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Pad – a Computer which is More Personal

구글에서 젤리빈 4.2를 내놓으면서 유저 변환 모드를 내놓았다. 요는 로그인 로그아웃을 함으로써 한 태블릿을 여러 사용자가 공유한다. 라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음, 이거 괜찮겠다. 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좀 의외의 일이 생겼다. 따끈따끈한 새 iPad 두 대를 빌리게 된 것이다. 즉 다시 말해서 iPad를 3대를 쓰게 된 셈이다.

음, 일단 두번째의 아이패드를 열어서 전원을 넣고 세팅하는건 어려운일이 아니다. 클라우드 시대니까. 앱은 간단하게 다운로드 할 수 있고… 메일이나 주소록, 북마크 등은 너무나도 간단하게 복원된다. 음 그래 뭐 됐네. 그러면서 몇가지 앱을 깔고 셋팅을 해서 익숙해지려고 한다. 그런데 이거 난감한건 애착이 가질 않는다는 것이다. 왜냐면 내가 몇개월, 아니 백업을 해서 옮겨쓰던 기간을 포함하면 근 2년을 쓰던 아이패드와의 이질감에 도저히 익숙해지질 않는 것이다. 수십, 수백개의 앱마다 내가 익숙해지도록 설정을 해놓았으니 말이다. 세번째가 되니깐 도저히 이거 쓸맛이 나지 않는다. 또 이걸  ‘내’ 아이패드는 단순히 말해서 세팅이나 북마크, 주소록 등이 중요한 게 아니다. 내 모든 컨텐츠와 커스터마이제이션 등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아이팟이 유행하던 시기에 미국에서는 이런 질문이 유행하곤 했다 “What’s in your iPod?(당신의 아이팟엔 무엇이 들어 있나요)” 다시 말해 아이팟에는 그 사람의 음악 라이브러리가 전부 들어가고 그의 음악 취향, 더불어 그의 인생관이 들어난다는 것을 사람들은 간파했기 때문이다. 시대는 바뀌어 What’s in your iPhone이 되었고, What’s in your iPad가 되었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레티나 맥북프로를 빌려서 사용하면서 한달동안 아무런 저항감 없이 앱과 어플리케이션을 깔아서 쓰고 주된 일을 한 뒤 깔끔하게 지워서 반환을 했다. 그런데 지금은 분명 멋진 아이패드를 두개나 두고도 개인적인 용도로 사용할때는 내 아이패드를 사용한다. 아이패드는 언제나 들고 다닐 수 있고 나만의 컨텐츠와 설정이 되어 있다. 나를 알 수 있는 내용이 가득한 것이다. 내 컴퓨터를 만지게 하는 것보다도 그런 까닭에 내 아이패드를 넘겨 주는 것이 더 예민해진다. 그러니 일시적으로 석대가 되었을때 이게 얼마나 난감한지, 그리고 왜 이질감을 느끼는지, 그리고 정이 붙지 않는지 알 수 있으리라.

한 대의 태블릿을 나눠서 쓰는 것은 멋진 아이디어일지도 모르겠으나, 태블릿은 퍼스널 컴퓨터보다도 더 퍼스널한 기기이다. 내 데이터가 전부 저장되어 있으니 말이다. 깔끔하게 나누는것은 좋지만, 음, 굳이 말하자면 지갑과도 같은 것이다. 지갑에 칸막이를 나눠놓고, 이 칸은 내 칸, 저 칸은 네 칸 해놓고 서로 상관하지 말고 거실 한가운데 놓고 사이좋게 사용하자 할 수 있는가? 나는 그 아이디어가 멋지다라는 생각을 철회해야 했다. 그 아이디어는 매우 기계적이고 정이 메마른, 애착을 찾아볼 수 없는 생각이다. 물론 태블릿을 1인 당 한 대 씩 살 수 있을 때의 얘기지만.

