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좀 작고 가볍게 만들어 주지 않겠어요?

보지도 못한 문고본을 바라는 이유?

열차가 도쿄역을 출발하자 덴고는 들고 온 문고본을 주머니에서 꺼내 읽었다. 여행을 테마로 한 단편 소설 앤솔러지였다. – 무라카미 하루키 1Q84 Book 2, 193p.

 

이야기에서 주인공이 읽는 이 한권의 문고본은 이야기의 중요한 면을 차지하게 된다. 주인공은 조금은 지저분하고 홀가분한 차림으로 주머니에 책한권 찔러넣고 열차로 충동적으로 아버지가 있는 요양원까지 향하게 된다. 기본적으로 80년대 중후반생인 나는 문고본이란 녀석을 거의 보지 못한채 자랐다. 내가 책을 읽기 시작한 시기에는 이미 신국판이 사실상 도서시장을 장악한 뒤였기 때문이다. 내가 철이 들 무렵에는 이미 시집마저도 보통책과 똑같은 판형으로 찍히기 시작했다. 소설속의 주머니에 들어갈만큼 쏙 작은 책이란게 존재하는것인지, 아니면 책이 들어갈만큼 큰 주머니가 있는 것인지 잘 모르겠다. 가끔 사서 읽었던 영문판 페이퍼백이나 외대 일어과를 나온 아버지가 보던 일본 책 정도로만 문고본의 크기를 짐작하고 그런게 있었나보다 싶은 정도이다(근년에는 라이트 노벨 종류가 있어 대충 짐작할 수 있다).

 

솔직히 요즈음, 대부분의 책은 지나치게 크고 무거우며, 활자도 불필요하게 크며, 표지는 화려하고, 평량 무거운 종이에 쓰잘때기 없이 양장제본으로 된 책들이 너무 많다. 솔직히 대중소설이나 실용서는 통근 전차안에서 쉽게 읽을 수 있을 정도로 작고 가벼우면 좋을텐데, 솔직히 꺼내 읽기 크고 번거롭거니와 주머니는 둘째치고 가방에도 쉽사리 들어가지 않는다. 솔직히 말해서 도시 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책을 읽을 수 있는 얼마 안되는 여유는 이동시간이나 휴식시간 정도인데 가뜩이나 짐도 많은데 공부나 일에 필요한 것도 아니고 취미로 무거운 책까지 들고 다니기에는 부담이 되지 않을까? 그렇기 때문에 실상 전철을 보아도 이젠 많은 사람들이 책보다는 휴대전화나 타블로이드 무가지를 만지작 거리는 것이 일상적인 풍경이 되어버렸다. 책을 읽는 사람들이 많이 줄었다는 통계는 이미 출전을 댈 필요가 없을정도로 광범위하게 인식되고 있을 지경이고.

 

사실 이런 제안은 여러사람이 해왔던걸로 안다. 개중에는 꽤나 현실적인 제안도 있어서 발행된지 얼마 안되는 책이라서 수익을 낼 필요가 있다면 우선 보통 크기로 책을 내고 조금 나중에 보급판 형식으로 문고본을 내거나 아니면 아예 문고본을 목적으로 책을 내는 것이 그 방법이지 않을까.

책 안읽는 국민들이 늘고 있다고 한다. 솔직히 책이 작고 가벼워진다고 해서 안읽던 사람들이 갑자기 읽으리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판형(포맷)이라는 것은 언제나 써먹기 나름이다. 가볍고 캐주얼한 내용을 작은 크기에 밀어넣은 타블로이드 신문이 가볍게 읽기 좋아서 인기가 있듯이, 우선 부담없이 읽을 수 있는 내용을 작고 부담없는 크기로 시판해보는게 어떤가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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