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곰의 두번째 HHKB(해피해킹키보드) – HHKB Professional Hybrid Type-S 사용기

푸른곰은 인생 두번째 해피해킹키보드를 씁니다.

16년만의 해피해킹 키보드 오다

HHKB Professional HYBRID Type-S 상자

제 블로그 초창기에 ‘키보드의 롤스로이스’라고 소개한 키보드가 있습니다. 바로 PFU사의 Happy Hacking Keyboard(HHKB) Professional 2 인데요. 그 때가 대략 06년이었는데 지금도 멀쩡히 동작합니다. 그야말로 Made in Japan의 퀄리티를 세월을 걸쳐 증명해준 물건이라 할 수 있습니다. 지금도 키 하나 안 먹는 거나 뻑뻑한게 없고 아무런 이상이 없으니 말이죠. 이 키보드를 처음 쓸 때는 당연히 키보드라는 물건은 USB든 뭐로든 컴퓨터에 선으로 연결해서 쓰는게 당연한 거였습니다. 하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노트북이 점점 세를 확장하면서, 그리고 저 자신도 노트북을 쓰게 되면서 마이크로 USB도 아니고 미니 USB로 연결해야 하는 이 키보드가 거추장스럽게 여겨졌습니다.

무려 16년간 활약해준 HHKB Professional 2

그러다보니 사용빈도가 많이 줄어든 것이 사실입니다. 노트북을 외장 모니터에 연결하거나 노트북 스탠드에 올려놓고 사용하게 된 다음에도 로지텍의 MX Keys 같은 무선 키보드를 사용하는 빈도가 더 많았습니다. 특히 맥북프로 2018에서 USB-A 포트가 전멸하고 나서는 연결하기가 한층 더 까다로워졌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한동안 약간 경원시한 감이 있습니다. 그때마다 저는 생각했죠. “아, 해피해킹 키보드를 무선으로 쓸 수는 없는걸까?”라고 말이죠. 그리고 세월이 흘러 2019년 PFU가 그런 물건을 내놨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무려 무선과 유선 겸용 플래그십 제품을 말이죠.

하지만 세상사 일이 맘대로 풀리지 않았습니다. 우선 물건을 구하는 것이 쉬운일이 아니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정식으로 판매되는 물건이 아니다보니 결국 직구밖에 방법이 없었습니다만, 직구를 하더라도 키보드 가격만 무려 3만 2천엔에서 제가 살때 3만 5천엔, 그리고 지금은 3만 6천엔에 달합니다. 수입 제반 비용까지 하자니 머리가 아파오더군요. 그래서 ‘보류 상태’로 두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지난 4월 말에 데스크톱 컴퓨터를 06년 아이맥 이후로 16년만에 새로 구입했습니다. 노트북에 질이 좋건 나쁘건 키보드가 따라나오는 반면 데스크톱은 어떻게서든 키보드를 하나 적당한걸 꽂아야 했기 때문에 이런 저런 키보드를 시험해보게 되고 거기에는 당연한 말이지만 해피해킹 프로 2도 포함되었지요. 물론 빛이 번쩍번쩍 나는 게이밍 키보드나 여지껏 잘 써온 로지텍 MX Keys도 시험을 해봤습니다. 해피해킹 프로 2나 여타 키보드가 모자란건 아니지만 왠지… 무언가가 아쉬웠습니다. 그래서 좀 고민을 하다가 해피해킹의 최신 버전인 HHKB Professional HYBRID Type-S의 유각 흑색 버전(PD-KB800BS)을 본격적으로 알아보기 시작했고 ‘기왕 컴퓨터도 새로 한김에’ 질렀습니다.

결국 3만 5천 200엔을 주고 구입. 며칠 뒤 가격이 3만 6천엔으로 인상됨

컴퓨터를 사면서 Bose의 스피커나 144Hz까지 나오는 4K 모니터라던가 허먼밀러 에어론 의자라던가 여러가지를 정비했습니다. 그야말로 앉아서 뭔가 거창한 거라도 할 것마냥 준비 하나는 철저하게 했습니다. 그 일환으로 큰맘 먹고 지른 것이지요. 그렇게 준비한 키보드가 도착했습니다.

