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는 ‘디지털 치매’ 혹은 ‘스마트폰 치매’라는 표현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습니다. 이 말이 쓰이는 상황을 보면 대개 비슷합니다. 가족의 전화번호를 기억하지 못한다거나, 검색하지 않으면 사소한 정보도 바로 떠올리지 못한다거나, 길을 찾을 때 지도 앱 없이는 불안해한다는 식입니다.
물론 이런 모습을 재미있게 바라볼 수도 있습니다. 예전에는 외우던 것을 이제는 스마트폰에 맡기게 되었으니, 세대 변화가 눈에 띄는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이것을 곧바로 ‘치매’라고 부르는 것이 과연 적절할까요?
의학적으로 치매는 단순한 건망증이나 기억 습관의 변화와 다릅니다. 기억력뿐 아니라 사고력, 판단력, 언어 능력, 행동 변화 등이 일상생활에 상당한 지장을 줄 정도로 저하되는 상태를 가리킵니다. 그런데 전화번호를 외우지 않고 연락처 앱을 열어 확인하는 일을 치매라고 부른다면, 그 표현은 지나치게 넓고 자극적입니다.
아인슈타인에게도 이런 일화가 전해집니다. 누군가 그에게 전화번호를 묻자, 그는 직접 외워 말하지 않고 전화번호부를 찾아보았다고 합니다. 상대가 “자기 전화번호도 외우지 못하느냐”고 묻자, 아인슈타인은 “쉽게 찾아볼 수 있는 것을 왜 굳이 외워야 하느냐”는 취지로 답했다는 이야기입니다.
이 일화가 역사적으로 완전히 확인된 사실인지는 조심스럽게 봐야 합니다. 하지만 이 이야기가 던지는 메시지는 꽤 분명합니다. 모든 정보를 머릿속에 저장하는 것이 지성의 전부는 아니라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무엇을 반드시 기억해야 하는지, 무엇은 도구에 맡겨도 되는지, 그리고 필요할 때 그것을 제대로 찾아 쓰고 판단할 수 있는지입니다.
디지털 기기는 기억의 적일까요?
스마트폰과 컴퓨터는 인간보다 훨씬 정확하고 방대한 저장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연락처, 일정, 사진, 문서, 메모, 위치 정보, 검색 기록까지 수많은 정보를 저장합니다. 클라우드까지 더해지면서 우리는 집이든 사무실이든 외부이든, 거의 언제 어디서나 필요한 자료에 접근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이런 도구를 활용하는 것을 왜 무조건 부정적으로 보아야 할까요?
사람은 원래부터 기억을 외부에 맡겨 왔습니다. 종이에 메모를 하고, 달력에 일정을 적고, 주소록을 만들고, 책을 참고하고, 모르는 것은 아는 사람에게 물었습니다. 스마트폰은 그 오래된 습관을 훨씬 더 빠르고 강력하게 만들어 준 도구입니다.
계산이 어려우면 계산기를 사용합니다. 시력이 나쁘면 안경을 씁니다. 청력이 약하면 보청기를 사용합니다. 다리가 불편하면 목발이나 휠체어를 사용합니다. 이런 도구를 쓴다고 해서 “능력이 퇴화했다”고만 말하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인간이 자신의 한계를 보완하기 위해 도구를 사용하는 것은 매우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디지털 기기도 마찬가지입니다. 연락처를 저장하고, 일정을 알림으로 받고, 길을 지도 앱으로 찾고, 필요한 정보를 검색하는 것은 현대인의 기본적인 생활 방식이 되었습니다. 이것을 무조건 ‘치매’라는 말로 몰아붙이는 것은 기술의 역할을 지나치게 부정적으로 보는 태도일 수 있습니다.
문제는 ‘기억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생각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디지털 기기 사용에 아무 문제가 없다는 뜻은 아닙니다. 조심해야 할 지점은 분명히 있습니다.
첫째, 검색 결과를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는 습관입니다. 정보를 쉽게 찾을 수 있다는 것과 그 정보가 정확하다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입니다. 검색 능력은 기억력을 대체하는 능력이 아니라, 판단력과 함께 작동해야 하는 능력입니다.
