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1편과 2편에 걸쳐 Evernote의 흥망성쇠를 꽤 길게 다뤘다. 2008년 금융위기 속에서 기적처럼 살아난 이야기, 10억 달러 유니콘이 되기까지의 과정, 그리고 2016년 개인정보 스캔들과 Bending Spoons에 인수되기까지의 추락. 파면 팔수록 이야기가 나왔다(그리고 요 근래 없는 연타석 대박을 쳤다).
이번 글이 진짜 마지막이다(었으면 좋겠다). 그동안 다룬 사건들이 ‘무슨 일이 있었나’에 대한 답이라면, 이번 글은 ‘왜 그런 일이 일어났나’에 대한 답이다. Evernote는 왜 몰락했을까? 그 마지막 퍼즐 조각을 맞춰보자.
1. 초점을 잃으면 모든 것을 잃는다
Evernote의 가장 큰 문제는 한마디로 초점의 상실이었다. “모든 것을 기억하라”는 슬로건 아래, 정말 모든 것을 하려고 했다.
2011년부터 Evernote는 핵심 제품 대신 주변 앱들을 잇따라 출시했다. Evernote Food(음식 기록), Evernote Hello(명함 관리), Evernote Peek(iPad 스마트 커버 활용 학습 도구). 심지어 브랜드 노트북과 백팩까지 팔았다. 제품 분석가 Hiten Shah는 이렇게 지적했다: “모든 사람을 위한 제품을 만들려 했기 때문에, 역설적으로 핵심 사용자들이 원하는 경험을 제공하기 어려워졌다”고.
이런 부수적 도구들은 Evernote의 개발 역량을 분산시켰고, 정작 메인 제품은 정체 상태에 빠졌다. 버그는 쌓여가고, 동기화는 느려지고, 앱은 무거워졌다. 사용자들이 진짜 원했던 건 ‘안정적이고 빠른 동기화’였는데, 회사는 딴 데 정신이 팔려 있었다.
2. 프리미엄의 함정: 2억 2,500만 명의 허상
Evernote는 프리미엄(Freemium) 모델의 대표적인 성공 사례로 꼽혔다. 2억 2,500만 명이라는 사용자 수는 인상적이었다. 하지만 그 속을 들여다보면 이야기가 다르다.
2019년의 한 설문 조사는 꽤 충격적인 결과를 보여준다. “Evernote를 더 이상 사용할 수 없다면 얼마나 실망하겠는가?”라는 질문에 “매우 실망할 것”이라고 답한 비율은 23%에 불과했다. 제품-시장 적합성(Product-Market Fit)의 기준으로 꼽히는 40%에 한참 못 미치는 수치였다. 심지어 “매일 사용한다”고 답한 비율도 21%에 그쳤다. (이전 글을 쓸 때, 구체적 PMF 수치를 찾지 못했다)
이게 무슨 뜻일까? 사용자 수는 많았지만, 대부분은 Evernote에 깊이 관여하지 않는 ‘가벼운’ 사용자였다는 거다. Evernote는 이 숫자의 허상에 취해, 진짜 충성 고객이 누구인지, 그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 대다수의 무료 사용자는 가격 인상이나 기능 제한에 쉽게 다른 서비스로 떠나버렸다. 2억 2,500만 명이라는 숫자는 모래성이었던 셈이다.
3. 새로운 강자들의 등장
Evernote가 내부 혼란에 시달리는 동안, 노트 앱 시장의 판도는 완전히 바뀌었다.
Microsoft OneNote는 Office 365에 무료로 포함되어, 이미 Microsoft 생태계를 사용하는 수억 명의 사용자에게 자연스럽게 스며들었다. Google Keep도 무료로 제공되며 Google 생태계와 긴밀히 통합되었다. 거대 기업들이 Evernote의 핵심 기능을 무료로 제공하기 시작한 것이다.
하지만 진짜 위협은 다른 곳에서 왔다. 2013년에 설립된 Notion은 노트, 데이터베이스, 칸반 보드, 프로젝트 관리를 하나의 워크스페이스에 통합하는 “올인원” 접근법으로 급성장했다. 2024년 8월 기준 1억 명의 사용자를 확보했으며, 특히 팀 협업과 프로젝트 관리 기능에서 Evernote를 압도했다. 무료 플랜에서도 무제한 페이지와 블록을 제공하여, Evernote의 제한적인 무료 플랜과 극명한 대조를 이루었다.
양방향 링크(bidirectional link)라는 개념은 Roam Research가 처음 대중화시켰다. “네트워크화된 사고(networked thought)”를 위한 도구라는 철학 아래, Roam은 모든 노트가 서로 연결되어 지식의 그래프를 형성하도록 설계되었다. 연구자와 학자들 사이에서 열광적인 팬층을 형성했지만, 비싼 가격(월 $15)과 클라우드 전용이라는 한계가 있었다.
Obsidian은 Roam의 양방향 링크 개념을 가져오면서도, 로컬 저장과 무료 모델로 더 넓은 사용자층을 확보했다. 마크다운 기반으로 노트는 단순한 .md 파일로 저장되어 어떤 컴퓨터에서든 읽을 수 있고, 수백 개의 커뮤니티 플러그인으로 기능을 무한히 확장할 수 있다. Evernote가 클라우드 중심으로 “모든 것을 우리 서버에 맡기세요”라고 말할 때, Obsidian은 “당신의 데이터는 당신의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Evernote의 2016년 개인정보 스캔들 이후, 이런 접근은 더욱 설득력을 얻었다.
