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의 아이(天気の子)’ — 매우 늦은 감상

삼십 수년 정도 살다보니 ‘정신머리가 어떻게 됐나’ 싶은 실수를 할 때가 있습니다. 요컨데 ‘날씨의 아이(天気の子)’를 보고 나서 감상을 썼다라고 생각했는데 정작 검색을 해서 과거 아카이브를 뒤져보니 한줄도 적지 않았을 때, 같은 거죠. 얼마전에 넷플릭스에 올라온 날씨의 아이를 다시 감상했고 실수를 발견한 김에 뒤늦게나마 감상을 적는 것이 합당하다고 생각합니다.

신카이 마코토 씨가 원작과 각본, 감독을 맡은 2019년 작품이지요. 2016년에 공전의 히트를 친 ‘너의 이름은.’ 이후로 기대와 관심을 받은 3년만의 신작이었고 덕분에 그 해 솔찮히 흥행했습니다. 다만 평가는 다분히 갈렸는데, 제 주위의 경우 주로 신카이 마코토의 올드팬들(이라고 적고 아저씨들)이 호의적으로 본 반면 나머지는 좀 미묘하다는 반응이 많았습니다.

저 같은 경우 이전에 포스트에도 적었지만 열이 끓거나 발을 다치거나 하는 악재가 겹쳐서 극장에서 보지 못했습니다만 그 이후로 DVD/블루레이가 나올때까지 스포일러를 보지 않기 위해서 완전히 정보를 차단하고 있었습니다. 옛날에 나무위키에서 ‘4월은 너의 거짓말’ 스포일러를 당한 이후로 아예 미감상 작품의 경우에는 위키위키나 구글 검색도 섯불리 안하다보니 나름 사전정보를 차단한채 보는게 가능했습니다.

그래서 제 느낌은 한마디로 어땠냐면 오랜만에 신카이 감독이 하고 싶은걸 다 했다. 라고 생각이 들더라고요. 카 체이스라던가 철로를 달린다거나. 그리고 그 모든 것은 결국 ‘소년이 소녀를 (다시) 만나기 위해’ 라는 단순한 이유 때문이죠. 물론 그 주변 상황이라는게 그리 단순하지는 않습니다만… 최소한 그 단순하지 않은 상황에 정합성을 주기 위한 복선은 주도면밀하게 깔려있고 너의 이름은. 때 처럼 팬들이 추리를 하게 만드는 큰 모순이나 의문표는 없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야기를 만드는 것에 있어서 가장 힘든 것은 처음의 한 발자국을 어떻게 내딛느냐라고 생각하고요. 첫 발자국을 내딛고 뒤를 돌아보지 않고 달려나가는 그런 기세가 없으면 애당초 아마 작품은 완성되지 않을 것이고 완성되지 않은 명작보다 흠결이 있더라도 완성된 작품이 훨씬 가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을 쌓아나가서 작품에서 흠결을 조금이라도 없애나가는, 그 방법을 발견해나가는 것 밖에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 – Apple ‘맥의 저편에서(Macの向こうから)’ 중.

