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업 인사, 그리고 은행의 보신 주의에 관해

이미 간간히 소셜미디어나 글에서 은연중에 드러냈지만, 저, 푸른곰 자영업자로써 개업했습니다. 지난 7월 11일자로 사업자 등록을 내서 당일 수리되었습니다. 따로 점포나 사무실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고 사업자 등록을 낸 주소인 자택에서 업무를 보고 있습니다. 사업자 계좌는 일단 카카오뱅크를 통해서 개설했습니다. 세무서에서 사업자 등록 신고 수리가 되자 마자 아주 간단하게 국세청 정보를 스크래이핑 하는 것 만으로 사업자 명의 계좌가 개설되었습니다. 그리고 얼마 뒤 감사스럽게도 거래처에서 첫 매출이 발생했습니다만, 전자세금계산서를 발행하려고 보니 아주 난감한것이 카카오뱅크는 공동인증서 발행기관이 아닙니다. 문제는 전자세금계산서는 전자세금계산서용 내지는 기업용 범용 공동 인증서가 있어야만 발행이 가능하다는 점입니다(아니면 세무서에 들러서 전자세금계산서용 보안카드를 발급 받는 방법이 있습니다). 그리고 인증서 발행은 개인용과 마찬가지로 시중은행이 독점하고 있다는 점이죠. 그래서 사업자 계좌를 개설하고자 거래를 하고 있는 시중은행에 문의를 해봤는데 이게 아주 가관이더란 말입니다.

우선 제가 가장 많이 거래를 하고 있는 4대 혹은 5대 시중은행 중 하나인 A금융지주 산하의 A은행은 신규 사업자인지 아닌지를 묻더니 “사업을 영위하고 있는 실체적인 확인이 필요하다”며, ‘점포의 임대차 계약서가 있냐, 간판과 점포 사진이 있느냐’고 했는데 ‘재택근무고, 사업자 등록 역시 자택으로 되어 있다’고 하니 난색을 드러내며 그렇다면 홈페이지가 있는지를 물어보더군요. 이래저래 어렵다는 결론이 나와서, 지금까지 거래하던 개인 계좌를 사업자 명의 계좌로 전환할 수 있는지 물어보자, 그건 ‘점포를 내방해서 상담받아봐야 할 것 같다’라고 하더군요. 두번째로 전화를 해본 곳은 국책은행인 B은행이었습니다. 우선 사업자등록증 등 서류를 가지고 내방을 하되, 가능할지 아닐지는 해당 점포의 직원 확인이 필요하지만 가능하더라도 한도계좌로만 발급이 가능하고 해제를 하기 위해서는 부가가치세 납세증명원을 준비해달라는 것입니다. 아니, 부가가치세 정산을 위해서 인증서가 필요하고 계좌가 필요한뎁쇼. 라고 속으로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걸 참으며 전화를 끊었습니다.

그래서 언제 날 잡아서 (보안카드를 받으러) 세무서에 가야겠다. 생각하던 찰나에 무슨 생각이었는지 A은행과 B은행의 기업인터넷뱅킹 앱을 받아봤습니다. 의외로 사업자 계좌도 비대면 개설이 가능했습니다. 특히 A은행은 소위 대형 시중 은행이라고 불리는지라 확실히 달라서 계좌개설부터 인터넷뱅킹과 기업용 체크카드까지 원스톱 처리가 가능했습니다.

두 군데 중에서 어디를 해볼까 고민하다가, 개인적으로 제일 거래를 많이하던 A은행을 먼저 시도해 보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진행을 하다보니 어라? 뭐가 이상합니다. 한도계좌로 발급이 원칙이고 한도 계좌는 1인 한 개에 한정되나 당행 우수 고객 등급이 있는 고객의 경우 일반계좌로 발급됩니다. 라는 것이었습니다.

실제로 기존 한도 계좌가 있는 고객도 우수고객등급을 취득하게 되면 일반계좌로 비대면 변경 신청이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그외에도 사업자/법인 대출을 받고 있거나 신용카드 가맹점으로써 3개월 동안 입금이 있을 경우 비대면으로 한도계좌 해제가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공교로운 것은, 아니 공교로울 것은 없네요. 애당초 주거래 은행이었고, 계열 지주회사 소속 카드사 카드도 주거래 카드였습니다. 그래서 제일 먼저 전화를 해본거였고 말이죠. 저는 이 은행에 우수 고객 등급이 있었고. 그 이후로는 일사천리로 계좌와 인터넷 뱅킹, 체크카드와 전자세금용과 사업자용 공동인증서, 그리고 금융인증서를 순서대로 발급받았습니다.

뭐랄까. 허탈하네요. 보통 계좌를 개설할때는 개설 목적을 묻고, 개설 목적에 따라 증빙서류만 내밀면 되는 것처럼 얘기를 합니다. 근데 그 증빙서류라는것이 ‘대외비’고(악용을 방지하기 하기 위해서라나) 잘 알려주지도 않을 뿐더러, 행원이나 지점의 재량권이 너무 심합니다.

C은행과 개인 입출금 통장 상담할때는 ‘무슨 서류를 가져와야 하느냐’는 말에 ‘그건 고객님이 알아서 거래 목적을 입증할 걸 가져오셔야죠’라는 어처구니 없는 소리를 해서 언성을 높이자 그제서야 행외비라고 워터마크가 찍힌 일람을 보여주더군요. 그 일람표는 나중에 자리를 뜨기 전에 착실히 회수해가더군요. 그리고 지금은 곤란하니 나중에 이런 조건을 채우고 다시 오라고 하다가도 나중에 가서 딴소리 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C은행 계좌는 개설 5년인가 6년만에 한도계좌를 풀 수 있었죠.

이번 건은 사업자 계좌입니다. 본디 은행(銀行)이라는 곳이 무엇을 하는 곳인지 생각해보면, 주택 담보 대출 이자 놀이하는 곳이 아니라, 개인 고객에게서 수취한 예금을 기업이나 상공인들에게 금융 서비스와 융자 등의 형태로 제공하고 그 마진으로 먹고 사는 곳이라고 배웠거든요? 텔레비전 등 광고에서는 소상공인의 동반자니, 동반 성장이니 하면서 실제로는 막 시작한 사업자에게 융자도 아니고 통장 하나 내주는 리스크 하나 지기 싫어하는것과, 돈 많이 넣고, 돈 많이 꾸는걸로 검증된, 이미 잡은 봉(?)에게 선심 쓰듯 통장 하나 내준 이번 경험을 보면서 우리나라 은행이 얼마나 배금주의와 보신주의에 쩔어 있는지 알것도 같습니다. 과연 금융위원회의 선언이 공염불이 아니길 빌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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