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브컬쳐 – 그 장도리 좀 놓고 얘기합시다.

’이것은 픽션입니다’

소위 ‘서브컬처(subculture)’를 ‘파게’되면 좋건 싫건 내향적이 된다. 여기서 말하는 내향적이라는 것은 실제 본인의 성격이 아니라, 본인의 취향에 대해서 해당하는 말일 것이다. 이름 자체가 암시하듯이 주류인 ‘메인 컬쳐(main culture)’ 또는 ‘하이 컬쳐(high culture)’의 하위 문화로써 자타가 생각하는 것이기 때문에, 서브컬쳐를 향유하는 집단 자신도 본의 아니게 움츠려 드는 경우가 있다. 시대가 흐르면서 많이 나아졌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우리 사회는 만화나 애니메이션, 게임을 ‘바람직하지 않은 것’으로 (사람에 따라, 시대에 따라 정도는 다르나) 여겼으며. 덕분에 서브컬쳐를 즐기는 사람들은 본의던 아니던 자신이 몰두하는 것에 대해 어느 정도는 ‘죄의식’을 가지고 접하게 된다. 악당이 악당끼리 소속감을 가지며 어울리듯이 (결코 이게 나쁘단 의미는 아니지만) 서브컬쳐를 향유하는 사람들은 서로를 일정한 소속감과 연대감을 가지고 대하고 있으며, 소위 ‘일반인’들에 대해 방어적이고 수동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적어도, 자신이 하고 몰두하고 있는 것이 ‘주류’의 인식에서 환영받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흔히들 ‘오덕’이라고 불리는 서브컬쳐 팬들은 대개 ’내향적’으로 몸을 웅크리고 운신을 하며 자신의 취미가 대놓고 드러나지 않도록(‘일코’하며) 조용조용 즐기는 것이 일반적이겠다. 그러다가도 자신의 취미를 아는 사람과 이해하는 사람을 만나면 그야말로 화기애애 해지는 것도 드문 일은 아니다. 뭐 반대로 언제부터 알았나 싶을 정도로 상극처럼 싸울 수도 있다. ‘겨우’ 자기가 미는 캐릭터 가지고. (라고 하면 나는 양쪽에서 돌을 맞을 것이다)

죄책감은 어디서 오는가? – 그리고 왜 이 글을 쓰는가?

소위 서브컬쳐를 공격하거나 비하하는 사람들은 이렇게 말하는 것 같다. 리비도나 패티시를 자극하는 말초적이고 노골적인 내용이며, 따라서 그것을 보는 것은, 더군다나 청소년이 보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뭐 이런 얘기가 되지 않을까? 물론 실제 표현은 이것보다 더 빙빙 돌아 정중할 수도, 이것보다 스트레이트하고 과격할 수도 있다. 나는 이런 생각에 대해서 일일히 반박할 생각은 없다. 사람은 단순한 동물이 아니다. 극히 사욕을 배제하는 삶을 사는 종교인부터 마냥 오늘이라도 세상이 끝날 것 같이 사는 사람도 있는 것이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 둘을 강제로 앉혀 놓고 서로의 당위성을 주장해서 설득시키시오 라고 주문을 내린들, 아마 그 둘이 진심으로 이해를 하는 것은 무리일 것이다. 애당초 그런 ‘깊은 이해’가 가능했다면 인류사의 이념과 사상, 종교를 두고 벌어진 전쟁이 존재했던 그리고 존재할 이유가 없다.

그러나, 사람은 단순한 동물이 아니므로 그렇다고 해서 영원히 커뮤니케이션을 끊고 ‘냉전’상태로 있을 수만은 없다. 나 또한 결국 누군가의 이웃이고, 어느 동네의 주민이며 어느 사회의 구성원이다. 나는 그들을 만나고 접해야 하며, 그들을 이해하고 그들과 살아가야 한다. 그렇다면, 그들도 나를 만나고 접하며, 나를 이해하고 살아야 할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마냥 이해하십시오’라고 할 수는 없으므로, 나는 이렇게 글을 써서 ‘이것은 이렇습니다’라고 설명 해야겠다.

그러니 내가 이렇게 설명함으로 당신은 ‘그렇군요’라고 생각하고 서브컬쳐를, 그리고 그것을 즐기는 사람을 단지 그들이 즐기는 물건이 아니라 ‘그 자신’을 보고 이해하기를 바라는 것이 목표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는 서브컬쳐에 대해서 여러가지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가 없다.

영화 좋아하세요?

제일 먼저 생각해볼 것은 정말로 라이트 노벨이나 애니메이션, 이건 내 전문 분야는 아니지만 게임은 정말로 유해한가, 라는 질문이다. 물론 이 주제를 꺼내기만 해도 폭력적이고, 선정적이며, 음란하다 라는 조건반사적인 반감 내지는 선입관을 가진 분들이 없지 않아 계시겠지만, 한 번 크게 심호흡하고 좀 더 자세히 보자는 것이다. 초등학교(국민학교)때 그렇게 싫으면서도 공부라는 명목으로 개구리 등의 동물을 직접 해부하거나 하는 것을 본 적이 있을 것이다1. 하다 못해 그런 기분으로라도 실눈을 뜨고서라도 한 번 살펴보자.

사실 비유라고는 하나 본인의 취미를 산 동물을 문자 그대로 도륙하는 행위에 비유하는 것은 결코 즐거운 일은 아니다(그걸 일로 하시는 분에게는 죄송하지만). 아마 이 글을 읽는 분 중에서 적지 않은 분께서 이 자식 뭐라는 거야? 라고 생각하신 분이 계시리라 생각한다. 그러나 적어도 내가 보기에 정말로 일부는 산 개구리 해부하는 것처럼 혐오감을 가지고 계시는 분이 없잖아 있기 때문이다. 그들의 눈에게는 서브컬쳐 팬이 개구리를 무자비하게 있는 대로 도륙하는 피도 눈물도 없는 인간쯤으로 보이는 건 아닐까?

라이트노벨이나 애니메이션의 팬이 아니라면 아마 최근의 애니메이션이나 라이트노벨은 정말로 한심하게 보일 지도 모르겠다. 왜 이렇게 알기 쉽게 선정적이고 단순무식하게 폭력적이며 자극적일까? 정말 이런거에나 몰두하는게 무슨 의미가 있는거람? 이라고 말이다. 뭐 그건 즐기는 내가 그렇게 생각해본 적이 있으니 굳이 말로 하지 않아도 알고 있다. 아마, 이것은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업계에서도 팬들도 자각하고 있으리라. 나이가 든 서브컬쳐 팬들은 소위 ‘모에’라고 불리는, 도대체 이걸 어떻게 번역해서 소개해야 좋을지 싶은 뭐, 굳이 말하자면 일종의 패티시즘에 집착하지 않았어, 라고 입맛을 쩝쩝 다시는 걸 종종 보곤 한다. 아니, 이미 내 나이가 벌써 그런 입맛을 쩝쩝 다시는 쪽에 더 가깝다. 다시 말하자면 서브컬쳐를 즐기는 당신의 가족, 친구, 이웃 혹은 동료도 이 문제를 잘 알고 있다는 얘기다.

