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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블로그의 방문자를 늘리는 가장 쉬운 방법은 무엇입니까?

문: 블로그의 방문자를 늘리는 가장 쉬운 방법은 무엇입니까? 

답: 누가 보던 간에 꾸준히 계속 올리는 겁니다.

 

 

 

로 끝내면 혼날테니 보충. 꾸준히 계속 올릴때와 안 그럴때 방문자 수는 차이가 매우 컸습니다. 검색엔진에 등록하고 (구글은 웹마스터 도구, 네이버 등은 사이트 등록) 페이스북이나 트위터 등 SNS를 하는 경우에는 자동으로 포스트 링크가 올라가도록 하는게 좋습니다. 길게 퍼오는 내용보다 짧더라도 오리지널리티 있는 내용으로 채우면 구글에서는 높게 쳐줍니다.

죄송합니다. 뭐를 써서 올리려다가 까먹어서 일단 창을 열었으니 뭘 올리기는 해야겠고 해서 적어봅니다(나중에 덧붙입니다, 쓰려고 했던건 이거였습니다, 괜찮을까요 제 기억력?). 근데 농담은 아닙니다. 방치되거나 가끔 올릴때보다 매일 올릴때 훨씬 많은 방문자를 불러옵니다.

이 기사를 염두에 두고 짧게 썼습니다.

소셜 네트워크를 끊기

요 며칠 정신적으로 많은 에너지를 쏟은 일이 있었습니다. 머리가 돌아버리는 줄 알았어요. 그런데 그 와중에 소셜 미디어 알림이 계속 울렸습니다. 아무런 적의 없는 내용에 아무런 죄도 없지만 정말 미치겠더군요. 그래서 트위터에 잠시 쉬겠다고 트윗을 했습니다. 고지 안하고 몇 달 쉰적이 있는데 팔로워 분들이 쫘락 줄어서 말이죠(그만큼 트위터 관두는 사람이 많고 그런 사람이 1순위로 팔로우 정리 대상인듯 합니다). 돌아올테니 언팔로우 하지 말라는 부탁도 했습니다.

근데 벌써 돌아가고 싶습니다. 어떻게 반년 넘게 쉬었던걸까요. 지금 떠오르는 이 말, 그리고 돌아서서 떠오르는 다른 말. 이걸 반년 넘는 시간 동안 어디에 얘기했던걸까요?

가끔 사람은 자기도 이해못할 괴력을 행사할 때가 있다는 듯 합니다. 아마 그것 엇비슷한 케이스겠죠.

고양이 천국 타임라인과 여론의 함정

트위터나 SNS를 하다보면 흔히 하는 오해가 '내 주위의 여론은 다 이래'라는 것이다. 그런데 의외로 폐쇄성과 편향성을 가지고 있는지 생각하게 되는 일례가 있다.

2010년 조사('국립수의과학검역원 '동물보호에 대한 국민의식 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경우 반려동물중 개가 94.2%를 차지하지만 나의 타임라인의 경우 거의 반대의 비율로 고양이를 키우거나 고양이 사진을 업로드하거나 고양이를 닉네임으로 하거나 고양이를 프로필 사진으로 하거나 고양이를 좋아하는 사람이 나온다. 개의 경우는 거의 없다.

트위터를 하는 사람이 유달리 고양이를 좋아하는것이 아니라면(반대로 개를 키우는 사람이 트위터를 안하는게 아니라면) 내가 고양이(와 고양이와 얽힌 사람들)를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쫓아'간것이 아닐까(실제로 프로필에 고양이를 좋아한다고 쓰여져 있기도 하고). 만약 이런것이 정치적인 취향, 기술적인 취향, 취미에 대한 취향에서도 의식, 무의식적으로 발현될 수 있다고 생각해보라. 내가 타임라인에서 보고 있는 내용은 내가 만든 필터에 의해 걸러진 여론이란 얘기다. 개와 고양이의 왜곡장처럼.