오히려 ‘너의 이름은.’ 때가 신카이 씨가 좀 얌전(?)했던 작품이 아니었나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해서 어느 정도 돈이 모이고 체제가 갖춰진 다음에 자신이 해보고 싶었던 것을 마음껏 내지른게 아닌가, 그렇게 생각합니다. 극중 대사를 따서 “어른이 되라“라는 표제로 유명한 비평도 떠오릅니다만. 이 비평을 보고 나서 처음으로 이 작품을 보고 나서 느낀것은 ‘아이면 어떠냐.’ 라는 것이었습니다. 짐작컨데 꽤나 돈을 끌어 모았을 것이고 어른의 사정이 얽혀있을 테지만 신카이씨가 일생을 통틀어 어른을 주인공으로 이야기를 만든 것은 꼴랑 ‘그녀와 그녀의 고양이’ 정도일겁니다. (굳이 꼽자면 ‘언어의 정원’의 유키노가 어른이긴 합니다만) 그는 반평생을 소년 소녀가 엇갈리고 다시 만나는(그리고 그것보다 더 많은 빈도로 다시 못만나는) 이야기를 그려온 사람입니다. 명성을 얻고, 자금이 윤택해졌다고 해서 저버리기에는 배운게 도둑질인 셈이죠. 저는 궁예가 아니고 관심법을 쓸줄도 모르며, 점쟁이가 아니라 미래도 모르지만 신카이 씨가 ‘어른의’ 작품을 만들 날은 오지 않는게 아닐까 생각하게 됩니다. 제가 초속 5센티미터를 극장에서 봤을때의 일입니다. 1부 종반에 타카키와 아카리의 키스신에서의 독백이 흘러나오자 누군가가 ‘풋!’하고 비웃듯 웃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매너문제는 차치하더라도 사실 ‘꼬맹이 주제에 못하는 소리가 없군’ 이라는 생각을 할 수 있습니다. ‘어른이 되라’는 비평을 보며 그 에피소드가 떠올랐습니다. 신카이 씨는 예나 지금이나 ‘세카이계’속 세상을 살아가고 말하는 사람이라는걸 2019년 영화에서 증명한 셈입니다. 앞으로도 어지간한 일이 없다면 그는 계속 ‘세카이계’의 계승자로써 남아갈 것 같습니다. 단지 소녀를 다시 만나기 위해서, 분단이 된 나라에서 비행기를 만들어 거대한 탑으로 날아가고, 언제 닿을지도 모르는 빛의 거리 너머의 연인에게 편지를 보내던 소년들의 마음과, 열정과 사고 방식이 주인공인 호다카에게도 보입니다. 아마 그러하기에 신카이 올드팬을 자처하는 주변사람들에게 평이 좋았나 생각할 따름입니다.

굳이 이 작품의 의의를 찾자면 다 죽어버린 세카이계를 위한 장대한 러브 송 정도로 생각하면 될까요. 말이 안되는 구석이 있을지 몰라도, 설령 그것이 세계를 전부다 휘어버릴 정도로 거대하게 말이 안되는 것이라하더라도, 그것이 세카이계니까요. 전세계가 돌아서는 가운데에서(世界が背中を向けてもまだなお 立ち向かう君が今もここにいる) 사랑으로 가능한 것은 아직도 있을까?(愛にできることはまだあるかい)는 질문에 네가 준 용기를 너를 위해 쓰고 싶다(君がくれた勇気だから 君のために使いたいんだ)라고 대답하는 작품이 아니겠습니까.

ps. 여담으로 고등학생이 ‘우연히’ 총을 발견하는게 현실미가 없긴 했습니다만 개봉 이듬해 하치오지에서 고등학생이 스미스 앤 웨슨 리볼버로 자살하는 사건이 벌어졌죠. 현실은 언제나 픽션을 능가하는 모양입니다.

에어팟 맥스에 관해서 드는 생각

저는 에어팟 맥스를 한국에 출시하자마자 구입해서 사용하고 있습니다. 받은 물건에 흠집이 나있지 않나, 업데이트한 펌웨어 3C16 이후로 그 악명 높은 케이스에 넣어도 배터리가 줄줄 새서 자고 일어나보니 1%밖에 남지 않았다던지 하는 문제가 있었습니다만…(일단 이 문제는 며칠전 배포된 3C39 펌웨어로 해결 된 것 같아보입니다) 일단 ‘소리를 들려주는 제품’으로써 그럭저럭 만족하고 있습니다.

이 제품에 대해서 여러가지 비평/비난/불평/불만 있는 줄 압니다만 의외로 실제로 써본 분들의 평가는 찾아보기 힘들다는 점입니다. 뭐 ‘X을 찍어 먹어봐야 X인지 아냐?’ 라는 당연한 생각도 듭니다만 ‘장님 코끼리 만지기’ 같은 써보지도 않고 내질러보자 하는 식으로 하는 얘기가 은근히 많더군요.