오늘도 우선은 ‘나의’ 아이패드를 켠다. 나는 태블릿PC의 미래가 상당히 전도유망하다고 본다. 빌 게이츠의 1가정의 1PC를 너머서 태블릿 시대로 말미암아 1인에게 1PC가 올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정말 그렇다면 미래상도 참 많이 바뀌겠지?

RSS 구독자분들께

RSS 구독자 여러분들께, 우선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 내가 구글 리더에서 통계를 봤을때 구글리더에서만 250분가까이 보고 계신다는 사실에 내가 다 놀랐다는 것을 알려드린다, 우선. 일단 워드프레스에서는 다른 플랫폼과는 달리 전 포스트가 피드로 공개된다. 따라서 여러분은 사용하시는 구글 리더를 지원하는 소프트웨어로 편안하게 전 포스트를 구독하실 수 있다. 반면 구글 같은 online feed aggregator의 단점이 있는데 피드를 수집하고 나면 변경된 내용을 반영하지 않는다는 점이 있다. 그런데 문제는 내가 간혹가다가 포스트를 발행하고 나서 부끄럽지만 가끔 실수를 한 점을 바로잡거나 레이아웃을 고치기도 한다는 점이다.

많은 국내 블로그들은 전체공개를 하지 않는다. 그래서 이런 문제가 별로 발생하지 않는다. 하지만 글을 읽기 위해서 방문을 하는 수고가 필요하다. 플립보드 같은 어플리케이션으로 읽을때도 수고가 들어간다. 그것은 사용하는 내가 잘 안다. 솔직히 워드프레스에서 일부공개로 바꿀 수 있는지 조차 잘 모르겠다. 워낙 플러그인이 강력하므로 어떻게 바꿀 수 있을런지도… 모르겠으나, 아무튼 그럴 생각은 현 시점에서는 없다.

솔직히 방문객을 늘리겠다, 라는 심보일 수도 있으나 만약 글이 맘에 드신다면 가끔은 원글을 눌러서 방문을 해주십사 하는 바람이 있다. 특히 오자나 탈자 혹은 이상한 부분이 있다면 더더욱. 그리고 여러분의 코멘트는 언제나 환영하고 있다. 트위터로도 환영하고 있고 댓글창으로도 환영한다. 가끔 트위터에서 구독하고 있다는 분을 뵐 때마다, 항상 반갑고 감사하다는 마음을 떨칠길이 없다. 여러분이 정말 힘이 되는 존재이고 감사한 분들이다. 다시 한번 감사의 말씀을 전한다.

페이스북의 안드로이드 포스터를 보고

페이스북의 사내에 안드로이드로 전환을 강조하는 포스터가 붙었단다. 음 확실히 숫적으로 안드로이드의 출하댓수를 이길 수 없는것이 사실이니 안드로이드에 포커스를 하란 얘기를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전적이 있다. 페이스북의 리더십은 계속 모바일에 전력을 다하겠다고 말하고 있고 셰릴 샌드버그는 전의 닛케이 인터뷰에서 마크 저커버그가 거의 모바일에 매달리고 있다고 하나 실제로 모바일 경험은 거의 답보 상태이며 가장 커다란 변화가 iOS의 네이티브 앱발표이다(‘그’ 안드로이드의 경우 뭐 말할 것도 없다, 아직 여전히 HTML5기반이다). 그러나 버그가 있어서 지금은 포스트를 올린 시간을 볼 수 없는 환타스틱한 상태에 있다.

