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으로 ‘프로’를 포기하다

2006년에 제 맥을 처음으로 가진 이래(처음으로 아버지의 맥을 쓴 것은 훨씬 전), 2010년과 2018년에 맥북 프로를 샀습니다. 그리고 7년이 지난 올해 M4 맥북 에어를 샀습니다. 처음에는 ‘프로’라는 이름과 스테이터스는 물론이요, 애플에 의해 꼼꼼히 ‘급 나누기’ 된 소위 ‘프로 사양’을 포기하는 것에 굉장히 망설임이 있었습니다. 지금도 예를 들면 ‘스피커가 더 빵빵할까?’ 내지는 ‘화면이 더 쨍할까?’, 혹은 ‘포트가 더 많을까?’ 같은 생각이 없다면 거짓말입니다. 아이폰을 사도, 아이패드를 사도, 심지어 에어팟을 사도 ‘프로’를 포기하지 않았거든요. 하지만 지금은 ‘에어’를 선택해서 만족합니다.
가볍고, 작고, 얇고, 팬이 없어 조용한 심야에 아무런 소리를 내지 않고 은은히 켜져있는 컴퓨터를 보면서 맥북 에어를 선택 한 것이 잘 한것 같다. 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업무를 하고, 웹 서핑을 하고, 엔터테인먼트를 즐기는데 있어서 이 정도만 되어도 모자름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전에 쓰던 맥북 프로(2018 Mid 15″ Core i9, 32GB, 2TB)는 SSD를 제외하면 풀 스펙이었는데요. 그럼에도 전혀 불편함이 없습니다. 그러면 드는 생각이, 많은분이 맥이나 맥북을 산다면 보통 “맥북 프로”를 기준으로 생각하게 되는데, 굳이 그럴 필요가 있는가, 정말로 모두에게 ‘프로’가 필요한 걸까? 라는 의문입니다.
물론, 반드시 맥북 프로가 필요한 일이 있고, 그런 작업을 하시는 분이 맥북 프로를 사시는 것에 뭐라 할 계제가 아닙니다. 하지만 ‘시작점’이 맥북 프로일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맥북 에어에 옵션 사양을 가득 얹으니 ‘에어에 왜 이런 사양을 얹냐’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하지만 그러니 맥북 프로에 대한 아쉬움이 거의 없거든요. 물론 제가 7년전 프로에서 업그레이드 해서 그런 것일 수 있습니다. 요컨데 M2 맥북 프로 이후에서 기변하는 거라면 얘기가 좀 달랐을까요?
맥북 에어는 전세계에서 단일 기종으로 가장 많이 팔리는 노트북 중 하나입니다. 물론 맥북 프로에 비해 떨어지는 점도 있지만, 맥북 에어만의 굉장히 실용적인 측면이 많다고 생각합니다. 13″ 맥북 에어의 작고 둥글둥글한 모양을 보노라면 사랑스러워서 안아주고 싶을 정도로 마음에 쏙 들었고 더할 나위 없이 제 일상 생활에 녹아들었습니다. 뒹굴 뒹굴 침대에서 엎드려서 쓰고, 누워서 쓰고 책상위의 도크에 연결해 쓰고 식탁에 얹어놓고 쓰고 소파에 앉아서 쓰고. 집안팎 어디에서든 구동부가 전혀 없는 맥북 에어는 마치 아이패드나 아이폰처럼 펼치면 바로 켜져서 작업을 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이따금, 아직은 하지 않지만 나중에 해보고 싶은 영상 편집 등의 작업에 맥북 프로가 더 헤드룸이 여유 있을까? 라고 생각할 때가 있습니다만, 그 때는 새로운 맥을 추가하는 방향으로 생각해보려고 합니다. 요컨데 주말에 즐기기 위한 고성능차는 따로 두고, 출퇴근 할 때나 장보러 갈 때는 고장 없고 연비 좋은 차를 찾는 것과 비슷한 거죠. 이따금 누구나 붉은 페라리를 가지고 싶고, 필요로 할 수는 있지만 그 페라리를 몰고 마트에 장을 보러 가는 것이 과연 맞나? 라는 생각이 듭니다. 마찬가지로, 모두가 언제나 고성능의 맥북 프로를 쓸 필요가 있을까? 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작년, 애플의 서비스 부문 SVP인 에디 큐(Eddy Cue)가 한 유명 유튜버와 인터뷰 했던게 생각납니다.
그는 아이폰 15 프로 맥스, 아이패드 프로 13″와 더불어 맥북 에어 15″와 맥 스튜디오를 사용한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그가 스포츠 관전을 위해 TV 9대와 전광판을 집에 갖춰둔 사람이라는걸 감안하면 의외로 수수한 셋업이죠.
해서, 중언부언 말이 길어졌지만, 어떤 맥을 사야할지 망설이시는 분들도 많이 계실텐데, 무작정 맥북 프로에 달려드는것만이 능사는 아니다. 라는 말을 하고 싶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