저는 소니의 1000X 시리즈는 오리지널 1000X를 빼고 2세대부터 4세대까지, 보즈는 QC15/35/35 ii, NC700을 가지고 있고 애용해왔습니다. 시장에서 가장 많이 사랑 받는 기종들이 NC700이나 1000XM4다보니 가장 많이 비교되는 것도 알겠습니다만 사실 이 3기종은 모두가 매우 다릅니다.

아직 에어팟 맥스에 대해 리뷰를 할 생각은 아닙니다만(어느정도 갈음하게 될 수도 있습니다만), 경험상 이어폰이나 헤드폰이나 일정 금액선의 역치를 넘어서면 가격이 올라가는 것과 음질의 향상이 매치되지 않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요컨데 말하자면 5만원에서 30만원짜리 이어폰으로 업그레이드 할 때 느끼는 음질향상의 폭보다 30만원짜리 이어폰을 50만원짜리 이어폰으로 업그레이드할때 느끼는 향상 폭이 훨씬 적습니다. 20만원만큼의 음질 향상을 직접적으로 느끼기 쉽지 않다는 얘기입니다.

에어팟 맥스 역시 그러한 감이 어느 정도 있고 소니나 보즈의 40만원대 중후반 가격에 비해 비싼 가격 1원 1전 빈틈없이 돈값을 하느냐 하면 그렇지 않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만, 그렇다고 해서 소니나 보즈보다 못하거나 이들을 앞서지 못하는가 하면 제 개인적인 평가로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단지 문제라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비싸다 라는 점이겠죠.

사실 한국에서 에어팟 프로와 신제품인 에어팟 맥스의 기능 중 ‘공간 음향(spatial audio)’을 체험할 수 없는 점도 많은 분들이 이 제품만의 가치를 도출하지 못하는 이유라고 생각합니다. 몇번 영화를 보면서 체험해봤습니다만 대단하더군요. 혹시 두 제품을 가지고 계시다면 여러분도 한번 해보셔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방법은 어제 올렸습니다)

전원이 제대로 꺼지지 않아서 고생하면서도 만족스럽게 썼습니다. 생전 전원 스위치가 필요하지 않다고 주장했던 잡스의 생각에 따라 아이팟에는 홀드 스위치는 있었지만 전원이 없었고, 아이폰에도 “잠자기/깨우기” 버튼은 있었지만 전원은 없었습니다.

잡스는 이렇게 주장했다. 전원 스위치는 전혀 필요가 없는 장치다. 그것은 미학적으로나 신학적으로나 조화롭지 못하다. 사용하지 않을 때는 자동으로 ‘동면’ 상태로 들어갔다가 사용자가 아무 버튼이나 누르면 다시 깨어나도록 만들면 된다. 굳이 기계를 꺼내고 버튼을 눌러서 ‘작별을 고하게’ 할 필요가 없는 것 아니냐.

<스티브 잡스> 월터 아이작슨

그래서 그냥 걸어두거나 케이스에 넣어두었다가 쓰기만 하면 사용할 수 있는 이 제품의 편의성은 발군이고, 이것 역시 에어팟 맥스의 미덕이라고 생각합니다. 누가 뭐래든 제가 좋으면 좋은거니까요. 일단 이쯤 하고 정식 리뷰는 좀 더 생각해보고 올리겠습니다.

이런저런 무선 헤드폰/이어폰을 시험하고 있습니다

최근 이런저런 무선 헤드폰과 이어폰을 시험하고 있습니다. 트위터를 팔로우 하시는 분이라면 아시겠지만 일단 에어팟 맥스(AirPod Max)를 발매일에 받아서 쓰고 있고 그 외에도 Bose QuietComfort Earbuds를 2월 초에, Sennheiser Momentum True Wireless 2를 2월 하순에 구입해서 들어보고 있습니다. 셋다 정말 어디 하나 내다버리기 힘들 정도로 훌륭한 제품입니다만, 상세한 리뷰는 언젠가 올리도록하고, 오늘은 그냥 이 제품들을 쓰다가 든 생각입니다.

