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글이 한국에서 정밀지도를 반출해 가면서도 매출 규모에 맞지 않는 세금을 내지 않았다는 이유로 한동안 말이 많았습니다. 저는 이 문제도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만, 정밀지도와 세금 문제는 사실 더 큰 그림의 한 조각일 뿐입니다. 진짜 문제는 따로 있습니다. 구글은 한국 시장에서 좋은 열매만 따 가고, 다른 나라 소비자에게 당연하게 제공하는 혜택조차 한국에서는 빼 버리는, 이른바 체리피킹을 노골적으로 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정밀지도 한 건은 가시적이라서 화제가 되었을 뿐, 같은 자세의 결과물은 한국 소비자의 일상 곳곳에 깔려 있습니다.
정밀지도와 세금 문제: 빙산의 일각
19년을 끌어 오던 정밀지도 반출 문제는 2026년 2월에 조건부 반출 허용으로 결론이 났는데, 그 결말마저 묘했습니다. 정부가 그렇게 요구했던 “한국 내 데이터센터 설치”를 구글은 끝까지 받아들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한국 데이터를 가져가되, 한국에 사업장은 두지 않겠다는 자세를 끝까지 관철한 것이지요. 데이터센터를 짓는 순간 고정사업장이 인정되어 그동안 회피해 온 법인세를 정상적으로 내야 하니, 구글은 국내 제휴 기업의 서버를 빌려 쓰는 우회로를 택했습니다. 외부 추산이지만 지난 20년간 구글이 한국에서 회피한 법인세 누적 규모는 19조 원을 넘는다는 분석이 있습니다.
픽셀: 한국 소비자에게 주어지지 않은 선택지
가장 상징적인 사례가 픽셀입니다. 구글은 2016년에 픽셀 1세대를 내놓은 이래로, 단 한 번도 한국에 정식 출시한 적이 없습니다. 픽셀 6, 7, 폴드, 태블릿, 8a, 9 시리즈 어느 것 하나 한국에서 정식으로 살 수 없습니다. 본사는 2021년에 한 번, 2022년에 한 번 더 “한국 출시는 없다”고 명시적으로 못을 박았습니다. 그러면서도 그 이유는 한 번도 제대로 설명한 적이 없습니다.
더 어이없는 건 픽셀이 출시되지 않는 나라들의 면면입니다. 미국, 영국, 캐나다, 호주,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스페인, 일본, 대만은 다 들어가는데, 픽셀이 빠진 나라는 한국, 인도, 멕시코, 브라질, 핀란드, 뉴질랜드, 푸에르토리코뿐입니다. GDP나 IT 인프라, 안드로이드 사용자 비중을 생각하면 한국이 이 명단에 들어가 있다는 사실 자체가 부자연스럽습니다.
업계에서는 삼성과의 협력 관계 때문이라는 추측이 가장 유력합니다. 안드로이드와 웨어OS, AI, XR 분야에서 삼성은 구글의 가장 중요한 파트너 중 하나이니, 픽셀폰을 한국에서 3~4만 대 더 파는 것보다 삼성과의 관계를 매끄럽게 유지하는 쪽이 훨씬 이득이라고 판단했을 가능성이 큽니다. 구글페이가 한국에서 정식 서비스되지 않는다는 점도 자주 거론됩니다. 그러나 이런 추측이 사실이라 하더라도, 그것은 구글의 사정이지 소비자가 받아들여야 할 이유는 아닙니다. 픽셀이 갤럭시보다 객관적으로 더 좋은 폰이라고 주장하는 게 아닙니다. 그건 사람마다 다를 수 있죠. 다만 한국 소비자에게 그 선택지 자체가 주어지지 않고 있다는 점, 그리고 그 이유를 구글이 한 번도 제대로 설명한 적이 없다는 점이 본질적인 문제입니다.
