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속 5센티미터 – 엔딩에 대한 생각

스포일러(내용 누출) 경고 : 아래 내용은 본편의 내용 혹은 결말을 예측할 수 있게 하는 내용이 있습니다. 주의해 주십시오.

어디에선가… 초속 5센티미터에 대한 평을 읽으면서, 피천득의 인연이라는 수필을 떠올리는 글을 본적이 있습니다. 그 짧지만 깊은 맛을 지니는 수필의 마지막 구절은 항상 많이들 인용되곤 하는 구절이지요. 많은 사람들이 연작단편 초속 5센티미터에 아쉽다, 라는 평을 하곤 합니다. 요컨데 아름다운 사랑이야기를 잔뜩 해놓은 초반에 비해서 끝이 마치 미완성처럼 공허하다는 것이죠. 특히 야마자키 마사요시의 ‘One more time, One more chance’를 트는 초속 5 센티미터는 찬반이 갈립니다. 씁쓸한 듯한 주인공의 표정만을 보여주고는 돌아서서 자신의 갈길을 가는 것으로 끝나는 엔딩 또한 그렇구요.


흔히 인용되는 피천득의 수필부분은 이 부분입니다. “그리워 하는데도 한 번 만나고는 못 만나게 되기도 하고, 일생을 못 잊으면서도 아니 만나고 살기도 한다.” 정말 절묘합니다. 극중 주인공의 처지를 말하는 듯하죠. 마치 이 수필을 보고 쓴게 아닐까? 싶을정도로(그럴리가 없을텐데) 저도 언젠가 한번 이 이야기에 대해서 설명하면서 피천득 선생님의 덕을 많이 봤습니다만…



‘인연’을 인용하는 것은 좋은데, 그런데 보통 사람들은 ‘인연’의 끝을 맺는 그 다음의 구절은 종종 잊는 듯 합니다. “아사코와 나는 세번 만났다. 세번째는 아니 만났어야 좋았을 것이다. 오는 주말에는 춘천에 갔다 오려 한다. 소양강 가을 경치가 아름다울 것이다.”



난 이 작품의 궁극적인 메시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서로 다른 속도와 거리, 그리고 퇴행적이고 복기적인 과거에서 탈피라고 생각합니다. 3부 초속 5 센티미터를 잘 보시면 아시겠지만서도, 주인공들은 점차 자신의 삶을 살게 되면서 점차 멀어져 나가죠. 주인공은 과거의 자신속의 아카리에 빠져서 겨우 겨우 살아갈 뿐이죠. 그저 살아갈 뿐입니다.


[#M_신카이 작품의 발견되는 이러한 공통점|닫기|메시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서로 다른 속도와 거리, 공간이라는 점과 주인공들의 퇴행적이고 복기적인 과거에서 탈피는 신카이 마코토의 장편 작품의 공통된 하나의 흐름입니다. 요컨데 수광년을 넘게 떠나보낸 여자친구를 찾기 위해서 고뇌하고 방황하다 결국은 우주군에 입대해 그녀와 좀더 가까이 지내고자 했던 ‘별의 목소리’의 노보루나, ‘구름의 저편 약속의 장소’에서 알수없는 곳으로 사라져버린 여자주인공을 잊고, 그 매개체인 탑을 잊고자 본토 최북단인 아오모리에서 도쿄까지 전학을 와서 혼자서 근근히 살아가는 주인공이 다시 자신의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 노력하는 점등을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 2008. 11. 3. _M#]

주인공은 아마도 그 교차로에서 지나친 그 여자는 아카리일 것이다 라고 믿었을 것입니다. “지금, 여기서 돌아보면 분명, 그녀도 돌아볼 것이라고, 그렇게 생각했다.” 라는 대사 처럼요. 그 대사와 함께 과거 시점으로 돌아가죠. 그리고 과거의 이야기가 한껏 나왔을 무렵. 다시 그들은 극적으로 엇갈리는 장면으로 돌아가죠. 그리고 열차는 길게 지나가고 주인공은 씁쓸하게 웃으면서 돌아서죠.



저 또한 그 둘이 만났다면 어땠을까, 이런 상상을 해봤습니다. 왜냐하면 1부 벚꽃초는 너무나도 순수한 사랑을 그리고 있었으니까요. 그런 지나치리 만큼 순수한 어린 사랑은 남자라면 누구나 으레 한번 쯤은 해봤을테니까요. 그래서 실제로 보면 이 작품을 보고 감동하는 사람들은 대체로 남자들이 더 많습니다. 감독은 코멘터리에서 말하길, 있는 듯 하면서도 없는 듯한 배경을 그렸다고 했지요. 앵화초에서의 둘의 사랑은 지극히 현실적으로 있을 법 하지만, 또 존재하지 않는 그런 환타지입니다. 물론 감독은 둘을 이어줌으로써 그 환타지를 이어줄 수 있었겠지요.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이 작품의 포스터를 보면 ‘어느 정도의 속도로 살면 다시 너를 만날 수 있을까?’라는 주제 카피를 걸고 있다는걸 알 수 있습니다. 실제로 아카리는 아득히 주인공 타카키보다 빠르게 나아가고 있죠. 타카키는 아카리라는 과거를 복기하면서 천천히 그것도 헤메이면서 나가지만, 아카리는 착실히 자신의 앞길을 향해 가고 있죠. 그녀에게 타카키의 기억은 남아는 있지만 한때의 추억이었을 뿐입니다.