1세대 에어팟과 Bose QuietComfort 35를 쓰기 전까지는 사실 무선 헤드폰에는 커다란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렇지만 이제는 유선 제품 구입은 완전히 멎었고 무선 제품으로 돌아섰는데요. 그 커다란 이유는 (잘 알 수 없는 ) 음질의 열화보다는 선에 구애받지 않는다는 점이 너무 편리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에어팟이 그렇고 QC35가 그렇고… 블루투스 제품들은 하나같이 수명이 그리 길다고 할 수 없습니다. 매일 쓴다고 가정하면 2~3년 이상 쓰면 잘 썼다고 칭찬받을거 같아요. 제가 가지고 있는 유선 이어폰들이 SE530이나 Triple.Fi, UM2, ER-4P, UE900, B&O Earphones A8 등등 아직 커다란 하자 없이 작동하는데 모두 거의 구입한지 10년 안팍이나 됐습니다.

얘네들 가격이 비싸게 나가봐야 50만원하던 SE530을 생각해보면 2~3년 쓰기 위해서 40만원을 들여 모멘텀 트루 와이어리스2를 쓰는것에 뭔가 위화감을 느낍니다. 전자 쓰레기의 산을 만드는데 일조하는거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고.

편리함을 주는건 좋은데 가성비도 안좋고 환경에 대한 임팩트도 너무 크군요. 에어팟 이래 봇물을 이룬 이것 또한 애플의 원죄라고 해야할까요.

요츠바랑! 15권

요츠바랑! 15권을 3월 초에 받아서 두번째 읽고 있습니다. 요츠바의 성장, 그리고 아버지에 감정이입이 느껴지는 에피소드가 많아서 “아, 혼기가 찼구나’ 라고 스스로 생각하게 됩니다. 작가인 아즈마 선생 말하길, 3년만에 대폭 양을 늘려서 출간한 책이라고 합니다만, 양은 평소대로 해도 되니까 3년보다는 짧은 간격으로 출간해주었으면 하는 바람아닌 바람이 있습니다. 그리고 전자책도 다음 책이 나올 때 즈음을 시사하고 있던데 좀 일찍 내주어서 요츠바랑을 인생의 상비약으로 삼고 있는 저로써, 요츠바랑이 생각 날때마다 책장에서 전질을 바리바리 싸가지고 와서 쌓아놓고 읽지 않게 해주었으면 좋겠다… 라는 생각을 합니다(네, 정발판은 전자책이 있습니다).

스포티파이-카카오엔터의 인의 없는 전쟁, 그리고.

스포티파이가 한국에서 서비스를 개시했을때 감상을 적은 포스트에서 이렇게 적은바가 있습니다.

앞으로 스포티파이가 어떻게 하느냐에 달려 있는 문제이지만 일단 서비스가 시작된 이상 한국외 시장에서는 자사 서비스에 올라타서 꿀을 빨면서 정작 한국내 시장에서 무기화하는 것이 오래 갈것인가 생각해봅니다. 애플은 실패했지만 시장 영향력으로 볼 때 전세계적으로 애플이 커피면 스포티파이는 TOP니까요.

그리고 스포티파이는 아니나 달라 이 꼴을 두고보지 않았지요. 전세계 K-POP 팬들을 등질 각오를 하고 아예 카카오 엔터테인먼트 쪽 아티스트를 전부 철수 시켜버리는 강경책을 구사해버렸습니다. 그리고 카카오는 이 싸움에서 화려하게 패배했습니다. 사실 스포티파이는 2위인 애플 뮤직의 거의 2배 가까이 되는 시장 점유율을 가지고 있어서 그걸 믿고 이렇게 강경책을 구사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카카오의 경우 저를 비롯해서 여론도 좋지 않은 마당에 전쟁을 해야했고 결론부터 말하면 실리도 잃고 욕만 잔뜩 얻어먹은 격이 되었습니다.

어찌보면 글로벌 기업의 냉정함이라고 할까요. 아무리 황금알을 가져다 주는 컨텐츠를 제공하더라도 어디까지나 그건 자사 사업을 위한 교두보일 뿐이라는 생각이 드는군요.

ps. 자, 그럼 스포티파이에 이어 전세계 2위 사업자인 애플뮤직도 수도꼭지 잠그기를 시전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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