혹시 영화를 좋아하나? 예, 아니오의 2택문제가 되면 아마 대개의 한국인들은 주저하더라도, 질문을 고쳐 굳이 말하자면 어느 편입니까? 라고 말한다면 대개 그런 편이라고 대답할 것이다. 이건 사실 물어 볼 필요도 없다. 한국인들은 전세계에서 영화를 가장 많이 보는 나라 사람들 중 하나다. 그렇지 않다면 이 작은 나라에서 1천만 관객이 드는 영화가 그렇게 팡팡 샘 솟듯 나오는 것은 불가능하리라. 전 국민의 4명 중 한 명이 봤단 말이다. 이게 말처럼 우스운 얘기가 아니다. 그렇다면 한번 생각해보자, 천만 관객이 든 영화는 아니지만 칸느를 탔던 영화인 올드보이를 한번 예를 들어 보고 싶다, 최민식은 장도리 하나 들고 ‘예의 그 복도 신’에서 몇 명을 찍어 누르고 휘두르며 뚫고 갔으며 오달수의 이빨을 몇 개나 해먹었던가. 그리고 그가 무얼 알고 그렇게 실성했던가. 서양인들은 왜 그렇게 최민식이 산낙지를 하나 잡아먹는거에 그렇게 파르르 떨었던가.

그래서, 혹시 올드보이를 보았는가? 그렇다면 혹시 당신의 기분은? 슬슬 집 신발장에 있는 공구함에 있는 망치를 만지작 거리고 계시진 않은가? 아닐거라 믿는다. 뭐 그런 영화를 이런 곳에 비유를 하는 것이 어찌보면 불경스러울 수 있으나, 나는 문화에 귀천이 없다고 배워왔다(‘문화 상대 주의’).

우리는 올드보이를 극장 옆자리에서 본 사람이 갑자기 최민식의 연기와 박찬욱 감독의 연출에 감화(?)되서 현실 따위 잊어버리고 둔기를 내 앞에서, 혹은 집에 돌아가서 휘두르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그건 음, 그러니까 소위 말하는 믿음이다. 그 믿음을 나도 가지고 있고, 옆에서 강혜정와 최민식의 정사씬에서 팝콘 먹던 손을 멈추던 사람도 가지고 있다. 아마, 서로 ‘나는 안 그래, 저 사람도 그러겠지’ 라고 생각할 것이다. 아마 그런 믿음이 깨지는 순간, 우리는 극장에서 불이 들어오는 순간 의심암귀에 빠질 것이다. 아니 가만히 앉아 있질 못하겠지, 최근 극장에서는 보다 실감나는 감상을 위해서 바람이 불고 좌석이 흔들리는 체험을 돈을 더내고 한다. 하지만 공짜로라도 머리 뒤에서 장도리가 날아온다는데 집중이 될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나이가 드러나는 것 같고, 탈법행위라 그다지 자랑스럽진 않지만 재미있는 얘기를 해주자면, 나는 올드보이를 고등학생 때 그것도 (친)엄마와 함께 가서 봤다. 이게 얼마나 얼척이 없는 상황인지, 영화를 본 사람이라면 다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최민식에 끌렸지 이런 영화인 줄은 몰랐다니깐, 정말로. 제 아무리 오만 쓸 때 없는걸 기억하는게 특기라고 해도 그때 팝콘을 가져갔는지 가져갔는데 먹는 손이 멈췄는지 기억은 나지 않지만, 그 장면에서 두 사람이 얼마나 난감했으며 최민식과 유지태의 모든게 드러나고 극장에서 나올 때 엄마가 질리면서 손사래를 친건 아무래도 아직 기억한다. 나도 그때 허를 찔려서 난감하게 웃을 뿐이었다. 다시 말하지만 그런 영화인줄 모르고 들어갔다니깐. 반성한다. 잘못했습니다.

해서, 다정다감하고 혈기 왕성하며 감수성이 예민하고 ‘그런 것’에 영향을 받기 쉽다는 그런 시기 한창 때, 나는 엄마와 그 영화를 보았다. 그리고, 알다시피 나는 사람에게도 물건에게도 장도리를 휘두르지 않았다. 장도리는 공구함에서 본래 본분을 위해 잠자고 있다. 애시당초 벽에 구멍내기 싫어서 접착제로 거는 고리를 더 많이 쓰지만.

나는 여기서 올드보이의 평론을 하자는게 아니다. 당신도 나도 그리고 아마도 누군가도 최민식에 주화입마한 사람이 없다는 것이 중요하다. 아니 솔직히 존재 했다 치더라도 누구도 그 ‘프레임’으로 보지 않았다는게 중요하다. 아, 저 자식 올드보이 봤구만, 이라거나 올드보이 보면 저러는구나 한 사람은 없다는 얘기다. 천만 관객은 아녔지만, 당시 기준으론 꽤 흥행했잖나? 상도 타서 나라가 들썩였고. 그 기억이 충격적이라 그런지는 모르나, 손에 꼽을 정도로 좋아하는 영화인지라 예는 이걸로 들었지만, 아마 대개 어지간한 작품이라면 굳이 예시를 들 것도 없이 거의 다 들어 맞을 것이다.

여기까지 잘 따라왔는가? 그렇다면 한번 묻겠다. 왜 애니메이션이나 만화 등을 보는 사람은 당신 옆에서 장도리를 휘두를 것 마냥 생각하나? 어째서 서브컬쳐만 유해한가?

뭐, 나와 엄마는 탈법을 해서 등급분류를 어기고 관람했다지만, 엄연히 올드보이는 19세 이상 관람가(혹은 이에 준하는 등급)였다. 쉽게 말해서 ‘그런 것에 감수성이 있는’ 청소년들은 볼 수가 없다는 얘기다. 그리고 설령 봤다 하더라도 올드보이가 누군가를 눈을 희번득하며 장도리를 휘두르는 사람으로 자라게 하진 않았을 거라고 생각한다. 나이가 먹어서 감화를 받아 장도리를 휘둘렀든, 나이를 덜먹어 장도리를 휘두르도록 자랐든, 우리는 상상이 아니라 현실에서 장도리를 휘두르는 사람을 한마디로 설명한다 ‘미쳤다’라고(결코 정신질환 환자를 비하할 의도는 아니지만). 만약 당신의 가까운 누군가가 장도리를 벽에 못박는 용도 이외로 사용하는걸 진지하게 고려하고 있는걸 본다면 적당히 피할 준비를 하며 진지하게 전문가의 상담을 받으라고 권할 것을 추천한다. 수틀리면 머리에 깍지끼고 걸음아 나 살려 하고 그 자릴 피하고 보자.