둘째, 알림과 짧은 콘텐츠에 지나치게 노출되어 주의력이 끊기는 문제입니다. 스마트폰이 기억을 보조하는 도구로 쓰일 때는 유용하지만, 끊임없이 주의를 빼앗는 장치가 될 때는 집중과 사고를 방해할 수 있습니다.
셋째, 기본적인 생활 기능까지 모두 자동화하면서 스스로 점검하는 습관이 약해지는 경우입니다. 예를 들어 모든 일정을 알림에만 맡기고, 한 번도 스스로 하루 일과를 정리하지 않는다면 문제가 생길 수 있습니다. 이때의 문제는 스마트폰 자체가 아니라, 도구를 쓰는 방식입니다.
넷째, 수면과 운동, 대면 관계가 줄어드는 문제입니다. 밤늦게까지 화면을 보고, 몸을 움직이지 않고, 사람과 직접 대화하는 시간이 줄어든다면 인지 건강에도 좋을 리 없습니다. 이것은 ‘디지털 치매’라는 단어보다 훨씬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문제입니다.
외우지 않아도 되는 것과 외워야 하는 것
저는 전화번호를 전부 외우지 못하는 것이 큰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예전에는 수십 개의 전화번호를 외우는 사람이 많았지만, 지금은 연락처 앱이 그 역할을 대신합니다. 그렇다고 현대인이 과거보다 덜 똑똑해졌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모든 기억을 외부에 맡겨도 된다는 뜻은 아닙니다. 자주 쓰는 비상 연락처, 자신의 주소, 중요한 건강 정보, 가족에게 꼭 필요한 정보처럼 위급한 상황에서 바로 떠올릴 필요가 있는 것들은 어느 정도 기억해 두는 편이 좋습니다.
또 전문적인 일을 하는 사람이라면 자기 분야의 핵심 개념과 원리는 머릿속에 있어야 합니다. 매번 검색해야만 이해할 수 있다면 속도도 느려지고 판단도 흔들립니다. 반대로 세부 수치, 드문 예외, 최신 자료처럼 계속 바뀌는 정보는 외부 도구를 활용하는 편이 더 정확할 수 있습니다.
결국 핵심은 균형입니다.
“무조건 외워야 한다”도 아니고, “전부 기계에 맡겨도 된다”도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기억할 것과 찾아볼 것을 구분하는 능력입니다.
‘디지털 치매’보다 더 나은 질문
저는 앞으로 ‘디지털 치매’라는 말보다 다음과 같은 질문이 더 생산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디지털 기기를 기억의 보조 도구로 잘 쓰고 있는가?
검색한 정보를 제대로 검증하고 있는가?
스마트폰이 집중을 돕는가, 아니면 계속 방해하는가?
디지털 도구를 쓰면서도 스스로 생각하고 정리하는 시간을 확보하고 있는가?
이런 질문이야말로 지금 시대에 더 필요한 질문입니다.
앞으로 사람들은 지금보다 더 많은 일을 디지털 기기에 맡기게 될 것입니다. 스마트폰, 클라우드, 인공지능, 웨어러블 기기, 음성 비서, 자동화 도구는 점점 더 자연스럽게 일상에 들어올 것입니다. 그때마다 누군가는 다시 “사람이 점점 기억을 잃고 있다”고 말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인간은 언제나 도구와 함께 생각해 왔습니다. 문자가 등장했을 때도, 인쇄술이 등장했을 때도, 계산기가 보급되었을 때도 비슷한 걱정은 있었습니다. 중요한 것은 도구를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도구를 쓰면서도 인간의 판단력과 집중력, 이해력을 잃지 않는 것입니다.
디지털 기기의 도움을 받는 것 자체는 부끄러운 일이 아닙니다. 오히려 잘 쓰면 기억의 부담을 줄이고, 더 중요한 생각에 힘을 쓸 수 있습니다. 다만 그 편리함에 휩쓸려 스스로 판단하고 정리하는 능력까지 내려놓아서는 안 됩니다.
그러므로 저는 ‘디지털 치매’라는 표현에는 동의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정말 경계해야 할 것은 스마트폰을 쓰는 일이 아닙니다.
스마트폰이 대신 기억해 주는 동안, 우리가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게 되는 일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