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앱 불감증’의 시대

내 아이폰에는 300개가 넘는 앱이 깔려있다. 30개가 아니다 300개이다 정확하게 말하면 311개이다. 이중에서 가장 활성화하게 사용하고자 앞면에 깔아놓은 앱이 32개이다. 그러나 이렇게 펼쳐놓은 ‘잘 사용하는 앱’중에서도 곧 잘 사용하는 앱은 17개에 그친다(아, 언론사 앱은 제외다, 닛케이나 아사히 신문, 뉴욕타임스 등등). 그야말로 앱들의 홍수 속에서 나는 무엇을 하고 있단 말인가? 아이폰의 용량이 커지면서 더 많은 앱과 더 많은 음악을 넣을 수 있게 되면서 작은 용량의 아이폰을 사용하기 어려워졌다. 앱에 사용하는 금액은 정말 많았다. 한때는 아이튠스와 아마존에 들어간 비용이 한달에 300불이 넘어간적이 있으니까(물론 여기에는 맥 앱 스토어 비용도 포함된 금액이긴 하다).

혹시 ‘게임 불감증’이란 말 들어본 적 있는가? 90년대 후반에서 2000년대 초반, 그러니까 플레이스테이션 시절부터 유행한 말로 콘솔 게임의 황금기에 유행하게 된 말로 생각한다. 고품질의 게임이 값싼 가격에 넘쳐나게 되자 사용자들은 게임 자체가 너무 많은 나머지, 예전처럼 게임 하나하나의 즐거움을 파고들기보다는 이 게임을 대충 해치우고 새로운 게임을 하게 된 것이다. 심지어는 하다가 재미없거나 어려우면 도중에 관두고 새로운 게임을 해버리기도 했다. 결과적으로 게임의 재미가 줄어들었고, 게임이 문자 그대로 산처럼 늘어봐야 만족도는 그에 비례해서 늘지 않았던 것이다.

지금의 상태가 흡사 ‘게임 불감증’ 시대인것 같다. 좋은 앱들이 너무 많아서 수백개의 앱들을 쌓아놓고 있다. 다 즐기거나 다 활용을 못할 지경이다. 하나하나 좋고 하나하나 유용할 것 같고 하나하나 재미있을 것 같아서 다운로드 받거나 구입했는데 막상 다 즐기거나 활용을 못하는 지경에 이르는 것이다. 그야말로 ‘앱 불감증’의 시대인 것이다. 나는 해외의 유수의 IT 미디어를 살펴보면서 정말 나날히 뛰어난 앱들을 접하고 있다. 점점 높아져 가는 앱들을 보지만 전반적으로 앱들은 상향 평준화 되어가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심지어는 ‘그’ 안드로이드 마저도 앱의 경험은 점차로 올라가고 있다.

다운로드 할 것이 얼마 없고 다대한 비용과 시간과 노력이 걸리던 피쳐폰 시대나 스마트폰 초기 시대와는 달리 수십만개의 앱이 있고, 쉽게 다운로드 받을 수 있고, 유료라 하더라도 가격이 저렴하다. 게다가 요즘은 유료보다는 무료로 받은 뒤에 인 앱 구매(In app purchase; IAP)로 수익을 거두는 경우가 더 많아서 저항도 덜하다. 그야말로 설상가상이란 것은 이런데다 쓰는 것 아닐까? 앱을 활용한다기 보다는 소모하는 시대가 온 것은 아닌가? 라는 생각을 하게 되면서… 어떻게 하면 이 앱을 잘 활용할 수 있을까 궁리하기 보다는 앱의 개발자를 욕하면서 그냥 나쁜 별점 남기고 앱을 지워버리는, 그런 시대가 찾아온 것은 아닌가? 나는 그런 모습이 보이는 듯해서 걱정이다. 이 시대를 과연 어떻게 이겨나갈 수 있을까?

