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의 삽질, 애플의 성공.
아이팟의 곡을 검색하기 위해 휠을 돌리다가 느낀 사실이다. 원하는 곡이 표시되고 백라이트가 꺼지자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컬러 화면에 적응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오랜만에 iPod 3세대의 흑백 화면을 접하니 오히려 이쪽이 불편했다. 백라이트가 없이는 쉽게 볼수 없는 화면… 지금은 그렇지만 내가 처음으로 컬러 TFT 스크린을 탑재한 iPod을 보았을 때 느낀 반응은 배터리가 아깝지 않나? MP3에 컬러 스크린은 도대체 왜 필요하지라는 생각이었다. 아마 대다수가 그러했을 것이다.
이미 나는 iPod 3세대(흑백 화면)를 사용하고 있었는데 컬러 화면을 채택한 iPod은 역시나 배터리 시간도 짧았고, 무게도 크고 두꺼웠다. 아마도 내 생각은 맞아 들어가는 것 같았다. 컬러화면을 살린 기능이래봐야 컬러풀한 게임과 앨범 아트 그리고 사진을 들고 다니면서 보는 기능 밖에 없었다.
역시 그것은 애플의 삽질이라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그들은 그 ‘삽질’을 계속 이어붙일 무언가가 있었다. 그들은 게걸스럽게 노력했다. 그리고 마침내 흑백 모델과 견줄 만큼 크기와 배터리 시간을 갖추었을때 그들은 흑백 액정을 단 MP3 Player를 단종시켰고, 시대의 한쪽 끝으로 밀어버렸다. 내 아이팟 5세대는 3세대에 비해서 훨씬 얇고 가볍지만 배터리 시간은 오히려 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컬러화면을 내장하고 있다. 누가보든 결과적으로 시대의 흐름은 이제 컬러 액정을 단 쪽이었다. 나는 역사가가 아니고 애플의 위대함을 강조하고 싶은 까닭도 아니므로 애플이 컬러 액정을 처음 달았다고 하고 싶은 생각도 아니고 그로 인해 바뀌었다고 하는 것도 아니다. 다만 애플이 그 삽질을 했고, 그 삽질의 결과가 ‘일치’했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다. 누가봐도 첫번째 애플의 삽질은 그저 삽질이었다. 하지만 두번째에는 확실히 오차를 정정했고, 이는 애플의 성공이었다,
생각해보면 iPod의 시작 또한 ‘삽질’에서 출발한다. 모두가 플래시 메모리에 담았던 시절 애플은 모든 라이브러리를 하드디스크에 담는 것을 목표로 했다. 그때 하드는 5G에서 시작했다. 이 역시 애플이 최초라고 할 수는 없지만, 애플은 여기에 올인을 해버린다. 그리고 아이팟은 소형 하드디스크를 이용한 음악 플레이어라는 시장을 만들었고 남들이 하나 둘씩 하드디스크식에 추종해올 때 즈음, 마이크로드라이브(CF 카드 사이즈 만한 초소형 하드디스크)를 이용해 iPod 미니를 만들었다. 그리고 그것이 너무나도 당연하게 여겨졌을 무렵 동나게 잘 팔리는 iPod 미니를 단종시키고 플래시 메모리 타입의 iPod 나노를 내놓았다.
iPod mini와 nano로 이어지는 일련의 트랜지션은 적어놓고 보니 너무나도 자연스런 일관된 흐름으로 보여졌지만, 계속적으로 시련의 역사였다. 왜냐면 그 모두가 파이오니어 정신을 갖춘 제품이었기 때문이다. 요컨데 노트북용 HDD를 쓰던 iPod에 1″ Microdrive를 단 iPod mini가 출시 됐을때 시장은 iPod에 비해 터무니 없이 빈약한 용량에 비해 가격은 크게 차이가 나지 않는다고 비난을 받았다. ‘알록달록한 케이스 값’으로 그렇게 값을 받아먹었냐는 소리가 나왔다. 매진 사례를 거듭함에 따라 겉멋으로 산다는 비아냥도 들렸다. 하지만 애플은 그를 끝까지 관철했고, 소비자는 동했으며, 시장이 애플의 길을 따랐다. 그리고 Microdrive를 생산하는 히타치 등은 iPod mini를 위하여 생산량의 상당수를 쏟아부어야 함은 물론, 그를 감당하기 위해서 설비를 늘려야 할 정도였다.
아마, 하드디스크 업체에 있어서 그리고 우리나라 MP3 업계에 있어서 iPod nano의 등장은 충격이었다. 아마 반도체 업계도 만만찮은 임팩트를 받았을 것이다. 역시 iPod nano는 혁신적인 작은 크기이었지만 iPod mini의 8G에는 턱도 없는 2G와 4G 모델로만 출시되었다. 사이즈는 줄었음에도 불구하고 당연히 가격은 내려가지 않았다. 하지만 그럼에도 국내 업계에선 삼성이 국내 MP3 업계를 말살한다는 헛소리가 돌정도로 흉흉했고, 반짝 특수를 보던 히타치에게는 장송곡이나 다름없었다. 출혈 공급을 했고, 애플은 그에 보답하듯 물량을 확실히 ‘끌어줬다’.
