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라진 블로그들
2000년대 중후반, 2010년대 초반만 해도 한국에는 애플과 기술을 다루는 개인 블로그가 꽤 많았다. 맥부기, 백투더맥, 아이폰 인 서울… 지금은 대부분 기억 속으로 사라졌다. 어떤 블로그는 마지막 글이 2012년에 멈춰있고, 어떤 곳은 아예 도메인이 만료되어 접속조차 되지 않는다.
그들이 사라진 이유는 다양할 것이다. SNS로의 이동, 유튜브의 부상, 혹은 단순히 삶의 우선순위 변화. 하지만 가장 큰 이유는 아마도 “지속 가능하지 않았다”는 것일 게다. 글 하나를 완성하는데 들어가는 시간과 에너지, 그리고 그에 비해 점점 줄어드는 방문자와 반응. 어느 순간 업데이트가 멈추고, 블로그는 방치된다.
블로깅의 실제 비용
나는 지금도 이 블로그를 운영하고 있다. Kinsta라는 프리미엄 매니지드 워드프레스 호스팅을 사용하는데, 월 비용만 6자리 숫자다. 서버 관리, 보안 업데이트, 백업, 성능 최적화… 이 모든 것을 Kinsta에 비용을 주고 “외주”를 준 셈이다.
솔직히 이것만으로도 엄청나게 편해졌다. 예전에는 포트 스캐닝과 브루트포스 시도가 끊이지 않고, 새벽에 서버가 다운되면 직접 SSH 접속해서 문제를 해결해야 했고, 워드프레스 업데이트 하나에도 긴장했다. 지금은 그런 스트레스에서 해방됐다. 하지만 그 편안함의 대가는 만만치 않다.
여기에 도메인 비용, 각종 프리미엄 플러그인과 테마까지 더하면… 블로그 하나 운영하는데 웬만한 SaaS 서비스 구독료보다 많은 돈이 나간다. 수익을 내는 것도 아닌, 순수하게 개인 블로그를 유지하기 위한 비용이다.
하지만 가장 큰 비용은 역시 시간이다. Kinsta가 서버 관리를 대신해줘도, 글을 쓰는 건 여전히 내 몫이다. 글 하나를 쓰는데 자료 조사, 스크린샷 촬영, 편집, 퇴고까지 몇 시간씩 들어간다. 완벽을 추구하다 보면 발행 버튼을 누르기까지 며칠이 걸리기도 한다. 그러다 지쳐서 초안만 수십 개 쌓이고, 블로그는 또 몇 주씩 업데이트가 멈춘다.
AI, 블로깅 비용의 새로운 항목
2023년부터 내 블로깅 워크플로우에 새로운 항목이 추가됐다. ChatGPT Plus, Claude Pro 구독료를 위시한 AI 서비스 이용료들이 그것이다. 이제 AI는 호스팅 비용, 도메인 비용과 함께 블로그 운영의 주요한 비용이 되었다.
하지만 이 비용은 다른 비용들과 다르다. 호스팅은 블로그를 “존재”하게 하지만, AI는 블로그를 “계속”하게 한다.
사람들은 오해를 한다. 프롬프트를 그럴듯하게 치면 글이 저절로 술술 나온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지금 이 글도 그렇다. 나는 프롬프트 창에 내 생각을 적는다. 핵심 아이디어, 전달하고 싶은 메시지, 구체적인 사례들. AI가 초안을 내놓으면, 그때부터가 진짜 시작이다.
결과물을 받아들고 내가 아이디어를 제시하면, 챗봇이 조사한 정보로 보완한다. 내가 경험을 이야기하면, AI가 그것을 독자에게 전달할 최적의 구조를 제안한다. 내가 “이건 내 톤이 아니야”라고 하면, AI는 다른 방식으로 다시 써온다. 서로의 지혜가 부딪히며 글 하나가 완성되어 간다.
