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막장 드라마’로 자자한 ‘아내의 유혹’을 재미있게 봤었다. 이 드라마의 막장성은 어느 토막을 잘라서 봐도 자극적이고 말초적이며 몰입감이 있기 때문에 초중반부를 다 안보고 다만 정씨 일가의 몰락부분만 흘깃흘깃 봤음에도 상당히 중독되게 만드는 점에서 증명된다. 과거형으로 맺는 이유는 이제는 안보기 때문이다. 덕분에 상당히 7시 언저리가 허전하긴 하지만 말이다. 권선징악적인 단순한 이야기를 하는데 있어서 이야기가 치밀하고 극적(스펙타클 혹은 다이내믹, 익스트림하다는 의미의 극적이 아니라 theatrical이나 dramatic에 가깝다)인 정교함으로 재미나 감동을 이끌어내지 못하는 까닭에(애당초 권선징악적인 해피엔드 스토리가 극적인 재미를 내는게 쉬운일이 아니지만) 말도 안될정도로 ‘막가는’ 행동을 일일 혹은 주간 단위로 해서 전환을 꾀하고 있고, 덕분에 말초적인 자극이 매일매일 일어나고 있다.
고추의 매운 맛이 실제로는 통증의 반응인 것처럼, 이 막장 드라마의 막가는 행동은 ‘고춧가루’ 아니 화학조미료에 비견되는지라, 적당히 쳐서 먹으면 그나마 먹을만해지지만 너무 쳐먹으면 맛과 건강에 안좋다. 솔직히 요번에 은재의 복수가 끝나고 나서 나오는 설정은 너무나도 억지스럽고 갑작스럽게 들쑥날쑥하는지라 자꾸 자꾸 보면 피곤하다. 엄마는 VOD나 재방송으로 자꾸자꾸보지만 나는 지나간것은 보지 않는다. 일단 이야기 자체가 갈등 내지는 위기의 떠오름과 폭로, 그리고 해소가 반복되는 것만 계속되는 단순한 구조라서 일단 어떻게 됐다더라만 알면 하나도 재미가 없기 때문이다. 물론 이야기를 미리알면(흔히 ‘스포일링’이라고 하는) 모든 극이 재미가 줄긴 하지만 전개의 돌발성은 그래도 그것은 극을 즐기는 하나의 재미이지 그게 전부이진 않다. 요컨데 정상적인 드라마는 드라마를 보는 것 자체만으로도 재미가 있고, 감동이 느껴지고, 위기에선 위기감이 들지만, 막장 드라마에선 워낙에 이 코드를 짧고 반복적으로 쓰기 때문에 이것도 어떻게 해결되겠지 싶어서 재미가 급속도로 증발해버린다. 이게 바로 ‘막장 피로’이다.
글쎄, 과연 이 현상이 나한테만 국한되는 것인지는 몰라도, 아마 다른 사람에게도 정도의 차이는 있어도 누구에게나 느낌은 왔을 것이다. 벌써부터 기사에서는 죽은 걸로 ‘처리된’ 진짜 민소희가 다시 등장한다고 뜨고 있다. 기사가 뜰 즈음부터 슬슬 융단을 깔고 있던데, 정말 이쯤되면 이 드라마가 5월까지 한다는게 암울할지경이다. 아무튼 이래서는 피로를 풀어주는게 아니라 쌓게한다. 뭐하러 열심히 보나 그냥 여덟시뉴스하기 전에 틀어서 둥둥거리기 전 몇분만 보면서 어떻게 이야기가 ‘막장’으로 치닿는지 보거나 아니면 그냥 본 사람이 요약하는걸 들으면 1분도 안되서 알 수 있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