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L;DR
독보적 기술의 영광과 오만: ‘트리니트론’이라는 압도적 해자에 안주하다 LCD 패러다임 전환기에 ‘엔지니어링 순혈주의’에 빠져 삼성·LG에 주도권을 내준 소니의 뼈아픈 실책.
생존을 위한 뼈를 깎는 퇴각: 히라이 가즈오의 구조조정으로 수익성은 회복했으나, 2026년 TCL과의 합작에 이르기까지 시장 점유율은 급락하며 사실상 ‘일본 TV 단독 생존 시대’의 종언을 고함.
한국 기업을 향한 경고: 기술적 우위는 영원하지 않으며, 점유율 숫자보다 ‘초격차 기술을 끊임없이 갱신하는 능력’만이 유일한 생존법임을 소니의 반세기 흥망사가 증명함.
목차
- 할머니 댁의 추억
- 이부카 마사루의 인생 역작, 트리니트론
- 트리니트론 특허 만료와 마지막 영광
- 혁신 기업의 딜레마
- S-LCD 시대
- 히라이 가즈오(平井一夫)
- 포스트 히라이
- 소니 TV의 반세기의 교훈
- 한국기업에게 주는 교훈
- 결론
할머니 댁의 추억
한 도시에서 소문난 자산가였던 외할머니 댁에 가면 늘 눈이 휘둥그레졌다. 외할머니는 방학이나 이따금 외가에 놀러 가면 오늘날로 치면 ‘가젯’을 하나씩 선물해 주셨는데, 내가 지금 기술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그 영향이다. 나는 포켓 PC(Pocket PC) 커뮤니티에서 활동을 시작했고, 그 포켓 PC를 구입해 주신 것도 외할머니였다.
할머니 댁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넓은 집도, 고가의 예술품도, 장인이 만든 자개장도, 지금도 기억나는 편안한 감촉의 수입 가죽 소파도 아니었다. 정말 ‘거대하다’라고밖에 표현할 수 없는 트리니트론 텔레비전이었다. 검은 몸체에 검회색 화면의 그것은 지금 생각해도 몇 인치인지 가늠이 안 될 만큼 컸고, 압권이었다.
아날로그 시대에도 할머니 댁의 텔레비전은 크고 밝고 선명했다. 1990년대 말부터 2000년대 초반에 ‘한국산 제품의 화질도 괜찮다’는 소문이 돌았지만, 할머니는 2003년에 돌아가실 때까지 소니 외의 텔레비전은 전혀 관심 두지 않으셨다.
이부카 마사루의 인생 역작, 트리니트론
트리니트론(Trinitron)은 빛의 삼원색과 삼위일체(trinity)에서 따온 ‘Tri-‘에 전자관을 의미하는 ‘-tron’을 합성한 이름이다. 전신인 크로마트론(Chromatron)의 치명적 결함을 3개의 삼각형 배열 전자총 대신 1개의 일렬 배치 전자총으로 해결한 이 제품에 매우 걸맞는 작명이었다.
이 제품은 1968년부터 2008년까지 40년 넘게 생산되며 소니 텔레비전 시장의 아성 그 자체였다. 이 기간 동안 소니가 생산한 트리니트론 TV는 총 2억 8천만 대, 피크 시 연간 생산량은 약 2천만 대에 달했다. 1973년에는 소비자 가전 제품으로는 처음으로 에미 상을 수상했다. 소니 창업자 2인 중 하나인 이부카 마사루(井深大)는 1992년 84세 생일에 ‘자신이 가장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제품’으로 트리니트론을 꼽았다. 이부카는 1997년 사망했는데, 소니는 1994년부터 2008년 단종할 때까지 1억 8천만 대의 트리니트론을 ‘찍어냈다’.
트리니트론 TV의 혁신은 일렬 배치 전자총뿐 아니라 애퍼처 그릴(aperture grill)이라는 독특한 수직 와이어 배치에도 있었다. CRT 모니터나 텔레비전을 기억하는 독자라면 화면 가까이에서 봤을 때 수많은 미세한 원형 구멍(섀도우 마스크)을 통해 빛이 나오던 것을 기억할 텐데, 트리니트론은 원형 구멍이 아니라 수직으로 배열한 가느다란 금속 와이어 구조였다. 쉽게 비유하자면, 섀도우 마스크가 촘촘한 구멍이 뚫린 ‘체(거름망)’라면, 애퍼처 그릴은 수직으로 세운 ‘블라인드 커튼’에 가깝다.
이 차이가 왜 중요했을까? 섀도우 마스크의 원형 구멍은 전자빔이 통과할 수 있는 면적이 전체의 약 25%에 불과했다. 나머지 75%는 금속판에 막혀 빛이 되지 못하고 열로 바뀌었다. 반면 애퍼처 그릴은 와이어 사이의 틈이 넓어 전자빔의 약 80%를 통과시켰다. 같은 전력을 쏘아도 화면에 도달하는 빛의 양이 세 배 이상 많았다는 뜻이다. 트리니트론이 유독 밝고 선명한 화면으로 유명했던 비밀이 바로 여기에 있었다.
할머니 댁에서 봤던 초대형 TV처럼, 대형화에서도 이 구조는 유리했다. 섀도우 마스크는 구멍이 빽빽하게 뚫린 얇은 금속판이기 때문에, 화면이 커질수록 자체 무게로 처지거나, 통과하지 못한 전자빔이 만드는 열 때문에 금속판이 볼록하게 팽창하는 ‘도밍(doming)’ 현상이 심해졌다. 이렇게 되면 전자빔이 엉뚱한 형광체에 부딪히면서 색이 틀어지는 문제가 생겼다. 애퍼처 그릴은 와이어를 위아래로 팽팽하게 당긴 구조라 같은 크기에서도 훨씬 가볍고, 열팽창도 와이어 길이 방향(세로)으로만 일어나 색순도가 흐트러지는 문제가 적었다. 결과적으로 소니 텔레비전은 대형 화면에서도 변함없이 밝고 선명한 컬러 화질을 자랑했다.
