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얼마 전 삼성이 슬그머니 번복한 결정이 하나 있었습니다. 갤럭시 S25 울트라와 갤럭시 Z 폴드7에 통화 스크리닝 기능을 제공하지 않겠다고 했다가, 사용자 반발이 거세지자 결국 입장을 바꾼 것입니다. 해프닝으로 끝났으니 다행이라고요? 저는 그렇게 보지 않습니다. 오히려 이 사건은 삼성이 신기능을 구형 기기에 얼마나 쉽게 배제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지를 적나라하게 드러낸 사례였습니다.
“하드웨어 한계”라는 변명은 통하지 않습니다
제조사가 구형 기기에 신기능을 주지 않을 때 가장 흔히 꺼내는 카드가 있습니다. “하드웨어가 지원하지 않아서”라는 말입니다. 일부 경우에는 맞는 말입니다. 물리적인 센서가 없거나, 탑재된 칩이 기능을 처리하기에 너무 오래됐다면 어쩔 수 없습니다.
그런데 통화 스크리닝은 그런 경우가 아닙니다.
애플은 iOS 26에서 통화 스크리닝과 유사한 기능을 지원 기기 전체에 제공하기 시작했습니다. 거슬러 올라가면 아이폰 11 시리즈까지 해당됩니다. 2019년 출시된 기기입니다. 삼성과 애플의 구현 방식이 세부적으로 다를 수는 있지만, 기능의 본질은 같습니다. “전화를 받기 전에 AI가 발신자 의도를 확인한다”는 것입니다. 그게 하드웨어 한계로 구형 기기에서 안 된다면, 6년 전 아이폰에서도 안 돼야 합니다. 하지만 애플은 해냈습니다.
하드웨어 한계가 아니라는 말입니다.
문제는 “나중에 준다”가 아니라 “영영 안 준다”는 것입니다
신모델에 새 기능을 먼저 탑재하는 것 자체는 이해할 수 있습니다. R&D 비용도 있고, 플래그십 기기의 차별점을 만드는 것도 비즈니스 논리상 자연스럽습니다. 하지만 그 다음이 문제입니다.
저는 갤럭시 Z 폴드4를 쓴 적이 있습니다. 폴드5에 탑재된 스캔 기능 일부가 OS 업그레이드 이후에도 폴드4에는 제공되지 않았습니다. 삼성은 7년간 OS 업데이트와 보안 패치를 약속했습니다. 그런데 OS는 올라가는데 기능은 빠져 있다면, 그 업데이트는 무엇을 위한 것일까요? “보안 패치만 받는 기기”가 되는 것을 7년 지원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요?
“우선 탑재”와 “영구 배제”는 전혀 다른 이야기입니다. 삼성은 이 둘을 교묘하게 뭉개고 있습니다.
누가, 어떤 기준으로 결정하는가
그렇다면 어떤 기준이 있어야 할까요. 최소한 이 세 가지는 납득 가능한 기준이 될 수 있습니다.
- 하드웨어 의존성: 물리적으로 해당 센서나 칩이 없으면 어쩔 수 없습니다.
- 소프트웨어 구현 가능성: SW로 구현 가능한 기능은 제공해야 합니다.
- 성능 저하 여부: 구형 기기에서 오히려 사용 경험을 심각하게 해친다면 예외가 될 수 있습니다.
통화 스크리닝은 이 세 가지 중 어디에도 해당하지 않습니다. 별도 하드웨어가 필요한 기능이 아니고, 소프트웨어로 구현이 가능하다는 건 실제 구현으로 이미 증명됐습니다. 그리고 1세대 프로세서 차이가 이 기능의 구동 가능 여부를 가른다고 보기도 어렵습니다.
결국 삼성이 이 기능을 처음에 배제하려 했던 이유는 기술적인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 결정을 내린 건 엔지니어가 아니라 마케터였을 것입니다.
200만원짜리 폰의 무게
갤럭시 Z 폴드 시리즈나 S 울트라 시리즈는 200만원을 훌쩍 넘습니다. 200만원이 적은 돈이 아닙니다. 그 돈을 낸 사람이 1년 만에 “이 기능은 새 폰에서만 됩니다”라는 말을 들어야 한다면, 그건 단순한 불편을 넘어 신뢰의 문제입니다.
삼성을 비판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소비자 반발이 없었다면 이번 번복도 없었을 것입니다. 삼성은 이 결정이 문제없이 넘어갈 것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에 시도했습니다.
그래서 소비자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이 지점에서 솔직해질 필요가 있습니다. “삼성이 싫으면 다른 걸 사면 되잖아”라는 말은 한국 시장에서 현실적이지 않습니다. 실질적인 대안은 애플뿐이고, 삼성 기기가 꼭 필요한 이유가 있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갤럭시 생태계, 삼성페이 의존도, 폼팩터 선호 등 이유는 다양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더 따져야 합니다. 이번처럼 반발이 실제로 결정을 번복시켰다는 사실은, 소비자의 목소리가 효과가 없지 않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조용히 넘어갈수록 삼성은 다음 번에도 같은 시도를 할 것입니다.
OS를 7년 지원한다는 약속이 의미를 가지려면, 그 기간 동안 소프트웨어로 구현 가능한 기능이 합당한 이유 없이 배제되어서는 안 됩니다. 그 기준을 세우는 것, 그리고 그것을 요구하는 것은 소비자의 몫이기도 합니다.
이 문제를 “구형폰 사용자들의 불만”으로 읽으면 안 됩니다. 지금 이 순간의 신형폰은 내년이 되면 구형폰이 됩니다. 즉, 삼성이 기능 배제를 어떻게 결정하느냐의 문제는 현재 삼성 폰을 쓰는 모든 사람에게 해당되는 이야기입니다. 이것은 결국 제조사의 신뢰 문제입니다. 7년 지원을 약속한 브랜드가 1년 만에 기능을 들어내려 했다는 사실은, 그 약속이 얼마나 쉽게 공허해질 수 있는지를 보여줍니다. 소비자가 200만원을 지불하며 사는 것은 하드웨어만이 아닙니다. 그 브랜드가 앞으로 어떻게 행동할 것인가에 대한 기대이기도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