내가 겪었던 가장 짜증났었던, 시사인의 홍보 전화

홍보전화에 관한 포스트를 하니 이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가 없겠다. 원래는 가장 빈도가 잦은 홍보 전화에 관한 전 포스트에 이어서 쓰려고 했는데 워낙에 길어져서 따로 쓰기로 했다. 얼마전까지는 가장 성가시고 잦은 것은 시사인이었다. 관심없다고 그렇게 짜증나게 했는데도 몇번씩 걸어서 좋은말로 해도 걸고 또 걸어서 거의 빚독촉하듯이 자기네 회사가 어렵네, 나꼼수가 어떻네 주진우 기자가 어떻네 하면서 그랬다. 좋은말로 끊으려고 해도  보통은 물러나는데 몇분을 늘어지더라. 지독하데? 그리고 나중에 또 걸어서 물고 늘어지고… 지금은 받기 어렵다고 하면 반드시 다시걸고… 안받으면 나중에 또 걸고. 또 걸고…

물론 나는 시사인 잡지는 나쁘지 않다고 생각하고 기사도 좋아하는 편인데 고재열 기자가 개인적으로 싫어서(트위터로 비아냥거리고는 일방적으로 블록했다) 내 구독료가 그 사람 월급으로 가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 날 블록한 사람 잡지 내가 ‘블록’하는 셈이다. 애당초 저널리스트가 트위터를 함부로 놀린것 자체가 어떤 영향을 가지고 있는지를 그는 잘못 판단한 것이다. 아사히신문의 경우에는 데스크 편집장이나 20년 이상 경력 기자만 트위터를 만지도록 회사에서 ‘승인’하고 있다. 사고치지 말라고. 그리고 그 기자들의 목록을 회사 홈페이지에 공개하고 있다. BBC나 CNN의 경우에는 ID에 아예 자사 이름이 들어간 경우도 많다. 다른 회사의 경우에는 verified 계정도 있다. 그런 사람들은 절대로 함부로 입을 놀리지 않는다. 자신의 입이 회사에 얼마나 큰 누를 입히는지 세상에 얼마나 혼란을 일으키는지 알기 때문이다.

솔직히 잡지를 많이 읽지도 않거니와, 학생이 잘 읽지 않는 잡지를 15만원이나 되는 돈을 덜커덩 낼 형편도 아니고. 웹으로 읽으면 공짜다. ‘블록’한 사람 잡지 돈내고 볼 생각 없다. 뉴욕타임스와 월스트리트저널, 닛케이, 아사히신문, 파이낸셜타임스,이코노미스트 등등은 돈내고 있다. 다 기억을 못하겠다. 솔직히 돈없다는 말은 뻥이다. 명백히 복수다. 고재열씨가 관두면 생각해보겠다. 혹시 시사인 관계자 보시거든 말하시길. 참고로 시사인에 악감정은 전혀 없다. 아무튼 고재열씨만 아녔다면 그 정성 깊은 아주머니 외판원에게 카드번호를 불러주고 ‘다썼다간 파산할 정도의 넉넉한’ 한도의 신한카드의 할부를 이용해볼 생각이 있었지만 경박한 어떤 중년기자의 키놀림으로 독자 한명을 잃으셨습니다. 불쌍해라, 누구때문에 입은 입대로 놀리고 헛수고 하셨어요. 욕하려면 나를 말고 고기자를 탓하세요. 결국 그 아주머니에게 한 마지막 통화는 “그 잡지 관심없으니까 더 이상 통화하지 마세요.” 뚝. 이었다. 그 이후로는 한동안 오지 않고 있다. 또 모르겠다. 경험상 그 아주머니는 잊을만 하면 또 전화를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렇게 글을 마무리 하려던 참에 갑자기 떠오른 한가지 놀라운 사실을 얘기해주자면, 그 아주머니는 내 이름을 알고 있었는데, 나는 시사인에 회원 가입을 한적이 없었다. 그리고 이 전화기는 내 동생 명의이다. 그리고 처음에 말하기를  ‘무작위로 걸었다’라고 했다. 그런데 어떻게 그 아주머니는 내 동생 전화번호로 전화를 걸어서 내 이름을 알고 있었던 걸까? 이 잡지사는 고재열 말고도 뒤가 캥기는 짓을 하고 있는게 틀림없다. 아무래도 구독하지 않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악감정이 없다는 말 취소다.