물론 완벽한 기술은 아니었다. 수직 와이어를 팽팽하게 당겨놓아도 외부 진동에 흔들릴 수 있었기 때문에, 이를 잡아주는 가느다란 수평 고정선(댐퍼 와이어)이 한두 줄 필요했다. 트리니트론 모니터나 TV를 사용해본 분이라면 화면에 가느다란 수평선이 희미하게 보였던 기억이 있을 텐데, 그게 바로 이 댐퍼 와이어다. 밝은 단색 화면에서 유독 잘 보여 신경 쓰인다는 사용자도 있었지만, 대부분의 일반 시청 환경에서는 크게 거슬리지 않았고, 압도적인 밝기와 색감이 주는 이점이 훨씬 컸기에 트리니트론은 오랫동안 ‘최고의 화질’이라는 명성을 유지할 수 있었다.
트리니트론 특허 만료와 마지막 영광
소니는 단일 전자총과 애퍼처 그릴에 대한 특허를 확보하고, 20년간 독점적 지위를 누렸다. 이 특허가 1996년 만료되자마자 미츠비시, NEC, 뷰소닉 등이 저가형 애퍼처 그릴 CRT를 생산했으나, 수십 년간 축적된 제조 노하우를 통한 정밀도 차이로 소니는 여전히 시장의 3/4 이상을 장악했다. 소니는 특허 경쟁으로 인한 가격 경쟁에 맞서 평면 CRT를 탑재한 FD 트리니트론 TV ‘WEGA’를 1998년 출시해 의연하게 시장 1위를 수성했다. 이는 업계 최초의 완전 평면 CRT로 32와 36인치로 시작해 2001년에는 세계 최대인 40인치 평면 CRT를 출시하기에 이른다. 컴퓨터 제어 피드백 시스템으로 평면 화면 전체에 선명한 초점을 유지했을 뿐 아니라 곡면 CRT 대비 반사광을 크게 줄일 수 있었다.
1998년 출시된 HDTV KW-34HD1은 34인치 16:9 화면을 자랑하며 9,000달러라는 가격에도 얼리어답터들의 열광적 반응을 얻었다. 2001년 FD 트리니트론 WEGA는 미국 시장에서 TV 판매량 1위를 달성했고, 2003년까지 전 세계적으로 4천만 대 이상 판매되었다. 그러나 이 시기가 영광의 정점이었다. 전시회에서 프로토타입으로만 볼 수 있었던 플라즈마(PDP)와 LCD 텔레비전 가격이 2004년에서 2006년 사이 급락하면서 CRT의 종언이 가속화되었다.
혁신 기업의 딜레마
그러나 소니는 전형적인 ‘혁신 기업의 딜레마’에 빠져 있었다. 트리니트론이 거둔 거대한 성공과 막대하게 쏟아부은 제조 인프라 투자는 플랫패널(평판) 텔레비전으로의 전환에 소니가 적극적으로 나서는 데 저항을 일으켰다. 소니가 플랫패널로 전환하지 못한 것인가, 아니면 안 한 것인가에 대한 해석은 분분하나, 자료를 정리해보건대 소니 경영진의 당시 LCD에 대한 입장은 적극적 반대는 아니었을지언정 소극적 수용이었을 것이다.
이데이 노부유키(出井伸之)나 이후 체제에서 소니가 아무것도 하지 않았냐 하면 절대 아니다. 오히려 너무 많은 걸 만든 게 문제였다. 플라즈마도, 액정도, 프로젝션도 만들었다. 거기에 트리니트론까지. 이쯤 되면 실행력의 문제가 아니라 집중력과 의지 부족이라는 판단을 덧붙일 수밖에 없다.
삼성은 1991년 TFT-LCD 제조를 개시한 이래 2000년대 초반 세계 최대 LCD 화면을 개발하고 있었다. LG는 1999년 필립스와 합작해 오늘날 LG디스플레이가 되는 회사를 설립하며 자체 디스플레이 역량을 확보했다. 샤프는 2001년 아쿠오스(AQUOS) 브랜드를 런칭하고, 비록 결과적으로는 경영적 실패로 돌아갔으나 자체 LCD 제조 능력을 확보했다. 파나소닉 역시 1996년 Plasmaco 인수를 통해 플라즈마 패널의 원천 기술을 확보한 이래 중대형 제품을 위한 플라즈마 패널에 집중하는 등 자체 패널 설비를 갖추고 있었다. 플랫패널 TV 시대에서 TV 제조는 패널 생산 역량이 명운을 쥐게 되었고, 자체 패널이 없다는 것은 자신의 엔진이나 플랫폼 없이 차를 만드는 것과 같은 핸디캡을 의미했다.
한국 기업의 경영문화와 소니의 경영문화 역시 이 차이를 벌리는 데 일조했다. 삼성은 명백한 불경기로 설비 투자에 나서면 회수가 불투명함에도, 소위 ‘오너 회장’의 지시 하나로 모든 셈을 뒤엎고 투자, 아니 베팅을 했다. ‘회장님의 명령’에 감히 수익성이나 리스크를 따지는 사람은 없었다. 심지어 주주라 할지라도. 반면 소니는 이사회, 사외이사, 사업부간 이해관계, 사내 정치부터 말 많은 주주까지. 내외로 살펴야 할 눈치는 많은데 어떤 역대 사장도 당시 리스크를 지려 하지 않았다.
