굴락에서 편지

애플 세계의 2등 주민이 되신 것을 환영합니다.

2016년 정초, 맥이 부팅이 안되면서 이 모든 것은 시작됐습니다. OS를 업데이트하다가 모든게 꼬였죠. 친절한 애플케어 상담원들도 별 도움이 되지 않은 이 문제는 결국 저로써는 데이터를 보전해야한다는 대명제 탓에 포맷을 할 수 없는 치명적인 핸디캡을 가지고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맥을 다른 맥에 연결하거나 맥에 외장하드를 연결해서 외장하드에 OS를 설치하고 데이터를 인출한다는 장대한(?) 계획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사실 맥을 금방 사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마음대로 되지 않았습니다. 애플의 맥북프로는 리프레시를 앞두고 있었고(지금 생각해보면 그 때 살걸 그랬습니다. 허허), 2006년에 코어 듀오 아이맥과 맥북을 사고 반년뒤에 코어 2 듀오 아이맥/맥북프로를 보면서 뒷통수를 맞은 뼈아픈 기억이 저를 막았습니다.

저는 맥에서 윈도우를 돌리지 않습니다. 맥에서 할 일은 맥에서 윈도우에서 할 일은 윈도우 PC에서 하자 주의였죠. 다행히 하느님이 보우하사 어지간한 일은 모바일로도 가능합니다. 윈도우 PC가 나올 일은 정말 헤비한 일 뿐이었고 가끔 이사한 동생의 짐이 남아 있던 옆방에 가서 컴퓨터를 켜고 일을 하면 되었으니 별 문제 없었습니다.

맥을 10년 넘게 쓰면서 맥으로 거의 모든 삶을 영위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에서는 맥하나 가지고는 살 수가 없고, 그것이 여러분들에게 패럴랠스를 할까, VMware를 할까 아니면 부트 캠프를 깔까? 이 개자식들은 왜 OS가 업데이트 될 때마다 버전을 올려서 돈을 세금처럼 뜯을까. 하는 고민을 하게 만들죠. 이해합니다.

그래서 차라리 맥이 안되는 동안 제대로 된 윈도우 PC를 사자, 라고 결론을 내렸고 ‘맥이 아니라면 싱크패드를 사겠다’라는 근거 없는 편견으로 그냥 싱크패드를 샀습니다. 옵션은 풀로 올렸고 당분간은 문제가 없을 것 같았습니다. 16GB RAM에 1TB SSD니까요. 그래픽이 좀 부실하지만 어차피 게임을 하는 것도 아니고 말이죠. 그래픽 편집이나 사진 편집은 맥으로 할 참…. 이었습니다.

하지만 인생사 맘대로 안되더군요. 여기에 돈 저기에 돈 들어가고… 아이폰 나오고 아이패드 나오고 그러다보니 하루 이틀 밀려나더라고요.

저는 윈도우에서 삶을 굴락에서 삶, 내지는 왼쪽 핸들 차를 평생 몰다가 왼쪽 차선으로 달리는 나라에 온걸로 평가합니다. 정말 죽겠습니다. 요즘 기종이라 마우스 스크롤 방향을 맥과 똑같이 한다거나 하는 기능은 있어서 다행입니다만… 맥에서 당연하게 되던 것들과 훌륭했던 앱들을 사용하지 못하는건 정말 고문이었습니다. 지금도 Things를 사용하고 싶어 좀이 쑤십니다.

사실은 지난달 말에서 이달 초에 맥북(12”)을 살뻔한 적이 있었습니다. 이 역시 사정이 있어서 미뤄졌습니다만. 그만큼 절실했던 거죠.

빠른 시간 안에 굴락에서 나가길 바랍니다. 그나마 윈도우 10이 되면서 조금은 나아진 기분입니다. 굳이 비유하자면 편의 시설을 갖춘 신식 교도소인 셈이죠.

아이폰과 아이패드와 제대로 연계 되지 않는 1년 10개월간 저는 애플 세계의 2등 주민이 되고 있었습니다. 아아 슬퍼라.

1 thought on “굴락에서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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