Apple Notes조차 무시할 수 없는 경쟁자가 되었다. iOS 17과 macOS 14에서 노트 간 링크 기능이 추가되는 등, 해마다 기능이 강화되면서 가벼운 메모 용도로는 충분한 대안이 되었다. Apple 생태계에 이미 있는 사용자들에게, 굳이 Evernote를 설치할 이유가 줄어든 것이다.
Craft는 Apple 생태계에 최적화된 네이티브 앱으로, Notion보다 훨씬 부드러운 사용 경험과 아름다운 디자인을 제공하며 Apple 사용자들을 사로잡았다. 문서 작성에 특화되어 있으면서도 작업 관리와 화이트보드 기능까지 갖추고 있어, “Notion은 너무 복잡하고 Evernote는 너무 단순하다”고 느끼던 사용자들에게 딱 맞는 중간 지점을 제시했다.
한편 Evernote의 가격 인상과 무료 플랜 축소에 실망한 사용자들은 Upnote를 찾았다. Evernote와 유사한 노트북/태그 구조를 유지하면서도 훨씬 저렴한 가격(평생 라이선스 제공)과 깨끗한 인터페이스를 제공하며, “Evernote의 직접적 대체재”로 부상했다. 기능적으로는 혁신적이지 않지만, Evernote가 사용자를 배신하는 동안 그 빈자리를 채우기에는 충분했다.
그 외에도 Joplin(오픈소스, 엔드투엔드 암호화), Bear(마크다운, 아름다운 디자인), Coda(문서+스프레드시트+앱 통합), Anytype(완전한 데이터 주권) 등 다양한 대안이 등장했다. 각각은 특정 사용자층의 니즈를 정확히 겨냥했다. Evernote가 “만능 도구”를 지향하며 이것저것 기능을 추가할수록, 오히려 어느 하나에서도 최고가 되지 못하는 역설에 빠졌다.
노트 앱 사용자들의 트렌드 자체도 변했다. 과거에는 “모든 것을 한 곳에 저장”하는 Evernote식 접근이 매력적이었지만, 이제 사용자들은 자신의 워크플로에 맞는 특화된 도구를 조합해서 쓰는 방식을 선호하게 되었다. 프로젝트 관리는 Notion이나 Trello로, 빠른 메모는 Apple Notes나 Google Keep으로, 깊은 지식 관리는 Obsidian으로. Evernote의 설 자리는 갈수록 좁아졌다.
4. 교훈: 코끼리는 무엇을 잊었나
Evernote의 이야기에서 우리는 몇 가지 교훈을 얻을 수 있다.
첫째, 타이밍은 전략이 아니라 행운이다. Evernote는 iPhone과 App Store의 등장이라는 완벽한 타이밍에 올라탔다. Phil Libin 자신도 TechCrunch와의 인터뷰에서 “개발 일정이 6개월만 어긋났더라도 이 거대한 모바일 성장의 파도를 타지 못했을 것”이라고 인정했다. 하지만 그 행운을 지속 가능한 경쟁력으로 바꾸지 못했다. 선점 효과는 영원하지 않다.
둘째, 초점을 잃으면 모든 것을 잃는다. Evernote Food, Hello, Peek, 브랜드 배낭… 핵심 제품의 개선 대신 주변부를 확장하면서, Evernote는 자신이 무엇인지 설명하기 어려운 서비스가 되어버렸다. 경쟁자들은 그 틈을 놓치지 않았다.
셋째, 프리미엄은 양날의 검이다. 2억 2,500만 무료 사용자는 인상적인 숫자였지만, 그 중 실제로 돈을 내는 사용자는 소수였고, 대다수는 Evernote에 깊이 관여하지 않았다. 숫자의 허상에 취해 이상적 고객이 누구인지 파악하지 못했다.
넷째, 프라이버시는 타협의 대상이 아니다. 2016년의 개인정보 스캔들은 기술적으로는 사소한 변경이었을지 모르지만, “모든 것을 기억하라”고 권유하면서 정작 그 기억을 직원이 열람할 수 있다는 것은 서비스의 존재 이유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었다.
다섯째, 사용자의 신뢰는 한 번에 무너진다. Bending Spoons의 인수 이후 이어진 무료 플랜 축소, 급격한 가격 인상, 고객 지원 부재는, 수년간 노트를 쌓아온 장기 사용자들에게 배신감으로 다가왔다. 각각은 납득 가능한 비즈니스 결정이었을 수 있다. 하지만 이것들이 한꺼번에, 그것도 외부 인수자의 손에 의해 일어났을 때, 사용자들이 느끼는 것은 배신이다.
남은 이야기
Evernote는 아직 죽지 않았다. Bending Spoons은 2024년 이후 실제로 많은 기능 개선을 이뤄냈다. 2025년 한 해만 160개 이상의 개선 사항을 출시했고, 2026년 1월에는 v11을 출시하며 AI 어시스턴트, 시맨틱 검색, AI 회의 노트 기능을 추가했다.
하지만 노트 앱 시장은 이미 다른 세상이 되었다. Notion은 1억 사용자와 함께 “올인원 워크스페이스”의 표준이 되었고, Obsidian은 “데이터 주권”이라는 시대 정신을 체현하며 열정적인 커뮤니티를 구축했다. Apple Notes마저 해마다 진화하고 있다. Evernote가 “안정적이고 단순한 노트 앱”으로 남을 수는 있겠지만, 한때 그 자리에 있었던 “생산성 혁신의 아이콘”이라는 왕관은 이미 돌려줘야 할 시점이 지났다.
“모든 것을 기억하라”는 Evernote의 슬로건은, 이제 아이러니하게도 Evernote 자체의 역사를 기억하기 위해 가장 필요한 말이 되었다. 기술 기업이 사용자의 신뢰를 어떻게 얻고, 또 어떻게 잃는지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