이데이 노부유키는 경제적 부가가치(EVA)를 경영지표로 삼았고, 세후 영업이익에서 자본비용을 빼는 이 경영지표 하에서는 ‘대규모 설비 투자=수치악화’가 되어버린다. 삼성이 업계 불경기에도 ‘회장님의 지시’ 하나로 수조 원을 쏟아부을 때, 소니는 주판알을 튕기고 눈치를 살폈다. 경제적 부가가치 지표에 의지하는 동안, 소니는 LCD를 비롯한 모든 대규모 투자를 자유롭게 할 수 없었고 혁신의 장애가 되어 사내 반발을 샀다. 이데이의 전임자인 오가 노리오(大賀典雄)가 이데이를 타이른 말은 유명하다. “나는 CD도, MD도, 플레이스테이션도 만들었네. 자네는 대체 뭘 만들었는가?”
설상가상으로 소니가 움직이는 데 소극적이게 만든 것은 소니 특유의 엔지니어링 문화였다. 소니는 그러지 않아도 미니디스크, 메모리스틱 등 독자 규격을 통해 기존 제품이 가진 엔지니어링적 취약점을 보완하려는, 엔지니어 중심의 문화가 확고하게 존재했다. 트리니트론 자체가 그 엔지니어 문화의 산물이었고, 소니에서 이러한 문화는 권장되면 되었지 배척되는 부류가 아니었다. 한편, 하워드 스트링거 전 사장은 ‘여기서(=소니에서) 만들지 않은 것’에 대한 소니 조직 자체의 거부감이 전체적으로 만연했고 자신 역시 그것을 바꾸는 데 실패했다고 증언했다.
소니의 엔지니어들은 2000년 초반 당시 LCD의 명암비(약 500:1), 응답속도(약 20ms), 좁은 시야각, 색재현력 부족 등 어느 모로 봐도 LCD가 트리니트론보다 우월하다고 판단하지 못했다. 그들은 LCD가 잠정적인 기술이라고 보았고, ‘자신들이 만들지 않은’ LCD를 축복하지 않았다. 보통은 충돌하기 마련인 엔지니어와 경영진의 이해가 이번에는 좋지 않은 방향으로 일치했다.
판단 미스
소니는 이때 플라즈마와 LCD 제품화를 추구하면서도 궁극적으로 미래는 OLED에 있다는 판단 미스를 하고 만다. 소니는 중소형 LCD 제작 능력은 갖추고 있었으나 대형 LCD 생산 능력은 전무했다. 삼성과 LG가 각자 1990년대 후반부터 LCD 패널 제조에 대규모 투자를 하면서 수직 계열화를 점차 완성시키고 있을 무렵에도 소니는 AU옵트로닉스(AUO)나 치메이 등 대만 업체에 패널을 의존해야 했고, 이는 공급 불안정, 품질 통제의 한계, 원가 상승으로 이어져 경쟁력 저하를 가져왔다. 소니의 첫 LCD 텔레비전은 2002년 출시된 KLV-17HR1이었으나 상술한 대로 다소 소극적으로 출시된 TV 제품군의 일부에 불과했고 화질은 CRT에 비할 수 없었다.


2007년 12월, 소니의 엔지니어들의 이상을 실현한, 세계 최초의 상용 OLED TV인 XEL-1이라는 11인치 OLED 텔레비전이 세상에 나온다. 나는 당시 소니가 얼마나 그 제품에 자신을 가지고 있었는지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한다. 당시 티저 동영상에서는 우아한 여성 보컬의 노래와 함께 리본이 풀리며 등장하는데, 리본의 두께와 제품을 비교하며 그 압도적인 얇기를 뽐냈다. 내가 일본에 갔을 때, 긴자의 소니 쇼룸에는 그 제품이 자랑스럽게 전시되어 있었고 화면을 육안으로 보았다. 압도적인 얇기(3mm), 100만 분의 1이라는 압도적인 콘트라스트비, 0cd/m2의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블랙레벨을 자랑했다(당시 블랙레벨이 0.00cd/m2, 실측 명암비가 93,913:1이 나왔는데, 블랙레벨이 측정 한계, 즉, 0 이하였기 때문에 실제 명암비는 무한대에 가까웠고, 이는 사실상 당시 측정계가 잴 수 있는 블랙레벨의 한계 탓이라 보아야 할 것이다). 또, NTSC 105%의 색재현 범위, 제로에 한없이 가까운 응답속도와 압도적인 얇기… 모든 것이 ‘이상(理想)’적인 제품이었으나 불과 11인치 화면에 해상도는 풀HD의 4분의 1인 960×540에 불과했다(다만, 화면이 워낙 작아 리뷰어들은 60″ 풀HD TV의 선명도와 견줄 정도였다). 컨트롤러 박스가 따로 필요했고, 무엇보다 가격이 20만엔/2500달러이었다. 이미 그 시점에서 50인치 PDP나 LCD TV를 살 수 있는 금액이었다. 사실상 상업적 제품이라기보다는 ‘시판한 프로토타입’에 가까운 이 제품은 소니 자신이 ‘부진한 수요’를 들어 2010년 2월 단종했으나 기술사 적으로 가정(仮定)에 불과했던 OLED TV의 존재와 가능성을 증명한 것이었다. 영국 과학박물관 컬렉션에도 선정된 XEL-1은 분명 미래였으나 미래는 소니의 것이 아니었다.
