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배 비싼 계산기는 10배 좋을까?
이전에 카시오 S100X 계산기를 구입했습니다. 45만 원이 넘는 가격에도 불구하고 정말 만족스러운 계산기였습니다. 한 번 계산기가 생활에 들어오니까 언제 어디서나 계산기를 사용하고 싶어지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S100X 같은 계산기를 여러 대 사기에는 아무래도 부담이 있고 아무렇게 막 쓰기에도 부담스러워서, 인터넷에서 소위 쌀집 계산기라고 불리는 JS-40B 모델을 구입했습니다. 이것도 대략 4만 원 정도 하는 계산기인데요. 가격 차이로 말하자면 얼추 10배 정도 차이가 나는 셈입니다. 10배 비싼 계산기는 과연 10배 좋을까 하는 의문이 드실 것 같은데요.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그렇지는 않습니다.

우선 두 모델의 공통점으로는 이중 사출 처리된 키가 사용되고 있다는 점과 키 레이아웃이 거의 똑같다는 점입니다. 그리고 스위치의 위치도 거의 똑같습니다.
계산기를 사용하는 데 익숙해지면 숫자판을 보지 않고 화면만 보면서 계산을 하게 되는데, 거의 눈을 감고 작동을 해도 두 기종간에 적응하는 데 시간이 거의 걸리지 않습니다.
전형적인 투웨이(2-way) 전원 방식의 계산기로, 크기까지도 거의 비슷하게 느껴집니다. 두 기종 모두 익숙해지면 빠르고 정확하게 원하는 값을 입력할 수 있다는 점에서 우수한 계산기라고 생각합니다. 그 외에도 3키 롤 오버(3KRO)를 지원하는 점도 같습니다. 세금 더하기·빼기 기능이나 그랜드 토탈, K 기능, 루트 기능 등도 동일하게 탑재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여기서부터는 확연하게 차이가 납니다. 우선 몸체와 화면, 그리고 키입니다. 우선 S100X는 알루미늄을 절삭해서 만든 몸체이고, JS-40B는 플라스틱 몸체입니다. 금속은 나사 정도에만 사용돼 있죠. 그러다 보니 손에 쥐었을 때 질감과 무게감부터 차이가 납니다.

그리고 S100X가 미끄럼 방지를 위해서 엘라스토머를 사용한 커다란 미끄럼 방지 스토퍼가 있는 반면에, JS-40B는 귀퉁이 네 군데에 동그랗게 자그마한 미끄럼 방지 고무가 있습니다. 계산기 후면에는 명판이 있는데, 이 명판에 S100X의 경우 시리얼 번호가 레이저로 각인되어 있습니다. JS-40B도 일련번호가 각인되어 있습니다만, 그냥 평범한 인쇄에 가깝습니다.


전면 화면의 경우 S100X가 유리 재질인 반면, JS-40B는 폴리카보네이트 재질입니다.
S100X는 반사를 방지하는 코팅이 양면으로 되어 있으며, 주로 고급 시계에서 볼 수 있는데 계산기에 사용되는 것은 이 제품이 처음이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반면 JS-40B는 그냥 플라스틱입니다.
다만 JS-40B의 경우 화면에 14자리까지 표시되고, S100X는 12자리까지 표시되는 점에 차이가 있습니다. 하지만 S100X가 훨씬 글씨가 크고 또렷하여 시인성이 좋습니다. 여러 각도에서 봐도 은은한 남색 글씨가 선명하고 또렷하게 보입니다.

키의 경우 단순히 감성적인 영역을 떠나서 확실히 감촉으로 느낄 수가 있는데요.
왜냐하면 S100X는 펜타그래프식 아이솔레이션 키패드인 반면, JS-40B는 소위 말하는 멤브레인 방식의 키패드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눌리는 감은 두 제품 모두 손색이 없습니다만, S100X의 눌리는 느낌은 한결 더 빼어나고 고급스럽다고 느낄 수 있습니다. 특히 키가 S100X는 전혀 흔들림이 없는 반면에, JS-40B의 경우 약간씩 유격이 있어서 흔들리기 때문에 그것이 신경 쓰이는 분도 계실지 모르겠습니다.
그 외 JS-40B와 S100X의 커다란 차이점은 환율 계산입니다.
S100X가 환율과 도량형 중 하나를 선택해서 한 쌍 입력해서 변환할 수 있는 반면에, JS-40B 같은 경우에는 환율만 세 쌍 변환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원화와 달러, 유로, 엔화 이런 식으로 변환할 수 있기 때문에 경우에 따라서 어떤 제품이 낫다고 말하기는 어렵지만, 여러 환율을 다루는 경우 JS-40B가 실용적으로 편리하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다만, S100X 는 독립 메모리와 환산 기능을 모드 이동 없이 이용할 수 있는 반면, JS-40B의 경우 변환 모드와 메모리 기능을 오가야 합니다.
이 두 기종은 사실상 형제 기종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공통점이 많습니다. 계산기라는 물건이 개인용 컴퓨터에 맞먹을 정도로 역사가 깊은 물건이기 때문에 성숙해서 “그 나물의 그밥”이라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두 모델은 공통점이 많은 편입니다. 그러기에 사소한 곳에서 나는 차이를 쉽게 알 수 있고 도드라지게 느껴집니다. 저 자신은 S100X를 먼저 보고 JS-40B를 보게 되었는데 JS-40B는 잘 만들어진 좋은 계산기라고 생각하지만, 아무래도 S100X와 비교하게 되면 원가 절감을 철저하게 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저 스스로 S100X를 “원가 절감을 도외시한 결과물”이라고 생각하고 있고, 그런 까닭에 소량 생산, 소량 판매 되는 모델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마치 우리가 현대 생활을 사는데 있어서 저렴하고 품질 좋은 물건을 사용하는 이유를 알 수 있게 되었다라고 하면 과장일까요? 만약 물건을 제작하는 엔지니어와 회사가 원가를 절감하려는 노력을 하지 않았다면 계산기 하나를 사더라도 10배를 주고 사야 했을 것이다. 라는 생각이 드는 것입니다. S100X는 정말 만져보면 반할 정도로 아름답고 기능적인 공업 제품이지만, 그 아름다움 때문에 ‘보조’로 JS-40B를 들인거니까요.
한 번쯤 만져보고, 하나쯤 가지고 싶은 제품이 S100X인 반면, 실용적인 면에서 보면 JS-40B가 왜 베스트셀러인지 알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