥 부근은 (옳고 그름을 떠나) ‘성지 순례’하던 오타쿠들이 이따금 찾아가서 기념 사진 정도 찍고 오는 장소였다. ‘성지 순례’가 ‘추도’가 되었을 뿐이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건물 자체가 사라진 김에 앓던 이 뽑자’ 심보가 아닌지 생각이 드는건 내가 마음이 흉하기 때문인가?

거기에 비를 세우거나 공원을 만든 들 얼마나 많은 사람이 몰려들겠는가? 하더래도 기껏해야 합장하는 정도밖에 더 되겠는가? 공원이나 비를 세워놓으면 추도한다고 방문객들이 놓은 공물이 눈에 띄고, 사건을 플래시백 한다는 생각이 들 수는 있다. 하지만 그건 쿄애니측과 조율해서 추도 시설물 자체를 길가에서 바로 눈에 안띄게 놓는다던지 방문객에게 공물을 삼가달라고 요청하던지 하면 될 문제라고 생각한다.

나는 비슷한 유례가 없는 참사를 리얼타임으로 목도했다. 500명이 사망한 삼풍백화점 붕괴사고가 그것으로, 해당 사건 추도비가 님비로 인해 사건과는 전혀 연고가 없는 땅에 들어서고 현장에는 고급 주상복합 아파트가 들어선 것이 떠오른다.

설령 이 모든 점을 참작하더라도 근린 주민 입장에서 상기하고 싶지 않은 사건을 떠올리는 무언가를 ‘확정 된 형태’로 반영구적으로 남기기 싫은 마음이 아예 이해가 안가는 점은 아니나, 여기서 인간의 본성을 묻고 싶다.

공감하는 마음, 이것이 살인귀에게는 없고 우리에게는 있는 인간으로써의 본성이라고 생각한다. 근린 주민의 심경이나 근린 주민과 마찰을 일으키지 않고 싶은 쿄애니 측 심경을 이해는 하지만 미증유의 참사를 겪고 나서도 전혀 엉뚱한 곳을 기리게 된 한국인의 전철을 다시 밟는 우를 저지르지 않기를 바란다.

나는 사건 발생 당일부터 거의 3년이 다 된 지금까지 관련 소식을 쫓고 있으나(#쿄애니사건 해시태그 참조), 이미 줄어든 기사만큼이나 관심이 줄었고 염려하던 풍화는 이미 일각일각 일어나고 있다. ‘좋은게 좋은거지’ 하며 사건 자체를 망각의 저편으로 묻는다면 필경, 훗날 후회하게 될것이다. 그렇게 유야무야 ‘묻어두기’하는 풍조가 근현대사 교과서를 비롯해서 오늘날 한일(韓日) 관계의 여러 악폐를 낳고 있음을 굳이 언급할 필요도 없을 터이다, ‘묻어두기’는 일견 편리하지만 굉장히 많은 왜곡을 낳는다. 방학숙제를 미뤄두는 것과 다를게 없다. 한번 어긋나버린 것을 수복하기는 매우 어렵다. 미뤄둔 숙제를 개학을 앞두고 한꺼번에 해결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일본의 뜻을 같이하는 동지들이 부디 삼풍백화점 붕괴사고 위령비와 비슷한 과오를 저질러 오랜 세월 동안 괴롭지 않기를 간절히 바랄 뿐이다.

마지막으로, (글을 올리는 시점에서) 이틀 뒤인 6월 29일은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가 있었던 날이다. 내게 있어 6월 29일과 7월 18일은 비슷한 의미가 있는 날이다. 두 사고의 부상자와 희생자, 그리고 그 가족들과 친지들에게 심심한 위로를 전하고 싶다.

애플 코리아와 절교하던 날

사실 애플이라는 회사는 맺고 끊음이 확실한 회사라고 생각합니다. 자신과 관련이 있을때는 매듭처럼 단단히 자신에게 묶여 있을 것을 요구하면서도, 관련된 무언가가 끝나면 그야말로 칼로 매듭 자르듯이 뒤끝없이 잘라버리는 회사라고 저는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2012년~2014년경 쯤 애플 코리아와 연락을 하며 이런 저런 제품을 빌려서 사용해볼 기회가 있었습니다. 요즘 유튜브에 보면 제품을 ‘협찬’ 해주는 것도 쉽사리 봅니다만 애플은 어디까지나 ‘대여’를 해주었습니다. 대여 해줬다고 해서 이득을 취하는 것도 없고, 마케팅적으로 이건 말해라 저건 말하지 말라 같은 지시도 (저 같은 경우) 안했습니다. 그러다 저를 담당하던 직원이 퇴직하고 나서 대여 유닛을 빌릴 수 있는지 연락을 했을 때, 더 이상은 곤란하겠다고 해서 담담하게 알겠다 하고 끊었었고, 그게 애플, 애플 코리아와 매듭이 끊긴 시기라고 생각했었습니다.