S-LCD 시대
소니가 한구석에서 이런 혁신적인 홈브루 프로젝트를 내놓을 동안, 소니는 대형 평판 TV에서 경쟁력을 어떻게 확보할 것인가 고심해야 했다. 전술한 대로, 수직 계열화를 이뤄낸 한국 기업들과는 달리 타이완 업체들에 의존하며 여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타개책으로 소니는 2003년 10월 삼성과 MOU를 체결하고, 이듬해 충남 아산 탕정에 LCD 생산 합작사인 S-LCD를 설립한다.
그런데, S-LCD 합작 발표 자리에서 당시 이데이는 찬물을 끼얹는다. “차세대 디스플레이는 반드시 자체 발광형이어야 하며, 몇 년이 걸리더라도 자체적으로 개발할 것이다.” 이데이의 심산은 ‘잠시간’의 연명은 LCD로 하고, 자체 발광 디스플레이 기술(OLED, FED)로 한 세대를 점프해서 다시 압도하겠다는 것이었지만, 결과론적으로 보면 이는 이데이의 실언, 아니 식언이 되어버렸다.
어쨌든 소니는 이 회사의 49%(50%-1주) 지분을 가지고 있었고, 삼성/소니 양사는 2조 1,000억 원을 투입했다. 그리고 이듬해(2005년) 4월 패널 출하를 개시하고, 2007년 8월에 8세대 라인을 가동해 월 15만 장의 TV용 LCD 패널을 생산했다.
이 합작 파트너십은 그러나 삼성이 CEO를 지명하며 실질적으로 운영권을 행사했으며, 소니는 경쟁사인 삼성에 핵심 부품을 의존하는 구조적 취약성을 가지고 있었다. 이 당시 나는 소니 브라비아 TV를 구입했는데, 당시 삼성 판매원이 “어차피 소니 제품도 삼성 패널을 씁니다. 근데 왜 200만 원이나 더 주시나요?”라고 했던 말이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이 문제는 소니 코리아의 가격 정책 등 여러 가지에 기인하는 것이지만, 중요하지 않으니 넘어가기로 하고, 궁극적으로 이 합작은 실패로 끝나고 만다.
양사는 2011년 합작 해소를 발표하고 2012년 삼성이 소니 지분을 약 1조 원에 매수하는 결말로 끝났다. 최종적으로 그때까지 소니가 S-LCD에 투자한 비용의 절반을 간신히 좀 넘기는 금액을 회수한, 처참하고 씁쓸한 뒷맛이 남는 결과였다.
BRAVIA
2005년 소니는 새로운 TV 브랜드로 브라비아(BRAVIA; Best Resolution Audio Visual Integrated Architecture)를 출시한다. 브라비아 출시 당시, 소니가 전 세계적으로 했던 광고 캠페인은 지금도 인상적인 기억으로 남아 있다. 폴런 런던(Fallon London)에서 기획한 “Color Like No Other” 광고 캠페인은 2005년 7월 샌프란시스코의 가파른 언덕에서 25만 개의 실제 색색깔 탱탱볼을 굴리는 장면을 CGI 이펙트 없이 촬영한 것으로, 100만 달러의 제작비와 700만 이상의 조회수를 기록하며 다수의 수상을 했다. 당시 바이럴 마케팅의 선구적 사례로 남았고, 소니는 “전망치를 크게 초과했다”고 밝히며 브라비아의 출발은 호조를 기록하며 결과를 낙관했다.
‘보르도’라는 이름의 재앙
이러한 소니의 브라비아 출시에 대한 낙관적인 전망에도 불구하고, 2006년 삼성전자는 보르도 LCD로 소니를 제치고 세계 TV 시장 1위를 차지했다. 보르도 TV는 당시까지 집안의 중심을 차지했던 텔레비전과 완전히 다른, 세련된 유선형 디자인으로, 수십 년 동안 리모컨의 볼륨과 채널 버튼 위치마저 함부로 바꾸지 않던 구식 텔레비전의 모습을 현대화한 것으로 평가된다. 또한, 이후로도 한동안 고집했던 하단 스피커 디자인을 탈피하고 V 라인의 실루엣을 그려 ‘TV를 가구, 인테리어의 영역에 진입시켰다’는 평을 듣는다(물론 애호가 사이에서 TV 스피커 음질을 하향 평준화 시켰다는 비판을 들어야만 했다). 그 이후로 오늘날까지 삼성은 1위를 계속하고 있다.
패널(원가의 60~70% 차지)을 직접 생산하는 수직계열화를 통한 원가 통제와 1990년대 후반부터 수조 원에 이르는 LCD 생산 라인에 대한 공격적 투자, 그리고 수직 계열화와 생산 라인 확대를 통해 이룩한 규모의 경제를 통한 가격 전략과 대규모 마케팅을 통한 가격 경쟁력이 이유로 꼽힌다.
한편, 소니의 텔레비전 사업부는 2004년 3월 결산(2003 회계연도)에 마지막으로 영업이익을 기록한 이래로 2014년 3월 결산까지 10년 연속 영업 적자에 빠지게 되었다. 2014년 3월 결산기에 소니의 TV 사업이 기록한 누적 적자는 7,860억 엔에 이르렀다. 특히 2009년 3월(2008 회계연도) 결산은 소니 전체가 순손실 989억 엔을 기록했고, 한술 더 떠 2012년 3월(2011 회계연도) 결산에서는 소니 전체가 5,200억 엔의 적자를 기록하게 된다.
소니의 시가총액은 소니의 트리니트론 CRT가 정점을 이루던 2000년 9월 1,000억 달러를 넘기던 것이 2011년 12월에는 180억 달러로 82% 폭락하기에 이르고, 신용평가사인 무디스는 2014년 1월 소니의 신용등급을 정크 직전인 Ba1으로 강등시키기에 이른다.
한편, 소니의 글로벌 텔레비전 시장 점유율(출하량 기준)은 2008년 13.7%에서 2019년 4.2%로 추락했다.