따라서 SNS에서 읽은 내용을 보고 여론을 판단하는 것은 '봐, 트위터 사람들은 고양이를 이렇게나 사랑하잖아? 세상은 고양이를 사랑하고 있다고!'라고 외치는 것 만큼이나 어리석은 행동이라고 밖에 볼 수 있다. SNS는 자신이 원하는 사람만 팔로우 할 수 있고 언팔로우도 가능하며 블록도 가능하다. 따라서 뭔가 제대로 여론을 읽기 위해서는 SNS이외의 수단으로 이차 검증하는, 보다 폭넓은 시야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소셜 피로(social fatigue)

새로운 종류의 디지털 피로에 시달리고 있다. 음. 나는 이걸 소셜 피로라고 명명하기로 했다. 트위터나 페이스북의 스테이터스 업데이트에서 좀처럼 떨어지기 어려운 현상을 말한다.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나. 무슨 새로운 일이 생기지 않았나? 그런 것이 나를 소셜 미디어와 분리하기 어렵게 만드는 그런 요인이다. 나는 IT를 일상적으로 다루다보니 당연히 감을 놓치지 않기 위해서라도 그런 느낌이 있을 수밖에 없다. 그런데.

내가 좋아하는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단편의 웹 공개가 얼마 후 종료된다는 글이었다. 사실은 페이스북에서 먼저 봤지만 트위터에도 같이 올라왔다.

 

나는 그 사실을 트윗했고 아마 여지껏 받아본적이 없을 정도의 반향을 얻었다. 리트윗과 페이보릿으로맥의 Growl[1]이 계속 번쩍번쩍 풍선을 띄웠다.

만약 이걸 놓쳤다면? 이란 생각을 하니. 잠시 아연해졌다[2]. 좋아하는 것을 알기 위해 SNS를 한다. 팔로우를 한다. 친구를 맺거나 좋아요를 하고 접속을 한다. 나는 그렇게 생각해 왔다. 소셜 네트워크는 라디오 같은 것이라고. 그래서 공포는 더 커진다. 지나간 것은 잡기가 쉽지 않다. 저 작은 상자 안에 뭐가 있을까? 같은 느낌?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을까? 뭘 놓치고 있는건 아닐까? 그래서 강박적으로 몰입하는 것 같다.

아무래도 좀 휴식을 취하면서 다시 생각할 필요가 있을것 같다. 이건 좀 아니지 싶다.


  1. 마치 윈도우의 작업표시줄의 안내 풍선처럼 특정 이벤트가 발생할때 표시를 띄워주는 앱  ↩
  2. 사실은 이미 미리 다운로드 해놓았었다.  ↩

내가 트위터에서 긴 말을 떠들지 않은 이유

최근 트위터를 사용하면서 취한 변화가 있다. 예전에 뭔가 떠오른게 있거나 영감이 있으면 트위터에 떠들었다. 하지만 지금은 되도록이면 블로그에 쓰기로 작정했다. 블로그에 쓰면 장점이 있다. 1) 기록이 된다. 나중에 찾아볼 수 있다. 2) 굳이 140자에 얽매일 필요가 없다. 덕분에 140자로 맞춰서 여러개로 나눠서 쓸 필요가 없다. 3) 트위터는 심도깊은 글을 전달하는데는 부적절하고 토론을 하는데는 부적당하다. 긴글 기능이 있지만 차라리 그럴거면 블로그가 훨씬 낫다. 4) 어차피 수많은 매체가 트위터를 홍보(Publicize) 플랫폼으로 사용하고 있다.

어차피 블로그나 트위터나 내가 생각하는 바를 떠드는 것이므로 그것은 상관이 없다(트위터라는 것 자체가 마이크로 블로그 아닌가). 트위터를 통해 블로그의 글을 홍보(Publicize)하기만 하면 소기의 목적은 달성된다. 거기에 최근 느낀게 있다. 트위터나 소셜 네트워크에 떠든 글이 은근히 프라이버시에 취약하다는 것이다. 미팅에서 만난 상대가 내가 아마존에 구매를 많이 한다는 얘기를 모두에서 얘기할 때, 물론 트위터에 잘 떠든 까닭도 있어서 그쪽에서는 분위기를 유화시키기 위해 한 소리겠지만 나로써는 조금 등골이 싸늘해지는 소리였다. 앞으로는 사적인 내용에 대해 좀 자제해야겠구나. 라는 경고로 들렸다.

해서 트위터로 트윗을 읽기도 하고 있지만 그보다는 내가 하는 말을 전달하는데 주력하고 있다. 멘션을 읽고 리트윗의 반응을 체크하는데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하고 있다. 일종의 퍼블리싱 플랫폼이 된 것이다. 사용하는 방법이 바뀐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