내가 겪은 요즘 빈도가 가장 잦은 홍보 전화는…

제목을 보고 혹시 짐작을 하고 “혹시 KT?”라고 하셨다면 땡이다. 요즘 내가 가장 많이 받은 전화는 하나SK카드이다. 오히려 요근래, KT 전화는 1~2통 받은것 같은데(오히려 유출이 발표된 다음에는 한 통도 안받았다) 하나카드는 내가 기억하는 것만(부재중포함) 3~4통은 되는것 같다(이번주만 두 통). 분명히 카드에 관심이 없다. 를 강력하게 어필을 했는데도 심지어는 ‘대학에서 조교로 있다’라는 말(물론 뻥이다; 그럼 발급될리 없으니까…)까지 했는데도 계속 전화가 줄기차게 오고 있다(발급 거절될 직업을 대면 안올것 같아서). 상품 설명도 똑같다. 물론 사실 신한카드에서 실적이 좋아서 수 년전에 신용카드를 개설해서 꽤 괜찮은 실적을 유지하고 있기는 하지만 카드라는게 많이 만들어서 좋을게 하나도 없는 물건인지라 그냥 하나만 만들어서 필요한 데에만 사용하고 싶은게 솔직한 심정이다(그걸 아는지, 신한카드사는 이걸 다 썼다간 파산할 정도로 과분한 한도로 보답하고 있다, 전혀 쓸 생각 없는 현금서비스는 거의 안주고 있지만). 덕분에 신용도도 평균 이상이고. 설마 그래서 계속 오는건 아니겠지… 신용정보라는건 돌고 도니까. 활용동의라는건 부지불식간에 해야 발급이 되니까..   이거 신용카드 대란이라고 뉴스에서 나오는데 괜찮은거 맞습니까?

아무튼 내가 개인정보이용활용 동의를 해서 하는 판촉(체크카드 발급시에)이라지만 정말 끈질기게도 해댄다. 이렇게까지 해서 카드를 팔아야 하는걸까? 오히려 요즘 KT는 불법이기 때문에 어떻게 사법당국이나 유관기관하고 난리법석이라도 떠는 ‘척’이라도 하는 것 같은데 이건 100% 합법적이라 어떻게 따질 수도 없고… 에고 정말.

어떻게 정보활용동의 최소화 안되나? 꼭 여기 저기 싸인 안하면 카드 안내줘요. 안되나? 체크체크체크 안하면 뭐 안되요 협박해대잖아? 그러잖아도 어제 이어폰 반품 보내는데 30만원 물품가액 적고 파손 면책에 체크 안하면 발송을 못하게 하는데. 그럼 뭐하러 가액을 적니 이 자식들아?!

트위터와 블로그에 대한 생각

트위터를 참 열심히 했다. 앉아서도 트위터, 서서도 트위터, 차안에서도 트위터, 전차안에서도 트위터, 화장실에서도 트위터(덕분에 손씻는데 신경을 많이썼다).

그런데 한가지 든 생각이 있다. 좋은 생각이나 글귀를 써서 리트윗이 되면 기분이 좋다. 그것이 나를 트위터의 마력에 빠지게 한다. 하지만 트위터는 영속적이지 않다는 것이다.내가 쓴 좋은 글은 언제까지고 기록되지 않는 것이다. 나중에 들여다 보고 싶어도 볼수가 없는 것이다. 나는 그래서 회의가 갑자기(방금) 들기 시작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할까. 나는 그래서 가급적 중요한 이야기는 블로그에 적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됐다. 방문객을 늘리려는 수작(?)이 아니라 기록을 남기기 위함이다. 내 생각을 웹에 남기고 공공재로 남기기 위해서 비록 토막이라 하더라도. 블로그에 남기는게 옳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Daring Fireball의 John Gruber처럼 인용과 몇마디의 말이던 아니면 정말 몇줄이 될수도 있다. 아무튼 기록을 남겨야 하겠다. ‘빵부스러기’를 웹에 남겨야겠다라고 나는 마음 먹었다.