수동적 안전과 능동적 안전

얼마전까지 차를 한 대 가지고 있었다. 과분할 정도로 좋은 차였고 딜러가 감탄할 정도로 아껴 탔지만 대중교통을 더 많이 이용하는지라 그냥 약간 이문이 남는 선에서 적당히 매각했다. 그 차를 사니깐 전공서적같은 매뉴얼이 따라 왔다. 나는 그런걸 읽는걸 좋아하는지라 쭉 일회독을 하고, 차를 타면서 페이지를 넘겨가며 버튼이나 각부를 점검해보고 사용해봤다.

정말 좋은 차였다. 솔직히 물욕이 넘치는 나로써는 그냥 껴안고 있는게 좋지 않을까? 싶을 정도였고, 차를 매각한다고 하니 절친한 친구 녀석도 아깝다고 했을 정도니까, 에어백도 전 좌석에 달려 있고, 최신식 자세제어시스템이나 브레이크 시스템을 비롯해서 뭐 영화같은 수준인 최첨단까지는 아니더라도 있을 것은 다 있는 좋은 차였다. 그렇지만 차의 설명서는 반드시 안전벨트를 착용하라고 했고, 그 차를 인도장에서 넘겨 받고 끌고 나가면서 갑자기 스타카토 마냥 점점 크게 울려대는 경보장치가 운전석이나 조수석에 시트에 사람이 앉았는데 시트 벨트를 한 사람이라도 안하면 맬때까지 죽어라 울려대는 장치라는걸 차에서 빽빽 초침처럼 비명을 질러대는 와중에 황급하게 세일즈맨에게 전화를 해서 물어보고서는 알았다.

차에 대해서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 아니 뉴스라도 본 사람이라면 ‘결정적인 순간’에 에어백이나 ABS 보다는 안전벨트를 제대로 하는게 더 중요하다는 걸 상식선으로 알고 있을 것이다.

아무리 에어백, ABS나 차세제어장치(VSC)가 뛰어나더라도 눈비가 오는 날이나 빙판에서는 서행해서 조심히 몰지 않으면 이겨나지 않는다. 결정적으로 안전벨트를 매지 않으면 말짱 황이라는 걸 우리는 잘 알고 있다. 그러니 ‘상식적인 사람’이라면 안전벨트를 매고, 위험하다 싶으면 전조등을 켜고 서행해서 운전한다. 조수석에 앉아 있는데 만약 운전자가 그러지 않는다면 나라면, ‘벨트 해’,’박을라, 속도 좀 줄여’라고 하겠지.

영화 같은 영상물, 그리고 방송, 출판물에는 관람과 지도에 도움이 되도록 연령 등급을 매기고 있다. 그러니까 사실 정상적인 상황에서는 나는 엄마와 올드보이를 보는 것은 말도 안되는 얘기였고, 설상 보려고 했다면 그것을 직원은 제지해야 하는 의무가 있다. 불행스럽게도 그 당시에는 지금처럼 19세 등급 영화표를 들고 가면 입장구에서 일일히 신분증을 까보는 꼼꼼함이 갖춰지지는 않았다. 지금은 어떤가? ‘언제까지 2003년적 얘기를 떠드는 거람?’ 할 것이다2.

나는 혼자 산다. 혼자 살기에는 지나치게 넓은 감이 있지만, 이 집에는 혼자 산다. 애가 없다는 얘기다. IPTV를 설치해주러 몇대에 걸쳐 몇번인가 왔지만, 기사는 애가 없는 독신이라는 것을 알고는 ‘알아서’ 기본적으로 켜져있는 연령제한 기능을 꺼주고 갔다. 시간이 지나면 자동으로 전원이 꺼지는 기능과 같이 한꺼번에 능숙하게 마치 내가 키보드를 두드리거나 게이머가 마우스라도 만지작 거리듯이 리모컨을 능숙하게 움직여 끄고 아무 채널이나 휙휙 넘긴 다음 다 됐다면서 리모컨을 건네주고 돌아갔다. 이것도 처음에는 그러지 않았는데, 처음에는 내가 일일히 셋업에 들어가서 초기 암호를 누르고 꺼야 했다. 기사에 따라서는 애가 없냐를 한번 더 확인하곤 했지만 아무튼 나중엔 다 알아서 꺼줬다. 아마 그걸 하는 이유는 멀쩡히 잘보다가 갑자기 19세 등급이 뜨기만 하면 화면이 꺼지면서 암호를 누르라고 나온다는 어린 자녀 없는 가입자의 항의나 문의에 시달려서일 거라고 간단히 추정이 가능하다.

올드보이를 보고 나오면서 우리 엄마는 진덜머리를 내면서 워딩은 기억 안나지만 최소한 ’아직은’ 따라하지 말라고 했던 것 같다. 본인이 데리고 왔으면서 무슨 소리람 싶지만 어찌됐던 최소한의 교육은 (과연 그 작품을 보고 나서는) 하지 않을 수가 없었을 것이다. 그렇다, 안전장치는 존재하지만, 결국 가장 중요한건 조심히 운전하는 버릇과 안전벨트 착용이듯, 컨텐츠에 있어서도 중요한 것은 컨텐츠에 대한 올바른 취급과 올바른 등급에 대한 보호자의 지도이다. 어떤 안전장치가 존재할 수 있지만 결국 어기고자 한다면 그것을 돌파하는 것은 불가능은 아니다.

한편, 아무리 고까워 저게 뭐람 싶겠지만, 최소한 이건 법의 테두리안에 있다. 아무리 성에 개방적인 나라가 일본이고 그 나라에서 나온 애니메이션과 책에 몰두 한다지만, 일본에서도 새벽 서너시에 하는 애니메이션이 너무 막나간다 싶으면 학부모 단체가 심의기구에 쪼아대서 방송국을 갈궈 규제를 하고, 도가 지나친 책은 지역 교육 당국3이 서점에서 회수나 중판 중지를 요구한다. 최소한 상업적으로 소비되는 컨텐츠는 이러하다. 우리나라에 수입되서 사후심의를 전제로 팔리는 물건이라면 더 말할 나위가 없다. 정말 문제가 되는건 이 ‘테두리’를 벗어나는 물건이다. 우리는 이것과는 비교도 안되게 위험한 물건(몰카라던가, 무슨 웹사이트라던가)을 만지거나, 실제 범죄에 손을 대는 ‘미친 사람’을 일상적으로 씹어대는 시대를 살고 있다. 그리고 솔직히 이정도로 자기비하를 해놓고 무슨 소린가 싶겠지만, 널리 유통되는 서브컬쳐물과 그들의 범죄행위에 유의미한 합리적 접점을 찾지 못하겠다.

