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소리의 형태(聲の形)

목소리의 형태(聲の形)라는 만화가 작년까지 일본에서 연재되면서, 그리고 올해 한국어 판이 나오면서 한국에서도 꽤 반향을 일으켰다. 이 만화의 초반에 주축이 되는 이야기이며 무겁게 다뤄진 것이 장애, 혹은 장애인에 대한 어린 시절의 따돌림, 그리고 그를 반성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남자 주인공은 삶의 의욕을 잃자, 자살하기 이전에 자신의 신변을 정리하면서, 어릴적에 ‘철모르게’했던 청각장애인 여자 주인공에 대한 ‘사과’를 하는것으로 마무리 지으려고 한다. 결국 이런 저런 굴곡을 거치면서 남자 주인공이 삶의 의욕과 희망을 발견하게 되고, 여자 주인공이 따돌림과 차별로 인한 상처를 이겨내면서 앞으로 나아가는 과정이 굉장히 깔끔하게 그려졌다.

내가 이 이야기를 하는 것은 사실 내가 국민(초등)학생일 때가 생각 나서이다. 사실 그런 따돌림이라는건 분위기에 휩쓸리는 경우가 많다. 자신이 뭘 하는 건지도 모르고, 흡사 불똥이 그렇듯이 언제 누구한테 튀길지 모르는 것이기도 하다. 더 기가막힌 것은 어제 내가 당하다 옆에 친구가 당할 수도 있고, 역으로 옆에 친구가 당하다 내가 당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미 따돌림이라는 것이 이성의 궤에서 벗어난 행위다 보니 상당히 감정적이고, 비논리적이라는데 문제가 있다.

더 성가신건 나이 먹고 알만큼 안 사람들이 그러는 것도 문제지만,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 애들이 그런다는 것인데, 하는 입장에서는 자신이 구체적으로 뭘 하는 것인지, 무엇이 잘못인지도(잘못이 있는지 조차도) 모르고, 당하는 입장에선 자신이 왜 당하나, 왜 고통을 입는 것인가, 왜 괴로운가를 모르다 보니, 자기 자신, 그리고 자기 자신이 한 행동을 돌이켜 보면서 고민하며 상당히 자기 비관적이 되기 쉽다. 한마디로 괴롭힘을 당하는 쪽이나 괴롭힘을 하는 쪽이나 자신이 처한 상황을 모른다는데 있다.

떠올려보면, 나 자신도 결코 어릴때가 유쾌하다고 생각되지 않는 시절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와서 생각하면, 나 자신이 왜 그랬나 싶을 때가 있는데, 여자애를 골렸다거나 부모가 외국인인 아이를 골렸다거나. 이 작품에도 잘 묘사되어 있는데, 정말 ‘아무것도 모르고’ 했다지만, 결국 그 돌에 맞아 누군가 상처를 입었으며, 결국 그 화가 자기 자신에게 돌아올 수 있다는 것을 왜 몰랐을까1. 극중에서도 묘사됐지만 과거의 자길 패서라도 말리고 싶은 부끄러운 경험이다.

미숙했구나, 자신이 어리다, 어리석었다. 라는 것을 스스로 세월이 흘러 생각하면서도, 역시 극을 보면서도 느껴지지만 좀 더 책임감 있는 어른이 일찍 그걸 바로잡아 이끌어 주었다면, 나도 그 친구들도 좀 더 일찍 괴롭지 않은 즐거운 시간을 보냈지 않았을까. 이런 저런 자책감으로 ‘지나간 일’을 반성하지만서도, 그 잘못은 결코 지나간 일이 아니기 때문에, 지금은 이름도 기억나지 않고, 얼굴도 희미하며, 사는 곳이 어딘지, 이젠 알 도리도 없는 그 친구들을 언젠가 어떤 일이 생겨서 만나게 된다면 내가 할 수 있는건 글쎄, 용서를 구할 수 밖에 없지 않을까. 그런 의미에서 생각하면 자기가 용서를 구하러 길을 떠난 주인공도, 그를 용서한 여자 주인공도 꽤나 용기 있었던게 아닐까.

이 글을 쓰게 생각하게 된 계기는2, 다문화 가정의 아이들이 야구단을 만들어 활동한다는 시사 프로그램 한 꼭지를 보다가 갑자기 생각난 것이다. 엉뚱한 계기로 시작한 글인데, 아무튼 그런 관점에서 본다면 ‘응, 읽으면서도 좋은 이야기네’ 라고 생각했지만, 역시 좋은 작품이네 라고 수긍하게 된다. 한번 읽어 보시기 바란다, 다음 달에 번역본이 완간 된다.

물론 주제가 주제다보니 꽤나 무겁고 ‘불편한’ 내용일 수가 있고, 꽤나 화제에 오른 작품인데, 그래도 결국 그만큼 많이들 공감하고, 나처럼 스스로를 돌이켜 보도록 한 탓이 있지 않을까. 그래봐야 잘못한게 경감되는 건 하나도 아니고 역시 내가 겪었던 ‘경험’이 위안받는 것도 아니지만, 최소한 둘의 결말을 보면서3, 미래와 희망, 가능성으로 가득찬 ’다른 나의 가능성’을 상상할 수 있으니 어떤 의미에선 위로가 되는지도 모른다.

혹자는 이 작품의 여자 주인공이 마치 ‘성모’처럼 용서하고 웃으며 받아 들이는 것을 위화감 있게 생각하는 듯 하는데, 글쎄 나로써도, 그때 괴롭혔던 애들을 다시 만난다면, 솔직히 힘들었지만, 지금은 그냥저냥 괜찮아, 하면서 쓱 웃지 않을까? 자기를 부정하고 싶지 않으니까, 아픈 기억도 잘못한 기억도 오롯이 안고 그렇게 살아가는 것 아닐까. 내 팔에는 당시 애들이 가위를 난로에 달궈 지져서 생긴 화상자국이 있는데, 어렸을때는 얼룩처럼 남아 눈에 띄었던 것이 세월이 흘러서는 거의 표가 나지 않게 됐다. 물리적인 상처도, 감정도 기억도 세월에 의해 풍화되는구나. 그러면서도 이렇게 정말 어쩌다보니 떠올리는걸 보면 어릴때가 이렇게 중요하다. 정말. 가까운 시일에 될지는 정말 모르지만, 아이가 생긴다면 이 경험들은 정말 소중하게 사용할 것 같다. 자녀 교육에 신경 좀 써야 겠다. 생기지도 않았고, 생길지도 모르는 자기 아이에게도 그렇지만, 다른 아이가 잘못하거나 피해를 입는 것이 반복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게 잘못을 그리고 아픈 경험을 반성해서 앞으로 나아가는 올바른 길이라고 스스로 믿는다.

그런 의미에서 다시 한번 말하지만, 참 잘 그려진 작품이다. 마냥 편하지는 않지만.


  1. 나도 주인공도 결국 자기 자신이 새로운 따돌림의 피해자가 된다.
  2. 이 글은 본디 트위터에 올린 것을 정제하여 옮긴 것이다.
  3. 전술한 대로 한국어판은 아직 완간되지 않았지만 원서를 구입해서 완결까지 다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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