세월을 타지 않는 키보드, 그러나 세월에 따라 착실히 진화한 키보드

상자에서 꺼낸 HHKB Professional HYBRID Type-S

해피해킹키보드의 최대 장점은 세월을 타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마 제 옛날 해피해킹 키보드를 꺼내서 “이거 구입한지 16년 된것입니다” 라고 하면 그다지 믿는 사람이 없을지 모릅니다. 그 정도로 세월의 풍파를 타지 않고 디자인 역시 세월을 타지 않습니다. 그런 해피해킹 키보드이지만 이번에 구입한 HHKB Professional HYBRID Type-S는 2019년에 발매되면서 당시 필요한 기술을 모두 총동원한 제품입니다. 우선 무엇보다 가장 기쁜 것은 블루투스를 통한 무선을 지원한다는 점입니다. 그것도 1대만이 아닙니다. 동시에 4대까지 기억했다가 키를 눌러 왔다 갔다 할 수가 있어 여러 컴퓨터를 놓고 사용하는 사람이라면 필경 편리하게 다가올 것입니다. 게다가 USB를 통해서 유선 키보드로도 사용할 수 있습니다. USB 단자는 기존의 해피해킹키보드 프로2가 마이크로도 아닌 미니 USB였던 반면에 이번에는 USB-C라서 아마 당분간은 단자를 연결하는데 전혀 불편함이 없을 것입니다(그래서인지 본 제품에는 유선 케이블이 없습니다. 유선으로 사용하시고자 하는 분은 USB-C 케이블을 하나 구입해 두실 것을 권합니다).

디자인은 거의 그대로 답습하면서 인터페이스부가 충실해졌습니다만, 한편으로는 기능만 나아진 것이 아닙니다. 키감은 예전에 비해 가벼워진 느낌이고 두드리는 소리는 좀 더 조용해졌습니다. Type-S 모델이 처음 나왔을때 걸었던 ‘Speed’와 ‘Silent’를 양립하는 그러한 기능을 갖춘 유무선 겸용 플래그십 모델, 그래서 기대가 컸었습니다. 예전에는 무선을 고르거나 Type-S를 고르거나 둘 중 하나만 해야 했거든요. 이제는 둘 다 한 기종에 잡아넣었습니다. 덕분에 입력하면서 신나게 자판을 두드렸을때 훨씬 적은 힘을 들여서 훨씬 조용한 소리로 입력이 가능합니다. 조용하게 입력할 수 있을 뿐 아니라 고속으로 입력하기에도 편하게 조절되었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저는 이 키보드를 주로 USB-C 케이블을 연결한 유선 키보드로써 사용하고 있습니다만, 무선 블루투스를 이용해서 사용할 수도 있습니다. 제가 한 때 해피해킹 키보드를 맥북 프로 2010 15″에 연결하거나 심지어는 나중에 USB-A 단자 조차 없어서 변환 잭을 써야 했던 맥북 프로 2018 15″에 연결했을때 “아, 무선 해피해킹 키보드는 나오지 않는걸까?” 했던 고민이 싸악 해결되어 너무 마음이 후련합니다. 저는 한쪽에 윈도우 컴퓨터 한쪽에 맥을 놓고 있고 왔다 갔다 하며 작업하기 때문에 이러한 멀티 디바이스 기능이 있는 것은 매우 유용합니다. 그 기능 때문에 로지텍 MX 시리즈를 사용했을 정도니까요. 다만 (곧 발매될 MX Mechanical이 아닌)MX Keys는 펜타그래프식 멤브레인 키보드라 세게 열심히 두드리다보면 책상을 두드리는 듯한 느낌을 받을 때가 있어서, 정확하고 키감도 나쁘지 않지만 손가락에 부담이 올 때가 많았습니다. 이제 그 문제에서 해소되어 정말로 기쁘게 생각합니다 . 저는 이번에도 흑색 각인을 구입했습니다. 승화 방식의 인쇄와 PBT 재질의 키는 아마 오랜시간 동안 제품의 아름다움을 간직하도록 도와줄 것으로 기대합니다.

이 키보드를 알아보시거나 구입하시면서 제일 기대하는 점은 사실 이러한 주변적인 얘기가 아니라 바로 키감이라고 생각하실 것입니다. 훨씬 가벼워진 키감과 훨씬 조용한 타건음, 그러나 확실히 눌리는 감촉이 있고 확실히 눌리는 소리가 있습니다. 그래서 키를 두드리는 것이 즐겁습니다. 무언가를 쓰고 싶다. 무언가를 두드리고 싶어진다. 라고 생각되는 키보드입니다.