혹자는 이렇게 얘기할지 모른다. 그 유치한 것, 선정적인 것 읽어서 뭐하냐고. 애들 보면 좋을게 뭐 있냐고. 하지만 괜찮다. 요즘 그러잖아도 책 안 사 보는건 세상이 다 아는 사실이다. 그거라도 읽으면서 활자에 익숙해지면 본인에게도 좋고 책으로 밥벌어 먹는 사람에게도 좋은 일이다. 어릴때 그림책과 커다란 글자 책으로 시작하듯이 이렇게 활자를 접하는 사람이 나이 먹으면 (대개는) 알아서 다른 책도 읽는다. 어린 동생이나 자녀가 너무 그런 책에’만’ 빠져 있으면 단 군것질만 먹지 말고 영양가 있는 야채나 과일도 먹으라는 투로 조용히 한마디 하면 다 알아 먹는다. 애당초 이해실리를 약삭 빠르게 계산하는 요즘 같은 세대들이 그런걸 귀중한 용돈 깎아 스스로 사서 찾아보고 재밌다고 이해할 나이면 그 정도 생각은 있다4.

왜 그렇게 진지하세요, 이게 다 재미잖아요.

물론, 칸느의 주단을 밟은 올드보이가 단순히라도 오락작품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우리가 영화를 보는데 있어서 역시 늘 그렇다고 할 수는 없어도 역시 중요시 여기는 것은 ‘재미’ 혹은 ‘흥미’다, 심지어는 지난 세기의 흑백 무성영화라 할지라도 누군가는 그 화면속 인물이나 구도, 촬영본 자체에 ‘재미’나 ‘즐거움’을 느낄지 모른다. 지독하게 재미없게 못만든 괴작이라 할지라도 누군가에게는 그 사실만으로도 ‘흥미’가 있어 찾아보거나 소장하게 될지 모르는 노릇이다. 인지 부조화일지는 모르나 수면제처럼 졸린 영화라도 그 영화에 숨겨진 의미를 찾는 재미라도 있어야 한다. 어떠한 재미나 즐거움도 주지 못하는 영화는 그야말로 흥미를 일으키지 않으므로 그야말로 총체적인 실패작이다. 흥미가 곧 호기심이고 호기심이 곧 발견이니. 그야말로 외면이요, 자기 위안밖에 되지 않는 것이다. 내가 이렇게 올드보이의 스토리를 얘기하지 않고도 십이년 전 영화의 예를 들어 이야기를 풀어 나가는 것도, ‘장도리를 휘두르는 그 복도 씬’이나 오달수를 고문하는 장면 등 도처에 깔린 장면에서 폭력을 넘어서는 쾌감과 아름다움을 발견한 강렬한 기억 때문이고, 그 장면 장면들이 실제로 한국 영화사, 아니 세계 영화사에 있어서 보편적으로 남아 통할 수 있는 기억이니 당신도 알아먹을 수 있는 것일 때문일테다.

역시, 서점 한켠에 줄러리 꽂혀진 비정상적인 비례로 그려진 여자아이나 유치해 보이는 휘황찬란한 복장을 한 일러스트가 그려진 책이나 만화를 보거나 채널 재핑을 하다보니 이걸 누가 보는 거람 싶을 정도로 노골적으로 특정 부위를 강조하는 애니메이션을 보면서 고개를 저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결국 그것도 (그것들 전부가 내 취향은 아니지만)본질적으로 누군가의 재미나 흥미, 즐거움을 끌기 위해서 그런 것이다, 오락이 밥 먹여 주지 않는다, 필수품이 아닌 물건을 팔기 위해서는 유인 요소가 필요하다. 어이 없이 비싼 명품의 로고 같이 알기 쉽게 노골적인. 내가 스스로 말하는건 뭐하지만 동네에서는 아마 대놓고 드러내지 않으니 (비록 어딘가 일을 나가는 것 같지는 않지만) 친절하고 인사 잘하며 수다 잘 떠는 (노)총각이 그런데 흥미가 있는지 생각이나 하겠냐만서도, 생각 좀 하면 좀 어떤가 싶다. 누가 뭐라던 나는 친절하고 인사를 잘하며 수다를 잘떠는 이웃이다. 쓰레기는 이른 아침 재활용품과 매립용, 음식물을 각각 분리수거하며, 젊은 이웃에게도 동네 어르신에게도 낯이 익은 사람을 다시 만나 눈이 마주치면 과연 90도 까진 아니더라도 목례 정도는 한다, 꼬마 애들한테 함부로 반말 하지도 않는다. 보편적으로 보면 (지병 때문에 일 안하고 대낮에 돌아다녀서 문제지, 그걸 알까마는) 사회적인 내지는 하다못해 인격적인 결함이 있는 사람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최소한 공원에서 매번 인사하는 할머니가 설령 피만 보면 경기를 일으키는데 해부 실습에 서 있는 초등학생처럼 서브컬쳐를 싫어하더라도 적어도 내가 하다 못해 대낮에 공원에 서서 허공에 장도리를 휘두르지 않는 이상 내 뒤에서 뒷담화를 깔 것 같지는 않다. 얘기했지 않나, 의심암귀가 되면 끝이 없다고. “믿으세요, 할머니. 저도 믿으니까요. 그리고 믿으세요, 아마 여러분 옆에 있는 ‘오덕’도 대체로 무해합니다. 나는 여러분을 믿습니다.”

그 장도리 좀 내려놓고 얘기합시다.

어디선가 요즘 젊은이가 불쌍하다는 컬럼을 읽은 적이 있다. 누구가 썼더라5, 아무튼 자신이 젊을 때와는 달리 요즘은 도처에 개봉관이 있지만, 그와 비례해서 젊은이들이 귀중한 젊은 여가를 극장에 가서 영화를 보고 시간을 때우는 것을 아쉬워 하는 글이었다. 단순히 세월 타령에 한탄이 섞인 꼰댓소리가 아니라, 요즘엔 그거 정도가 값싸게 즐길 수 있는 여가라는 안타까움이었다. 영화의 예를 들면서 천만 관객을 운운했던건 사실 아마 이 글에서 따온거라고 솔직히 인정한다. 서브컬쳐도 결국 (여느 기호가 다 그렇듯 사람에 따라 다르나) 비교적 저렴하고 쉬운 여가이자 오락이다. 그리고 누군가에게 법을 범하지 않고 소중한 끼니를 살 돈을 벌게 해주는 직장을 만드는 하나의 산업이다. 왜 차별을 받아야 하나?

요즘 극장은 거의 다 넓직한 상업시설에 들어 있는 경우가 많다. 영화를 보면서 어처구니 없게 비싼 팝콘과 콜라를 먹으면서 제작자들과 배급투자자, 극장6 그리고 거기서 일하는 알바와 직원들에게 유의미한 시간을 보낸 다음 우리는 검은 상영관을 뒤로 하고 출구 통로를 걸어 나가면 눈부실 정도로 밝은 점내 조명을 한 상점들이 우리를 반긴다. 우리는 그렇게 누군가가 웃다 자지러지고, 오열하고, 쓰러지고, 죽고, 무언가가 부서지고, 터지고 사라지는 세상을 뒤로 하고 잠시간의 여흥 끝에 현실에 떨어진다.

상영관을 같이 나서서 (아마 상영관 출구라 임대료에 프리미엄이 있을) 상점을 두리번 거리는 옆 사람이 내 뒷통수를 장도리로 후갈기지 않을 거라는걸 우리는 알고 있다. 왜 이러나? 이게 다 재미지 않나, 진지하게 말해서 내가 애니메이션이나 만화, 소설 좀 본다고 당신의 머리에 노루발을 꽂을리 없잖나? 나는 당신을 치지 않을테니, 당신도 손에 든 그 장도리 좀 놓고 얘기하자.

