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트로
요 근래 들어서 사실상 굳어진 것이 있다면, 소니가 3년마다 1000X 시리즈를 새로 내놓는다는 것이겠지요. 그 3년간이 참으로 짧고도 길었습니다. 솔직히 말해서, 2016년 AirPods 발표 이후로 불 붙은 와이어리스 이어폰/헤드폰 시장 경쟁도 과성숙되어, 이제는 몇 만원 안하는 중국산 이어폰에도 노이즈 캔슬링은 들어가고 있어서, 누군가의 말을 빌자면 2025년에 무선 이어폰이나 헤드폰을 내놓으면서 노이즈 캔슬링을 탑재 하지 않는건 제정신이 아니라고도 하죠.
한편, 그 문제의 에어팟은 헤드폰 형태의 에어팟 맥스가 나오고, 이를 살짝 수정한 USB-C 버전이 나왔습니다만, 에어팟 맥스는 그 자체의 완성도와 성능은 차치하고, 대중들이 납득할 만한 소구점이 있다면 더 이상 ANC 헤드폰이 350달러의 ‘벽’에 구애 받을 필요가 없음을 증명한 제품입니다.
그러다보니 뱅앤올룹슨의 250만원짜리 H100 같은 괴물이 나오기도 하고요. 이번 소니의 WH-1000XM6 역시 100달러 올랐습니다. 그러다보니 출시 가격이 거의 60만원을 육박하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소니의 도전 10년사
올해 5월 말에 나온 WH-1000XM6는 소니의 1000X 시리즈 헤드폰 6세대이자, 2016년 1세대인 MDR-1000X가 출시된지 10년을 장식하는 제품입니다. 솔직히 MDR-1000X 이전만 하더라도 “노이즈 캔슬링은 역시 Bose지” 라는 인상이 있었습니다. 만약, 소니가 MDR-1000X를 내놓고, 연이어서 WH-1000XM2와 M3를 내놓지 않았다면 어쩌면 ‘노이즈 캔슬링 헤드폰’ 이라는 세그먼트 자체가 경쟁이 없어 죽은 시장이 되었지 않겠느냐, 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요컨대, 에어팟이 완전 무선 이어폰과 노이즈 캔슬링 완전 무선 이어폰 시장을 확대하는 첨병이었다면, 노이즈 캔슬링 헤드폰 시장의 경쟁을 일으키고 확대한 첨병은 소니가 아닌가? 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모범생, 우등생
저는 소니의 노이즈 캔슬링 헤드폰을 1세대만 빼고 다 가지고 있습니다. 즉 WH-1000X 붙는 모델은 다 가지고 있는데요, 소니의 WH-1000X 시리즈의 장점은 보수적인 견실한 기능 구현으로 거의 오동작이 없다라는 이미지가 있습니다. 보즈와 젠하이저, 애플 등 타사 이어폰/헤드폰이 꼭 뭔가 서비스를 받거나 이역만리 떨어진 본사와의 교신이 필요하였습니다만, 소니는 거의 그런 경우가 없고, 굳이 따지자면 삼성 폰에서 LDAC과 DSEE Extreme을 동시에 쓸 수 없던 문제였습니다.
개봉과 외관
환경을 생각했다는 ‘원상복구 불가 패키지’는 여전히 존재합니다. 개인적으로는 손으로 지저분하게 찢는 것을 싫어해서 이번에도 커터칼로 조심스럽게 개봉했습니다.
휴대용 케이스는 인상적입니다. 지퍼 대신 자석으로 체결되어 열리지 않도록 설계된 부분은 애플도 본받을 만합니다. 직전 모델(WH-1000XM5)과 달리, 이번에는 이어컵이 접히는 구조로 돌아와 케이스 크기가 한결 작아졌습니다. 내구성도 상당히 좋아 보입니다. 물론 뱅앤올룹슨 H95의 300달러짜리 케이스만큼은 아니지만, 그 무게를 생각하면 이번 소니 케이스는 훨씬 실용적입니다.
케이스 내부에는 접힌 본체와 함께 3.5mm 유선 케이블, 짧은 USB-C 케이블이 들어 있습니다. 이번 모델은 충전 중 사용이 가능해졌지만, USB 케이블을 연결해서 오디오 전송하는 것은 지원하지 않는 점이 아쉽습니다.
디자인은 WH-1000XM5의 계보를 잇되 세부적으로 다듬어 완성도가 높아졌습니다. 이어컵의 돔형 모양은 유지하면서도 이음새가 사라졌고, 마이크도 늘어났습니다. 특히 ‘오줌 묻은 것 같다’는 혹평을 받았던 마이크 그릴이 금속 질감으로 바뀌어 고급스러워졌습니다.
물리 버튼도 개선됐습니다. 전원 버튼은 오목하게, 노이즈 캔슬링 버튼은 볼록하게 설계되어 오조작할 일이 없습니다. 헤드밴드는 비대칭적이면서도 안정적인 구조로 바뀌어 쉽게 흘러내리지 않습니다. 이어패드도 넓고 두터워져 패시브 소음 차단 성능이 좋아졌지만, 장시간 착용 후 쭈글쭈글해지는 모양은 보기 좋지 않습니다. 착용감은 다소 조여지는 느낌이 강해졌지만, 푹신한 패드 덕분에 불편함은 크지 않습니다. 그외에도 더운 상황에서 패드의 미세한 돌기가 사라지면서 그냥 비닐에 땀차는 느낌을 느낄 수 있어 여름에는 굉장히 쾌적성에 문제가 있어 보입니다.
