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인팅 스틱, 키보드 속 작은 조이스틱의 여정

ThinkPad 노트북 키보드와 트랙포인트그리고 트랙패드

개요

포인팅 스틱(Pointing Stick)은 키보드 중앙에 자리한 작은 조이스틱 형태의 포인팅 디바이스입니다. IBM이 상표화한 이름인 트랙포인트(TrackPoint)로 더 잘 알려져 있지요. 손가락으로 스틱을 누르는 힘을 감지하여 커서를 움직이는 방식이라, 마우스나 터치패드와 달리 키보드에서 손을 거의 떼지 않고 화면을 조작할 수 있습니다. 저는 (의외로)IBM/레노버 노트북을 가장 많이 사용한지라, 포인팅 스틱에는 각별한 감정이 있습니다.

특징

포인팅 스틱의 가장 큰 장점은 키보드 중심의 작업 흐름을 끊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 홈 포지션에 손을 둔 채로 커서 이동이 가능하고, 정밀 제어에 강합니다.
  • 노트북에 별도 공간을 차지하지 않아 디자인에 유리하며, 작은 기기에서도 유용합니다.

반대로 단점도 있습니다. 익숙해지기 전에는 조작이 어렵고, 장시간 사용 시 손가락 피로가 생길 수 있으며(얼얼~), 스틱에 끼우는 고무 캡(일명 “빨콩” 또는 “고양이혀”)은 정기적인 교체가 필요합니다.

원리

포인팅 스틱의 작동 원리는 일반적인 마우스나 트랙볼과는 조금 다릅니다. 마우스는 표면 위를 움직인 거리를 직접 감지하는 방식이지만, 포인팅 스틱은 사용자가 스틱을 어느 방향으로 얼마나 누르는 힘을 가했는지를 감지하는 구조입니다. 작은 스틱 아래에는 힘을 전기 신호로 바꾸는 센서가 들어 있으며, 누르는 힘이 약하면 커서가 천천히 움직이고, 강하게 누르면 빠르게 움직입니다. 일종의 자동차 엑셀처럼 속도를 제어하는 방식인 셈이지요. 다만 센서가 민감하다 보니 손을 뗐는데도 커서가 조금씩 흘러가는 ‘드리프팅 현상’이 나타나기도 합니다. 이 경우 잠시 기다리면 내부 회로가 자동으로 중심값을 다시 맞추어 커서가 멈추게 됩니다.

드리프팅 현상

포인팅 스틱을 오래 사용하다 보면 손가락에서 전해지는 미세한 압력이나 센서의 오차로 인해, 손을 떼었는데도 커서가 조금씩 흘러가는 ‘드리프팅(Drifting) 현상’이 나타나곤 합니다.
이때는 잠시 손을 떼 두면 내부 센서가 자동으로 보정되어 커서가 멈추게 됩니다. 이는 포인팅 스틱 사용자라면 누구나 한 번쯤 경험하는 특징적인 현상입니다.

초기 역사

포인팅 스틱의 뿌리는 1980년대 MIT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연구자 Ted Selker는 키보드에서 손을 떼지 않고 커서를 조작할 방법을 모색했고, IBM에 합류하여 이를 상용화했습니다.

그 결과 1992년 출시된 IBM ThinkPad 700C에 트랙포인트가 탑재되었고, 빨간색 고무 캡은 곧 ThinkPad의 아이콘이 되었습니다.

ThinkPad와 전성기

1990년대와 2000년대 초반까지 포인팅 스틱은 ThinkPad뿐 아니라 HP, Dell, Toshiba 등 여러 비즈니스 노트북에 채택되었습니다. 각사마다 다른 이름을 붙였지만, 결국 IBM의 트랙포인트가 가장 강력한 인상을 남겼습니다. 당시에는 터치패드가 아직 보편화되지 않았기 때문에, 노트북 사용자들에게 포인팅 스틱은 매우 중요한 입력 장치였습니다.

터치패드의 부상과 후퇴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터치패드가 급속도로 보급되기 시작했습니다. 1990년대 후반 애플과 알프스 일렉트릭 등이 본격적으로 상용화한 터치패드는 직관적이고 학습이 필요 없는 인터페이스로 대중에게 크게 어필했습니다. 공간도 크고 제스처 기능까지 제공하면서, 결국 소비자용 노트북 시장에서 포인팅 스틱은 점차 밀려났습니다. 오늘날에는 일부 비즈니스 노트북(특히 Lenovo ThinkPad)에서만 명맥을 유지하는 정도가 되었습니다. 처음 ThinkPad에 트랙포인트와 터치패드가 일체형이 된 일명 ‘UltraNav’를 봤을 때의 충격을 잊을 수 없습니다.

HHKB Studio로 이어진 현재

재미있게도, 최근 일본 PFU가 발표한 HHKB Studio가 다시 포인팅 스틱을 탑재하며 화제가 되었습니다. 이 제품은 전통적인 Happy Hacking Keyboard의 미니멀한 레이아웃을 유지하면서도, 중앙에 포인팅 스틱과 마우스 버튼을 더했습니다. 덕분에 키보드 하나로 타이핑과 커서 이동, 마우스 조작을 모두 수행할 수 있는 독특한 경험을 제공합니다.

특히 IBM 트랙포인트 관련 특허가 이미 만료된 덕분에, PFU가 자유롭게 포인팅 스틱 기술을 채용할 수 있었던 것도 중요한 배경입니다. 싱크패드의 스틱 캡이 정확하게 호환 되는 덕에 HHKB Studio 사용자 중에는 붉은 싱크패드 캡을 끼워 쓰는 사람도 있습니다.


맺음말

포인팅 스틱은 한때 노트북 입력 장치의 표준이 될 뻔했으나, 터치패드에 자리를 내주고 소수 사용자들의 전유물로 남았습니다. 그러나 HHKB Studio 같은 새로운 시도는 이 작은 조이스틱이 여전히 매력적인 입력 장치임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작지만 사라지지 않는 빨콩의 유산”은 앞으로도 틈새 시장에서 새로운 변주를 이어갈지도 모릅니다.

푸른곰
푸른곰

푸른곰은 2000년 MS의 모바일 운영체제인 Pocket PC 커뮤니티인 투포팁과 2001년 투데이스PPC의 운영진으로 출발해서 지금까지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2005년 이후로 푸른곰의 모노로그를 운영하고 있으며 지금은 주로 애플과 맥, iOS와 업계 위주로 글을 쓰고 있습니다.

기사 : 245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