친구가 영국으로 떠난다(첨언: 블로그의 진로)

내 친구 J가 영국정부에서 올해 처음 한국에서 실행되는 청년교류프로그램, 일명 워킹홀리데이를 하게 되어 2년간 한국을 떠나게 되었다. 이 친구는 고교 싲절부터 지금까지 나를 기쁘나 슬프나. 화를 내면서도 즐거워해주면서도 같이 해준 친구였다. 말동무였으며 술상대였으며, 언제든 의지 할 수 있는 친구이자 벗이었다. 무슨일이 있으면 단숨에 달려와 주었고, 몸이 좋지 않은 나를 위해 집에 와서 말벗이 되어주곤 했다. 워낙에 능력이 있어 어디의 누구든 찾는 친구였다고 이런 저런 일을 하는 멀티 플레이어. 어딜 가더라도 먹고 살 수 있는 걱정은 할 염려가 없다라고 나는 자평하고 있다. 따라서 사실 나는 이 친구가 해외로 떠날 날이(유학이던 어떤 형태로던) 올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기에 이런 마음을 먹고 있었으나 정작 닥치니 조금은 쓸쓸해진다. 스카이프나 페이스타임이 있으니까 화상이든 음성이든 통화를 할 수야 있을거야, 뭐 국제전화요금도 비싸지 않고 생각보단, 요즘은 그리고… 라고 생각했었지만. 하지만 얼굴을 맞댈 수 없고 같이 우걱우걱 먹거나 술을 마실 수 없다니.무엇보다 집으로 찾아와주던 몇 안되던 말벗이 사라지니 슬프다.

조금은 아니 많이 쓸쓸하다. 하지만 나는 친구의 건승을 빈다. 훨훨 날아갔으면 좋겠다. 가볍게 날아갔으면 좋겠다. 솔직히 그 미래가 장밋빛이라고 할 수는 없을지도 모르겠다. 이리 저리 부딪히고 핏물고인 침을 뱉어야 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어찌됐던 J군이 잘 할 수 있을거라고 믿고 그것이 J군이 더 ‘위대한’ 사람이 되는 계기가 될 거라고 본다. 나는 J군을 항상 대단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할 수 없는 것을 가지고 있었다. 동경하던 J군… 더 잘 할 수 있고, 더 멋진 J군이 되어 2년 뒤에 봤으면 좋겠다. 힘내라 J!

사실 이렇게 말해놓고는 조급증인지는 모르겠는데, 이른 감이 있지만 내년 년초에 영국행 여행을 준비하고 있다. 친구는 거의 항상 몸이 좋지 않다고 우리집에 말동무를 하러 놀러와줬다. 이젠 내가 너를 찾아가마!

첨언과 양해 말씀. 사실 이 블로그에서 사생활 이야기를 안한지 꽤 됐다. 개인적인 이야기,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는 ‘푸른곰’의 블로그였으나 지금은 푸른곰이라는 어중간한 IT블로그로 정리가 된 상태고 개인사는 따로 정리한 상태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는 프라이버시나 블로그의 정체성 등 나름 고심끝에 이뤄진 결정이라 아직까진 크게 후회는 없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차피 이제와서 보면, 푸른곰 트위터엔 대략적으로 사적인 내용이 드러나고 있고 애시당초 그럴바에야 트위터에 드러낼 정도의 사생활 정도는 푸른곰 블로그에는 드러내도 문제가 되지 않을까. 라고 생각했다. 푸른곰의 블로그지 아까 말했듯 어정쩡한 IT 블로그로 남고 싶지 않았다. 개인사라도 약간 떠드는게 방치하는것 보단 낫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