페이스북의 모바일 광고는 소셜 방식의 페이지 추천 광고로 이뤄지고 있는데 이 광고는 매우 효과적이라고 생각되면서도(한 두개는 실제로 눌러보았다), 한편으로는 두가지 생각이 든다. 첫째는 페이지를 운영하는 주체가 페이지를 어떻게 운영하느냐에 따라 광고 효과가 크게 차이가 날것이다. 라는 점. 물론 단순히 제품 광고만 해도 안되겠지만 단순히 잡담을 떠는 것으로는 커다란 효과를 얻기 어려울것이다. 둘째로 이게 큰데 페이스북 광고의 효과를 직접, 그리고 즉시 파악하기 쉽지 않다는 것이다. 가령 내가 어떤 친구가 사용하는 어떤 화장품의 페이지를 좋아요해서 페이지를 따라한다 하더라도 그것이 즉시적인 구매로 이뤄지기 까지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가령 그 페이지를 따라 보고 있다가 특가 세일을 보고 구입할지 모른다) 기존의 측정 방식으로는 측정하기 어려운 점이 있다.

이 점을 어떻게 광고주에게 어필하느냐가 페이스북에게 난점이 아닌가 라고 생각한다. 뭐. 대개 내용은 전에 소개한 셰릴버그 인터뷰에서 자신들도 고민하고 있다고 인정한 사실이지만. 아무튼.

모바일 경험의 향상, 그리고 광고의 정착. 이 두가지를 어떻게서든 잡아야만 하는 과제가 페이스북에는 있다. 뭐 그런 면에서 안드로이드를 잡으라는 메시지에는 환영이다. 솔직히 개선의 여지가 있다. 물론 아이폰 앱도 잘 좀 부탁한다. 댁들한테 무시당할정도로 적지는 않다;

애가 애를 가르치는 한국

셧다운제가 논란이 된 적이 있다. 비단 게임 말고도 인터넷이나, 텔레비전에서 유해 미디어에 대해서 말이 많다. 우리나라에는 ‘청소년에게 유해하니까’라는 이유로 국가가 제한하는 것이 참 많다. 그리고 정치인들은 대체적으로 사회적인 분위기 내진 ‘부모’인 유권자의 환심을 사기 위해서 그 규제를 만들거나 규제를 한다. 나라가 규제를 만들어서 제도로 막아주면 우리 아이가 안전해질 것이다. 보호될 것이다. 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적극적으로 제창, 찬성 내지는 묵시하는 것이리라.

나는 이것을 두고 ‘애들의 발상’이라고 생각한다. 바꿔 말해서 ‘애들의 장난’이며, ‘애가 애를 가르치려 드는 것’ 이라고 본다. ‘어른’이란 무엇인가, 스스로 생각하고 스스로 행동에 책임을 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럼 자기 자식에 대해서 제대로 된 부모라면, 가령 셧다운제에 대해서 예를 들어보자, 아이가 열두시 넘어서 텔레비전을 보거나 게임을 하지 않도록 지시하는 것이 정상 아닌가? 만약 학교에 돌아와서 열두시 넘어서 밖에 게임을 할 시간이 없다면, 그것에 의문을 품어야 하는 것이 정상 아닌가?

그것을 두고 열두시 넘어 게임을 하니 국가 권력에 의지해 본래는 자기가 이야기하고 상담해서 그만두게 조절해야할 게임을 강제로 멈추게 한다? 그것은 바꾸어 말하면 국가 권력이나 제도, 규제에 의지 하지 않고서는 부모 노릇을 못하는, 미숙한 인간. 돌려말하면 자기 자신의 책임하나, 그것도 부모라는 중대한 임무하나 스스로 생각하고 책임지고 달성하지 못하는, 다시 말해 국가라는 부모의 훈육에 의존하는 ‘애’라는 것 아닌가? 일어나서는 굵은 수염을 밀고 와이셔츠나 드레스셔츠를 입고 타이를 매고 수트를 입고 구두를 신고 출근은 하지만 사실은 그건 단지 나이가 먹어서 떠밀려서일 뿐, 결국 먹여살리기 바쁘다 이런저런 핑계를 대지만 결국 애 돌보기에 있어서는 어린애일 뿐이다. 바쁘다고 하지만 두 부모 중 한명이 진지하게 아이를 만나서 잠시라도 벌갈아 얘기할 시간을 만들고자 한다면 불가능할 이유가 없다. 핑계에 다름없다. 이유가 어찌됐던 애가 애를 가르치는것이다.

