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한강 선생의 노벨상 수상과 도서정가제를 다시 생각하다

“도서정가제가 없는 세계를 겪어봤어요. 그때로 돌아가는 것은 독자로서 너무 힘든 일입니다. (도서정가제를 개악하면) 이익을 보거나 무언가 손에 쥘 사람은 소수일 거예요. 주로 작은 사람들, 출발선에 선 창작자들, 작은 플랫폼, 자본이나 상업성 너머를 고민하고 시도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을 잃게 됩니다.”(소설가 한강) (중략) 이날 행사에 참석한 소설가 한강은 “도서정가제가 없는 시간을 되살려보면, 일정시간이 지나 70%까지 할인되는 책들이 있었고, 크게 할인된 책들이 느닷없이 베스트셀러에 올랐다”고 말했다. 또 “도서정가제 정책 하나를 딛고 아주 작은 씨앗이 자라고 있고, 그 빚을 지고 있는 게 이 정부이고, 우리를 끌고 가는 센 힘”이라고 말했다. 이와 함께 제도가 변화할 때 부정적인 측면이 적지 않을 것이라 내다봤다. 그는 “짧게 보면 출판사는 재고 쌓인 것을 처리하고 독자는 책을 싼값에 살 수 있을지라도, 그 잔치가 지나고 나면 잃게 되는 것들이 있다”며 “(도서정가제 시행 이후) 그동안 신간이 2만종 늘어났다고 하는데, (이번에 도서정가제를 개악하면) 태어나지 못한 책들이 죽음을 겪게 될 것이고 그 피해는 독자들이 받게 될 것이다. 어린 세대에게 너무나 (큰) 파장을 미칠 것이고 신인 작가들도 염려가 된다”고 덧붙였다. – “도서정가제 개악 땐 책들이 죽게 될 것” 한강·박준 등 작가들 반발 (한겨레)

우선 작가 한강 선생(이하 경칭 생략)의 노벨문학상 수상을 축하 드립니다. 한강 씨는 도서계에서도 유명한 도서정가제 옹호론자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벌써부터 호사가들 사이에서는 도서정가제, 정확하게는 완전도서정가제 얘기가 흘러나오고 있습니다.

저는 글을 잘 쓰지 못합니다. 그렇다고 글을 많이 읽는 것도 아닙니다. 하지만 평균 보다는 훨씬 많은 글을 적고, 훨씬 많은 글을 읽고 있다고 자부하고 있습니다. 또, 훨씬 많은 책을 사고 있습니다. 요컨데 한강 씨가 글을 써 내리는 ‘생산자’라면, 저는 그러한 글을 읽어 내리는 ‘소비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저는 한 때 아무도 읽지 않을 글을 쓴 적이 있습니다. 그러한 글에 가치가 없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글은 누군가가 읽어주었을 때, 빛을 발한다고 생각합니다. 굳이 김춘수의 꽃을 인용하지는 않겠습니다.

현상, 책을 사는 사람들은 줄어들고 있고, 1인당 책 구매에 쓰는 돈은 줄어들고 있습니다. 그 결과 도서출판업계는 신음을 내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저는 작년부터 자영업을 영위하고 있습니다. 자영업 경기는 그야말로 최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솔직한 말로 도서출판 업계만이 2024년 대한민국에서 최악의 한해를 보내고 있는건 아니라는 위로 아닌 위로를 드려야 할까요.

저희 아버지는 자영업자셨습니다. 제가 어릴 때, 주말마다 서점에 데리고 책을 얼마든지 사도 싫은 소리를 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런 저를 보면서 서점의 사장님과 책임자분은 저에게 늘 책값의 몇 할을 에누리를 해주셨습니다. 그렇게 책을 사댔는데도 그 서점이 문을 닫던 날의 쓸쓸한 풍경을 아직도 기억합니다. 저 혼자로써는 어쩔 수 없었겠지요. 하지만 어려우나 아니나, 그만치 책을 사주신 아버지에게는 지금도 감사의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이 더욱 감사한 이유는 제가 사업체를 영위하는 입장이 되어보았기 때문일까요.

