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중교통에서 신용카드·스마트폰을 바로 탭해 사용하는 오픈 루프(open-loop) 결제는 이미 런던, 뉴욕, 암스테르담 등 세계 주요 도시에서 정착했습니다. 하지만 한국은 아직 제주 시내버스, 서울 일부 노선의 태그리스(tagless) 시범 도입에 머물러 있습니다. 왜 도입이 더딘 것일까요?
한국의 오픈 루프 도입 장애물
1. 환승 할인 구조
한국 수도권은 지하철·버스 간 통합 환승 할인이 핵심 경쟁력입니다. 하지만 오픈 루프 결제는 단일 거래 중심이라 환승 기록을 누적·인식하는 구조가 복잡합니다. 청소년·노인 할인 같은 차등 요금도 적용하기 어렵습니다.
2. 기존 교통카드 사업자 이해관계
티머니, 이즐 등 폐쇄 루프 카드 사업자가 이미 충전·판매·정산 시스템을 장악하고 있습니다. 오픈 루프 확산은 이들의 수익 구조(충전 수수료, 카드 발급 등)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기 때문에 저항이 불가피합니다.
3. 카드사 수수료 문제
대중교통은 소액·빈번 결제라는 특성이 있어 카드사 수수료 부담이 큽니다. 교통기관이 이를 고스란히 떠안을 경우 재정 압박이 심화될 수 있습니다.
4. 인프라 교체 비용
현재 설치된 단말기와 게이트는 폐쇄 루프 교통카드 기반입니다. EMV 컨택리스 카드를 지원하려면 전국적 단말기 교체와 계정 기반(account-based) 정산 시스템이 필요해 막대한 비용이 발생합니다.
5. 정책 우선순위 부족
대다수 내국인은 이미 교통카드 사용에 익숙하기 때문에, 정치·행정적으로 “관광객 편의” 차원의 오픈 루프는 우선순위에서 뒤로 밀리기 쉽습니다.
해외 사례에서 배우는 해결 방안
1. 캡핑(capping) 제도 도입
- 런던 TfL: 일·주 단위 자동 상한제 도입. 같은 카드로 일정 금액 이상 결제하면 그 이상은 무료 처리.
- 뉴욕 OMNY: 7일간 12회 요금 결제 시 나머지는 무료. → 한국도 환승 할인 대신 일·주 단위 상한제를 적용하면, 내외국인 모두 단순하고 예측 가능한 요금 체계를 경험할 수 있습니다.
2. 환승 할인과 캡핑의 병행
백오피스 정산 시스템에서 탭 데이터를 묶어 환승 테이블을 적용하는 방식으로, 환승 할인과 캡핑을 병행할 수 있습니다. 청소년·노인 할인은 계정 기반 등록을 통해 적용 가능합니다.
3. 수수료 부담 완화
해외 사례처럼 집계 결제(aggregated payment) 방식으로 하루·일주일 단위 이용을 모아 청구하면 수수료 노출을 줄일 수 있습니다. 동시에 정부와 카드사 간 협의를 통해 교통 특화 수수료 체계를 마련해야 합니다.
4. 단계적 확산 전략
런던이 버스 → 지하철 순으로 확대한 것처럼, 한국도 관광객이 많이 이용하는 공항철도·도심 공항버스·서울 주요 환승역부터 도입하는 것이 현실적입니다. 이후 부산, 제주, 수도권 광역철도로 확산하는 “코리도어 전략”이 바람직합니다.
5. 정책적 명분 강화
외국인 관광객에게 “자기 카드만으로 어디든 탑승 가능”이라는 경험을 제공하는 것은 국가 경쟁력 제고로 이어집니다. 이를 “스마트 코리아” 브랜드 정책과 연결한다면, 정치적 동력 확보도 가능할 것입니다.
맺음말
한국에서 오픈 루프는 환승 할인 구조, 이해관계, 수수료, 인프라 비용이라는 장벽을 마주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런던·뉴욕의 캡핑 제도와 집계 결제 방식, 단계적 확산 전략을 참고하면 충분히 극복할 수 있습니다.
제주에서 시작된 작은 발걸음이, 서울·부산·인천 등 주요 거점을 거쳐 전국으로 확대된다면, 한국 대중교통은 관광객 친화적이고 글로벌 경쟁력 있는 인프라로 한 단계 더 성장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