미 대통령 영부인 미셸 오바마는 자신의 자녀에게 혹독할 정도로 컴퓨터와 텔레비전 사용시간을 제한하기로 유명하다. 휴대폰은 가지고 있지만, 숙제할때를 제외하고는 주중에는 숙제이외에는 텔레비전과 컴퓨터를 사용할 수도 없기로 유명하다. 그것에 대해서는 대중에서 혹독하다고 말이 많지만. 정도에 따라서 가감은 다르지만 그러한 제한은 어느 미국 가정에도 있다. 그것은 아이들과의 상의에 따라 이뤄지며 심지어 (편견을 심기는 싫지만)아들 둘을 훌륭하게 진학시킨 한국의 우리 이모댁도 그러했다. 우리 사촌은 가끔 좋은일을 해서 컴퓨터 시간을 더 받으면 좋아하곤 했다. 좋은 부모라면 국적을 떠나 무릇 그러해야 한다는 것이다. 컴퓨터 사용시간을 정하거나, 사용목적을 정하거나. 그게 교육, 가정교육이라는 것이다. 어느 부모도 우리나라와 같이 단순히 아이가 중독되거나 악영향을 받을 것이다 같은 문제로 텔레비전의 문제를, 인터넷의 문제를, 게임의 문제를, 애니메이션이나 만화의 문제를 정부에게 막아달라고 청원하거나 원망하지 않는다. 만약 그것을 부모가 조절하려는 노력을 하지 않은채 국가나 제도에만 기대려는 의도를 공개적으로 드러내놓는다면 오히려 그 사람이 그 커뮤니티에서 아동 교육에 방임적인(neglected) 부모로 멸시당해야 할 것이다.

아동청소년보호법에서 문제가 되고 있는 컨텐츠에 대해서도 말이 많은데 그것도 비슷한 맥락이라고 생각한다. 아이가 자신도 모르는 컨텐츠를 접하는게 두려운가? 아이가 자신의 통제가 되지 않으니 일단 덮어놓고 나빠보이는 컨텐츠를 규제해서 보호하고 싶은가? 왜 아이를 통제하려고 드는가? 아이를 동등하게 보고, 아이와 접하는 시간을 늘리고 아이와 상담을 해서 어떤 컨텐츠를 접하는지를 물어보고 어떤 컨텐츠를 볼지와 안볼지를 가르쳐주어야 하는 것이 ‘어른’인 당신이 당신의 주관을 가지고 해야할 일이다. 그럼 자연스럽게 ‘어른이 볼 컨텐츠’와 ‘청소년이 볼 컨텐츠’는 걸러진다. 타인인 국가가 관여해서 이래라 저래라 할 것이 아니라. 당신은 아이가 아니다. 국가로부터 독립해서 출가하라.

추기. 물론 아동청소년보호법 문제는 단순히 청소년만의 유해물 노출 악영향을 염두에 두고 있지 않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가령 성인 또한 그 대상이 될 수 있다. 그러나 그 광범위성에 이르기까지 가장 커다란 지지를 얻게 된 계기에 ‘아동 청소년에 대한 악영향’과 ‘이를 위한 규제’가 있기에 적어둠을 밝혀둔다. 또한 이 글 자체 또한 어른을 스스로 생각하고 행동에 책임을 지는 주체로 두고 있으므로 상식적인 범주에서 잠재적인 범죄인까지 고려할 가치는 없다고 생각한다. 가령 상식적인 성인은 성인물을 보거나 폭력물을 보더라도 모방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걸 물고 넘어지면 논쟁은 끝이 없다.

아이가 살기 좋은 나라가 미래가 있는 나라다.