만약 그 두 사람이 만났을 때, 마치 소학교때 그랬던 것처럼 웃으면서 기다리는 모습은 그저 환타지일 뿐입니다. 아마 실제로 그 둘이 만나는것도 쉽지 않을 뿐더러 달라진 모습에 적응하기란 쉽지 않을 것입니다. 이따금 나는 시속 5 킬로미터라는 카고시마의 우주센터로 달려가는 로켓을 실은 트럭같이 달리는듯 한데, 세상과 주변에 있는 사람들은 초속 5 센티미터로 지나치는 듯한 느낌을 느낍니다.



거리만큼이나 멀리 떨어진 아카리를 만을 찾아, 아카리를 향해서 끝없이 나아가던 타카키와의 거리를 실감하던 이야기를 다뤘던 코스모나우트. 그곳에서 발사된 로켓에 탑재된 ELISH라는 위성체는 태양계 끝까지 간다던 주인공들의 예상을 뛰어넘어, 3부 초속 5센티미터에서 노래가 흐르기 작전에 타카키가 펼쳐보는 잡지에 따르면 그 엘리시란 위성은 태양계 너머 저편까지 날라가죠.



그만큼 시간이 흘러갑니다. 거리도 차이가 나죠. 어떻게 그들이 천천히 거리가 벌어지는지 빠르게 지나가는 컷들을 통해서 감독은 말합니다. 저에게도 타카키와 아카리처럼 편지를 주고 받는 것 같은 그런 경험이 있었더랬죠. 그리고 몇가지 사연으로 시간이 지나다보니 서로가 바빠지고 그러다보니 연락은 끊겼지만 제 맘 속에는 잊을 수 없는 추억이었습니다. 벌써 그게 8년전이니 아마 그 사람을 다시 만난다 할지라도 우리 둘은 무척이나 어색할 것 입니다.


실제로 첫사랑이었던 사람, 짝사랑했던 사람을 오랜만에 다시 만나서 보면 사람이 많이 변해서, 이제 지금 다시 만난다면 결코 호감가지 않을것 같은 사람이 되었다고 하는걸 많이 보아왔고 스스로도 경험해왔습니다. 그저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아주면 좋았을텐데 하고 말이죠. 피천득 님도 결국은 미군 장교와 결혼한 ‘백합같이 시들어가는 아사코’를 보며, ‘절을 몇번 씩하고 악수도 없이 헤어졌다’고 적습니다. 그리고 그는 세번째는 아니 만났어야 좋았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주말에는 춘천으로 가 소양강 가을 경치를 구경하고 싶다고 적습니다.



저는 그래서 초속 5 센티미터의 그 엔딩이 좋습니다. 타카키는 회사를 관두고 고용보험을 신청하죠(블루레이는 대단해요). 그는 웃으면서 다시 갈길을 갑니다. 그가 웃으면서 더 이상 과거의 기억에 머물지 않고 앞으로 힘차게 나아갔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가져봅니다.


[#M_초속5센티미터의 엔딩과 기존 작품의 유사성|닫기|이미 글에서 전작과 유사한 구도가 사용되고 있음을 알려드렸습니다. 그것과 마찬가지로, 엔딩도 전작과 유사한 구도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신카이 마코토의 작품에서 그와 그녀의 고양이를 비롯하여 이렇다하게 딱하고 결말을 제시한 작품은 없었습니다. 별의 목소리도 아마도 이러하지 않았을까 정도이고, 구름의 저편 약속에 장소에와서는 초반의 주인공의 독백과 후반부의 여주인공의 대사만으로 역시 그 둘은 이러하지 않았을까?라는 추론만 가능할 뿐이지요. 초속5센티미터에 와서는 그나마 조금은 명확해졌지만, 실상을 따지고 들면 그 여자가 아카리였는지 조차도 확실치 않습니다. 다만, 그녀일것만 같았다, 그녀는 돌아설것이다라는 예감. 그리고 그냥 돌아서서 끝나는 엔딩까지 신카이 애니메이션에 있어서 모호성은 빼놓을 수 없는 감초인가 봅니다. – 2008.11.03_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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