…만서도 언젠가부터 계속 애플 코리아 PR에서 메일로 홍보 자료를 보내더군요. 고해상도 사진이며 이것저것 포함된 프레스킷을 말이죠. 늘 맘에 들지 않는 거였지만 애플은 철두철미하게 제 메인 주소가 아닌 블로그용 서브 주소로만 연락을 해왔고 홍보자료도 그쪽으로 왔습니다.

작년에 M1 아이패드 프로 12.9″를 주문했었습니다. 기억하시는 분은 다 기억하시겠지만 M1 iPad Pro 12.9″ 모델은 코로나 팬데믹에 반도체 대란에 miniLED 수율 저조까지 합쳐서 배송이 엿가닥처럼 늘어졌었죠. 그래서 혹시나 해서 늘 메일을 보내던 애플 PR에 사정을 적어 메일을 보내봤습니다만 대답은 없었고 그 이후로 홍보 자료도 오지 않았습니다.

애플하고 사이좋게 절교하는 방법은 생각보다 간단했던 것 같습니다. 메일 한 통이면 됐어요. 참 쉽죠?

로켓배송이라는 마약에 관하여

인터넷으로 버튼을 눌러 물건을 사면 종종 소소한 쾌락을 느낄 때가 있다. ‘주문이 완료되었습니다’ 라는 한 마디에 안도하며 말이다. 그리고 이제 오나 저제 오나 하며 기다리고 기다리다가, 기다리던 물건 상자가 도착하면 뇌가 바빠지는 느낌이다. 흥분한 마음을 진정시키고 칼을 꺼내서 상자를 개봉해보자…

<쿠팡>을 쓰다 보면 이런 일련의 과정이 굉장히 단순화 되어 있다는 생각을 할 때가 있다. 5만원 이하의 단품 구매인 경우에는 조나단 아이브가 죽여버렸다고 생각한 ‘밀어서 잠금해제’ 아닌 ‘밀어서 결제’로 끝나는 경우가 태반인데 몇 초면 결제가 끝나고 그 속도나 편의성은 굉장히 뛰어나다.

‘몇 시간 이내로 주문하면 오늘 중으로 받을 수 있다’던가, ‘내일 새벽에는 도착한다’던가, ‘몇 개 밖에 남지 않았다’던가. 그런 재촉 문구를 보며 안절부절 못하다가 ‘밀어서 결제’를 해서 ‘주문이 완료되었다’라는 말을 보면 그렇게 안도가 될 수가 없다.

솔직히 말해서 다 이것이 쿠팡의 노림수라는 것을 알면서도 말이다. 만약 물건을 지르는 과정에 사람이 일정한 쾌락을 느낀다면 물건을 받는 순간에도 당연히 쾌락을 느낄 것이다. 쿠팡은 <당일 배송>이니 <새벽 배송>이니 하며 그 쾌락을 다른 업체 보다 빠르게 가져다 준다고 약속한다. ‘지름의 쾌락 사이클’을 한층 가속화 시킨 느낌이다. 사람들은 마치 아편에 중독된 것 마냥, 또 다시 쿠팡으로 향한다. ‘로켓배송’이 또 다시, 그리고 끊임없이, 지체없이 자신의 쾌락중추를 자극해주기를 기대하며. 그 댓가로 푼돈에 노동자가 갈려나가고 있고, 진짜 큰 돈은 쿠팡과 쿠팡의 투자자들이 번다.

나 스스로도 빠져있는 이 상황이 과연 바람직한 상황인지 생각에 잠긴다. 새벽 3시 6분이다. 오늘 새벽에도 얼굴 모를 누군가가 아마 문앞에 뭔가를 놓고 사라질 것이다. 산타는 1년에 하룻밤 오지만 쿠팡맨은 휴일도 없이 매일 밤 왔다가 소리 없이 사라진다. 솔직히 문제가 있다는걸 알면서도 로켓배송을 끊지 못하는 내 자신에 약간은 환멸감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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