아, 그리고 학생. 학생은 이 ‘올드보이’가 뭐라고 떠드는지 하나도 모르겠어도 만 19세가 되고 나서 올드보이를 보기 바란다. 불법이다. 자기는 어겨놓고선 알아 먹지도 못할 소릴 해댄 주제에 꼰대질 해서 미안하다. 그래도 그른건 그르다고 해야 어른 아니겠나. 알고도 못고치면 문제가 있지만, 정말 반성한다.

  1. 물론 최근 교육 현장에서는 생명 존중 차원과 정서 차원에서 이걸 하지 말자는 운동이 일어나는 걸로 알고 있다. ‘비유하자면’ 그렇다는 것이다. ↩︎
  2. 솔직히 이젠 성인이고 어느 정도 시효가 지났을거라 생각하니 얘기하는 거다만. 잘못이니 따라하지 말자. 거듭 말하지만 반성한다. ↩︎
  3. 주로 도쿄도가 한다. 지방 행정과 교육 행정이 분리된 자율 기구인 우리와는 달리 지방자치단체가 교육 행정 기능을 가지고 있다. 법령이 아니라 도 조례에 의해 규제되지만 서울과 경기도를 생각하면 쉽겠지만, 인구도 엄청나고 대다수 출판사의 본사 기능이 도쿄에 있는 이상 상업 출판물이 도쿄도에서 규제되는건 전국에서 규제되는 것에 다름 아니다. ↩︎
  4. 사실 돈 안내고 해적본을 보는게 우려스럽지만, 그런 경우를 봤다면 오히려 이걸 도둑질이라고 타일러야 한다. ↩︎
  5. 글을 올리고 나서라도 나중에 발견하면 링크를 걸도록 하겠다. ↩︎
  6. 솔직히 개탄을 하자면 우리나라는 이게 삼위 일체 되고 있는게 문제라고 생각한다. ↩︎

아이폰보다 안드로이드가 나은 이유라는 기사를 보고

iPhone 4S
Using under CC Attribution 2.0 license, by Matthew Pearce, Flickr

비즈니스 인사이더(Business Insider)가 꼽은 아이폰 보다 안드로이드가 나은 이유 16가지에 대한 생각(반박?)

비즈니스 인사이드(Business Insider)나 그 하위 블로그인 BI:SAI는 나도 꽤 즐겨보는 매체이긴 하다. 하지만 매우 선정적인 헤드라인을 써서 트패픽을 모으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곧이 받아들이지 않을 때가 있다. 사실 ‘아이폰 보다 안드로이드가 나은 이유 16가지(16 reasons Android phones are better than iPhones)’ 같은 기사도 상당히 자극적인 타이틀로 주의를 끌기 위해서라는 느낌이다. 사실 내용은 새삼스러울 것이 전혀 없지만, 이런 내용을 좋아하는 한국 기자들에게는 아주 구미가 당기는 먹이이기도 하다. 한번 이 내용을 훑으며 내 생각을 말해보고자 한다. 뭐 안드로이드도 왕성하게 사용하는 입장에서 쓰는 글이지만, 보기에 따라서는 애플빠의 반박으로 보일 수도 있다.

1.아이폰은 샀을 때 용량에서 추가할 수 없지만 대다수 안드로이드 단말은 microSD 카드로 저렴하게 업그레이드가 가능하다.

우리는 이것에 대한 반박을 아주 쉽게 할 수 있다. 멀리 갈 것 없다. 세계 최대의 안드로이드 제조사인 삼성의 플래그십 모델은 모두 microSD 슬롯은 물론 배터리 교체도 불가능하다. ‘카피캣’이라면 치를 떠는 삼성이 왜 이런 정책을 취했는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물론 얘기한대로 메모리를 추가할 수 있는 삼성 갤럭시 노트 4를 가지고 있는 나는 이 결정을 매우 바보 같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아이폰은 갤럭시 노트 4와 달리 16G/32G 짜리 모델만을 제공하지는 않았다(놀랍게도 나는 128G 짜리 모델을 쓰면서도 10G 정도밖에 여유 공간이 없다). 설사 SD 카드를 쓴다 하더라도 멀티미디어 파일은 어찌저찌 메모리에 옮길 수 있지만, 어플리케이션을 외장 카드에 전부 옮길 수 없기 때문에 앱은 32G에서 운영체제 공간을 제외한 공간에 앱을 ‘꾸겨 넣어야’ 한다. 갤럭시 노트 4는 아이폰보다 OS가 차지하는 공간도 많다.

2.배터리의 수명이 떨어져 가면 아이폰은 교체할 수 없다. 갤럭시 S6나 노트 5, HTC One과 같이 메탈과 유리로 만들어진 기종은 교체가 불가능하단 얘기다.

자기들이 써놓은 대로다. 위와 마찬가지로 삼성의 올해 플래그십 기종은 교체가 불가능하다. 그 이유는 위에 써놓은 대로다. 보호 패키지가 없는 디자인이 더 얇고 작은 배터리를 만들 수 있고 전화기의 다른 부품을 위한 귀중한 여유 공간을 더 확보할 수 있다. 물론 어느 경우던 서비스 센터에 입고하면 교체가 가능할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아이폰도 마찬가지며 아는 사람은 아는 사실이지만, 배터리만 교체하는 경우는 리퍼보다 저렴하다.

3.상당수의 안드로이드 폰은 IR 송수신기가 있어서 리모컨 대신 사용할 수 있지만 아이폰은 사용할 수 없다.

그렇다. 헌데 유감스럽게도 내 거실 TV에 연결된 HDMI 기기 중 리모컨이 있는 3개중 두개는 2.4GHz 무선으로 작동하고, 안방에 있는 3개 중 3개가 2.4GHz 무선으로 작동한다. 솔직히 말해서 IR 블래스터가 달린 갤럭시를 두 대쯤 썼지만 IR 기능을 사용한 적은 한번도 없었다. 그럴 정도면 아이폰 사용자가 그걸 아쉬워 할 일은, 글쎄 아마 없을 것이다.

4.안드로이드에 컴퓨터에서 드래그 앤 드롭으로 파일을 넣는 것은 정말 쉽다.

그렇다. 솔직히 인정해서 편하다(물론 맥에서는 조잡한 Android File Transfer를 깔지 않으면 불가능하다는 점은 차치하자). 하지만 덕분에 악성코드가 제일 먼저 NPKI 폴더부터 터는 일은 적어도 아이폰에서 볼 수 없다. 그리고 Extension Sheet가 일상화 된 지금, Dropbox 같은 클라우드 스토리지나 여타 파일 전송 유틸리티(Infinit 같은)로 PC에서 파일을 가져오거나 보내는 건 상당히 간단해졌기 때문에 예전에 비하면 비약적으로 유연해 졌다. 케이블로 넣을 수 없는 것에 대한 논점 회피를 하지 말라고? 유감스럽게 안드로이드는 더 유연하기 때문에 내 갤럭시 노트 4를 컴퓨터에 연결해야만 무슨 일이 굴러갔던 적은 손에 꼽을 만하다.