정치 얘기는 잘 하지 않는다. 모 후보가 출산장려를 위해 3 명째 자녀에게 대학 등록금을 면제해주겠다 라는 공약을 발표했다. 평가는 차치하고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아이가 살기 좋은 나라가 미래가 있는 나라고, 결국 아이가 살기 좋아야 출산률이 높아진다고. 우리나라의 아이들은 세계에서 가장 많이 공부하고 사망원인의 1위는 자살이며 운동과 여가 시간은 가장 적다. 여가를 보내는 방법은 텔레비전이나 인터넷이 가장 많고… 부모에게서 자립해서 나갈 때 즈음이면 이제 ‘취업빙하기’가 기다리고 있다. 치열하게 전투하지 않으면 얼어 죽던가 물어뜯겨 죽던가 굶어 죽는다. 이 놈의 나라는 실패해도 안전망이라는게 없다. 숨을 쉴 새가 없는 것이다. 묻고 싶다, 이게 사는 건가? 당신들은 그걸 아니 애들을 낳지 않는것은 아닌가? 아이들은 그것을 아니까 애들을 낳지 않으려 하지 않을까? 꼴랑 카드하나 만들어주고 분유값, 어린이집 보육료 몇푼 지원해주면서(물론, 아쉬운 살림에는 커다란 도움이다, 인정한다), 전혀 마음에 없는 아이를 만들라는 동기는 되지 못한다.

아이들이 부모의 품안에 있을때 놀고, 아이들이 부모의 주머니의 돈을 쓸 때 걱정없이 쓰고(혹자는 현실감각을 키워줘야 한다고 하지만 ‘애’가 돈에 쩌는것이 바람직한가 의문이다), 취미를 파고 관심거리를 파고 나갈 수 있어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사실 그래야 또 고등교육의 진로를 알아나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빌 게이츠나 스티브 잡스 모두 어릴 때 취미로 알게된 컴퓨터와 전자공학이 각각 인생의 길을 바꾸게 되었듯이-설령 그것이 우리가 그렇게 신처럼 떠받드는 대학과는 전혀 관련이 없었더라도- 말이다. 그게 부모가 해줘야 할 일이다. 수백 수천만원을 쏟아부어서 영어를 가르치고 명문대를 위해 밤늦게까지 학원에 붙들고, 특목고나 국제고를 위해 어릴때부터 잡아 가두는게 아니라.

그렇다. 나는 이상주의자다. 나는 이상주의자라는 말에 커다란 함의를 느끼지 않는다. 당신이 설령 경멸에 찬 말로 그렇게 말한다 하더라도. 나는 현실이 결여되어 있다라고 자괴하지 않고 그냥 나는 나만의 꿈을 꿀 뿐이다. 시드니 오페라 하우스를 만든 건축가 이외룬 우촌은 이 기괴한 건물을 설계하고 만드는데 드는 난이도와 이로 인해 들어가는 비용에 불평하는 이들에게 늘 심드렁했다. 일설에 따르면 만드는건 당신들 몫이라고 떠넘겼다는 얘기도 있다. 그리고 만 14년에 걸친 최고의 난공사가 완성되었고 아시다시피 역사적인 랜드마크가 되었다. 나를 역사적인 건축가에 비견할 생각은 없으나 다만 꿈 꿀 뿐이다. 왜 모두가 한 걸음 씩 옮기면, 벽돌 한 장 씩 빼면 이뤄지는 이런 것이 이뤄지지 않는 것일까?

그것은 아마도 우리가 실제로는 그것을 꿈꾸지 않기 때문이 아닐까? 라는 생각을 해본다. 내심 어딘가에 우리 아이를 안하면, 남에게 뒤쳐지겠지. 라는 생각이 있으니까 그런거겠지. 결국 모두가 꿈꾸지 않기 때문이겠지. 라는 생각을 한다. 그렇다, 결국 그래서 나는 이상주의자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