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금융부터 전자상거래까지 확산된 일본의 FIDO2 패스키 전략, 한국은 ‘간편 인증’에 머무른 채 방향성조차 흐릿합니다
보안 사고가 촉발한 일본의 급반전

2025년 상반기, 일본 증권 업계를 강타한 대규모 불법 로그인 및 부정 거래 사태는 단순한 해킹 사건을 넘어, 디지털 인증 체계에 대한 신뢰 자체를 뒤흔드는 사건이었습니다. 수천 건의 계좌 탈취와 수백억 엔 규모의 시장 조작 시도가 이어지자, 일본 금융청과 증권업협회는 즉각적으로 움직였고, 주요 증권사들은 FIDO2 기반의 패스키 인증 시스템을 도입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웰스나비, 모넥스, SBI 증권, PayPay 증권 등 주요 업체들이 빠르게 패스키 로그인 방식을 적용했고, 기존의 SMS나 OTP 인증보다 몇 배 빠르면서도 피싱에 강한 패스키의 특성은 사용성과 보안성 양면에서 효과를 입증했습니다.
실제로 메르카리, 야후재팬, au ID, 도코모 등 주요 전자상거래 및 플랫폼 기업에서도 패스키 도입이 확산되면서, 로그인 속도 향상, 성공률 증가, 고객센터 문의 감소 등 긍정적인 결과를 수치로 입증하고 있습니다. 특히 대형 중고거래 사이트인 메르카리는 월등히 높은 로그인 성공률, 4배 가까운 속도 감소 등을 보였습니다.
이는 정책, 업계, 기술이 유기적으로 맞물려 이루어진 결과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일본 금융청은 패스키를 “피싱 저항 인증의 기본”으로 명시하며 업계 전반에 도입을 권고했고, FIDO Alliance Japan Working Group은 기술 보급과 사례 공유를 통해 확산을 이끌었습니다.
한국, 기술은 있는데 방향이 없습니다
반면 한국의 상황은 정반대입니다. 소비자 대상 FIDO2 패스키 도입을 완료한 금융기관은 현재까지 단 한 곳도 없습니다.
신한은행이나 우리은행 등 일부 은행에서 FIDO 기반 생체 인증을 도입한 사례는 존재하지만, 이는 FIDO2 패스키 방식과는 다르며, 주로 내부 인증이나 보조 로그인 수단으로 제한적으로 활용되고 있습니다. 고객용 인터넷 뱅킹이나 모바일 앱에서 비밀번호 없이 완전히 로그인할 수 있는 구조는 아직 갖춰지지 않았습니다.
IT 업계에서도 사정은 비슷합니다. 카카오, 네이버, SK텔레콤, KT 등 일부 대기업에서 패스키를 도입하긴 했지만, 적용 범위는 제한적이며, 사용자 기반 확산도 매우 미미한 수준입니다. 생태계 차원의 연동성이나 범용 인증 체계 구축도 이뤄지지 않고 있습니다.
제도는 마련됐지만 실행 의지가 부족합니다
이미 일본에서 효과를 본 패스키입니다만, 한국에서 이를 실행에 옮기려는 업계의 움직임은 매우 소극적입니다. 한국은 보안 사고에 대한 대응 속도는 빠른 편이지만, 인증 기술을 선제적으로 고도화하려는 전략적인 의지나 비전은 부족한 상황입니다. 공인인증서가 폐지된 이후에도 여전히 휴대폰 본인확인, 공동인증서, 일회용 비밀번호(OTP) 등 기존의 불편한 방식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습니다.
정부나 금융당국 차원에서도 FIDO2 패스키를 채택하도록 유도하거나, 업계 협업을 통해 표준을 만들려는 노력이 거의 없습니다. ‘간편 인증’이 곧 사용자 경험 개선이라고 착각하는 단편적인 인식이 시장 전체를 가로막고 있는 현실입니다.
일본은 인증을 “보안”으로, 한국은 “편의”로만 보고 있습니다
결국 일본과 한국의 차이는 인증에 대한 관점의 차이에서 비롯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일본은 패스키를 단순한 편의 기능이 아니라, 신뢰 가능한 보안 인프라의 핵심 기술로 보고 전방위적으로 투자하고 있습니다. 반면 한국은 여전히 ‘편한 인증 수단’ 정도로만 이해하고 있으며, 보안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는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습니다.
패스키는 단순한 로그인 도구가 아니라, 사용자 식별과 신뢰 기반을 재정립하는 차세대 인증 기술입니다. 일본은 이를 과감히 수용했지만, 한국은 기술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실행력과 추진 의지가 부족한 상황입니다.
언제까지 “안전하지만 불편한 인증”에 머물러야 할까요?
지금도 많은 금융기관은 ‘비밀번호 + OTP’ 혹은 ‘비밀번호 + 인증서’ 방식에 의존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점점 더 교묘해지는 피싱과 계정 탈취 수법을 고려할 때, 더 이상 구식 인증 방식에 의존할 수는 없습니다.
“패스워드 없는 세상”은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의지의 문제입니다. 일본은 보안 사고를 계기로 신속하게 움직였고, 지금은 눈에 보이는 성과를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한국은 언제까지 사용자에게 불편을 강요하면서, 보안을 지키고 있다고 착각하는 구조에 머무를 것인지 되묻고 싶습니다.
이제는 질문을 던져야 할 시점입니다.
“한국의 디지털 보안은 앞으로 10년 동안도 여전히 비밀번호에 기대야 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