히라이 가즈오(平井一夫)
2012년 4월 취임한 소니의 신임 사장 히라이 가즈오(소니 본사가 아닌 SCE/SIE 출신의 첫 사장)는 소니의 TV 사업을 핵심 사업에서 제외하고, “수익성 개선이 최우선 과제”인 사업으로 분류했다. 업계는 히라이 가즈오가 TV 사업을 매각하거나 철수할 것인지에 귀추를 주목했다. 그러나 히라이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TV 없이는 소니가 고객에게 감성적인 경험을 전달할 수 없다”며 TV 사업을 유지할 것이라고 밝혔다. 소니는 플레이스테이션과 소니 픽처스의 콘텐츠와 설치 기반 자산을 보유하고 있었고, 이를 적극적으로 TV 판촉에 활용해 왔다. 그러나 히라이는 “수익성을 달성하지 못한다면 매각을 배제하지 않겠다”라는 유보적인 코멘트를 내놓았다.
2년 후인 2014년, 그는 VAIO(PC) 사업 매각과 함께 구조조정의 일환으로 소니의 TV 사업을 ‘소니 비주얼 프로덕트’라는 이름의 100% 자회사로 분사시켰다. 사장으로 취임한 이는 소니의 디지털 카메라를 턴어라운드시킨 경력을 가진 이마무라 마사시(今村昌志)였다. 히라이가 제시한 분사의 이유는 경영 속도의 가속화였다. 독립 법인의 핵심 목표는 독립 채산에 따른 경영 책임의 명확화, 규모와 구조의 최적화를 통한 효율적인 조직 구축, 비용 투명성 확보 등 세 가지였다. 이와 함께 3,000억 엔 이상의 고정비 삭감 등 비용 절감과 5,000명의 추가 감원을 통한 구조조정을 단행했다.
분사 이후 2015년 3월 결산(2014 회계연도)에서 11년 만에 적자에서 벗어나 83억 엔의 흑자로 전환했다. 당시 CFO인 요시다 겐이치로는 “2003년 이후 처음으로 연간 흑자를 달성했다”고 밝혔다.
당시 자료를 보면 흑자 달성은 다음과 같은 조합으로 이루어졌다.
- 생산 및 판매량 대폭 축소: 2011년 4,000만 대 체제에서 2,000만 대 체제로 전환을 선언했다. 이 과정에서 비핵심 지역에서 철수가 이루어졌다(한국 TV 사업도 철수). 2012 회계연도 1,350만 대에서 2021 회계연도 930만 대, 그리고 2022 회계연도 850만 대로 점차 줄여 나갔다.
- 동시에 가격 인하 경쟁 일변도에서 벗어나, 고부가가치 고급 모델, 특히 4K TV에 집중했다.
- 패널 조달의 효율화와 R&D 합리화, 고정비 삭감
- 자산 매각(해외 공장 매각) 및 EMS 업체인 혼하이 정밀에 생산량 절반을 위탁
- 불채산 지역의 철수를 포함하여 지역별 제품군을 엄선하여 SKU를 대폭 축소하였다.
이마무라 사장은 “매출이 20~30% 감소하더라도 수익을 유지하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 목표”라고 밝혔으며, 2018 회계연도까지 영업이익률 2~4% 달성을 목표로 제시했다.
이 시기에 소니는 2012년부터 파나소닉과 OLED를 공동 개발했으나, 2014년에 해산했다.
고급화 전략
앞서 말했듯이 소니는 고가격대의 고급 모델에 집중하는 전략을 취했으나 그러기 위해서는 기술적 차별화가 필요했다. 소니는 독자적인 패널 생산 능력이 없는 약점을 독자적인 영상처리 기술로 상쇄하는 방식을 시도한다.
한편으로, 2012년 말 북미에서 처음으로 4K 제품을 출하한다. 2013년 말 소니는 일본 내 4K TV 시장에서 75% 이상의 점유율을 기록하고, 미국에서도 매출 기준으로 1위를 달성한다. 2014년에 4K TV는 전체 업계 출하량의 8%에 불과했으나 매출의 19%를 차지했고 2017년에는 45%까지 상승할 것으로 예측돼 소니의 고급화 전략과 4K 집중은 딱 맞아떨어지는 듯했다.
전술한 대로, 소니는 자체 패널이 없는 약점을 상쇄하기 위해 화질 프로세서인 ‘X1 프로세서’ 시리즈에 지속적인 개량을 단행하기에 이른다. 소니는 여러 차례의 개량을 통해 타사 패널을 사용하면서도 우수한 화질을 확보하기에 이른다.
한편으로 소니는 그룹의 강점인 게임과 영화 자산을 TV에서 적극 활용하였다. 이를테면 소니 픽쳐스와 협업하여 탑재한 소니 텔레비전의 시네마 모드는 커다란 교정(캘리브레이션) 없이도 간편하게 영화 제작자가 의도한 화질을 즐길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언급할 것은 OLED 시장 재진입이다. 2017년 CES에서 공개한 BRAVIA OLED A1E는 LG디스플레이의 WRGB OLED 패널에 X1 Extreme 프로세서, 그리고 패널 자체를 진동시켜 소리를 내는 어쿠스틱 서피스(Acoustic Surface) 스피커로 주목을 받았다. 55인치에 5,000달러라는 LG전자 제품의 2배 가격에도 평은 좋았다. 이어서 2022년에 삼성디스플레이의 QD-OLED를 채택한 A95K(세계 최초의 QD-OLED TV)를 출시한다. 이들 A 시리즈는 비평가들의 좋은 평가를 받았지만, 소니가 엘지와 특히 삼성이 사용하는 패널 기술에 ‘속박되는’ 빌미를 다시금 제공했다.
