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가 애를 가르치는 한국’에 대해 토론을 하다.

우리 어머니에게 애가 애를 가르치는 한국에 대해서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그러자 우리 어머니는 부모로써 부모의 논리를 방어하셨다. ‘애가 애를 가르치는 한국’에서 나는 이렇게 주장했다.

열두시 넘어 게임을 하니 국가 권력에 의지해 본래는 자기가 이야기하고 상담해서 그만두게 조절해야할 게임을 강제로 멈추게 한다? 그것은 바꾸어 말하면 국가 권력이나 제도, 규제에 의지 하지 않고서는 부모 노릇을 못하는, 미숙한 인간. 돌려말하면 자기 자신의 책임하나, 그것도 부모라는 중대한 임무하나 스스로 생각하고 책임지고 달성하지 못하는, 다시 말해 국가라는 부모의 훈육에 의존하는 ‘애’라는 것 아닌가? (중략) 결국 먹여살리기 바쁘다 이런저런 핑계를 대지만 결국 애 돌보기에 있어서는 어린애일 뿐이다. 바쁘다고 하지만 두 부모 중 한명이 진지하게 아이를 만나서 잠시라도 벌갈아 얘기할 시간을 만들고자 한다면 불가능할 이유가 없다. 핑계에 다름없다. 이유가 어찌됐던 애가 애를 가르치는것이다.

말씀인 즉, 이 논리에 대하여 우리 어머니의 반박은 이러하다.

부모 모두가 6시에 퇴근하여 아이를 훈육할 수 있는 가정은 의외로 많지 않다. 많은 가정이 자영업에 종사하고 있으며 요즘 12시는 되야 문을 닫아야 하는데 12시에 문을 닫으면 1시는 되야 집에 돌아온다. 그러면 어떻게 아이를 돌본단 말인가?

나는 그 문제에 대해 한동안 반박을 하지 못했다. 그러다가 며칠 뒤에 훌륭한 반박을 준비했다.

선진국에서도 백퍼센트 부모가 감시하는지는 나도 모르겠다, 허나 그것을 도와주기 위해서 툴은 존재한다. 아동을 위해서 Parental Control을 PC에 설치하거나 TV의 시청 제한을 걸도록 되어 있다. 이들을 이용하면 암호를 걸어서 아동이 철저히 부모의 허락하에 사용할 수 있도록 제한한다. 메신저나 SNS 등을 부모 허락하에 사용하도록 소프트웨어가 판매되고 있고 기본적으로 OS에 설치되어 있는 경우도 있다. 스마트폰에도 그러하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전혀 발매되고는 있으나 팔리지도 않고 인터넷 업체에서 제공되고 있으나 사용하지도 않고, TV회사에서 잠금기능을 제공하고 있으나, 쓰는지 의문이다.

어머니는 이제 역으로 ‘투쉐’를 외치는 입장이 되고 마셨다. 애가 애를 가르친다는 이론에는 변함이 없는 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