물론 해피해킹 키보드의 희안한(?) 키 배치는 여러모로 적응이 필요합니다. 제가 처음으로 해피해킹 키보드를 샀을 때에 비한다면 이제는 같은 스위치를 사용하는 토프레의 ‘일반적인’ 레이아웃 키보드도 판매가 되는 시대가 되었습니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가 해피해킹을 선호하는 이유는 멀티플랫폼에 있습니다. 해피해킹 키보드는 앞서도 말씀 드렸다시피 블루투스 4대에 USB 1대, 계 5대를 연결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장치의 플랫폼은 제각각이어도 상관이 없습니다. 윈도우여도 맥이어도, 모바일 기기여도 상관이 없다는 말씀입니다. 반면에 토프레의 키보드는 윈도우용/맥용이 확실히 나뉘어 있습니다. 물론 토프레 제품이 좀 더 세부적으로 옵션이 나뉘어지고 가변 액추에이션 포인트를 지원하기도 합니다만 다시 말씀드리지만 이 키보드들은 한 플랫폼에 맞춰져 나왔다고 해도 과언은 아닙니다. 물론 어거지로 사용하면 사용 못할 것은 없지만 플랫폼은 달라도 키보드는 하나, 이것이 해피해킹 키보드가 가진 미덕이라고 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키맵 변경 및 업데이트 유틸리티

해피해킹 키보드를 유선으로 연결하고 전용 유틸리티를 실행하면 펌웨어 업그레이드와 키맵 변경이 가능합니다. 필요에 따라서 원하는 키의 위치를 바꿀 수도 있다는 얘기가 되겠습니다. 기본적으로 해피해킹 키보드에 전통적으로 따라왔던 DIP 스위치와 함께 이 기능을 이용하면 키보드의 버튼을 자기에게 제일 잘 맞는 형태로 설정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설정한 키맵은 하드웨어에 기록되기 때문에 장비를 바꾸더라도 그대로 이용할 수 있습니다. 이 기능을 이용하면 어쩌면 해피해킹 키보드를 사용하는 것이 조금 덜 괴로울지도(?) 모릅니다.

모두에게 맞지 않기에 맞는 이에게는 더 없이 잘 맞는, 고고의 유전자를 이어받은 진정한 최고봉의 키보드

해피해킹키보드는 여러모로 사람을 많이 가리는 키보드입니다. 요즘은 정전무용량 방식의 키보드 경쟁자도 많이 늘었고, 또 광 센서 방식의 기계식 키보드도 속속들이 선보이고 있는 실정입니다. 희안한 배열을 채택하고 비싸며, 구하기도 힘든 해피해킹 키보드를 굳이 사용해야 할 이유가 있어? 라고 물어보신다면 저 또한 사실 할 말이 궁하긴 합니다. 저 역시 16년간 쓰면서 익숙해졌기 때문에 선택한 감이 없잖아 있으니까요. 하지만 손에 익어서 자신의 키보드가 되었을 때, 대체하기 어려운 소중한 동반자가 되어 있을 겁니다. 다른 사람이 키보드를 만지려고 할 때, 당황하는 표정을 보면서 히죽거리게 되고 말이죠.

アメリカ西部のカウボーイたちは、馬が死ぬと馬はそこに残していくが、どんなに砂漠を歩こうとも、鞍は自分で担いで往く。
馬は消耗品であり、鞍は自分の体に馴染んだインタフェースだからだ。
いまやパソコンは消耗品であり、キーボードは大切な、生涯使えるインタフェースであることを忘れてはいけない。

東京大学 名誉教授 和田英一

미국 서부의 카우보이들은 말이 죽어도 말은 그 자리에 놓고 떠나지만 얼마만큼 사막을 건너더라도 안장만큼은 짊어매고 간다. 말은 소모품이지만 안장은 자신의 몸이 익숙해진 인터페이스이기 때문이다. 오늘 날, 컴퓨터는 소모품이지만 키보드는 소중한, 일생 사용할 수 있는 인터페이스임을 잊어서는 안된다.

도쿄대학 명예교수 와다 에이이치

ps. 3만 5천엔이나 하는 키보드에 USB-C 케이블을 안주는 건 무슨 심보일까 생각해봅니다. 사시고자 하는 분 중 유선으로 사용하시고자 하는 분은 반드시 USB-C 케이블을 별도로 구매하셔야 한다는 점을 알려드리고 싶습니다.


Posted

in

by

Tag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