밥을 먹기 빠듯합니다. 생활이 어렵습니다. 이 상황에서 책은 여가나 취미의 영역에 들어가고, 후순위로 빠지게 됩니다. 흔히들 ‘서점에서 참고서나 어학서, 수험서, 실용서만 팔린다’ 라고 하죠. 왜겠습니까? 서민들이 어려운 살림에 마지못해 필요해서 사는 책들이 그런 부류의 책들인 것입니다. 참고서는 있어야 더 좋은 학교에 진학을 할 가능성이 생기고, 어학서, 수험서, 실용서가 있어야 좋은 직장에 취직을 꿈꿔 볼 수 있지요. 한마디로 ‘서민들의 사다리’라는 얘기입니다. 저는 외국어 특기자 전형으로 모 유명 사립대를 입학했습니다. 유학이나 강남 8학군이나 특목고를 나오지 않아도 아버지가 아낌없이 사주신 책 덕분입니다.

그런 상황에서, 완전정가제는 책값의 인상을 부추길 것이 뻔하고 서민들의 사다리를 걷어차는 악법이 될 것입니다. 이미, 저 자신이 사는 책의 숫자를 줄이고 있습니다. ‘책 도둑은 도둑이 아니다’도 아니고, 살 수 있는 돈은 한계가 있고 훔칠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요. 마음을 적시는 문학이나 취미/교양의 서적은 반대로 ‘있는 사람들’이 서민들과 격차를 벌리는 수단이 될 것이다. 라고 주장한다면 너무 지나친 비약입니까?

앞서도 말씀 드렸듯, 저는 외국어 특기자로 외국어를 전공했고, 외국어 서적을 탐독해서 이제는 필요한 분야의 원서를 어느정도 읽을 수 있습니다. 외국어 서적은 도서정가제 적용 외지요. 덕분에 같은 곳에서 비슷한 책을 사더라도 조금이나마 득을 보게 됩니다. 그뿐 아닙니다. 도서정가제가 존재하지 않는 미국이나, 전자책과 오디오북에는 정가제를 적용하지 않는 일본에서 책을 수입해오면 엄청난 할인이나 보너스 포인트를 받을 수 있는 경우가 왕왕 있습니다. 그렇게 쌓인 잉여로 저는 다시 책에 투자합니다. 그래서 외서를 사거나 수입할때마다 한숨이 나오곤 합니다.

우리의 시간은 한정되어 있고, 독서에 쓸 수 있는 여가시간도, 도서 구매에 쓸 수 있는 재화도 한정되어 있습니다. 무료로 수없이 쏟아지는 틱톡과 유튜브의 시대에 독서라는 행동은 싸워야만 합니다. 도서정가제는 단순히 도서 시장을 왜곡하고 있는 것만이 아닌, 이러한 미디어간의 경쟁조차 왜곡하고 있습니다. 물론 이 왜곡의 결과는 출판계와 이에 관계한 모든 분들, 그리고 우리 국민 모두에게 피해가 될 것입니다.

도서 정가제를 반대한다, 라고 하면 인용문에서처럼 수십 퍼센트 할인되어 모든 책들이 도매금으로 넘어갈 것을 우려하실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앞서도 말씀드린 미국과 일본에서는 철저히 시장원리에 의해서 잘 팔리는 책이 정가에 가깝게, 잘 팔리진 않는 책은 저렴하게, 미디어화로 인해 출판사가 잘 팔고 싶은 책이 저렴하게 등등 나름의 규칙과 질서를 가지고 판매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가 우려를 해야하는 것은 도서가 시장원리에서 벗어나서 20년 가까운 세월 동안 도서정가제라는 ‘시장을 움직이는 (인위적인) 손’에 놀아나느라 이리 꼬이고 저리 꼬이고, 이리 편법으로 우회하고 저리 편법으로 우회하고. 이런 것들을 막는답시고 또 해괴한 ‘땜질’을 하는 상황이 아니겠습니까?

도서정가제의 폐지만이 이러한 괴악한 상황의 종지부를 찍을 것이라고 저는 믿습니다. 도서정가제의 폐지로 이익을 보는 사람은 분명히 있습니다. 독자들이지요. 한강 씨는 노벨상 수상 직후, ‘전쟁이 일어나는 와중에 무슨 축하냐’ 라고 하셨는데. 독자들이 돈이 없어 책을 못사는데 노벨상이 아니라 무슨 문학 상인들 축하할 만 합니까? 소수의 고인물들의 문인들만의 잔치에서 노벨문학상을 받으니 출판인 여러분들은 행복하십니까? 이제 잔치는 끝났습니다. 이제 현실을 봐야 할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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