이번에도 애플의 삽질은 성공적이었고, 아마 애플에 물량을 보장받은 삼성은 그 출혈을 충분히 메꾸고 남을 정도로 보상을 받았을 것이다. iPod nano가 등장한 이래로, 수년간 하드디스크형 플레이어가 차지해온 왕좌를 천천히 플래시 메모리가 차지해가는 절대적인 레버리지가 되었던 사건이며, 이후 MP3 플레이어에서 플래시 메모리는 필수 불가결 한 존재가 되었으니까. 이후 등장한 iPod Touch는 천천히 용량을 늘려 마침내는 32GB의 모델이 등장했다. 내가 가지고 있는 iPod 5세대가 30G짜리 모델인것을 감안하면, 이제는 시대의 주류는 플래시 메모리다. 가격이 떨어지는 시간 문제일 것이다.
아마 이런 소리가 그냥 일개의 ‘맥빠’의 헛소리로 들린다면 당신의 컴퓨터를 유심히 살펴보아야 한다. PCI나 SCSI 같은 이제는 ‘레거시’라고 불리는 유산부터 USB나 FireWire 광학 저장장치, AGP와 데스크톱용 액정 모니터, 트랙패드, MPEG4 등등. 떠오르는 것들만 적었지만 이들의 공통점은 애플이 강력한 스폰서가 되었던 기술이라는 점이다. ‘애플의 삽질’의 대상물이었고 결과적으로는 범용 기술이 되어버린 것들이다.
아이맥이 출시되었던 10년전을 생각해보라, 플로피디스크도 없고, SCSI를 비롯한 모든 확장 장치가 없이 USB라는 해괴한 인터페이스를 제시한 iMac에 대해서 일부는 열광했지만 상당수는 자료를 어떻게 옮길것이며 확장이 전혀 불가능하게 만든 점과, 주변기기가 존재하지 않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USB 포트만을 확장하게 만든 애플을 비아냥 거렸다. 스티브 잡스는 “자료 복사 따위는 인터넷으로” 라고 했지만 그것은 애플에 우호적인 내가 봐도 무리가 있었을 것이, 당시 iMac에 달린 33.6k 모뎀으로 1.4MB의 플로피 디스크 용량을 전송하는 것은 꽤 부담스러웠던 일이었다.
어찌됐거나 이제는 플로피디스크 따위는 거들떠도 보지 않는다. 케이스를 사러 나가면 플로피 디스크 베이가 달리지 않은 케이스를 보는 것도 어렵지 않은 시대가 됐고, USB는 RS-232C나 SCSI 등 레거시 포트를 완전히 구축했다.
올 겨울, 맥북 에어가 나왔을때 어느 유명 블로거를 포함하여, 여러 사람들이 확장성의 부재, ODD를 비롯해 랜 포트나 미디어 슬롯 조차 없는 황당한 구조에 대해 성토를 했다. 하지만, 몇몇 사람들은 거기에서 또 다른 시대의 변류를 보고 있는 것이 아닌가 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많은 사람들은 애플은 MPEG4 AVC 기술의 중요한 서포터로 블루레이를 비롯한 차세대 매체에 지원을 할 것이라는 예측을 했지만, 애플은 어떤 제품에도 블루레이 드라이브를 달지 않았다. CD-R이 장당 5천원하던 시절부터 CD-R을 달고, DVD-R이 장당 2만원이 넘던 시절에 DVD-R 드라이브를 달던 애플의 행보 치고는 확실히 뭔가가 다르다는 것을 알 것이다(애플은 각종 버너를 가장 일찍 도입한 업체 중 하나일 것이다).
‘애플까’들에게서 듣는 단골 비아냥으로써 ‘값을 따지지 않는다’는 비아냥은 완전히 틀린것도 아니다. 지금도 델에 전화를 하면 60만원짜리 랩탑에 30만원짜리 BD-RE 드라이브를 달수도 있다. 따라서 애플도 맘만 먹으면 달수 있다는 가정은 가능하다. 애플 제품을 쓰면서 듣는 일정의 비아냥과 엘리트 주의로 인한 비판은 피할 수 없는 것이지만 굳이 말하자면 애플은 굳이 그게 필요없다고 느낀지도 모르겠다.
블루레이에 관한 설명을 해주면서 의외로 블루레이의 용량이 전부 발휘 되지 않는 다는 점과 그 대역폭이 생각보다 적다(20~35Mbps)는 점을 알게 되고 잠시 고민에 빠진적이 있었다. 그정도라면 인프라만 갖춰진다면 우리나라 같은 환경에서는 당장이라도 스트리밍을 시도해볼 수 있고, FTTH가 보급화되는 몇년만 있으면 DVD와는 비교도 안될정도로 보급될 것이다 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디스크의 미래는 절체절명이기 떄문이다.
그건 굳이 컨텐츠 다운로드 장사로 돈 벌이를 하는 애플의 예를 들지 않더라도 우리나라 사정을 보면 누구나 잘 아는 문제이다. 웹하드에서 10MB 정도만 받고 재생버튼을 누르면 2~3분을 보기도 전에 1G에 육박하는 동영상이 다운이 완료된다.
애플이 언제나 맞는 도박을 해온 것은 아니고, 애플의 길이 반드시 맞다는 것은 아니다. 내가 이 글을 쓰고 싶었던 것은 다만 중개자의 입장이었다. 즉, 애플 광신도와 애플까 그 두계층을 잇기 위해서이다. 내가 주장하는 바는 내가 기억한 내용을 바탕으로 몇가지 추린것으로 지금껏 애플이 걸어온 길이 지금까지 유의미하게 우리의 생활을 변혁해온 몇가지의 좋은 예가 될 것이다. 비록 그것이 조금은 ‘삽질’ 스런 행위라 할 지라도, 그들은 두번 이상 헛 삽질을 하지는 않았다는 점이 세계적인 IT 기업들의 이목을 끌은 것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