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동의 디지털 격차를 염려하며

디지털 격차(digital divide)라는 말을 들어보셨는지요? 이따금 저는 얼마나 복에 겨운 환경에서 있는지 생각하게 됩니다. 최신의 프로세서가 달린 8G 메모리가 달린, 고해상도 디스플레이가 달린 랩탑은 무거운 Flash나 Javascript, AJAX 등도 무리없이 띄울 수 있고, 언제 어디서나 고해상도의 스마트폰을 들고 다니며 실시간으로 트위터와 페이스북, 이메일 메시지를 주고 받으며, 태블릿을 통해서 글을 읽고 웹을 서핑하고 남는 시간에는 게임을 하거나 여흥을 즐길 수도 있으니까요. 그런데, 이러기 위해서 지불하는 비용이 한달에 장난이 아니라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아이에게 아이패드를 주고 아이폰을 주고 놀게 해준다 라던가, 아이들이 가장 갖고 싶은 선물로 아이패드나 아이팟 터치가 선정되었다는 미국 뉴스를 보면서, 갑자기 격차라는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동생에게 ‘삐삐’라는 단어를 아느냐고 물었습니다. 올해 막 대학에 들어간 동생은 삐삐라는 물건을 본적도 사용해본적도 없습니다. 당연히 알 리가 없습니다. 무선호출기의 약자다라고 이야기 해주어도 이걸 알리가 없습니다. 당연히 이걸 설명해 주기 위해서는 전화를 걸어서 삐삐 소리가 들리면 번호를 누르고 끊으면 그 번호가 호출기에 뜬다라는 절차를 거쳐야 합니다. 사실 그것은 비단 저의 동생만에 국한된 것이 아닙니다. 제 또래만 하더라도 ‘직접’ 무선호출기를 체험해본 아이는 그닥 많지 않습니다. ‘어떤 물건이라더라’ 내지는 ‘쳐본적은 있다’ 라는 사람은 있어도 저처럼 초딩때 삐삐를 가지고 있었던 아이는 없었던게죠. 하지만 그건 전혀 문제가 될 리 없었습니다. 무선 호출기가 없어도 그건 전혀 문제가 될게 없었기 때문입니다. 

바꾸어 말해보겠습니다. 저는 인터넷을 1995년에 시작했습니다. 당시 인터넷 사용료로 아이네트기술에 지불했던 이용료(UNIX이용료+PPP이용료)가 59700원인가였습니다. 물론 전화료는 별도였죠. 해서 그걸로 트럼펫 윈속으로  UNIX 컨솔로 접속해서 PPP를 치고 넷스케이프로 인터넷을 했습니다. 당시 저는 초등학생이었습니다. 훗날 통계를 보니 당시 인터넷 가입자수는(즉, 대학, 연구원 이용자를 제외하고), 2만여명 남짓이었다고 합니다. 
해서, 이렇게 인터넷과 호출기가 저의 초등학생 시절에 있었다지만, 그것이 없었어도 아무런 지장이 없었습니다. 왜냐면 그것이 할 수 있는 일들이 너무나도 제한적이었기 때문입니다. 초등학생이 인터넷을 가지고 있었다 할지라도 당시에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생각보다 제한적이었고, 호출기를-그리고 훗날에는 PCS를 가지고 있었어도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부모님과 항시 연락이 잘 되는 정도였기 때문이죠. 
하지만 이제는 다릅니다. 인터넷을  검색해 할 수 있는 일이 너무 많지요? 그리고 그것을 연결하는 방법도, 장치도 너무 많습니다. 태블릿이나 휴대폰이나, 컴퓨터나….  정보력에서 우위를 점한 아이가 모든 것에서 우위를 점하게 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것은 학생 시절에도 마찬가지입니다. 학교 생활 중에 하다못해 검색을 해서 숙제를 하는 능력조차도 그렇고, 학창 시절을 졸업해 사회인이 되어서도 그 실력이 어디 달아나지 않기 때문이지요. 따라서, 학생 시절에 길러진 디지털에 대한 친화력과 적응력은 곧, 사회에서도 차이가 난다는 의미로 받아지게 됩니다. 그럼 아이패드 같은 태블릿, 아이폰 같은 스마트폰, 아이팟 터치 같은 다기능 디바이스, 통칭해 ‘스마트 디바이스’를 일찍 접해본 아이들과 늦게 접하게 된 아동들과의 일정의 격차가 발생하지 않을까요? 
물론, 아동심리학자들이나 교육학계는 지나치게 어린 시기부터 디지털 기기를 접하게 하는 것이 아동 교육에 그다지 바람직하지 않다고 합니다. 헌데, 이미 우리는 장난감의 변화를 많이 겪어왔습니다. 죽방울이 말하는 피아노가 되고 말하는 피아노가 아이패드용 아동 어플이 됐을 뿐이죠. 
사실 제가 걱정인 것은 그것입니다, 일찌감치 스마트 디바이스를 겪은 아이들과 겪지 않은 아이들간에 어떤 ‘격차’가 발생할 것인지에 대한 데이터가 아직까지는 없다는 것이지요. 물론 아직까지는 비용이 비싸기 때문에 부모님들께서도 ‘비싼 장난감’을 아이들에게 쥐어주실 부모님이 그닥 많지 않으실 것으로 생각합니다만, 아마 스마트 디바이스가 일반화되는 시기가 온다면 스마트디바이스를 쥐지 못한 아이와 쥔 아이들, 이 아이들의 격차, 그리고 이것을 어떻게 해소할 것이냐를 고민해야할 것으로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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