구글 홈과 네스트: 사실상 철수한 시장
구글 홈으로 넘어가면 상황은 더 황량합니다. 2018년 9월에 구글 홈과 구글 홈 미니가 한국에 정식 출시됐고, 2021년에는 네스트 허브 2세대까지 들어왔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사실상 정리된 상태입니다. 구글 홈 미니는 2021년 12월에 전 세계적으로 단종됐고, 그 이후로 한국에 새로 들어온 네스트 신제품은 거의 없습니다.
지금 한국 구글 홈페이지에서 “구글 스토어”를 누르면 정상적인 쇼핑 페이지로 연결되지 않습니다. 다른 나라 구글 스토어는 픽셀, 픽셀 워치, 픽셀 버즈, 네스트 라인업이 죽 진열된 활성 쇼핑몰인데, 한국에는 그런 게 없습니다. 기존에 구글 홈이나 네스트 기기를 쓰던 사용자에게 더 큰 문제는 따로 있습니다. 네스트 기기는 전 세계적으로 별도의 수리 서비스가 없고, 보증 기간 안에 고장이 나면 교환만 해 주는 식인데, 한국에서 정식 유통이 멈춘 이상 그 교환마저 점점 어려워지는 구조입니다. 사실상 1회용 기기에 가깝게 되어 버린 셈이지요. 다른 나라에서는 네스트 라인업이 점점 확장되고 있는데 한국은 그 흐름에서 완전히 비켜나 있습니다.
유튜브 가족 요금제: 한국이 베네수엘라·벨라루스와 같은 칸에
그러나 가장 모욕적이라고 느껴지는 건 유튜브 가족 요금제 문제입니다. 한국의 유튜브 프리미엄 개인 요금제는 월 14,900원입니다. 4인 가족이 각자 가입하면 월 6만 원에 가깝습니다. 같은 4인 가족이 일본에서 가족 요금제로 가입하면 약 2만 원이면 됩니다. 차이가 월 4만 원, 1년이면 거의 50만 원입니다.
정말로 어이없는 건 가족 요금제가 제공되지 않는 나라들의 명단입니다. 구글이 자기네 고객센터에 명시해 둔 가족 요금제 미제공 국가는 단 다섯 곳뿐입니다. 한국, 베네수엘라, 벨라루스, 슬로베니아, 아이슬란드. 구글은 전 세계 40개가 넘는 나라에서 가족 요금제를 제공하고 있는데, 한국이 베네수엘라·벨라루스와 같은 칸에 들어가 있는 겁니다. 학생 요금제도 마찬가지로 한국에는 없습니다.
그러다 보니 “유튜브 유목민”이라는 신조어가 생길 정도입니다. 환율이 싼 아르헨티나, 인도, 인도네시아 등으로 VPN을 이용해서 우회 가입하면 월 3천 원에서 5천 원 정도로 가족 요금제를 쓸 수 있다는 정보가 인터넷에 공공연히 돌아다닙니다. 구글은 한국에서만 가족 요금제를 운영하지 않는 이유를 한 번도 공식적으로 밝힌 적이 없습니다. 업계에서는 음원 저작권 문제 때문이라는 추측을 하지만, 그렇다면 유튜브 뮤직을 뺀 가족 요금제라도 만들면 됩니다. 그것마저도 안 합니다. K-팝과 한국 콘텐츠로 전 세계에서 유튜브의 영향력을 키우고, 한국에서 막대한 수익을 올리고 있는 회사가 한국 사용자를 베네수엘라·벨라루스 수준으로 취급하고 있다는 것을, 저는 그냥 좋게 봐 줄 수가 없습니다.
구글 원과 그 외의 차별들
비슷한 패턴은 구글 원에서도 반복됩니다. 다른 나라의 구글 원 프리미엄(2TB 이상) 가입자는 자기 요금제 안에서 유튜브 프리미엄을 할인된 가격으로 추가할 수 있습니다. 별도로 가입하는 것보다 훨씬 저렴합니다. 그런데 이 혜택도 한국은 빠져 있습니다. 가족 요금제 자체가 없는 나라이니 일관성은 있다고 해야 할까요. 어느 쪽이든 결과는 같습니다. 구글은 한국에 어떤 형태로든 가족 단위 결합 할인은 주지 않겠다는 자세인 셈입니다.