5.안드로이드는 어디서나 음악이나 사진을 넣을 수 있지만 아이폰은 아이튠스를 거치거나 아이포토를 거쳐야 한다(물론 컴퓨터에 있는 아이튠스에서 구한 것 이외의 파일을 아이튠스를 통해 넣을 수는 있다).

아이포토가 없어졌다는 건 둘째치고, 솔직히 그냥 드래그해서 음악을 넣을 수 있는건 간단하긴 하다. 하지만 그 음악들을 폴더로 체계적으로 잘 관리하지 않고 ‘무작정 쑤셔 넣는’ 버릇을 가지고 있다면 그걸 지우거나 관리하는 건 지옥일 것이다(내가 그렇다). 아, 이미 말했지만 맥에서는 Android File Transfer란 프로그램이 없으면 안드로이드에 파일을 넣을 수 없다. 그리고 안드로이드를 쓰고 있지만 누가 요새 컴퓨터에 연결해 사진을 넣고 빼나? 아이폰을 쓴다면 아이클라우드를 써도 되고, Carousel이나 Google Photo, Flickr는 아이폰과 안드로이드를 모두 지원한다. 안써봤나? 안 써봤으면 지금 써보라. 지금까지 선을 꽂아서 사진을 관리했던 자기 자신을 원망하게 될 것이다. 음악도 사실은 비슷하다. 우리나라의 MelOn이나 Bugs는 둘째치고, 미국에선 Spotify나 Pandora, Apple Music, Google Music, Amazon Prime Music 등 전세계적으로 안드로이드든 아이폰이든, 플랫폼을 떠나서 다운로드 받아서 넣는건 점점 구식이 되고 있다. 왜 다운로드 음원 판매의 대표주자인 애플이 Apple Music을 만들었겠나?

6.안드로이드는 어떤 마이크로USB 케이블로도 충전이 가능하지만 아이폰은 비싼 전용 라이트닝 케이블로만 충전이 가능하다.

뭐 2015년형 구글의 넥서스 시리즈가 USB-C로 바뀌어서 여럿 엿먹이고 있다는 점을 둘째치더라도(그리고 앞으로 더 많은 기종들이 채용할 것 같다는 점도), 굳이 비싼 애플 케이블에 집착하지 않는다면, 우리나라에서도 라이트닝 케이블은 MFI 인증을 받아 호환성에 문제가 없는 녀석도 6000원대에 살 수 있다. 지마켓 같은 곳을 뒤져보라. 모험을 할 수 있다면 MFI 인증이 없는 녀석을 더 저렴하게 살 수 있을 것이다. 심지어는 동네 슈퍼에서도 봤다.

7. 구글 플레이 스토어에서는 웹사이트에서 버튼을 눌러 바로 설치 가능하지만 아이폰은 아이튠스를 열거나 전화기에서 앱스토어를 열어 받을 수 밖에 없다.

인정한다. 구글 플레이에서 설치할 전화기를 고른 뒤 설치 버튼을 누르면 OTA로 설치가 되는 점은 편리하다. 다만 아이폰만 사용하는 사람들은 시큰둥 할 것이다. 딱히 신경 써본적이 없을 테니까.

8.애플 지도는 구글 맵스보다 안좋다. 그리고 아이폰에서는 그걸 기본값으로 쓸 수 없다.

애플 지도가 (아직도) 형편 없다는 점은 인정한다. 하지만 애플이 구글 지도를 없애고 자사 지도를 넣었을때 이미 지적했듯이 구글이 iOS용 구글 지도를 안만들리가 없었다. (아직도) 안써봤다면 다운받아 보시길, 2015년 기사에서 2012년의 애플지도 사진을 갖다 붙인건 애교로 치자. 아, 그리고 링크의 글에서도 지적했지만, 구글 지도를 놓고 애플이랑 구글이 무슨 알력 다툼을 하던간에 그때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고 우리나라에서는 구글 맵스보다 카카오나 네이버의 지도를 사용하는 사용자가 압도적이다.

9.아이폰에서는 지문이나 패스코드로만 잠금을 풀 수 있지만 안드로이드에서는 패턴이나 얼굴 인식 등 여러가지 방법을 사용할 수 있다.

일단 숫자 패스코드 말고도 문자로 된 패스워드를 쓸 수 있다는 점을 빼먹었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고, Touch ID에 익숙해지면 다른 방법을 찾는다는게 무의미해 진다는걸 잊지말자. 잠자리에 들었을때나 밤길을 걸어 다닐때 얼굴인식을 시도해 봤는가? 아니면 혹시 (본의치 않게라도)옆자리에서 패턴을 그리는 사람을 살짝 보다가 재빨리 시선을 돌려본 적은? 안드로이드에서도 패턴 인식은 보안도가 그리 높지 않다고 설명하고 있으며 괜히 안드로이드 벤더들이 지문 인식을 너나 할것 없이 도입하고 6.0에서는 구글이 OS 차원에서 지원하는게 아니다.

10. 안드로이드와는 달리 아이폰은 홈스크린을 다양하게 커스터마이즈 할 수 없다.

인정한다. 그게 나을 수도 있다. 가령 삼성의 기본 홈 런쳐는 수백개의 앱을 깐 상태에서는 검색 기능 조차 없는 재앙같은 구조이니 아예 다른 런쳐를 써서 해결 할 수 있고, 위젯도 은근히 편하다고 생각할 사람이 있을지 모른다. 근데, 위젯은 iOS에도 있다(다만, 나같은 경우는 두 플랫폼 모두 별로 쓰지 않는다). 한마디로 아이폰을 사용하는 사람은 신경 쓰지도 않는다는 얘기다.

11. 안드로이드는 아이폰이 그랬던 것처럼 홈스크린에 모든 앱을 넣도록 강요하지 않는다.

내 갤럭시 노트4의 삼성 런쳐의 경우 앱을 깔때마다 홈스크린에 더 이상 공간이 없다고 오류를 뱉는다.

12. 일부 안드로이드 전화기는 여러개 앱을 동시에 열 수 있다.

편리하다. 근데 그게 가능한 전화기를 가지고 1년 넘게 가지고 있으면서 동시에 연적은 양 손가락으로 셀 수 있다. 경험으로 미뤄보건데, 애플은 아이패드에서 PIP나 스플릿뷰 등 두개 앱을 띄우는 방법을 마련했지만, 잘해봐야 5.5인치인 아이폰에서 아마 이게 없다는게 핸디캡으로 다가올 사람은 없지는 않더라도 그렇다고 아주 많지도 않을 것이다.

13.안드로이드에서는 확인해야 할 항목의 아이콘이 상태바에 떠서 쉽게 알 수 있지만 아이폰은 뜨지 않는다.