힌지와 암 부분은 무단계 텔레스코픽 구조로 바뀌었는데, 전작에서 내구성 문제가 지적된 만큼 이번에는 한결 보강된 재질로 보입니다. 다만 접히는 부분에 손가락이 끼지 않도록 주의가 필요합니다. 모멘텀 3에서처럼 경고 스티커라도 있었으면 좋았을 뻔했습니다.
전원 인가 및 사용감
전원을 켜면 자동으로 페어링 모드에 진입하며, 페어링 모드에 진입하면 윈도우나 안드로이드 단말과 빠르게 연결됩니다. 다만 삼성 기기에서는 여전히 LDAC과 DSEE Extreme을 동시에 쓸 수 없고, 헤드 트래킹 기능도 지원되지 않습니다.
출시 초기(6월 생산분)임에도 바로 펌웨어 업데이트가 진행되었는데, 보안 관련 패치로 보입니다.
노이즈 캔슬링 성능은 압도적입니다. 텔레비전이나, 에어컨, 냉장고, 환기팬 소음을 완전히 덮고 정적을 만들어냅니다. WH-1000XM5는 물론이고, 에어팟 맥스를 능가하거나 그에 준하는 수준이라 평가할 수 있습니다. 반대로 외부 소리 듣기 모드도 크게 개선되어 에어팟 맥스에 근접한 경험을 제공합니다.
음질 역시 한층 발전했습니다. 모멘텀4, H95와 비교해도 뒤지지 않으며, 충분한 음압과 다이내믹스, 깊고 풍성한 저음, 분명하고 매력적인 보컬, 적절히 강조된 고음을 들려줍니다. 전반적으로 ‘모범생’ 같은 감상용 사운드라 누구나 쉽게 만족할 만합니다. 데이브 브루벡 쿼텟의 Take Five나 한스 짐머의 Why so serious?, 이글스의 Hotel California(라이브) 같은 곡을 들어보았습니다만 충분히 만족스러웠습니다.
통화 품질도 인상적입니다. 목소리는 육성의 질감과 무게감 있게 전달되며, 소음은 효과적으로 차단됩니다. 다만 빔포밍이 지나치게 강한 탓인지, 사용하는 자세에 따라서는 사실상 통화가 불가능해서 자세를 바로잡아야만 원활한 통화가 가능했습니다. 아이폰의 음성 메모 앱에서 녹음이 되지 않는 점은 의아했습니다. 이 두가지에 대해 소니코리아 측에 문의해 본 결과, 전자는 마이크의 일부가 가려짐으로써 생기는 문제라고 답변이 왔고, 아이폰 음성 메모 앱에서 녹음이 안되는 문제는 조사가 필요하다는 듯합니다.
배터리는 생각보다 빨리 닳는 느낌입니다. LDAC과 새로운 기능들을 함께 사용하면 소모가 더 빨라집니다. 그래도 소니 헤드폰을 쓰면서 배터리가 부족해서 난감한 적은 없었으니 말이죠. 다만 PD 충전을 초반에만 도입한건… 배터리 수명 탓이겠지만 개선되면 좋겠다 싶네요.
기타
앱은 이전 Headphones Connect 시절이 더 직관적이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멀티포인트 로직도 바뀌었는데, 기존에는 선점형 재생 방식이었다면 이제는 다른 기기에서 재생이 시작되면 강제로 전환됩니다. 덕분에 음악을 듣다가도 다른 기기 알림음 때문에 재생이 끊기는 상황이 발생하고, 이 경우 소스 기기를 직접 조작해야 해 불편했습니다. 고객센터에서는 초기화나 반품을 권했는데, 썩 만족스러운 대응은 아니었습니다. 어찌됐든 반품하고 나서 나아진 듯 하니 마냥 틀린 대응은 아닌 셈입니다.
구매가가 58만원이었는데, 이 정도면 소재나 고급감에서도 좀 더 차별화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싸구려는 아니지만, 명확한 프리미엄 감성은 부족합니다. 100달러를 올려서 한 단계 윗 세그먼트로 왔으니 음질에 대한 연구 만큼이나 디자인과 재질, 제조에 대한 연구도 필요한 시점입니다.
마무리
전체적으로, 소니 WH-1000XM6는 소니의 기술적 완성도를 한 단계 끌어올린 헤드폰으로 2025년 현 시점에서 와이어리스 블루투스 노이즈 캔슬링 헤드폰의 벤치마크 기준점이 되기에 부족함이 없습니다. 디자인 개선, 휴대성 강화, 압도적인 노이즈 캔슬링과 음질은 확실한 강점입니다. 다만 가격 대비 소재와 앱, 멀티포인트 로직은 아쉬움을 남깁니다. 이 제품이 왜 What’s HiFi 같은 오디오 매체나 NYT Wirecutter등에서 극찬을 듣는지는 잠시 써보면 수긍할 수 있습니다.
글을 쓰는 시점에서 장염을 앓고 있어 제품 촬영 사진은 별도의 포스트에 올리겠습니다. 너른 양해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