포스트 히라이
히라이 가즈오는 소니 전체를 화려하게 턴 어라운드 시키는데 성공했다. 소니의 ADR(미국 예탁 증서) 가격은 2012년 말 10달러 미만에서 2015년 중반 33달러로 238% 상승했고, 2017 회계년도 영업이익은 7,349억엔으로 ‘소니 쇼크’의 그림자를 완전히 씻어 내게 된다. 그러나 소니의 전임 사장(CEO)들이 그러했듯이 히라이 가즈오 역시 영원히 사장에 연연하지 않았고, 회장으로 물러나 경영 최일선에서 물러나고, 그 자리를 CFO 요시다 겐이치로(吉田憲一郎)가 이어받는다. 그는 “우리가 고유한 장치(트리니트론)을 잃고 판매량을 쫓기 시작했다. TV사업은 그 때부터 적자가 되었다”는 반성을 토로했다.
요시다 사장 체제에서 TV, 카메라, 모바일 부문이 전자제품 및 솔루션 부문으로 통합되며 지주회사로서 소니 그룹 주식회사가 출범하고 새로 출범한 소니 주식회사가 사업회사로 사업을 계속승계 하게 되었다.
2025년 기준으로 소니의 TV 라인업은 여전히 기술적으로 최전선에 있다. 플래그십인 BRAVIA 8II(QD-OLED), BRAVIA 9(미니 LED), 중급기인 BRAVIA 5과 보급기인 BRAVIA 2II/3을 포진시켰다. 모든 모델에 Google TV가 탑재되고 OLED 모델에는 어쿠스틱 서피스 오디오+가 탑재되었다.
히라이의 부채
그러나 소니 텔레비전의 재무적, 시장적 위상은 크게 축소되었다. 히라이 시대에 비채산 시장 철수로 인해 지리적 존재감이 범세계적 규모에서 국지적 규모로 축소되었고, 생산 자체도 이미 절반 이상을 폭스콘 등에 의존하고 있었다. 2025년 소니의 TV 출하량은 400만 대 미만(트렌드포스 추정)으로, 이는 삼성(약 3,640만 대)이나 TCL(약 3,100만 대)에 비해 현저히 낮은 수준이다. 소니는 2023 회계연도부터 TV 출하량을 공개하지 않고 있다. 이 때문에 추정치를 작성하게 되었다. 또한, 소니의 TV와 오디오를 포함하는 ET&S(Entertainment, Technology & Services) 부문은 2024 회계연도에 1,909억 엔의 영업이익을 기록했으나, 이에는 TV 사업부의 수익이 별도로 구분되어 있지 않다. 또한 매출 기준 TV 시장 점유율도 2021년 9.5%에서 2024년 5.4%로 감소하며, 삼성(28.3%), LG(16.1%), TCL(12.4%), 하이센스(10.5%)에 이어 5위로 밀려났다. 2,500달러 이상의 고급 TV 세그먼트에서는 매출 기준 15.7%를 차지하며, 삼성(53.1%), LG(26.1%)에 이어 3위를 차지하고 있다.
이 결과만 놓고 보면 히라이 시대의 구조조정이 결과적으로 소니 텔레비전 사업의 채산성을 향상시켰으나, 소니 텔레비전 사업을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축소시켰음을 부인할 수 없게 되었다. 어쨌든 현재 소니 그룹 전체 매출의 60%가 엔터테인먼트(영화, 음악, 게임)에서 발생하고 있으므로, TV 사업은 소니의 과거 유산에 불과하다. 히라이 가즈오는 앞서도 말했듯 최초의 SCE 출신, 비전자 출신 소니 사장으로 개인적으로 매우 존경하는 뛰어난 경영자였다. 하지만 소니의 텔레비전 사업을 되돌리는 데 있어서는 저승사자보다 약간 나은 존재일 뿐이다.
일본 TV의 종언
그러나 그럼에도, 히라이 가즈오가 소니 TV를 ‘이 모양 이 꼴’로 만들었다고 비난 하는 것은 매우 가혹하고 비정한 평가일 것이다. 왜냐면 파나소닉이 TV 사업을 철수 하겠다고 밝힌 가운데, 샤프는 폭스콘에 팔리고, 도시바의 TV 사업은 이미 2017년에 하이센스에 넘어간 상황이기 때문이다. 일본 브랜드를 모두 더해도 글로벌 TV 점유율(출하량 기준, 2024)은 5.1%에 불과하고, 일본 국내 시장에서도 TCL과 하이센스가 5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2024).
그 가운데, 2026년 1월 20일, 소니가 TCL과 TV 및 홈 오디오에 대한 합작(조인트 벤처)을 위한 양해각서를 체결했다는 소식이 타전 되었다. TCL이 51%, 소니가 49% 지분 비율로 TCL이 경영권을 가지는 구조이며 2027년 4월까지 새로운 회사의 출범을 목표로 한다는 내용이다. 이것으로 소니 TV가 끝났다라고 볼 수는 없다. 사실상 철수를 한 도시바나 경영권을 넘겨준 샤프와 달리, 소니는 브랜드 소유권을 보유하면서 지분을 유지하면서 독자 기술을 계속 개발해 투입하며, TCL측은 TCL CSOT의 디스플레이 기술과 TCL 그룹 전체의 대규모 생산력과 수직적 공급망으로 기여하는 구조로 운영 될 전망이다. TCL CSOT는 사실 플래그십 제품인 BRAVIA 9의 미니 LED LCD 패널을 공급한 바 있어, 양사간의 협력은 기존부터 존재하고 있었다.