결과물만 보면 간단해 보일지 모르지만, 그 뒤에는 수십 번의 프롬프트와 수정이 있다. 어쩌면 “유기농”으로 글을 쓸 때보다 더 많은 시간이 걸릴 때도 있다. 하지만 차이가 있다면, 이 과정은 덜 지친다는 것이다. 빈 화면을 보며 좌절하는 대신, AI와 함께 글을 만들어간다는 느낌.
“유기농” 블로그는 아니다
솔직히 말하면, 이건 내가 처음부터 끝까지 키보드를 두드려 완성한 “유기농” 글은 아니다(물론 글의 최종 완성은 내가 수동으로 한다). 초안 작성, 문장 교정, 팩트 체크, 이미지 생성, 심지어 SEO 메타데이터까지 AI의 도움을 받는다.
어떤 사람들은 이것을 “진정한 글쓰기”가 아니라고 할 수도 있다. 블로거의 순수성을 잃었다고 할 수도 있다. 그리고… 맞다. 2000년대의 나라면 아마 그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계속하는 이유
하지만 2026년의 나는 다르게 생각한다.
선택지는 이렇다:
- 완벽한 “유기농” 글을 쓰기 위해 몇 주씩 고민하다 결국 발행하지 못하거나
- 피로감에 지쳐 블로그를 방치하거나
- AI의 도움을 받아서라도 꾸준히 콘텐츠를 발행하거나
나는 세 번째를 선택했다. 왜냐하면:
핵심 아이디어는 여전히 내 것이다. AI는 내가 경험하지 못한 것을 쓰지 못한다. 내가 사용해보지 않은 제품을 리뷰하지 못한다. 내가 겪지 않은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 AI는 내 생각을 정리하고 표현하는 도구일 뿐이다.
독자에게 가치를 전달하는 것이 목적이다. 독자는 내가 얼마나 순수하게 글을 썼는지가 아니라, 그 글이 얼마나 유용한지에 관심이 있다. 검색엔진 역시 마찬가지다. AI로 작성했다 해서 구글이 패널티를 주거나 하지 않는다. 오히려 목 좋은 곳을 차지 하기도 한다. 요컨데, 내가 쓴 글이 도움이 된다면, 그게 AI의 도움을 받아 작성되었는지는 독자에게도 검색엔진에게도 크게 중요하지 않다.
20년 블로그를 계속 유지하는 것 자체에 의미가 있다. 대부분의 블로그가 사라진 지금, 꾸준히 업데이트되는 개인 기술 블로그는 그 자체로 희소가치가 있다. 완벽하지 않더라도 존재하는 것이, 완벽을 추구하다 사라지는 것보다 낫다.
요는 이러하다. 한글 타자기가 나오니 손 글씨에 비해 진정성이 없다고 생각하던 사람이 있었겠지만, 나는 AI를 2026년의 타자기라고 생각한다. AI로 글을 쓰니 진정성이 없다고 생각하겠지만, 그 역시 시간이 지나면 어찌될지 모를 노릇이다.
AI 시대의 블로거
결국 AI는 내 블로그의 “비용”이자 동시에 블로그를 지속 가능하게 만드는 “투자”가 되었다. 호스팅 비용이 블로그의 인프라를 유지하듯, AI 구독료는 내 창작 에너지를 유지한다.
이게 완벽한 해답인지는 모르겠다. 몇 년 후에는 또 다른 방식이 필요할 수도 있다. 하지만 적어도 지금은, 이 방식이 나와 내 블로그가 함께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이다.
그리고 누가 알겠는가. 2030년에는 “AI 없이 블로그를 운영했던 시절”을 회고하는 글을 쓰고 있을지도. AI와 함께 말이다.
ps. 일종의 ‘기업 비밀’이긴 하지만 반응 여하에 따라서는 내가 글을 쓰는 워크플로우에 대해서 설명하는 글을 선뵐지도 모르겠다, 글감이 바닥나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