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가지 커다란 사건을 떠올리다
쿄토 애니메이션 방화 살인 사건, 일명 쿄애니 사건이 일어난지 벌써 넉달이 되었습니다. 저는 사건이 일어났을때 자고 있었고, 사건이 상상이상으로 커졌을 무렵 깨었고 그 때부터 제 인생이 달라졌다고 해도 과언은 아닙니다. 이런 감각이 처음은 아닌데, 이제 막 전송되기 시작한 HD 화질로 쓰나미가 밀려드는 해안가 도시를 보여주던 11년 어느 날이나, 언제나 그랬듯이 텔레비전 뉴스 채널을 맞추고 잠든 채 일어나보니 가라앉는 배를 보던 때가 생각납니다.
7월 18일 이후로 일본 언론을 긁어서 관련 소식을 모았고, 이후 이 뉴스를 보고 싶지 않은 사람이 있을 지 모른다 내지는 이 뉴스를 나중에 검색하고 싶을 사람이 있을지 모른다는 의견을 받아서 #쿄애니사건 이라는 해시태그를 써서 뉴스를 트윗 했습니다. 이 해시태그는 다른 사람도 간간히 쓰다가 이제는 완전히 제 독점 태그가 되어 버렸습니다. 사실 해시태그라는것이 다중(多衆)이 사용하기 위해 만든 것도 있고, 발신하는 측에서 독점하는 경우도 있습니다만, 관심이 옅어진 것 같아 조금 쓸쓸하기도 합니다.
사건 직후에
사건 이후, 뉴스 창을 10개 넘게 열어놓고 새로고침을 해가고 검색을 해가며 올리던 때가 있었습니다만, 이후로는 뉴스 검색을 이용했고, 지금은 키워드 알림을 메일과 RSS로 받아가며 큼지막한 건을 올리고 있습니다. 정신을 차려보니 한달이 지나고 두달이 지났는데 언론의 관심도 많이 줄어들었고 기사도 줄었고 제 에너지도 많이 줄었다는 것을 느낍니다.
비공개 및 공개 추도 행사도 무사히 끝났고, 쿄애니의 감사 이벤트도 일부가 치뤄졌습니다. 격년 행사인 이 이벤트가 끝나고 저는 2015년에도 17년에도 직접 가지 못한 것을 통탄하며 사후 통판에 뭐가 나올지 뭘 지를지를 고민하며 지갑 사정을 보며 한숨 짓곤 했습니다.
이건 테러입니다
작년에 있었던 개인적인 사정으로 여러모로 19년에는 15년/17년 두 해에 비해 대폭 축소된 예산을 사용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고 짐작하지만. 그래도 지르고 싶었습니다. 지금이라도 그렇습니다. 지를 수 있다면 지르고 싶은 마음입니다. 다행히라고 해야할지 쿄애니의 상품 개발이나 판매 기능은 제1스튜디오와 분리되어, 신제품 일부와 기존 재품의 재판을 활발히 하고 있는 모양입니다만, 솔직히 이미 산것들이 아니라면 카드를 들고 손을 떨고 있었겠지요. 이 사건은 비단 희생자와 부상자, 그리고 그 가족 뿐 아니라 팬들의 일상 역시 산산조각 낸 그야말로 테러라고 해도 부족함이 없습니다.
풍화를 느끼다
어저께 빙과를 마저보고, 오늘 타마코 마켓을 다 봤습니다. 타이틀을 보면서, 엔딩을 보면서 고인이 된 분들을 보면 가슴이 아픕니다. 쓸쓸하구요. 점점 구글이 보내주는 쿄애니 관련 기사가 줄어드는 것을 보면서도 쓸쓸함을 느낍니다. 구글 뉴스에 키워드로 「京都アニメーション OR 京アニ」를 지정해서 둘 중 하나가 나오면 메일이나 RSS 피드에 올라오도록 해놨는데 점점 빈도수나 기사수도 줄어들고 있고, 다른 사건에서 인용으로 거론되는 횟수가 늘어나고 있습니다. 이게 풍화라는건가요.
풍화라니 생각나는데 많이들 이 사건을 잊고 이겨보려고 노력하는 것 같은 점은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바이올렛 에버가든의 공개일이 결정되었고 말이죠(반대로 Free!는 기한 없이 밀려났지만요). 많은 분들이 벌써 직장에 돌아와서 격무를 하실 것을 생각하면 그분들의 심정은 또 어떨지 가슴이 많이 아픕니다. 그래서 공개일이 결정되었다는 사실을 알고 복잡한 마음이 들었고 사실 이 글을 쓰기 전에는 아직 고지 PV는 보지 못했습니다.
마치며
이 글을 쓰는 시점에서 그 좋아하는 신카이 감독의 “날씨의 아이”도 이 핑계 저핑계 대면서 관람을 미루고 있는 마당에 뻔뻔한 말이지만 이 작품이야 말로 정말 도일(渡日)해서라도 봐야 하나 고민하게 됩니다.
아까 ‘두 개의 커다란 사건’을 언급했습니다만, 비단 저만 그러겠냐만서도 이 사건 역시 제 인생을 바꾼 커다란 사건이었습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그럴테죠. #쿄애니사건 해시태그로 뉴스를 올릴때 ‘불타는 제1 스튜디오’ 사진이나 영상이 나오면 미리 경고를 하는 이유입니다.
아오바 용의자가 사실상 첫 취조에 응한 모양입니다. 완전히 계획범죄에 대량 살인을 획책했음이 드러났습니다. 이 사람을 쥐어짜 육포를 만들어도 맘으로는 모자람이 없지만 어찌되었든 4개월 전으로 돌아갈 수는 없으리라는걸 압니다. 세월호 당시 인근에 거주했던 입장에서 그 상처를 공유하는 사람들의 마음도 알고 있습니다. 그나마 상책이 있다면 결국 우리가 하나가 되어 서로를 보듬는 것이 상책이라는 생각이 드는 것입니다. 상처입은 모든 부상자, 유가족, 그리고 지역주민과 팬들에게 위로를 드리며 졸문을 마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