비록, 소니의 TV 사업이 단독 생존 할 수 없게 되었으나, 그 향방은 이 글을 쓰는 시점에서 적어도 다른 일본 메이커에 비하면 차라리 나은 상황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소니의 경영진의 텔레비전 사업에 대한 판단은 100점 짜리 답안은 아닐지언정, 최소한 낙제점은 면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
소니 TV의 반세기의 교훈
이렇게 소니 텔레비전 사업은 이부카 마사루가 트리니트론을 개발한 이래, 반세기의 독자 노선을 마치려 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우리가 얻을 교훈이 무엇일까?
기술적 해자의 유한성
소니의 텔레비전 사업은 “기술적 해자의 유한성”을 증명한다. 트리니트론이라는, 특허로 보호된 압도적인 독점 기술이 20년간 프리미엄 가격 결정력과 시장 지배력을 보장했지만, 특허의 만료와 디스플레이 기술의 패러다임 전환이 동시에 일어나면서, 이 해자는 순식간에 메워졌다. 기술 기업에 있어 장기적인 생존능력은 기술 해자를 만들어 내는 능력이 아니라, 해자를 갱신하는 능력이 결정한다는 점이다. 많은 기술 기업이 ‘초격차’적인 기술적 해자를 만들기까지는 성공하지만 그것을 끊임없이 갱신하는데는 실패하는 경우가 많다. 소니 텔레비전의 사례는 비록 한 때는 전세계를 호령하던 사업이라 할지라도, 얼마든 존재감 자체가 옅어질 정도로 위축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경고라 할 수 있다.
혁신 기업의 딜레마
트리니트론 CRT는 화질의 모든 객관적 지표에서 초기의 LCD를 압도했다. 소니의 엔지니어링 문화는 “열등한” 기술로 이행을 거부했다. 그러나 시장은 화질의 절대적 우위보다 커다란 화면과 얇은 두께로 인한 공간 절약적인 평판 디스플레이를 선호 했고, 소니는 여기에서 이도 저도 못하는 사이에 TV용 패널 자체 생산 역량을 확보하지 못하고 역사적인 패러다임 전환기를 맞이하게 된다. 원가의 60~70%를 차지하는 패널을 타사에서 사올 수밖에 없는 구조는 원가 경쟁에서 불리함을 타고날 수 밖에 없는 구조였으며 도중 시도한 삼성과의 S-LCD 합작으로 소니가 진정한 수직계열화를 달성하기에는 모자람이 있었다. 소니는 S-LCD 합작으로 번 시간 동안 OLED나 FED 등 당시로는 검증되지 않은 기술로 퀀텀 점프를 노렸으나 결과적으로 달성하지 못한 채로 경쟁자인 삼성과 LG의 패널-완제품의 수직계열화를 구경하게 된다. 이러한 수직 계열화는 소니를 압도했으나 한편으로 소니는 히라이/요시다 시대에 프로세서와 소프트웨어, 브랜드로 차별화하는 이른바 애플 식의 팹리스 모델을 개척했다. 2026년 TCL과 합작을 통해 생산능력 자체를 타사에 완전히 위탁하게 되면 이는 더욱 심화 될 것이다.
구조조정의 빛과 그림자
히라이와 요시다 시대에 텔레비전 사업 분사와 프리미엄 전략은 사업의 생존 측면에서는 성공적이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 7,860억엔이라는 기하급수적인 누적 적자를 기록하다가 회계년도 흑자를 달성하고, 화질 기술과 브랜드 프리미엄으로 수익성을 얻은 것은 구조조정의 교과서적 사례라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판매량이 2~30% 줄어도 이익을 유지할 수 있는 구조”라는 (소니 TV 사업부 사장을 맡은) 이마무라의 목표는 달성되었다. 그러나 글로벌 매출 점유율이 9.5%(2021)에서 5.4%(2024)로 반토막 가까이 난 것은 프리미엄 전략이 시장 규모 축소를 수반하며 장기적으로 사업의 존재감을 잠식할 수 있다는 예이다. 소니는 영상 프로세서와 소프트웨어 알고리즘으로 차별화를 꾀했으나, 중국 경쟁사들의 미니LED, QLED 기술의 급속히 향상됨에 따라, 프리미엄 세그먼트에서조차 가격 대비 성능 격차는 나날이 줄어들고 있다.
기술전환기의 시간의 가치
소니는 캠코더를 비롯해서 소형 가전 등에 들어가는 LCD를 생산하는 등 기술 자체를 몰랐던 기업이 아니었다. 다만, 2~3년 늦게 대응 했을 뿐이다. 그러나 네트워크 효과와 규모의 경제가 작동하는 하드웨어 산업에서 2~3년의 대응 지연은 수십 년의 시장 우위를 뒤집을 정도의 위험한 것이었다. 그 사이에 패널 역량을 확보하지 못했고, 소니는 영영 자체 패널 텔레비전을 만들지 못했다(민수용에 국한하면).
브랜드의 가치
그럼에도 불구하고 트리니트론 시대부터 축적된 소니 브랜드의 프리미엄 가치는 10년간의 적자와 시장 점유율 추락이 이어지는 가운데에서도 여전히 일정한 가치를 인정 받고 있다. 이는 역으로 브랜드 구축의 중요성을 말해주고 있다. TCL이 2026년 51%의 지분을 가지면서도 소니와 BRAVIA 브랜드를 유지하기로 한 것은(그리고 그 브랜드의 소유권을 여전히 소니가 포기하지 않은 것은) 이들 브랜드의 잔존 가치가 여전히 무시할 수 없음을 의미한다. 1968년 트리니트론 출시로 반석에 오른 브랜드의 유산이 반세기가 지난 지금도 소니 텔레비전 사업의 가장 비싼 자산으로 남아 있는 것이다.