일단, 떠 있는 아이콘과 수십가지의 알림을 확인해서 지우는게 받은 편지함을 지우는 것 같은 지루한 일이며, 나같이 화면에 지저분하게 이것저것 떠있는게 싫은 사람은 굳이 이게 좋다고 생각하지도 않을 것이다. 한편, 스크린샷을 찍을 때 아마 당신은 이걸 깨끗하게 지우고 싶을 것이다. 당신이 얼마나 아이돌 마스터 게임을 좋아하는지, 얼마나 많은 메일을 받으며 페이스북이나 트위터에서 인기인인지(그리고 그걸 확인하기 귀찮아하는지) 자랑하고 싶지 않다면. 아마 스크린샷 올리기 전에 모든 알림을 지운 사람이 없다고는 하지 못할 것이다. 굳이 스크린샷이 아니더라도, 회사에서 일코하며 사는데 전화기를 켜서 카톡을 보내고 있는걸 옆에서 흘깃 곁눈질하는 동료가 게임 알림창이나 자주가는 쇼핑몰의 로고가 늘 떠있는걸 보는게 신경이 쓰이지 않는다고는 말 못할 것이다. 다 넘어가서 전화기를 안 만진 동안에 수십개씩 뜬 알림을 보면 질려서라도 그냥 일일히 읽는걸 포기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알림을 지워버리면 달리 다신 읽을 수 없다. 적어도 iOS는 알림바에 뜨지는 않지만 당신이 명시적으로 지우거나 읽기 전까지는 7일 동안 얼마든 읽을 수 있다.

아, 나는 예전 avast 백신 버전의 형광 오렌지색의 인디케이터를 정말 싫어해서 꺼놓고 썼다.

14.안드로이드에서 iOS로 옮겨보니 기본 알람앱이 알람 시각까지 얼마나 남았는지를 알려주지 않으며 스누즈 시간을 선택할 수 없더라.

그런가보다. 휴대폰을 ‘시계와 앱만 쓰는 사람’도 있고, 나도 전화보다는 앱과 웹브라우저, 메일만 쓰지만 나는 알람시계를 사용하지 않아서 몰랐다. 그렇다손 치더라도 이게 안된다고 해서 이게 아이폰을 쓰지 말아야 하는 이유라고까지 말하는건 논리가 인간새 대회에서 뛰어내리는 사람 수준 이상으로 비약된 것이다.

15.안드로이드에서 이모지가 아이폰 보다 예쁘다.

개인적인 취향에 딴지를 걸진 않겠지만 이모지라는 녀석을 스마트폰 OS에 처음 넣은건 애플이다.

16.읽음 확인은 끔찍하다, 안드로이드에서는 신경 쓸 필요가 없다.

RTFM, 옵션란에 가면 읽음 알림을 끌 수 있다는 바보같은 말을 기자한테 하는게 바보같기도 하지만. Who cares? 어차피 iMessage 사용자보다 카카오톡 사용자가(해외에서는 Facebook Messenger) 압도적으로 많다는걸 당신도 알고 나도 안다. 그리고 우리는 모두 1이 사라지지 않거나 사라지고 나서 대꾸가 없으면 안절부절 못하는 세상에 살고 있다.

정리

이런 글에 일일히 대꾸를 하다니 나도 어지간히 시간이 남아도나 보다.

4월은 구글의 거짓말 – 4월은 너의 거짓말을 검색해보다.

4월은 구글의 거짓말

좋은 작품은 조금 더 파고 들고 싶어지는 법이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고 싶어지는 법이다. 나는 지난 여름까지 SHIROBAKO(시로바코)의 블루레이 전권을 모았고, 지난달에 4월은 너의 거짓말(四月は君の嘘)의 블루레이를 전권 다 모으는데 성공했다. 이 작품은 정말 좋은 작품들이다. 언젠가 이야기 할 계기가 있겠지.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는지, 작품에 관한 정보를 더 알고 싶어 구글을 검색했다. 나는 알다시피 구글을 좋아한다. 2006년께 구글로 홈페이지를 바꿨는데, 사실 이젠 구글의 홈페이지보다도 주소창에 검색어를 넣고 구글로 검색하는 것이 나의 궁금증을 해결하는 첫걸음이 된지 오래다.

사실 처음에는 인생 참 피곤하게 사시네요 같은 비아냥도 들었다. 그렇지만 대체로 나는 구글 검색으로 필요로 하는 정보를 얻는데 전혀 불만이 없었다. 이번에도 4월은 너의 거짓말을 검색해 보았다. 그런데, 믿을 수 없는 사태가 벌어졌다. 나는 이걸  ‘4월은 구글의 거짓말’이라고 명명하기로 했다. 이걸로 구글의 취약점이 드러나고 말았다.

Google_정보

보통, 구글에서 우리가 기대하는 것은 우리에게 유용할 것이라고 생각한 자료를 보다 쉽게 볼 수 있도록 순서를 매겨 제일 유용한 자료가 상위에 노출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페이지 랭크(PageRank)라는 기술을 사용하는 것은 잘 알려져 있다. 그 과정은 고도의 알고리즘에 인한 평가를 동반하며, 인위적인 개입은 없다. 라는게 우리들이 아는 구글 검색의 진실이다. 

이것은 구글의 홈페이지에 있는 문구이다. 구글의 목표가 잘 드러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나는 이 검색 결과를 보고 인지 부조화 상태에 빠졌다. 여러분은 앞으로 사진 몇 장을 보게 될 것이다. 그리고 나와 같이 무엇이 문제인 것인지, 의논하게 될 것이다.

구글의 목표는 전 세계의 정보를 체계화하여 모두가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것입니다. 누구를 위하여?

정말 필요한 것을 쉽게 제일 먼저 보여주는 일본어 구글 홈페이지에서 검색

구글 일본(Google.co.jp)에서 검색해 보았다. 혹시나 싶어 프라이빗 모드로 접속했으므로 쿠키나 검색 이력과는 무관하다. 두 글자만 입력했는데, 벌써 꽤나 유용한 정보가 있다.

  • 4월은 너의 거짓말
  • 4월은 너의 거짓말 동영상
  • 4월은 너의 거짓말 영화(실사판이 나온다)
  • 4월은 너의 거짓말 오프닝
  • 4월은 너의 거짓말 애니메이션
  • 4월 1일
  • 4월은 너의 거짓말 실사화
  • 4월은 너의 거짓말 명언(명대사)

그냥 4월은 너의 거짓말을 입력해 보기로 한다. 1페이지지만 대략 이런 결과이다. 왠지 필요한 정보는 다 있다고 생각된다. 이 정도라면 만족스럽다. 자, 그럼 한국어 구글을 검색 해보자.

정말 이것이 우리를 편하게 만드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싶지 않은 한국 구글의 검색

Google

벌써 부터 심상치가 않다. ~화는 애니메이션 화수를 나타내기도 하지만 원작 만화의 화수를 나타내는 경우가 많다. 애니메이션은 22화로 끝났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만화 스캔본을 구하기 위해서라고 생각 된다. 너무 극명하기 때문에 굳이 어떤 항목이 있는지 옮기지는 않기로 한다.

