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가 애를 가르치는 한국

셧다운제가 논란이 된 적이 있다. 비단 게임 말고도 인터넷이나, 텔레비전에서 유해 미디어에 대해서 말이 많다. 우리나라에는 ‘청소년에게 유해하니까’라는 이유로 국가가 제한하는 것이 참 많다. 그리고 정치인들은 대체적으로 사회적인 분위기 내진 ‘부모’인 유권자의 환심을 사기 위해서 그 규제를 만들거나 규제를 한다. 나라가 규제를 만들어서 제도로 막아주면 우리 아이가 안전해질 것이다. 보호될 것이다. 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적극적으로 제창, 찬성 내지는 묵시하는 것이리라.

나는 이것을 두고 ‘애들의 발상’이라고 생각한다. 바꿔 말해서 ‘애들의 장난’이며, ‘애가 애를 가르치려 드는 것’ 이라고 본다. ‘어른’이란 무엇인가, 스스로 생각하고 스스로 행동에 책임을 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럼 자기 자식에 대해서 제대로 된 부모라면, 가령 셧다운제에 대해서 예를 들어보자, 아이가 열두시 넘어서 텔레비전을 보거나 게임을 하지 않도록 지시하는 것이 정상 아닌가? 만약 학교에 돌아와서 열두시 넘어서 밖에 게임을 할 시간이 없다면, 그것에 의문을 품어야 하는 것이 정상 아닌가?

그것을 두고 열두시 넘어 게임을 하니 국가 권력에 의지해 본래는 자기가 이야기하고 상담해서 그만두게 조절해야할 게임을 강제로 멈추게 한다? 그것은 바꾸어 말하면 국가 권력이나 제도, 규제에 의지 하지 않고서는 부모 노릇을 못하는, 미숙한 인간. 돌려말하면 자기 자신의 책임하나, 그것도 부모라는 중대한 임무하나 스스로 생각하고 책임지고 달성하지 못하는, 다시 말해 국가라는 부모의 훈육에 의존하는 ‘애’라는 것 아닌가? 일어나서는 굵은 수염을 밀고 와이셔츠나 드레스셔츠를 입고 타이를 매고 수트를 입고 구두를 신고 출근은 하지만 사실은 그건 단지 나이가 먹어서 떠밀려서일 뿐, 결국 먹여살리기 바쁘다 이런저런 핑계를 대지만 결국 애 돌보기에 있어서는 어린애일 뿐이다. 바쁘다고 하지만 두 부모 중 한명이 진지하게 아이를 만나서 잠시라도 벌갈아 얘기할 시간을 만들고자 한다면 불가능할 이유가 없다. 핑계에 다름없다. 이유가 어찌됐던 애가 애를 가르치는것이다.

미 대통령 영부인 미셸 오바마는 자신의 자녀에게 혹독할 정도로 컴퓨터와 텔레비전 사용시간을 제한하기로 유명하다. 휴대폰은 가지고 있지만, 숙제할때를 제외하고는 주중에는 숙제이외에는 텔레비전과 컴퓨터를 사용할 수도 없기로 유명하다. 그것에 대해서는 대중에서 혹독하다고 말이 많지만. 정도에 따라서 가감은 다르지만 그러한 제한은 어느 미국 가정에도 있다. 그것은 아이들과의 상의에 따라 이뤄지며 심지어 (편견을 심기는 싫지만)아들 둘을 훌륭하게 진학시킨 한국의 우리 이모댁도 그러했다. 우리 사촌은 가끔 좋은일을 해서 컴퓨터 시간을 더 받으면 좋아하곤 했다. 좋은 부모라면 국적을 떠나 무릇 그러해야 한다는 것이다. 컴퓨터 사용시간을 정하거나, 사용목적을 정하거나. 그게 교육, 가정교육이라는 것이다. 어느 부모도 우리나라와 같이 단순히 아이가 중독되거나 악영향을 받을 것이다 같은 문제로 텔레비전의 문제를, 인터넷의 문제를, 게임의 문제를, 애니메이션이나 만화의 문제를 정부에게 막아달라고 청원하거나 원망하지 않는다. 만약 그것을 부모가 조절하려는 노력을 하지 않은채 국가나 제도에만 기대려는 의도를 공개적으로 드러내놓는다면 오히려 그 사람이 그 커뮤니티에서 아동 교육에 방임적인(neglected) 부모로 멸시당해야 할 것이다.

아동청소년보호법에서 문제가 되고 있는 컨텐츠에 대해서도 말이 많은데 그것도 비슷한 맥락이라고 생각한다. 아이가 자신도 모르는 컨텐츠를 접하는게 두려운가? 아이가 자신의 통제가 되지 않으니 일단 덮어놓고 나빠보이는 컨텐츠를 규제해서 보호하고 싶은가? 왜 아이를 통제하려고 드는가? 아이를 동등하게 보고, 아이와 접하는 시간을 늘리고 아이와 상담을 해서 어떤 컨텐츠를 접하는지를 물어보고 어떤 컨텐츠를 볼지와 안볼지를 가르쳐주어야 하는 것이 ‘어른’인 당신이 당신의 주관을 가지고 해야할 일이다. 그럼 자연스럽게 ‘어른이 볼 컨텐츠’와 ‘청소년이 볼 컨텐츠’는 걸러진다. 타인인 국가가 관여해서 이래라 저래라 할 것이 아니라. 당신은 아이가 아니다. 국가로부터 독립해서 출가하라.

추기. 물론 아동청소년보호법 문제는 단순히 청소년만의 유해물 노출 악영향을 염두에 두고 있지 않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가령 성인 또한 그 대상이 될 수 있다. 그러나 그 광범위성에 이르기까지 가장 커다란 지지를 얻게 된 계기에 ‘아동 청소년에 대한 악영향’과 ‘이를 위한 규제’가 있기에 적어둠을 밝혀둔다. 또한 이 글 자체 또한 어른을 스스로 생각하고 행동에 책임을 지는 주체로 두고 있으므로 상식적인 범주에서 잠재적인 범죄인까지 고려할 가치는 없다고 생각한다. 가령 상식적인 성인은 성인물을 보거나 폭력물을 보더라도 모방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걸 물고 넘어지면 논쟁은 끝이 없다.

2 thoughts on “애가 애를 가르치는 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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