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눈을 떴을 때는 여느날과 다름없는 하루였고, 그 하루는 낡은 침대에서 코를 박은 변함없는 내 모습을 확인하는데서 시작한다. 나는 열마리도 넘는 곰들의 형이고, 우리 집의 가장이다. 우리는 블루베어라는 캐릭터의 봉제 인형이고, 공장에서 우리는 ‘블루베어 봉제인형 대’ 따위의 이름으로 불리웟다. 우리 모두의 이름은 우리가 정한 것이 아니다. 그대가 불러주자 꽃이 되었다는 김춘수의 싯구처럼, 우리가 이 집에 왔을 때, 그가 하나 하나 턱을 괴고 우리를 좌우, 우아래로 살펴보고선 고심끝에 손뼉치며 정했던 이름이다. 이제 너는 또미라고. 그렇게 한마리 한마리씩 늘어난 ‘또미’가 이젠 열마리도 넘게 되었다. 긴 이름을 가진 식구는 일곱자나 되는 이름을 가지고 있다. 대체로 우리들의 이름은 크기와 모양에 따라 붙여진 것이다. 이를테면 큰 또미는 작은 또미보다 커다란 또미고, 왕큰 또미는 정말 커다란 또미이다. 그런식으로 나는 작은 또미보다 더 작다해서 작은 작은 또미, 그걸 줄여서 작작 또미가 되었다가, 경음법칙에 의해서 짝짝또미가 되었다. 나보다 더 작은 또미는 지금은 없다. 우리가 태어난 곳에서 잠재적인 또미들을 더이상 만들어 지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을때 그는 상당히 실망했다. 아마 그들이 블루베어인형들을 만들지 않는다면, 아마 우리 식구는 더 늘지 않을 것이고, 나보다 작은 또미는 생기지 않을 것이며, 또 같은 연유로 나보다 큰 ‘동생’들은 생기지 않을 것이다.
나는 처음에 또미라고 불리웠다. 그러다가 나보다 큰 또미가 들어왔고 나는 작은 또미가 되었고, 새 또미는 그대로 큰 또미가 되었다. 그때는 너무나도 단순했다. 또미가 세마리가 네마리가 되고 그러자 그는 한 마리 한 마리를 데려 올 때마다 골머리를 앓았다. 11년전 크리스마스 이브, 그가 우릴 끔찍이도 아끼던 동생을 위해서 선물로 나보단 크고 큰 또미보단 작은 새 또미와 나와 큰 또미를 합친것보다도 더 큰 또미를 데려오자, 그는 재치를 살려서 나를 지금의 이름으로 바꾸어 부르는 대신 그 또미에게 작은 또미란 이름을 주고, 비슷한 식으로 더 큰 또미는 큰큰또미가 되었다.
난 행복한 걸까? 그는 우릴 가끔 깊은 눈으로 바라본다. 슬프지만 나는 대답할 수 없다. 그저 그를 향해 바라볼 뿐. 그에겐 미안하지만, 그걸 대답할 수 있더라도 나도 그거에 대한 대답은 잘 모르겠다. 난 올해로 열살이지만, 예순 살이 되면 대답할 수 있을까? 어찌됐던, 그가 나를 품으며 위안을 얻었으면 좋겠다. 내 친구이자 주인으로써. 그의 곁에 있어서 행복하노라고, 대답할 수 있다면. 만약 단한마디라도 내가 사람의 말을 할 수 있다면 그에게 그렇게 말해주고 싶다. 그 전까지는 요행을 바랄 뿐이다. 그는 어떻게 생각할까? 그가 행여 죄책감을 가지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푸른곰 이야기 1) 내 이름은 또미, 푸른곰 또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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