 이게 1페이지 째다. ‘믿음과 신뢰의’ 나무위키를 빼고 전부 불법 컨텐츠라는 놀라운 결과를 보여준다. 게다가 한 사이트가 너무 싹쓸이 해서 말이 안되는 상황이다. 한 페이지를 더 보자.

너무나도 충격과 공포였던 첫 페이지의 압박으로 인해 한 페이지를 더 보지 않으면 안되지 싶어 두 번째 페이지를 열어봤다. 별반 나아지지 않는다. 한숨이 난다.

인지 부조화에 빠진 나 – 누가 잘못했나?

이 지경이 되니 나는 생각에 빠진다. 누가 잘못 했나? 라는 것이다. 나는 만화와 블루레이를 가지고 있지만, 혹자에게는 불법 만화나 애니메이션 동영상이 정말로 유용한 정보 일 수 있고, 그것을 올리는 사이트는 중요한 사이트 일수도 있다. 그러므로 이것이 위로 왔다? 그렇다면 그것은 누구의 잘못일까? 불법 컨텐츠를 향유하는 소위 ‘복돌이’들? 아니면 그 복돌이들을 위한 컨텐츠를 높게 치는 구글? 만약, 이 시스템이 공정하고 옳았다면(fair and right), 분명 여기에는 나오지 않은 출판사 정보나 방송사 정보, 감상기, 그리고 판매하는 쇼핑몰(의외로 인터넷 서점은 구글 등 검색엔진을 막지 않는다. ISBN을 입력해 보라)을 이렇게 찬밥 대우 할 수는 없다. 심지어 불법 공유 사이트에 밀려 위키피디아 항목 조차 밀려났다. 감상기는 하나 뿐이고, 출판사 정보나, 판매 상품, 방송사 정보는 볼 수 조차 없다. 이건 구글의 실패다.

http---search.naver.com-search.naver?where=nexearch&query=4월은+너의+거짓말&sm=top_hty&fbm=1&ie=utf8 (20151115)

차라리 이래서는 네이버가 나을 지경이다. 안그렇나? 아무리 가두리 검색이니 뭐라해도 나와야 할 것은 다 나와있다.

인지 부조화

나는 ‘수 많은 한국어 사용자들이 진짜로 가장 많이 원하는 것이 스캔본 만화책이나 불법 동영상’이 아닐 것이라고 믿는다. 그러면서도 구글이 잘못한 것은 없으리라고 생각한다. 기가 막힌 인지 부조화 상태이다.

아마, 원만하게 수습해 결론을 내리자면, 사용자도 구글도 잘못 했다라고 생각하는게 맞을지 모른다. 하지만 이것은 구글의 실패이다. 새로 생긴 구글의 모회사인 Alphabet의 홈페이지의 행동 헌장의 모두부분이다.

Alphabet_Code_of_Conduct_–_Investor_Relations_–_Google

Do the right thing으로 알려진 이 문장.  비록 한국어를 쓰는 사람 모두가 그렇게 생각할 지라도 구글은 이렇게 작동해서는 안됐다. 이것은 올바른 일이 아니다. 4월은 너의 거짓말이 아니라, 4월은 구글의 거짓말이다.

NT커터 몇가지

제가 커터칼을 사용하는 이유의 약 9할8푼은 택배를 비롯한 포장 개봉입니다. 어딘가서 보기를 커터칼이 중국제와 한국제, 그리고 일본제의 차이를 가장 잘 보여준다고 하는데, 앞의 둘은 써보지 않았지만 제가 쓰는 일본제 NT커터는 무시무시하게 잘 듣습니다. 쓰면서도 스스로 놀라기 때문에 필요 최소한만 칼날을 꺼내서 조금이라도 칼을 떼서 절단을 멈추게 되면 바로 칼날을 집어 넣는 습관을 들였고 매우 조심해서 사용합니다.

화구畵具를 다루시던 분께서는 NT커터보다 올파가 유명하다고 합니다만 실제로 올파(OLFA)가 일본에서는 점유율이 훨씬 높습니다. 하지만 최소한 제가 사는 곳에서는 올파보다는 NT커터가 구하기 쉽다보니 익숙한 브랜드로 칼과 칼날을 사서 교체하고 있습니다.

2015-11-08 21.38.30 2015-11-08 21.39.36평소에 사용하던 녀석은 A-300R이라고 오토록이 달린 소형(경작업용) 커터입니다만, 이 녀석도 무척 예리하지만 큰맘을 먹고 대형 커터(L-600GR)를 샀습니다. 정말 무시무시하네요. 원래 상자의 테이프가 아니라 어느쪽이라고 한다면, 골판지, 그러니까 말하자면 상자 자체를 자르는데 적합하도록 만들어진 겁니다만, 덕분에 효율이 더 좋아졌네요. 돈이 좋긴 한 모양입니다. 정말 조심해서 써야겠습니다. 유혈사태가 일어나지 않으려면 말이죠.

월스트리트저널 한국어판 종료에 관하여

월스트리트저널(Wall Street Journal, WSJ) 한국어판이 종료를 선언했습니다. 사실 모국어로 질좋은 기사를 제공해주는 것은 매우 고마운 일이고 환영할 일이지만, 다른 주요 언어판에서 유료로 운영되는 WSJ가 한국에서 어떻게 자릴 잡을지, 수익 모델이 있을지, 장기적으로 지속 가능성이 있는지는 처음부터 궁금했었습니다. 언론의 유료화에 대해서는 몇 번인가 생각해 본적이 있습니다. 개중 하나가 이 글입니다. 이 글에서 월스트리트저널을 발행하는 다우존스의 소유주인 루퍼트 머독의 유명한 말을 인용했습니다.

“There’s no such thing as a free news story.”
“세상에 공짜 뉴스란건 없습니다.” – 루퍼트 머독 (The Guardian 기사)

실제로 링크의 기사에서도 언급했듯 루퍼트 머독은 주요 신문을 유료화했습니다. 가디언이 이걸 언급하는건 가디언이 (페이월을 비롯해 여러가지면에서)머독의 대척점에 있기 때문이지요. 그런 머독의 회사에서 사실 공짜 뉴스라는건 사실 태생부터가 아슬아슬했겠지요.

뭐 월스트리트저널 한국판이 사라진다고 우리나라 언론 지형이 바뀔 정도로 크게 대단한 존재는 아니지만, 결국 민중이 향유할 수 있는 언론의 질은 그것을 정당하게 평가하는 민중의 의식에 달린 문제입니다. 공짜 점심은 없습니다.

추기. 현재 우리나라에는 뉴스페퍼민트를 비롯해서 해외 언론을 번역하는 블로그가 몇군데 있습니다. 그분들의 노력과 결실물은 감사하게 생각하고 무시할 생각은 전혀 없지만 이 역시 향후 장기적으로 지속가능할지 생각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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