클라우드 스토리지 할인 프로모션, 신제품 사전 주문 혜택, 픽셀 패스 같은 묶음 구독 서비스에서도 같은 패턴이 반복됩니다. 다른 나라에서는 흔히 받을 수 있는 혜택이 한국에서는 일관되게 빠져 있습니다. 이런 식의 작은 차별을 일일이 헤아리기가 어려울 정도로 많습니다.
왜 한국에서만 이러는가
왜 유독 한국에서만 구글이 이렇게 행동하는지에 대해 명쾌한 답을 드리기는 어렵습니다. 구글 본인이 한 번도 공식적으로 설명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다만 구조적으로 추측해 볼 만한 요인은 몇 가지 있습니다. 앞서 말씀드린 삼성과의 협력 관계, 구글페이가 한국에서 정식 서비스되지 않는다는 점, 그리고 결정적으로 구글이 한국에 고정사업장을 두지 않고 사업을 운영하고 있다는 구조적 자유로움입니다. 한국 법인을 광고 영업대행 수준으로만 두면, 한국 시장에 본격적으로 책임을 질 의무도 없어집니다.
픽셀을 정식 출시하려면 통신사 협의, A/S 체계 구축, 카메라 무음 등 한국 법규 대응 같은 일이 다 따라옵니다. 가족 요금제를 만들려면 음원 저작권 협상이 필요합니다. 네스트 라인업을 들여오려면 전파 인증과 지속적인 펌웨어 한국화가 필요합니다. 이 모든 일에 비용을 들일 만큼의 의지가 구글에는 없는 듯합니다.
여기에 한국 시장이 자기들 입장에서는 충분히 “그냥 두어도 돈이 되는” 시장이라는 인식이 더해지면 그림이 완성됩니다. 안드로이드 점유율, 유튜브 점유율, 검색 광고 매출이 알아서 올라옵니다. 굳이 소비자에게 추가로 베풀 동기가 없습니다. 정밀지도 건이 19년 만에 그나마 결말이 난 것도, 마지막 순간에 트럼프 행정부가 한국 정부를 압박해 준 덕이지 구글이 한국 시장에 진심으로 기여하기로 마음을 바꿔서가 아닙니다. 종합하면 한국은 구글에게 손쉽게 수익을 주는 시장이지만, 동시에 정식으로 책임을 지지 않아도 별 탈이 없는 시장이라는 인식이 자리잡혀 있는 셈입니다.
마치며: 호갱은 호구라서가 아니라
저는 구글이 한국에서 사업을 하지 말라거나, 한국 시장에서 철수하라는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건 비현실적이고, 솔직히 그렇게 되기를 바라지도 않습니다. 안드로이드도, 유튜브도, 지메일도, 구글 검색도 저는 매일 잘 쓰고 있습니다. 다만 구글이 한국 시장에서 취하고 있는 자세, 즉 수익은 거두되 책임과 혜택은 최소화한다는 자세가 너무 노골적이라는 점이 문제입니다. 정밀지도 반출과 세금 회피는 이 자세의 가장 가시적인 사례일 뿐, 본질적으로는 픽셀 미출시, 가족 요금제 제외, 구글 원 할인 제외, 네스트 사실상 철수 같은 일련의 결정들과 같은 뿌리에서 나오는 행동입니다.
저는 이런 체리피킹이 정밀지도 한 건의 문제보다 훨씬 더 구조적이고, 훨씬 더 오래 한국 소비자에게 손해를 끼친다고 봅니다. 우리가 기꺼이 사용하고 기꺼이 돈을 내는데도 같은 글로벌 사용자로서 받아야 할 기본적인 대우를 받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 그 사실을 인지하는 것 자체가 출발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소비자가 호갱이 되는 것은 호구라서가 아니라, 호구 취급을 당해도 별일이 안 생기기 때문입니다. 그 침묵을 깨는 것은 결국 소비자 자신밖에는 없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