한국기업에게 주는 교훈
소니 텔레비전의 흥망사는 우리 나라 기업에도 분명 교훈거리가 있다. 방대한 자료를 조사하고 1만 4천자가 넘는 글을 쓰면서 새삼 생각하게 된 교훈 거리를 정리하면서 글을 마무리 하고 싶다.
경쟁자의 부상
한국 기업은 2026년 현재, 중국 기업의 파상공세에 시달리고 있다. 2025년 11월 단월 기준, 삼성(17%)과 TCL(16%) 사이의 격차는 불과 1%포인트까지 좁혀졌다. 삼성이 전세계 TV 시장 출하량 1위를 간신히 수성하고 있는 것은 차치하더라도, 출하량 기준으로 삼성과 LG전자를 합친 한국 기업의 점유율(25%)이 TCL(12%), 하이센스(11%), 샤오미(4%) 등 중국 기업 합산(27% 이상)에 이미 뒤처지고 있다는 사실은 우려스럽다(카운터포인트리서치, 2025년 1~11월 누적 기준). 여기에 스카이워스, 창홍, 하이얼, 콩카 등 중소 중국 브랜드까지 포함하면 격차는 더 벌어진다.
프리미엄 집중의 양면성
다만 매출액 기준으로 보면 풍경이 다르다. 옴디아에 따르면 2025년 3분기 삼성(29%)과 LG(15.2%)를 합산한 한국 기업의 매출 점유율은 44.2%로, TCL(13%)과 하이센스(10.9%)를 합친 23.9%를 크게 앞선다. 삼성이 2,500달러 이상 프리미엄 시장에서 53.1%를 차지하고, LG가 OLED TV 시장에서 45.4%로 13년 연속 1위를 유지하는 등 고가 제품에서의 우위가 매출 격차를 만들어내고 있다.
그러나 이 ‘프리미엄 요새’도 흔들리고 있다. 2024년 4분기 프리미엄 TV 시장에서 삼성의 점유율은 전년 대비 12%포인트나 하락한 29%를 기록했고, TCL은 프리미엄 출하량을 전년 대비 2배 이상 늘리며 LG를 제치고 프리미엄 2위로 올라섰다. 미니LED TV 출하량에서 TCL(28.8%)과 하이센스를 포함한 중국 기업 합산 점유율이 62%에 달하는 등, 가격 대비 성능을 앞세운 중국 기업의 상향 공세가 거세다.
또, 소니가 그러했듯이 프리미엄 전략에 집중하는 것은 시장 존재감에 있어 상당한 리스크를 포함하고 있다는 점을 늘 명심할 필요가 있다.
지속적 차별화의 중요성
소니가 주는 교훈에서도 말했지만, 소니의 반세기 흥망사에서 가장 선명하게 드러나는 진실은, 결국 진짜 기술적 차별화를 끊임없이 계속하는 능력이 장기적 생존을 보장한다는 것이다.
지금 삼성의 QD-OLED와 LG의 WOLED는 중국 기업이 쉽게 따라올 수 없는 기술적 해자 역할을 하고 있다. LCD 시절의 압도적인 격차를 중국에 내어주고, 오늘날 한국 기업은 OLED TV를 중심으로 한 수직 계열화로 다시금 격차를 벌리고 있다. OLED TV 시장에서 상위 5개 브랜드(LG, 삼성, 소니, 파나소닉, 필립스)가 전체 출하량의 96%를 차지하고, 중국 기업이 거의 진입하지 못하고 있는 현실이 이를 증명한다. 그러나 미니LED 영역에서 중국 기업이 이미 62%를 장악한 것처럼, 기술적 해자라는 것은 영원하지 않다. 트리니트론의 특허가 만료되자 소니의 독점이 끝났듯, 아이러니하게 소니를 압도했던 LCD 생산능력을 가졌던 한국의 LCD 사업이 그러했듯, 어떤 기술적 우위라 할지라도 시간이 지나면 반드시 추격자에게 따라잡힌다.
결국 교훈은 명확하다. 한국 기업이 지켜야 할 것은 시장 점유율 1위라는 숫자가 아니라, 경쟁자가 2~3년 안에 따라올 수 없는 기술적 초격차와 그것을 끊임없이 갱신하는 능력을 보유하는 것이다. 소니는 트리니트론이라는 초격차를 가지고 있을 때 세계를 지배했고, 그것을 잃었을 때 10년 연속 적자의 나락으로 떨어졌다. 프리미엄 전략도, 브랜드 가치도, 결국 그 밑에 초격차 기술이 깔려 있을 때만 지속적으로 기능하는 것이 가능하다. 점유율 숫자에 일희일비하기보다, 끊임없이 다음 세대의 기술을 만들어내는 체제를 갖추는 것이 한국 기업이 소니의 텔레비전 역사에서 읽어야 할 가장 중요한 한 줄일 것이다.
결론
이 글은 소니나 소니의 경영자나 기술자, 소니의 경영 방침이나 기술 이념을 비판하기 위하여 쓰여진 것이 아니다. 나에게 여전히 소니는 특별한 의미가 있고, 소니에게 텔레비전은 여전히 특별한 의미가 있다. 소니와 소니 텔레비전의 궤적을 정리하고, 그것을 반면교사 삼고자 이 글을 쓰게 되었다. 우리나라 한해 국내 총 생산에서 삼성전자와 LG전자 두 회사가 차지하는 비중이 약 10% 내외라고 알려져 있다. 쉽게 말해, 두 회사가 휘청거리는 것만으로 우리나라 경제 생산의 1/10이 위태롭다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취약한 구조에 대해서 할 말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것은 아마도 또 다른 이야기가 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