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ay for Kyoani

저의 오타쿠 인생을 반추해보면, 오타쿠는 ‘되는게’ 아니라 ‘되어 있는 거’라는 이야기만큼 잘 들어맞는 설명이 없습니다. 적극적으로 덕질을 할 생각은 없었지만 어느새인가 저는 골수까지 훌륭한 오타쿠가 되어 있었죠. 그런 맥락에서 볼 때, 제가 교토 애니메이션, 약칭 ‘쿄애니’ 작품을 언제 처음 접했는지, 그리고 그때마다 어떤 감상을 가졌는지는 사실 불분명합니다. 어느정도 망각의 저편에 있는 셈이죠. 하지만 분명한건 ‘스즈미야 하루히의 우울’과 ‘케이온’이 하나의 이정표로 남아 있다는 사실이죠. 벌써 10년이 되었습니다만, ‘엔들리스 에이트’ 사태 때 어리둥절하며 매주 똑같은 이야기를 보던 기억이 있을 정도니까요.

그 이후로도 ‘빙과’를 기점으로 쿄애니 작품은 거의 빠짐없이 봤고 상당수의 미디어를 구입할 정도로 빠졌죠. 그리고 굿즈도 이것저것 샀습니다. 특히 복제 원화는 정말 어렵사리 구했었네요. 물론 쿄애니에서 낸 복제 원화는 보기 좋게 컴퓨터로 수정을 해서 내놓은 것이지만 그걸 감안하더라도 매우 아름다웠습니다. 사람 손으로 이렇게 그릴 수 있구나 감탄하곤 했습니다. 기회가 되면 모았고, 감탄했습니다.

주지하시다시피 쿄애니 제1 스튜디오에 대한 방화 테러가 일어난지 사흘이 지났습니다. 사흘이 어떻게 지났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 아름다운 그림을 그리던 분들과 화면을 아름답게 장식해주시던 분들이 서른 네분이나 돌아가시고 제가 감탄하던 원화들의 오리지널은 이제 남아있지 않는 물건이 되었을 공산이 높습니다.

2001년 미국 동시다발 테러사건(‘9/11 테러’)이나 2011년 동일본 대지진, 2014년 청해진해운 세월호 침몰 사고 같은 대형 참사와 마찬가지로 이번 사건으로 인한 피해는 막대하고 후유증 또한 오래 남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재건을 다짐한 핫타 히데아키(八田英明) 사장 말마따나 언젠가는 반드시 쿄애니는 부활 할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지만 그렇더라 하더라도 앞서 언급한 세 사건이 그러했듯이 그 전과 그 후의 모두의 마음은 결코 같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범인에 대한 야속함도, 700제곱미터(210평 가량) 건물의 불이 완진되는데 걸린 20시간이라는 긴 시간도, 아직까지 안부확인조차 완전히 되지 않은 상황(정확히는 확인 및 공개까지 시간이 걸리는 상황)이라는 답답함도 있습니다. 가족들 조차 확인이 안되서 발을 동동 구르고 있다는데 어떤 사람이 어떻게 됐다더라 같은 카더라만 횡행하고 있으니 환장할 노릇이군요.

뭐가 어찌됐든 저는 범인을 용서할 수가 없습니다. 제가 용서안한들 뭐가 달라지겠냐만서도. 지옥의 가장 뜨거운 자리 바로 옆에 그의 자리가 있기를 바랍니다. 이번 사태에 대해 저는 트위터를 통해서 여러 기사를 소개했습니다. 많은 분들이 같이 가슴 아파하셨고 서로가 서로를 위로했지요. 하지만 꼭 그렇지만도 않은게 고인을 모욕하고, 가슴 아파하는 사람들을 힐난하거나 조롱하는 사람도 있었기 때문입니다. 여러모로 사람의 바닥이 어디 까지 떨어 질 수 있는가 실감할 따름입니다.

“‘기대’라는 것은 절망적인 차이에서 비롯된다”는 고전부 시리즈의 대사가 떠오릅니다. 현실이 절망적인 만큼 시궁창이니 쿄애니의 부활을 ‘기대’ 할 수 밖에 없습니다. 지지 말기를! I Pray for Kyoan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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